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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소년군(野生少年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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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5
채만식
1
野生少年軍[야생소년군] (1막 3장)
 
 
2
〔인물〕
3
복만(福萬) ……14세, 야생 소년군
4
상수(相洙) ……14세, 〃
5
오복(五福) ……16세, 〃
6
광식(光植) ……13세, 〃
7
돌쇠 ……13세, 야생 소년군
8
무쇠 ……10세, 〃
9
왁돌이 ……과실장사
10
김서방 ……광식의 아저씨 집 하인
11
꾀쇠 ……광식의 아저씨 집 하인
12
깍정이 박가 ……광식의 아저씨 집 하인
 
13
〔시대〕
14
현대 하절 월야(月夜)
 
15
〔장소〕
16
농촌시장 부근
17
(야생소년군 중에 광식이 하나가 부자집 도령님처럼 차린 외에는 전부가 발을 벗고 의복이 남루하다.)
 
 
18
제 1 장
 
19
큰 길거리. 좌우로 바로 뚫린 길이 보이고, 정면은 빈지문을 닫은 가가가 보인다. 막이 열리며 무대는 잠깐 비었다가 좌수로부터 상수가 무엇인지 자루에 넣은 것을 들고 등장. 저녁밥을 갖에 먹었는지 얌얌하고 입맛을 다시며 관객석을 향하여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20
상수    (자루를 옆에 놓으며) 하나두 안 왔구나.
 
21
복만    (우수로 등장)
 
22
상수    (복만을 먼저 보고 휙 휘파람을 분다)
 
23
복만    (마주 휘파람을 불고 상수의 옆으로 가까이 가서) 안들 왔니
 
24
상수    아직 안 왔나바.
 
25
복만    가지고 왔니?
 
26
상수    응.?
 
27
복만    상수의 ( 옆에 놓인 자루를 굽어다보며) 이거로구나, 무어니
 
28
상수    보리.
 
29
복만    보리? 어머니를 졸랐구나?
 
30
상수    피. 내가 이삭 주어서 모아두었든 거야.
 
31
복만    응? 그랬니.
 
32
오복    (우수로 등장. 두 동무를 먼저 보고 휘파람을 불려는데 잘 나지 아니하여서 후후 한다)
 
33
복만·상수  (동시에 휘파람)
 
34
복만    (좀 큰 말로) 가지고 왔니
 
35
오복    (귀를 먹어서 두릿두릿하며)
 
36
복만    (더 크게) 가지고 왔어?
 
37
오복    (겨우 알아듣고 못난이 웃음을 웃으며) 응, 가지고 왔나구? (다시 두릿두릿하며) 참, 무엇?
 
38
복만·상수  (기가 막혀 웃는다)
 
39
오복    (뚜하니 골을 내어가지고) 웃기는 왜 웃어? 귀 좀 먹었다구 그러니?
 
40
복만    (방백) 저런 망헐 것 보게. 아까 실컷 목이 터지게 말을 했는데, 그래두 못 알어듣구 딴청만 봐! (오복의 귀를 잡아다 입에 대고 크게) 용남 어머니가 ─
 
41
오복    (풀어져서 생글생글 웃으며) 응응, 용남 어머니가.
 
42
복만    애기를 낳는데 ─
 
43
오복    엥? (의외로운 듯이 기뻐하며) 애기? 애기? (몸짓을 하면서) 애기 어르는 시늉을 한다)
 
44
복만    그래 애기를 낳는데 ─
 
45
오복    응응 애기 애기.
 
46
복만    (잡은 오복의 귀를 꽉 잡아당기며) 잠자코 있어 좀. (다시 큰 말로) 그런데, 먹을 것이 없어서 ─
 
47
오복    (놀라) 엉? 먹었어? 나처럼 귀를 먹었어
 
48
복만    (짜증이 나서 잡은 귀를 놓으며 콱 밀어버린다)
 
49
오복    (아픈 데를 만지며 어리뻥하고 서서) 왜 때려? 괜히!
 
50
상수    (갑갑하여 오복의 귀를 잡아다 입에 대고 아주 크게) 먹을 것이 없어, 먹을 것.
 
51
오복    (겨우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응, 먹을 것이 없다구? 밥 먹지?
 
52
상수    (쿡 쥐어지르며) 아이구 이 원수!
 
53
오복    (뻔하고 서서) 왜 그래? 괜히 때려들!
 
54
복만    (다시 오복의 귀에 입을 대고) 쌀이 없어, 보리두, 남구두 없구. 알었니?
 
55
오복    응, 쌀이 없어. (무엇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내가 저녁밥 먹고 남은 게 있는데 갖다 줄까? (금시로 뛰어가려고 한다)
 
56
복만    (오복의 귀를 꽉 잡아당기며) 가만 좀 있어.
 
57
오복    아고 아야.
 
58
복만    그러니까 우리가 말이야 쌀이나, 보리나, 밥도 좋구 또 남구나 돈이나 아무것이나.
 
59
오복    응응.
 
60
복만    조곰씩 모아서 갖다 주기로 했으니까.
 
61
오복    응응.
 
62
복만    그러니까 너도 아모거나 좀 가지고 오란 말이야. (귀를 놓아준다)
 
63
오복    (겨우 모든 것을 알아듣고) 응, 아므렴, 그래야지. (방백) 가만 있자. (생각하다가) 옳지 옳지. (복만과 상수를 번갈아 보며) 우리 집에 보릿대가 아주 많이 있어. 그것 갖다 주어도 괜찮지
 
64
복만·상수  (고개를 끄덕거리며) 좋아 좋아.
 
65
오복    (우수로 걸어가면서) 그럼 곧 가지고 오께. (달음질로 퇴장)
 
66
광식    (우수로 등장. 휘파람)
 
67
복만·상수  (휘파람)
 
68
복만    가지고 왔니?
 
69
광식    (조끼 주머니에서 돈지갑을 꺼내어 1원짜리 한 장을 덜어내어 복만에게 준다)
 
70
복만    (말없이 받는다)
 
71
상수    (불평스럽게) 광식이가 겨우 일 원이야.
 
72
광식    (무렴하여서 머뭇머뭇하다가) 저, 그것도 월사금 칠십 전 주고 나머지는 종이 사라는 건데……
 
73
복만    (의젓하게 광식의 등을 다독거리며) 응응 괜찮아, 이놈도 너무 많다. (다시 상수를 보고) 너는 왜 그러니! 부자면 그애 아부지가 부자지 그애가 부자니?
 
74
상수·광식  (풀어져서 서로 바라보고 웃으며 휘파람)
 
75
복만    무쇠허구 돌쇠는 웬일일까?
 
76
돌쇠    (미역을 댓 꼭지나 손에 들고 우수로 등장. 휘파람)
 
77
일동    (휘파람)
 
78
복만    (돌쇠가 주는 미역을 받아들고 보며) 미역이로구나
 
79
돌쇠    응.
 
80
복만    샀니?
 
81
돌쇠    아니, 어머니가 주었어.
 
82
상수    네 동생은 웨 안 오니?
 
83
돌쇠    지금 밥 먹어.
 
84
상수    곧 오지.
 
85
돌쇠    응.
 
86
상수    무쇠는 뭘 가지고 오니.
 
87
돌쇠    돈.
 
88
오복    (보릿대를 한 뭇 큼직하게 묶어 어깨에 메고 끙끙하면서 우수로 등장)
 
89
일동    (휘파람)
 
90
오복    (여러 사람 앞에 내려놓으며) 이거 괜찮지?
 
91
일동    좋아 좋아.
 
92
복만    (일동에게 목을 가다듬어 의젓하게) 인제는 가져다 줄 텐데 모은 것은 돈이 일 원허구 (허리띠에 매인 20전짜리 은전 한푼을 풀어 들고) 이십전 해서 일원이십전, 보리가…… (상수를 보고) 멫 되?
 
93
상수    닷 되.
 
94
복만    보리가 닷 되, 미역이 여섯 꼭지, 보릿대가 한 뭇, 가지고 갈 사람은 오복이허구 광식이.
 
95
일동    (휘파람)
 
96
광식    (보릿자루와 돈과 미역을 받아 들고 나선다)
 
97
복만    (오복의 귀에 입을 대고) 너허구 광식이허구 이것 모다 용남이 집에 갖다 주고 와.
 
98
오복    응. (보릿대를 들어 메고 일어서서) 이건 내가?
 
99
복만    (고개를 끄덕거리며) 응. (광식을 보고) 용남이는 한 열흘 동안 더 아니 와두 좋다구 그래라. 그러고 이것을 갖다 주면서 헐 말은 네가 생각해서 허구. 또 우리는 세이레(3 7일)가 지나면 가서 보겠다구.
 
100
광식·오복  (휘파람, 우수로 퇴장)
 
101
일동    (휘파람, 잠깐 침묵)
 
102
무쇠    (찍찍 울며 우수로 등장) 엠병을 헐 자식, 이잉.
 
103
일동    (휘파람, 놀라 무쇠 앞에 둘러선다)
 
104
복만    웨 우니 응.
 
105
무쇠    (울음 뚝 그치고) 저, 거시키.
 
106
복만    (눈물을 닦아주며) 그래.
 
107
무쇠    저, 왁돌이놈우 자식이.
 
108
복만    그래서.
 
109
무쇠    내가 돈 오전을 가지고 오는데.
 
110
복만    응.
 
111
무쇠    저, 동전으로 바꾸어 달라고 허니까, 살구 안 사먹는다구 막 때리구 돈두 빼앗어 갔어.
 
112
일동    (얼굴에 분기가 떠오른다)
 
113
복만    그래 돈은 오전이고, 뺏기고 못 찾었겠다
 
114
무쇠    응, 저, 어머니가 삼전은 용남이 집에 주고 이전은 양재물 사서 빨래허게 남겨오란 거야.
 
115
돌쇠    (무쇠의 앞으로 와락 나서며) 이놈아, 못생기게. (눈을 흘긴다)
 
116
복만    (돌쇠를 제어하며) 아서 아서 가만 있어. (일동을 둘러보며) 그러면 어떻게 헐꼬?
 
117
상수    잡어다가 볼기를 때려야지, 우리 법대루.
 
118
복만    그런데 잡어올 수가 있어야지
 
119
상수    왜 못 잡어와?
 
120
복만    어떻게?
 
121
광식·오복  (우수로 등장, 휘파람)
 
122
일동    (휘파람)
 
123
복만    빨리 빨리.
 
124
광식·오복  (한 군데로 모여) 무어야
 
125
복만    (오복의 귀에 입을 대고 큰 소리로) 왁돌이놈이.
 
126
오복    응? 왁돌이? 그놈이 아주 깍정이야, 그놈이 장사를 해서 하루에 돈이 삼십팔전씩이나 남는다는데 술만 사먹구, 담배만 사먹구, 그리구는 주정만 허구 아주 깍정이짓만 허는 놈이야, 아이들을 마구 때리구.
 
127
복만    그런데 말이야.
 
128
오복    그러구 그놈이 제 힘만 믿구 촌사람을 막 곯려주구, 아주 깍정이야, 그놈이…… 돈 있는 애들한테 알랑알랑허구.
 
129
복만    글쎄 잠자코 내 말을 좀 들어봐.
 
130
오복    응응.
 
131
복만    우리 무쇠가, 돈 오전을 가지고 오는데 ———
 
132
오복    응? 돈 오십 원? (눈이 동그래져가지고 무쇠를 돌아보며) 그렇게 많이? 어데이야 구경이나 좀 허자. 어데서 돈이 그렇게 많이 생겼니? (복만을 보고) 오십 원이면 한 만 냥은 될걸? 내 짐으로 한 짐은 될 거야, 웬걸 두 짐이나 되겠구만.
 
133
일동    (웃는다)
 
134
복만    (미워라고 오복의 귀를 꽉 잡아당기며) 오십 원이 아니라 ———
 
135
오복    엉? 그럼 더 많애?
 
136
복만    오 전이야 오 전.
 
137
오복    응, 오 전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요것? 오전 한푼?
 
138
복만    그래, 그런데 그것을 왁돌이놈이 빼앗어갔어.
 
139
오복    응? 그 자식이? (분해서 팔을 뽐내며) 그 자식을, 그저 그저 그 자식을 막 죽여놀 테야.
 
140
복만    죽인단 말은 안 되고 잡어다가 우리의 법대로 다스린단 말이야.
 
141
오복    응응. (싱글싱글 웃으며) 곯려주구, 때려주구, 얼씨구 좋다. 히히 고놈을 히히 집장사령은 나다 나야.
 
142
복만    (오복의 귀를 놓고 상수를 보고) 그런데 어떻게 해서 잡어온다구?
 
143
상수    (팔을 벌여 일동을 한데 모아 어깨를 서로 끼고 둘러서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한다. 일동의 얼굴에는 점점 기쁜 빛이 나타난다)
 
144
상수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되었지?
 
145
일동    좋다 되었다. (휘파람)
 
146
오복    (두릿두릿하며) 나는 웬 속인지 모르겠다.
 
147
복만    (오복이더러) 잠자코 허라는 대로만 해. (일동을 보고) 자, 지금부터 시작인데 (돌쇠를 보고) 섣불리 허지 말고 잘해야 헌다. 응?
 
148
돌쇠    (휘파람, 우수로 퇴장)
 
149
일동    (휘파람, 좌수로 퇴장) (무대 회전)
 
 

 
150
제 2 장
 
151
좌우로 통한 길이 있고 정면 중앙에 좁은 골목이 보인다. 골목 좌우로는 울타리. 골목 우편에 오복, 그 다음에 복만, 새끼와 매를 든 상수, 광식, 무쇠의 순서로 늘어서서 긴장한 빛으로 연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 맞은편에는 기다란 걸상이 놓여 있다. 1분쯤 된 뒤에 발자국 소리가 요란히 나며 돌쇠가 살구 한 개를 손에 들고 우수에서 달음질을 쳐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일동은 무언중에 더욱 긴장된다. 뒤미처 왁돌이가 숨을 허덕거리며 돌쇠의 뒤를 따라 골목 안으로 뛰어든다. 휙 하는 휘파람 소리와 아울러 위선 오복이가 내달아서 다리를 내어밀어 왁돌이를 넘어뜨리고 일동은 달려들어 오복이가 타고 앉은 왁돌이를 결박을 지어 일으켜 앉힌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 왁돌이는 겨우 정신을 수습하여 가지고 일동을 둘러본다. 일동은 왁돌이를 끌어다가 큰길에다 좌향하여 앉혀놓고 그 앞에 복만을 중심으로 왁돌이를 향하여 늘어선다.
 
 
152
복만    (아주 깜찍하게) 이놈 네가 왁돌이라지?
 
153
왁돌이   (기가 막힌 듯이) 허허 참 별 개 같은 꼴을 다 보겠네. (골을 내며) 이 못된 깍정이가 차갈 자식들 당장에 이것 안 풀어놀 테냐.
 
154
복만    (대수롭잖게) 흥, 네가 아직 맛을 몰랐구나. 그러면 맛을 좀 보여주께 좀 기다려. (좌우를 둘러보고 명령적으로) 저놈 잡어 엎어라.
 
 
155
(일동은 즉시 달려들어 걸상을 갖다놓고 관객석을 향하여 왁돌을 잡아 엎는다. 왁돌은 버티며 몸부림을 하고 무수히 욕을 한다. 일동은 무언중에 손재게 움직여 왁돌이를 걸상에 앉혀서 손발을 꽉꽉 묵고 볼기를 벌려놓는다. 일을 마치고 물러서며 휘파람)
 
 
156
복만    (천천히) 이놈 인제도 몰라?
 
157
왁돌이   알기는 알기는 네 에미를 알아?
 
158
복만    (오복을 보고 손으로 시늉을 하며) 저놈 쳐라.
 
159
오복    (마침 매를 들고 섰다가 좋아라고 싱긋 웃고 달려든다)
 
160
복만    (위엄 있게) 때렷, 열 개다.
 
161
오복    (상수를 보고 멫 개냐는 듯이 묻는다)
 
162
상수    (손을 한번 피었다가 쥔다)
 
 
163
(오복은 매질을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때리는 동안에 왁돌이는 점점 풀이 죽어가지고 아야아야 소리를 치다가 필경 운다. 오복은 열 개를 다 채우고 물러선다. 일동은 은근히 기뻐한다) 복만 이놈, 인제는 알까?
 
 
164
왁돌이   (우는 소리로) 알았어.
 
165
복만    알았어? 이놈아 혓바닥이 반도막이냐?
 
166
왁돌이   네 그저 알았읍니다.
 
167
복만    응, 우리 법은 그렇다. 그런데 인제는 문죄를 헐 차례야, 잘 들으렷다.
 
168
왁돌이   네네.
 
169
복만    너는 이놈, 장사를 해서 버는 것을 가지고, 어린 놈이 매일 술, 담배만 먹고 다니고, 그것은 네 멋에 네가 허는 짓이니까 과찮다고 허더라도, 술을 먹은 끝에는 주정을 허고 어린애들을 때려 주고, 만만헌 촌사람을 곯려주고, 그랬으니 네가 그것이 옳은 짓인가?
 
170
왁돌이   그저 잘못했읍니다.
 
171
복만    그런데 또 오늘 밤에는 네가 공연히 우리 무쇠를 때려주고, 가진 돈을 빼앗어 갔으니까 너는 말허자면 도적놈이야…… 도적놈도 큰 도적놈이 못 되고 다라운 도적놈이야.
 
172
왁돌이   네 그저 잘못했으니, 오전에 일전을 더 보태서 육전으로 주지요.
 
173
복만    그런 잔말은 그만두고, 아까 맞은 것은 우리한테 버릇없이 헌 죄로 맞은 것이고, 인제는 정말로 맞일 것이 남었어. (오복을 돌아보며) 또 때려라, 열 개만.
 
 
174
(오복은 역시 싱글벙글 웃고 대들고, 상수는 오복에게 열 개라는 것을 알으켜 준다. 때리기 시작한다. 왁돌이는 엉엉 운다. 열 개를 채우고 나서 오복은 물러선다)
 
 
175
복만    인제는 다 알겠지?
 
176
왁돌이   네, 다 알았읍니다.
 
177
복만    다시는 그따우 버릇을 않지?
 
178
왁돌이   네 다시는 안 그래요.
 
179
복만    지금 가서 아까 빼앗은 오 전을 도루 주지?
 
180
왁돌이   네 일 전을 더 보태서 육 전으로 주어요.
 
181
복만    아니, 오 전만 주어.
 
182
왁돌이   그러면 오 전만.
 
183
복만    (일동을 돌아보며) 풀어주어라.
 
 
184
(일동은 달려들어 손재게 풀어준다. 왁돌이는 일어서서 허리춤을 맨다)
 
 
185
무쇠    (왁돌의 앞으로 나서서 손을 벌리며) 내 돈 내.
 
186
왁돌이   (뛰하고 서서) 가자, 주마.
 
187
복만    무쇠야 따라가서 오 전을 주거든 받아가지고 집으로 가서 자거라.
 
188
무쇠    안 주면.
 
189
복만    그럴 리가 없지만 또 안 주거든 와서 말을 허지.
 
190
무쇠    응.
 
191
복만    돌쇠야, 아까 네가 집어온 살구 한 개 어쨌니.
 
192
돌쇠    (손에 든 살구를 내어보이며) 여기 있어.
 
193
복만    왁돌이 주어라
 
194
돌쇠    (왁돌에게로 가서) 았다.
 
 
195
왁돌이는 살구를 받아가지고 무쇠와 같이 우수로 퇴장. 잠깐 침묵. 왁돌이가 멀리 갔음직한 때에 일동 박수, 대소, 휘파람.
 
 
196
복만    (일동을 손짓으로 제어하고) 자, 한바탕 해야지.
 
197
일동    아므렴, 해야지.
 
198
복만    준빗.
 
 
199
일동은 상수를 가운데 둘러선다. 상수는 허리에서 수건을 빼어 손에 들고 광식은 하모니카를 내어 입에 대고 불 준비를 한다.
 
 
200
복만    (일동을 둘러보고 나서) 자, 시작.
 
 
201
일동은 입으로 광식의 하모니카에 맞추어 손뼉을 울리며 태호행진곡(太湖行進曲)을 부르고 상수는 꼽박을 춘다. 3,4분 동안 유쾌하게 논다. 끝이 난 뒤에 박수, 휘파람.
 
 
202
상수    자, 우리 오늘 저녁에 수가 하나 있네.
 
203
일동    (상수를 바라본다)
 
204
복만    수라니?
 
205
상수    먹을 수.
 
206
복만    먹을 수라니?
 
207
돌쇠    먹는다면 좋더라, 나는 저녁도 안 먹었더니.
 
208
복만    안 먹었니?
 
209
돌쇠    무쇠만 먹구, 나허구 어머니는 안 먹었어.
 
210
상수    나는 보리꽁퉁이 한 숟갈 먹었더니 배는 고푼데 방구만 풍풍 나온다.
 
211
광식    (일동의 얼굴만 본다)
 
212
복만    대관절 먹을 수가 있다니 무어냐?
 
213
상수    다른 게 아니라 오늘 부자 양반들이 뒷산에 모여서 한잔 먹는다나. 기생에, 광대에 막 부르구, 술상이 오락가락허구, 아까 오면서 보니까 광식이 아저씨네 집에서 야단법석이가 났데, 저녁상을 차려 올려간다구.
 
214
복만    (하치 않게) 뭣 우리더러도 먹으랄 줄 아니?
 
215
상수    (퀄퀄하게) 빼앗어 먹지.
 
216
복만    어떻게?
 
217
상수    (광식을 바라보며) 광식이가 들어야만 꼭 되는데.
 
218
복만    (광식이만 바라본다)
 
219
광식    나는 허라는 대로만 헐 테야.
 
220
상수    되었다.
 
221
복만    대관절 어떻게 허는 거야?
 
222
상수    가만 있어. (광식더러) 너이 아저씨 집에서 꼭 차리기는 허지
 
223
광식    응.
 
224
상수    저녁상은 아직 안 올려갔지?
 
225
광식    국수라는데, 아직 안 갔어.
 
226
상수    김서방이나 누구가 가져가겠구나?
 
227
광식    응.
 
228
상수    그러면 되었다. (일동을 한데 모아가지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한다)
 
229
일동    야 그것 참 되었다. (휘파람)
 
230
복만    그렇지만 광식이가 좀 섭섭허겠다.
 
231
광식    괜찮아, 나는 집에서 많이 먹었으니까. (말은 하여도 조금은 섭섭한 빛이 보인다)
 
232
복만    아니 못 먹어서 그런다는 게 아니라 같이 놀지 못하겠으니까, 잠깐이라두.
 
233
광식    괜찮아 괜찮아. (일부러 쾌활하려고 애를 쓴다)
 
234
복만    (일동을 돌아보며) 자 그러면 뒷산 밑으로.
 
235
일동    (휘파람, 좌수로 퇴장) (무대 회전)
 
 

 
236
제 3 장
 
237
산 밑에 좁은 길이 좌우로 통하여 있고 정면은 언덕이 깎아질러 있다. 막이 열리며 김서방이 큰 차담상을 머리에 이고 좌수로 등장. 그 뒤에는 꾀쇠가 큰 주전자를 들고 따라 나타난다. 두 사람이 막 무대의 중앙에 왔을 때에 멀리서 광식의 “김서방 김서방” 하고 울음 섞여 부르는 급한 비명이 들린다.
 
 
238
김서방   (깜짝 놀라 발을 멈추고 거북하게 꾀쇠를 돌아보며) 저게 큰댁 도련님이 저러지?
 
239
꾀쇠    (귀를 기울이며) 기요 기요, 아마 산에서 놀다가 다쳤거나.
 
240
광식    (멀리서 소리로만) 김서방 김서방, 아이구 아이구.
 
241
김서방   허허 큰일났다. 가봐야지, 상을 내려놓고 갈께, 너는 여기서 기다려라.
 
 
242
두 사람이 협력하여 상을 벌려놓고 김서방이 좌수로 급히 퇴장. 잠깐 후에 복만을 앞에 세운 야생소년단 일동이 우수로 등장. 뜻밖에 꾀쇠가 있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발을 멈춘다.
 
 
243
복만    (꾀쇠 앞으로 가서) 어 참, 꾀쇠 수고했다. 이것을 여기까지 가지고 오느라고 참말 애썼는걸. (일동을 돌아보며) 자, 오게들, 가지고 온 꾀쇠를 생각해서라도 먹어주어야지.
 
244
꾀쇠    (눈이 동그래지며) 이 애들이 웨 이래. (손에 든 주전자를 땅에 놓고 상 앞에 가로막아 선다)
 
245
복만    왜이러기는 뭘 왜 이래?
 
246
꾀쇠    상에다 손만 대봐라. 마구 그저 소리를 지를 테야.
 
247
복만    흥 소리를 지를 테거든 어데 맘껏 한번 질러봐라. 질러봐라만, 너는 오늘만 우리를 만나구 다음에는 안 만나게 될 줄 아니? 우리가 누군 줄 알지?
 
248
꾀쇠    (풀이 죽어가지고) 그렇지만 어룬들이 잡수실 건데.
 
249
복만    이애 꾀쇠야, 내 말을 들어봐라. 어룬인지 망덕인지 모르겠다마는 그 사람들은 이것을 배가 고파서 먹는게 아니다. 공연히 치렛본으로 먹는 체허지만, 저깔로 끼지럭끼지럭허다가 내어놓고는 그래도 트림을 허지. 그것을 야중에 내려오면 틴틴 불어서 개나 도야지가 먹지. 그렇지만 우리는 정말 배가 고파서 먹는거야 꿀같이 , 달게. 음식이란 것은 배고푼 사람이 배부르라고 먹는 게지, 배부른 사람이 엠병헌다고 께죽께죽허고 있어? 그 사람들도 야중에 정 배가 고프면 또 가져다 먹겠지. (間[간]) 그래 어떠냐? 우리를 못먹게 소리를 지르고 다음날 우리한테 경을 좀 칠 테냐? 그러찮구.
 
250
꾀쇠    소리는 안 지르께.
 
251
복만    아므렴, 우리 꾀쇠가 누구라구, 너나 우리나 다 일반 아니냐. 자, 그러면 꾀쇠야 좋은 수가 있다. 너도 지금 바로 김서방을 따라서 가거라. 가서 왜 왔느냐고 허거든 큰댁 도련님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헌 것이 마음에 안 놓여서 왔다고 허구.
 
252
꾀쇠    (놀라며) 큰댁 도련님이 소리지른 것은 어떻게
 
253
복만    흥, 다 그렇구 그런 조건이라네.
 
254
꾀쇠    (어안이 벙벙하여) 저런.
 
255
복만    어때? 우리허고는 못 겨뤄 보겠지? (間[간]) 그러니까 너도 어서 빨리 가거라. 네가 여기 있어가지고 우리가 먹는 것을 못 먹게 했다면 경을 팥다발같이 칠 테니까.
 
256
꾀쇠    (솔깃하여) 딴은 그래.
 
257
복만    거봐라. 이름은 꾀쇤데 어찌 그리 꾀가 없니? 그저 가서 모른체만 허란 말이야. 공연히 말을 내었다가는 너의 주인집에서 경을 치고 다음에는 우리한테.
 
258
꾀쇠    (물씬물씬 물러서며) 그럼 나는 갈 테야.
 
259
복만    그래라, 어서 가서 (다긏듯이) 입을 꽉 봉해 두어.
 
260
꾀쇠    응. (우수로 퇴장)
 
261
복만    (익살맞게) 하나님, 땅님, 햇님, 달님, 고맙습니다. 자 먹자.
 
 
262
일동은 휘파람을 불고 내달아, 막 대고 걷어먹는다. 거의 먹었음직한 때에 멀리서 술이 많이 취한 사람의 혀꼬부라진 노래가 들린다. 소리는 조금씩 무대를 향하여 가까와 온다. 일동은 먹기를 멈추고 귀를 기울여 듣는다.
 
 
263
복만    저게 깍정이 박간가부다.
 
264
상수    옳다 옳여.
 
265
돌쇠    곤냐꾸가 되었어.
 
266
오복    (더금더금 먹으며) 어서 먹잖구 뭘 해
 
267
복만    이리로 오지/
 
268
상수    응.
 
269
복만    우리가 한번 곯려주려는 자식이지?
 
270
돌쇠    순사 끄나풀이래요.
 
271
복만    되었다.
 
272
상수    어떻게.
 
273
복만    (일동을 모아가지고 조용조용 이야기를 한다)
 
274
일동    (휘파람) 되었다. (우수로 전부 퇴장)
 
 
275
무대는 1분 가량 허공. 그동안 구경꾼의 노래는 점점 가까이 들리다가 깍정이 박가가 우수로 등장. 의관과 걸음걸이가 아무 정신이 없어 보인다. 그의 뒤에는 복만이와 상수가 살짝살짝 따라온다. 깍정이 박가가 상 옆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두 아이는 와락 뒤에서 떼밀고 다시 달아난다. 깍정이 박가는 상에다 손을 짚고 넘어진다.
 
 
276
박가    (겨우 일어나며 혀가 고부라진 소리로) 허허허허. 오늘은 먹을 수가 막 닥쳤구나. 허허허허. (손으로 이것저것을 걷어먹으며) 먹어라. 그저 먹어라. 어 맛좋다, 얌얌.
 
277
김서방   (꾀쇠를 뒤에 세우고 좌수로부터 급히 등장. 깍정이 박가가 하고 있는 꼴을 보고 하도 기가 막혀서) 저런 저런.
 
 
278
꾀쇠는 김서방의 뒤에 서서 의미있게 웃는다. 무대 뒤에서는 야생소년군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들리며 막이 고요히 내린다.
 
 
279
(1923. 9. 5 臨陂[임피]에서)
 
 
280
〈東光[동광] 1931년 5월호〉
【원문】야생소년군(野生少年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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