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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京元線)과 경인선(京仁線)이…… 삼방(三防)과 석왕사(釋王寺)의 밥장수가……워싱턴의 동상과 모기와 빈대와 벼룩이 모두 제각기 한몫을 톡톡히 보는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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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공장에서 나마비루통이 꼬리를 물고 시내로 굴러들어온다. 아이스크림 장수가 오늘은 1원 23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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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배추장수가 구름 없는 하늘을 치어다보며 한숨을 쉬는데 아이스케이크 장수는 입이 광우리같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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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아가씨와 모던 서방님네를 모조리 송도원(松濤園)에게 삼방에게 석왕사에게 장연(長淵)에게 빼앗긴 서울의 아스팔트와 티룸이 한숨으로 파리를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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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갯돈 없는 룸펜만이 용감하게 서울장안을 사수(死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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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지친 전차가 선불 맞은 맹수의 최후의 신음처럼 악을 쓰고 말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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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적같이 설설 기어 달아나는 자동차가 심술궂게 독와사(毒瓦斯)와 ‘먼지막’을 피운다. 먼지를 뒤집어쓴 가로수는 골동품 상점같이 지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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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거리의 녹은 콜탈에 하얀 고무신이 들러붙은 젊은 아낙네가 무료로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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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의 도는 소리는 태양에 대한 항전(抗戰)이 아니라 지친 신음이다…… 빙수집의 얼음 깎는 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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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 내고 빈 전차를 골라 탄다. 피서를 겸한 합리적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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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20전으로 선유(船遊) 겸 청유(淸遊)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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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헤엄 못 치는 나에게는 결사적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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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지로 가는 본격적 피서는 우리에게는 천당과 같이 인연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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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성(大京城)의 대동맥이요 메인 스트리트인 종로.(진고개가 항의를 한다면 그것은 추후 답변하기로 보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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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는 산에 박힌 바윗덩이같이 물러날 줄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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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 있는 사뽀로 비루의 네온사인 밑에서 싸구려 싸구려 악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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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헐하다고 외친다. 야시 말이다. 미상불 싸기는 하다…… 어느 노점을 굽어다보아도 1원 이상 내라는 물건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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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은 음악을 대단 애호한다. 그들은 레코드집 앞에서 나누어주는 삐라를 손에 들고 마침 울려나오는 유행가를 따라 배우기에 열 명 스무 명씩 몰려 서 있다. 음악학교의 가두진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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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 뒷골에 사람이 늘비하게 넘어져 있다. 단 슬진(虱陳)의 자취가 아니라 빈대군에 쫓겨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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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적자기 한닢 토막 한개로 땅을 요로 삼고 별문(紋)을 반자지(紙)삼아 코를 들들 곤다. 그중에는 더불베드도 있다. 아기까지 데린 일가족 동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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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광경을 하느님이 내려다본다면 쓸데없는 생물 빈대를 창조한 당신의 실수를 후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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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한 신작로와 같은 단조와 숨이 막히는 더위…… 이것 밖에는 서울의 여름에서 더 찾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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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더 찾아내자면 먼지도 있고 소음도 있고 악에 받친 주정꾼도 있고 하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도 모두 졸음이 오게 단조하고 답답하게 더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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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이태조(李太祖)께 도읍을 정해 줄 때 몇 걸음 더 걸어가서 한강을 중심으로 했었으면 지금쯤 서울은 조금은 더 시원하고 조금은 더 정취가 있을 것을…… 하기야 그때 생각은 한강과 북악산으로 천연의 성을 삼을 생각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무학은 역시 무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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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더운 서울바닥에 앉아 조상의 푸념을 하지 말고 시원한 곳에 피서라도 갔으면 하겠지만, 나는 피서보다도 이 더위를 잘 아꼈다가 추운 겨울에 쓰고 싶다. 내가 만일 신이라면 나의 이런 소원쯤 어떻게 해서든지 변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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