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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3
오장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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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 취미(愛書趣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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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심루(賞心褸) 주인께서 애서 취미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문장』에 실어보는 게 어떻냐 하시기에 이 이야기의 초(草)를 잡았습니다. 이 글은 애서 취미에 초심이신 분을 위하여 될 수 있는 대로 노트와 연구 같은 것은 빼고 평이한 소개에 일화쯤 넣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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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세상에는 서치(書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취나 혹은 도락이 심하여지면 할 수는 없는 일이나 필자는 동경 있을 때 어느 애서가에게서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내와 자식은 며칠씩 안 보아도 견디나 책은 잠시라도 곁에서 떼놀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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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애서가는 그렇게 독서를 많이 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다점(茶店)에 들어가 앉으면 월간 잡지를 두 페이지도 못 읽고 싫증이 난다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서적을 사는 사람에는 독서가와 애서가의 두 타입이 있다고 하였지만 진실로 이러한 사람을 비블리오마니아(Bibliomania)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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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도 않는 사람이 책을 사랑하고 책에 대하여서는 치골이 된다는 것이 일견 미친 일과도 같지만 서양에서는 이러한 괴벽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도리어 고대 문헌에 관한 큰 참고가 되는 수도 있고 어느 사적(史的)인 발견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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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이 애서가가 되기 시작하는 증세는 같은 책에서도 특제를 살려고 하는 데에서 시작되어 세상에서 흔하지 않은 책 한정본, 혹은 초판본, 나중에는 남이 안 가진 책을 가지려고 하고 또한 갖는 데에 쾌감을 느끼는 것이 경지를 넓혀 남의 사본(私本), 원고, 서명본, 필적, 서간, 일기 같은 것을 모으는 데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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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러한 책들을 모으는 데에 갖은 고심과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많은 고로 이 방면에 재미난 일화도 많이 남았습니다만은 왕왕이 경도제대(京都帝大)의 교수요 민족학 연구의 권위인 기요노(淸野) 박사와 같이 자기가 갖고 싶은 책이면 훔치기까지 하는 미안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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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서적 이야기를 하자면 장정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장정이라면 조선 출판상들은 그저 덮어놓고 화가의 그림이나 한 장 얻어다 표지에 붙여놓고 모모의 장정이라 하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책의 체재와 활자의 배치라든가 제본 양식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취미로만 만들어서야 누구누구의 장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책의 멋은 역시 표지에 있어 좋은 책을 장점함에는 대게 가죽을 쓰게 됩니다. 가죽의 종류는 무슨 가죽으로든지 무방하나 고양이가죽 심지어는 뱀가죽에 이르기까지 쓰고 중세기 구라파에서는 어느 사형수의 등가죽을 벗기어 인피로 장정을 한 책이 지금도 남아있으나 아무래도 고급으로 치기는 양피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도 흰 빛깔을 세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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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히 이것저것 장정이 좋은 책에 손을 대이기 시작하면 사람이란 수집의 심리가 동하는 고로 이 길을 밟게 되는 것입니다. 아직 조선에는 한정판이나 혹은 특제본 같은 것을 별로 만든 적도 없고 또 그러한 책이나 초판본 같은 것을 애써 구하는 이들이 드물이나 동경만 하여도 일류 출판사에서 이런 독자에 유의하는 외에 호화본이나 한정본을 전문으로 간행하는 서점이 몇 군데나 있고 애서 취미에 관한 잡지가 다달이 나오며 애서가들이 구락부를 모아 자기네들의 좋아하는 책을 출판하여 회원만이 나눠 갖도록 하는 곳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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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불란서의 이야깁니다만은 법제원의 멤버에도 의자를 놓고 언어학자로도 큰 권위를 가졌던 고 브레아르 씨는 또한 애서가로도 유명하여 노경에는 그가 몇 해 안으로 산 것만도 5동(棟)이나 되는 집 안에 가득 찼었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1미터 가량 되는 단장을 가지고 다니며 책을 사는데 아무리 못 사도 그 단장 높이만큼은 사야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부인은 그 남편이 하도 책 사는 것밖에는 모르는 것을 딱하게 여기어 책을 사지 못하게 하였더니 과연 그것이 원인으로 신경쇠약에 걸리어 심히 열이 생기는 고로 남편이 책을 얼마나 좋아한다는 데에 다시 놀라며 마음대로 하도록 하였더니 또 전과 같이 책을 사들이는데 하루는 어찌 책을 많이 샀던지 마차에서도 태워주지를 않아 노인이 땀을 흠뻑 흘리며 그것을 짊어지고 오다가 넘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기야는 늑막염에 걸리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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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유애서(亦有愛書)라는 것은 가장 호화로운 실내의 오락이다. 시간과 금액이 굉장히 많이 드는 고로 조선에서는 앞으로도 애서 취미가 보급되기는 어려우나 개인으로는 필자가 아는 사람으로도 초보 정도의 서치(書痴)로는 몇 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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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진본, 진본 하지만 진본에는 귀중품으로서의 진본이 있고 호화판으로서의 진본이 있는데 전자가 사화(史話)같은 것이 수위에 있는 대신 재미있는 일로는 후자는 문학 서적이 단연 독점을 할 것입니다. 요 근래에 유명한 한정판으로는 뉴욕에서 발행한 초서(영국 14세기 시인)의 ⌜안나가랑가⌟라는 책인데 처음 예약 가격은 1백 50불이요 한 7,8년 전에는 책이 나온지 10년 가량에 고본 시장에서 시세가 2천 불대에 올랐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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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수 있으면 조선에도 한정판 구락부 같은 것을 만들어 ⌜춘향전⌟이라든가 ⌜용비어천가⌟ 같은 고전 혹은 현대작가들의 시집이나 소설집 같은 것을 만들고 싶습니다. 매수에 제한이 있사와 일단 이야기는 그칩니다만 기회가 있으면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여보겠습니다.
【원문】애서 취미(愛書趣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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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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