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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5.31
현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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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 음악가  (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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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인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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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보채는 애 소리에 주저하던 경애의 손은 필경 방문을 열고 말았다.
 
4
이때껏 어머니를 찾던 귀동이는 정작 어머니가 제 눈앞에 나타나매 의아한 듯이 또는 놀랜 듯이 말끄러미 경애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꽃잎 같은 입술이 조금 위로 치뜨이는 듯하며 눈물 흔적이 아롱진 두 뺨엔 기쁘고 반가워하는 빛이 역력히 움직이었다. 경애는 못 견디겠다는 듯이 방안에 펄쩍 뛰어들며 덥석 귀동이를 안아 치술렀다. 경애의 얼골 밑으로 작은 얼골은 마치 바람 맞는 달리아 꽃과 그 봉오리 모양으로 서로 비비대며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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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동은 어머니 고개 밑에서 갸웃이 얼골을 쳐들며 그제야 생각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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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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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불렀다. 그러자 그리던 어머니가 정말 제 앞에 있는 것을 시험이나 하려는 것처럼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경애의 분 묻은 뽀얀 목덜미를 들어안고 또 한번,
 
8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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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신기한 듯이 부르자 그 조그만 얼골에 터질 듯한 웃음빛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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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는 모든 것을 잊었다. 인천에서 일어난 추악한 사내의 싸움, 자기가 당한 한끝 가는 망신, 또는 며츨을 두고 신기루와 같이 제 머리 속에 서리었던 호화로운 꿈! 모든 것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웬 일인지 안슬픈 생각이 들었다. 가슴속에서 무슨 덩어리가 스르르 풀리는 듯하며 눈시울이 서물서물해짐을 느끼었다. 귀동의 우단결 같은 손을 쓰담는 경애의 손등에 눈물 한방울이 구을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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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등뒤에서 헐떡헐떡하는 쉬인 목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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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경애! 자네도 자식 귀한 줄은 아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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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는 불현듯 안고 있던 귀동을 무릎에서 반쯤 나려 놓고 방장 날아오르려는 새 모양으로 몸을 도사리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있는 줄도 잊었던 명색 자기 남편이 거기 있었다. 경애의 얼골빛은 삽시간에 변하였다. 모성애로 말미암아 흠씬 풀렸던 뺨살이 토실토실 일어나는 듯하며 쌀쌀한 독살이 맺히었다. 똑바로 뜬 눈엔 핏발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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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영감! 징글징글한 악마! 이승 저승에서 꿈에라도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고 단단히 맹서한 이 짐승이 다시금 제 코앞에 나타날 줄이야! 불룩하게 솟은 흰 눈썹, 미여기 주둥이 모양으로 펑퍼짐하면서도 두툼한 코, 제 젊고 붉은 피를 빨아먹기에 지친 듯한 검푸른 입술, 청춘에 타는 제 살을 짓이기기에 굳어진 뻣뻣한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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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는 이 짐승을 쏠 듯이 입으로 탄환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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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귀한 줄 알면 어쨌단 말이오! 여기를 왜 왔소? 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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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잡힌 흰 줄만 남은 늙은 살엔 그런 탄환쯤은 땅! 소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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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사람은 몰풍도스럽군, 그야 시골이 심심도 하니까 잠깐 서울 구경 온 것을 내가 이러고 저러고 하겠나만, 사람이란 거취가 분명해야지 간다온다 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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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는 열기있게 말중둥이를 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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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몇 번이나 간다고 별렸기에 떠나던 전날에도 영감과는 아주 하직이라고 떠먹듯이 중언부언하지 안 했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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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게 틀렸단 말이어. 가면 한번 가지그려. 몇 번씩 가는 법도 없고 이왕 하직이면 한마디면 고만이지 무슨 좋은 일이라고 중언부언할 게야 있나? 늘 간다는 사람이니 늘 있거니 생각하는 것도 인지상정이지,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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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께 어울리지 않는 너털웃음을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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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츰 이 때이었다. 퉁탕퉁탕하는 황급한 발소리가 나며 하녀가 펄쩍 문을 열고 가뜩이나 큰 눈을 더욱 호동그랗게 뜨며 숨찬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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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큰일 났어요. 요전에도 몇 번 오신 윤 상과 김 상이 왼 머리와 팔에 손에 붕대를 휘감고 뛰어드시며 제 각기 먼저 아씨를 뵈옵겠다고 야단이야요. 어떡해요? 어느 분을 먼저 들어오시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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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말을 모르는 늙은이는 하녀의 지절거리는 소리에 멋모르는 입을 헤 벌린 채 눈이 둥그레졌고 경애는 아랫입술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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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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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1929. 5. 31.)
【원문】여류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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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류음악가 [제목]
 
  현진건(玄鎭健)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29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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