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요한 밤 너의 자는 얼굴을 무심코 들여다볼 때,
3
새근새근 쉬는 네 숨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4
아비의 마음은 해면(海綿)처럼 사랑에 붇[潤]는다.
5
사랑에 겨워 고사리 같은 네 손을 가만히 쥐어도 본다.
7
네가 씩씩하게 자라나면 무슨 일을 하려느냐,
8
붓대는 잡지 마라, 행여 붓대만은 잡지 말아라
9
죽기 전 아비의 유언이다 호미를 쥐어라! 쇠망치를 잡아라!
10
실눈을 뜨고 엄마의 젖가슴에 달려 붙어서
11
배냇짓으로 젖 빠는 흉내를 내는 너의 얼굴은
12
평화의 보드러운 날개가 고히 고히 쓰다듬고
13
잠의 신(神)은 네 눈에 들락날락 하는구나.
14
내가 너를 왜 낳아 놓았는지 나도 모른다.
15
네가 이 알뜰한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너도 모르리라
16
그러나 네가 땅에 떨어지자 으아 소리를 우렁차게 지를 때
17
나는 들었다 그 뜻을 알았다. 억세인 삶의 소리인 것을!
18
(이하(以下) 십이행(十二行) 략(略))
19
조선 사람의 피를 백대(百代)나 천대(千代)나 이어 줄 너이길래
20
팔 다리를 자근자근 깨물고 싶도록 네가 귀엽다.
21
내가 이루지 못한 소원을 이루고야 말 우리 집의 업둥이길래
22
남달리 네가 귀엽다 꼴딱 삼키고 싶도록 네가 귀여운 것이다.
23
모든 무거운 짐을 요 어린것의 어깨에만 지울 것이랴
24
온갖 희망을 염체 네게다만 붙이고야 어찌 살겠느냐
25
그러나 너와 같은 앞날의 일군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생각을 하니
26
마음이 든든하구나 우리의 뿌리가 열 길 스무 길이나 박혀 있구나.
27
그믐 밤에 반딧불처럼 저 하늘의 별들처럼
28
반득여라 빛나거라 가는 곳마다 횃불을 들어라.
29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어서 어서 저 주먹에 힘이 올라라
30
오오 우리의 강산은 온통 꽃밭이 아니냐? 별투성이가 아니냐!
31
(1932. 9. 4. 재건이 낳은 지 넉달 열흘 되는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