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예술(藝術)과 창조(創造) - 소재(素材)에 대(對)한 작가(作家)의 기량(伎倆) ◈
카탈로그   본문  
1936. 5 .31~
이병각
목   차
[숨기기]
1
藝術[예술]과 創造[창조]
2
─ 素材[소재]에 對[대]한 作家[작가]의 伎倆[기량]
 
 
 

1

 
4
옛말에 『無識[무식]한 刻手[각수]가 파리똥을 새기였다.』는 것이 있다.
 
5
그 말의 뜻을 되풀이하는 것은 우스운 것 같으나 옛날은 印刷術[인쇄술]이 오늘과 같이 發達[발달]되지 못하였는지라, 著書[저서]같은 것을 出版[출판]하려면 木刻[목각]을 하게 되였었다. 原木刻版[원목각판]을 마련하여 놓고 原稿[원고]를 淸書[청서]하여 그版[판] 위에 붙인 다음 그것을 刻手[각수]가 칼로 彫刻[조각]하는데 글字[자]를 새기는 刻手[각수]가 無識[무식]한 사람이라 原稿淸書紙[원고청서지]우에 파리가 똥을 누어서 字劃[자획]사이에 까뭇까뭇한 點[점]들이 있으니 그것을 그냥 彫刻[조각]하여서 版木[판목]을 버렸다는 意味[의미]로 傳[전]해온 말이다.
 
6
우리는 오늘날 이 옛말 가운데서 藝術[예술]과 創造[창조]에 對[대]한 큰 示唆[시사]를 찾어보기에 힘들지 않는다.
 
7
引例[인례]의 말 가운데 原木[원목] 위에부터 있는 原稿[원고] 淸書[청서]는 藝術家[예술가]가 對[대]하는 客觀的[객관적] 現實[현실] - 즉[卽] 文學[문학]의 創造的[창조적] 素材[소재]로 볼 수 있으며 刻手[각수]는 作家[작가]로 볼 것이다. 이곳에서 刻手[각수]의 原稿[원고]에 對[대]한 態度[태도]와 認識力[인식력]은 作家[작가]의 現實[현실] 素材[소재]에 對[대]한 認識力[인식력]으로서 素材[소재]의 取捨[취사]를 거쳐 型[형]의 創造[창조]에 對[대]한 基本的[기본적] 要素[요소]며 出版點[출판점]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無識有識[무식유식]할 것 없이 原稿[원고] 淸書[청서]가 刻手[각수]의 손에 넘어올 때의 原狀[원상]대로 忠實[충실]히 彫刻[조각]하였으며 칼질이 能[능]하여 수연하게 되였는데 무엇이 잘못이냐고 抗辯[항변]한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是非[시비]를 가리어야 할까? 勿論[물론]이 抗辯[항변]은 法理的[법리적]으로 解釋[해석]한다면 論理[논리]에 아무 差錯[차착]이 없다고 할 수 있으나 刻手[각수]란 藝術家[예술가]로서 볼 때, 그 손에서 파리똥과 글字[자]가 混同[혼동]되여 새기여 나온 것이 藝術作品[예술작품]으로서 完全[완전]한 것이며, 著書[저서]의 內容[내용]을 眞實[진실]하게 나타내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原稿淸書紙[원고청서지]위에 나타난 彫刻[조각]의 素材[소재]는 忠實[충실]히 寫實的[사실적]으로 하였다 하더라도 이것은 罪[죄]스럽게도 죽은 寫實[사실]일 것이며, 素材[소재]의 正當[정당]한 取捨[취사]를 하지 못하였음으로 말미암아 冊版[책판]으로는 보잘 것 없는 더러운 것이 生産[생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萬若[만약] 여기에 有識[유식]하고 技巧[기교]도 能[능]한 刻手[각수]가 있었다면 그 刻手[각수]는 決[결]코 無用[무용]의 – 그리고 있어서는 안 될 파리똥을 새기지는 않을 것이며 나아가서는 誤字[오자]가 있다면 訂正[정정]하고 字劃[자획]이 빠진 것이 있다면 넣어가며 完全[완전]한 冊版[책판]을 彫刻[조각]하였을 것이요, 파리똥 없는 原稿淸書[원고청서] 이상으로 內容[내용]에 忠實[충실]한 眞實的[진실적]인 寫實[사실]을 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原稿素材[원고소재]의 現狀[현상]대로는 寫實[사실]치 않었다 하더라도 素材[소재]가 가지고 있는 典型[전형]은 眞實[진실]히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야 그것은 原書[원서]의 文理[문리]와 合致[합치]된 冊版[책판]을 生産[생산]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關係[관계]를 캐어볼 때 客觀的[객관적] 素材[소재]를 가지고 作家[작가]가 作品[작품]을 生産[생산]할 때엔 素材[소재]의 直觀[직관]에서 얻은 感覺[감각]을 思惟[사유]를 通[통]하여 取捨[취사]하고 典型[전형]을 創造[창조]함으로써 客觀的[객관적] 眞理[진리]를 形象化[형상화]하며 表現[표현]한다는 藝術[예술]의 本質的[본질적] 任務[임무]를 다하는 것과 같이 素材認識[소재인식]과 技巧[기교]가 能[능]한 刻手[각수]가 誤字[오자]의 訂正[정정]까지 하여가며 彫刻[조각]한다는 것은 素材[소재]의 取捨[취사]를 거쳐 型[형]을 創造[창조]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인 同時[동시]에 그 刻手[각수]의 創造[창조]는 版刻[판각]의 本質的[본질적] 任務[임무]를 忠實[충실]히 하였는 것이다. 여기에는 素材[소재]의 認識力[인식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그 機能[기능]을 다할 수 있으며 素材[소재]의 認識力[인식력]이 없더라도 彫刻技巧[조각기교]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素材[소재]의 認識力[인식력]과 創造[창조] 技術[기술]이 具備[구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文壇[문단]에서 問題[문제]되어오던 世界觀[세계관]과 方法[방법]의 關係[관계]에 對[대]하여 機械的[기계적] 分離[분리]와 盲目的[맹목적] 混同[혼동]에서 나오는 誤謬[오류]에 큰 暗示[암시]를 주는 것이다.
 
8
이와 같이 藝術[예술]에 있어서 客觀的[객관적] 現實[현실]의 素材[소재]를 外面的[외면적]인 純朴[순박]한 模倣[모방]으로서만 滿足[만족]하는 十九世紀[십구세기] 實證主義[실증주의]는 이것이 레아리즘이 아니라 자연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며, 藝術家[예술가]로서의 過大評價[과대평가]할 것이 못된다. 外面的[외면적]인 純朴[순박]한 素材[소재]의 模倣[모방]이 藝術[예술]이라면 우리에게는 藝術[예술]이 그다지 필요치 않을 듯하다. 왜 그러냐하면 素材[소재] 그 물건을 鑑賞[감상]하면 그만일 것이다.
 
9
藝術[예술]의 特徵[특징]인 創造[창조]가 없이 아무리 素材[소재]의 忠實[충실]한 外面的[외면적]인 模倣[모방]일 지라도 色[색]과 線[선]이 뚜렷한 素材[소재]가 우리들의 直觀[직관]에 呼訴[호소]하며 그것에 依[의]한 感覺[감각]보다 더 어떻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냐
 
10
이와 같이 藝術[예술]에 있어서의 創造[창조]라는 것이 藝術[예술]의 本質的[본질적] 機能[기능]을 忠實[충실]히 하는데 重要[중요]한 모멘트가 되는 同時[동시]에 이것이 없이는 藝術[예술]의 成立[성립]이 不可能[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藝術的[예술적] 創造[창조]를 가지고 人間[인간]의 一般的[일반적] 創造[창조]와 混同[혼동]하여 人間[인간] 固有[고유]의 本質[본질] −다시 말하면 客觀的[객관적] 實在[실재]와는 獨立[독립]한 創造精神[창조정신]으로 추켜올리고 客觀的[객관적] 實在[실재]의 渾沌[혼돈]한 現狀[현상]과 社會的[사회적] 生産關係[생산관계]가 이러한 創造的[창조적] 精神[정신] 내지 本能[본능]에 依[의]하야 觀念論的[관념론적] 藝術至上主義[예술지상주의]는 警戒[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2

 
12
이러한 觀念論[관념론]은 朴英熙氏[박영희씨]에 依[의]하여 新東亞[신동아] 五月號[오월호]에 宣揭[선게]되여 있으니 藝術[예술]의 本質[본질]을 알아내기 爲[위]하여 過去[과거]의 美學者[미학자]들이 取[취]한 소위 人類史[인류사]의 初創期願始[초창기원시]에 돌아가서 藝術[예술]의 起源[기원]을 찾어내려는 것은 좋으나 藝術[예술]이 人間[인간]의 生産的[생산적] 勞働[노동]에 依[의]하야 起源[기원]되었으며 物質的[물질적] 生活方法[생활방법]에 規定[규정]되었을 뿐 아니라 그 生活[생활]을 容易[용이]히 하기 爲[위]한 實際的[실제적] 目的[목적]에 適合[적합]하야 發生[발생]한 것이며 原始的[원시적] 生産[생산]에 있어서는 萬人[만인]이 生産[생산]에 從事[종사]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生産力[생산력]과 文化程度[문화정도]가 낫고, 따라서 生産[생산]과 藝術[예술]사이에 아무런 文化的[문화적] 要素[요소]가 介在[개재]치 않았으나 次次[차차] 生産關係[생산관계]가 發達[발달]됨으로써 分業化[분업화]되여서 인간의 소위 上部構造[상부구조]가 生産關係[생산관계]에 制約[제약]되여서 藝術[예술] 기타의 觀念[관념]의 諸形態[제형태]가 分業化[분업화]되여서 오늘날과 같이 되었다는 것과 人間[인간]의 勞働的[노동적] 必要[필요]에 依[의]하야 生産手段[생산수단] −道具[도구] −이 創造[창조]되었으며 發達[발달]되여서 生産關係[생산관계]에 그것이 逆作用[역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承認[승인]치 않었다.
 
13
연장을 만든다(創造)는 人間[인간]의 固有[고유]한 創造精神[창조정신]이 있기 때문에 生産關係[생산관계]가 發達[발달]한 것이 아니라 연장은 人間[인간]의 生産的[생산적] 勞働[노동]의 必要[필요]에 依[의]하야 創造[창조]되었으며 그 勞働[노동]의 實踐[실천]을 通[통]하야 만들어졌으며 生産手段[생산수단]이 生産關係[생산관계]에 逆作用[역작용]하야 오늘날과 같은 生産關係[생산관계]가 發達[발달]을 가져온 것이다.
 
14
朴英熙氏[박영희씨]에 依[의]하면 藝術的[예술적] 創造[창조]에 있어서 客觀的[객관적] 實在[실재]는 藝術家[예술가]의 思惟[사유]와는 全然[전연] 獨立[독립]한 것이 아니고 藝術家[예술가]의 創造[창조]를 爲[위]한 素材[소재]로서만 存在[존재]가 可能[가능]한 것처럼 되었다. 萬若[만약] 그것이 事實[사실]이라면 自然[자연]과 社會[사회]! 다시 말하면 朝鮮[조선]의 現實[현실]로서의 資本主義的[자본주의적] 生産關係[생산관계]에서 나온 모든 現狀[현상]과 白頭山[백두산]과 洛東江[낙동강]이란 自然的[자연적] 實在[실재]까지가 藝術家[예술가]의 創造的[창조적] 素材[소재]로서만 存在[존재]할 수 있으며, 그것은 創造的[창조적] 素材[소재]의 擴大[확대]에 不過[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15
이것은 소위 純朴[순박] 唯物論[유물론]과 觀念論[관념론]의 對立[대립]된 命題[명제]『마음과 肉體[육체]』의 關係[관계]도 理解[이해]치 못하고 藝術的[예술적] 創造精神[창조정신]의 神秘化[신비화]를 企圖[기도]한데 對[대]하여는 조금 건방진 말 같으나 常識[상식]의 缺如[결여]가 아니라 一種[일종]의 僧侶的[승려적] 心情[심정]에서 나온 物質生活[물질생활]의 淺薄[천박]을 精神生活[정신생활]의 道通[도통]으로 輕蔑[경멸]한데 不過[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朴氏[박씨]의 思惟[사유] −다시 말하면 神秘[신비]와는 獨立[독립]한 實在[실재]가 朴氏[박씨]를 嘲笑[조소]하고 있는 데는 하는 수 없을 것이다. 客觀的[객관적] 實在[실재]를 떠나 藝術家[예술가]의 思惟[사유](精神[정신])라는 것이 獨立[독립]한 것처럼 만들고 生物學的[생물학적] 考察[고찰]이 없고는 알아낼 수 없게 定式化[정식화]시킨 것으로 白鐵氏[백철씨]의『寫實[사실]과 浪漫[낭만]』이라는 文學論議[문학논의]가 있다.
 
16
藝術家[예술가]의 머리(腦膸[뇌수])속에는 浪漫[낭만] 아니면 寫實[사실]이 있던지 寫實[사실] 아니면 浪漫[낭만]의 精神[정신]이 있을 뿐 兩者[양자]가 具有[구유]하며 同居[동거]할 수 없다는 것을 强調[강조]하여 燥急[조급]과 輕蔑[경멸]로 一貫[일관]된 그리고 氏[씨] 特有[특유]의 情熱[정열]의 불꽃을 吐[토]하고 있다.
 
 
17
『지금 생각하면 이 浪漫[낭만]과 寫實[사실]의 結合[결합] 그것부터가 奇怪[기괴]한 變態論[변태론]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萬一[만일] 創作[창작]의 精神[정신]으로서 本來[본래]부터 作家[작가] 人間[인간]의 腦膸[뇌수]에는 이 두 가지 精神[정신]이 具有[구유]된 것이라면 本來[본래]부터 우리들은 이 두 가지 名詞[명사]의 使用[사용]을 廢止[폐지]하였겠고 萬一[만일] 계속하야 그것을 使用[사용]한다면 文學[문학]은 當然[당연]히 그 두 가지를 區別[구별]하여 使用[사용]할 것이라고 生覺[생각]된다. 浪漫[낭만]인가 그렇지 않다면 寫實[사실]인가 文學者[문학자]는 이 두 가지 中[중]의 하나만을 取[취]할 權利[권리] 밖에 갖고 있지 못하다. 浪漫[낭만]이면서 同時[동시] 寫實的[사실적]이려는 中間低迷[중간저미]의 善良[선량]한 中庸主義[중용주의]의 文學者[문학자]를 나는 極[극]히 輕蔑[경멸]할 따름이다! 文學[문학]은 決[결]코 中庸[중용]의 道[도]를 지켜가는 謙遜[겸손]한 道學者[도학자]는 아니다! 그와 反對[반대]로 極端[극단]에서 極端[극단]으로 걸어가는 <絶對[절대]의 探求[탐구]>(?)者[자]! 그 兩端[양단]의 劣路[열로] 以外[이외]에는 文學[문학]의 갈 길은 없는 것이다!』
 
 
 

3

 
19
이것은 氏[씨]의 情熱的[정열적]인 探求[탐구]에서 나온 修道的[수도적] 精神[정신]과 神經質的[신경질적] 燥急[조급]에서 나온 逆說的[역설적]인 心情[심정]의 表明[표명][외]에 若干[약간]의 衒學[현학]과 니히리스틕한 文字[문자]의 羅列[나열] 밖에 더 무엇을 찾을 수 없다.
 
20
情熱[정열]과 興奮[흥분]이 藝術家[예술가]에게 必要[필요]한 적이 없음은 아니나 적어도 事物[사물]의 本質[본질]을 論議[논의]하며 探求[탐구]하려는데 있어서는 우리는 그 情熱[정열]을 조금 辭讓[사양]하고 興奮狀態[흥분상태]에서 冷情[냉정]으로 돌아가자!
 
21
文學批評[문학비평]이란 決[결]코 그 모양의 燥急[조급]과 興奮[흥분]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文學批評[문학비평]의 客觀性[객관성]이 있고 藝術[예술]의 本質[본질]이 客觀的[객관적] 眞理[진리]의 認識[인식]과 表現[표현]에 그 任務[임무]를 가지려고 하는 것이 承認[승인]될 수 있는 現代[현대]라면 이 程度[정도]의 燥急[조급]과, 興奮狀態[흥분상태]를 가지고는 文學批評[문학비평] 危機[위기]는 除去[제거]될 수 없을 것이다.
 
22
레알리즘이냐? 로멘티시즘이냐 이것을 取[취]하든지 저것을 取[취]하든지 두 가지 中[중]의 하나만을 잡어라 하며 이 範疇[범주]만으로 藝術[예술]을 評價[평가]하며 作家[작가]에게 强迫[강박]하는 文學批評[문학비평]처럼 文學[문학]을 混迷[혼미]케하는 것은 없다. 이것은 文學[문학]의 싹 위에 퍼붓는 毒水[독수]다!
 
23
아무리 偉大[위대]한 作家[작가]라도 레알리즘이냐 로맨티시즘이냐 하고 强迫[강박]하는데 번뜩 이것이다 하고 福券[복권]잡듯이 잡아 쥐고 對答[대답]할 勇氣[용기]있는 사림이 있을 수 있을까? 元來[원래] 作家[작가]가 創造[창조]한다는 情熱[정열]은 浪漫[낭만]일 것이요 白氏[백씨]와 같이 이것은 이렇다 저것은 저렇다 하는 그것부터가 浪漫的[낭만적]인 精神[정신]일지도 모른다.
 
24
客觀的[객관적] 現實[현실]은『作家[작가]의 腦膸[뇌수]』에 史的[사적] 槪念[개념]과도 같은 이것이 있나 저것이 있나 하는 浪漫[낭만]? 寫實[사실]? 과는 아무런 相關[상관]도 없이 存在[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作家[작가]는 이러한 客觀的[객관적] 現實[현실]! 다시 말하면 創造的[창조적] 素材[소재]를 對[대]할 때 그것을 어떠한 創造過程[창조과정]과 認識過程[인식과정]을 지나서 形象化的[형상화적] 타입을 創造[창조]할 것인가? 外面的[외면적]인 模像[모상]만을 가지고는 事物[사물]의 本質[본질]을 速斷[속단]할 수 없다. 여기에는 完全[완전]한 藝術家[예술가]일수록 社會的現實[사회적현실]의 創造素材[창조소재]속에 흐르고 있는 矛盾相[모순상]과 眞實性[진실성]의 藝術[예술]의 本質的[본질적] 內容[내용]을 담을 것이요, 偉大[위대]한 眞實的[진실적] 典型[전형]을 創造[창조]하는 속에는 偉大[위대]한 浪漫[낭만] −可能[가능]한 世界[세계]와 있는 世界[세계]를 넣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5
現實[현실]의 안티테 −제의 核子[핵자]의 生長[생장]과 그 生長[생장]의 偉大[위대]한 浪漫的諸相[낭만적제상] 그리고 이것의 辨證法的[변증법적] 進行[진행]에 따라오는 明白[명백]한 歷史的[역사적] 必然性等[필연성등]이 素材[소재]의 直接的[직접적] 感覺[감각]보다 一層[일층]더 正確[정확]하게 模寫[모사]되여야 할 것이며 思惟[사유]에 依[의]하야 創造[창조]된 外界實在[외계실재]의 模像[모상]은 또한 새로이 提供[제공]된 感覺內容[감각내용](客觀的[객관적] 素材[소재]는 한 時[시]라도 停止[정지]해 있지 않다. 이것은 作家[작가] 直觀[직관]과 感覺[감각]에 粗朴[조박]하게 表面的[표면적]으로 模寫[모사]되고 그의 思惟[사유]는 그것을 보담 正確[정확]하게 精密[정밀]하게 深刻[심각]히 模寫[모사]하여 이곳에서 客觀[객관]의 實在的形象[실재적형상]의 本質的[본질적] 眞實[진실]의 類型的[유형적] 타입을 創造[창조]할 것이다.
 
26
直觀[직관]과 思惟[사유]는 元來[원래] 全然[전연] 別個[별개]의 것이 아니라 思惟[사유]는 直觀[직관]의 明晣化[명절화]의 能力[능력]이며 直觀的[직관적] 感覺[감각]에서 生長[생장]한 것이다. 그러함으로 思惟[사유]의 內容[내용]이 客觀的[객관적] 眞實[진실]을 보담 深刻[심각]히 反映[반영]하려면 思惟[사유]가 活動[활동]하는데 있어서 必要[필요]한 各各[각각]의 根本的[근본적]인 槪念[개념](範疇[범주] −엔겔스)는 結局[결국]은 客觀的實在[객관적실재]의 諸範疇[제범주] 諸法則[제법칙]이며 反映[반영]이다.
 
 
 

4

 
28
이리하여 藝術家[예술가]는 이러한 客觀的[객관적] 本質[본질]의 認識過程[인식과정]을 過程[과정]하여 그곳에서 藝術的[예술적]인 타입의 創造[창조]라는 過程[과정]을 거쳐 客觀的[객관적] 眞理[진리]를 典型的[전형적]으로 形象化[형상화]하고 表明[표명]하여 諸者[제자]의 눈앞에 내어놓는 것이다. 朴英熙氏[박영희씨]의 論旨[논지]가 이러한 것을 否認[부인]하고 『思惟過程[사유과정]이 現實的[현실적]인 것의 創造主[창조주]며 現實的[현실적]인 것은 다만 이 思惟過程[사유과정]의 外的現象[외적현상]으로 存在[존재]하는데 不過[불과]하다』라는 헤 −겔의 誤謬[오류]를 되풀이한데 지나지 못하다면 白鐵氏[백철씨]의 그것은 先天的[선천적] 槪念[개념]의 칸트的[적] 神秘[신비]에 빠져서 善良[선량]한 孔孟[공맹] 後裔[후예]들의 僞善的[위선적] 中庸主義[중용주의]에 强烈[강렬]한 憎惡[증오]의 念[념]이 培養[배양]된 先入見[선입견]에서 나온 逆說的[역설적] 獨斷[독단]인 同時[동시]에 現代[현대]가 가진 衒學中[현학중]의 하나이며 前後[전후]를 돌보지 않은 燥急[조급] 속에서 百科全書[백과전서]를 過信[과신]하는 中歐的[중구적] 自尊心[자존심]의 表明[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情熱[정열]만을 攝取[섭취]하여 우리의 目錄[목록]가운데 記入[기입]하기로 하자!
 
29
藝術[예술]의 創造過程[창조과정]에 있어서 素材[소재]의 取捨[취사]와 타입에 對[대]하여 헤 −겔은 말하기를
 
30
『日常的[일상적]인 外的[외적] 內的[내적] 世界[세계]에 있어서도 本質[본질]은 틀림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偶然性[우연성]의 混沌形態[혼돈형태]에 있어서 感能的[감능적]인 것 直接性[직접성]에 依[의]하여 또는 境遇[경우], 事情[사정], 性格[성격] 等等[등등]의 肆意[사의]에 依[의]하여 傷[상]해져서 現象[현상]된다. 藝術[예술]은 그의 諸現象[제현상]의 참된 內容[내용]으로부터 이러한 一時的[일시적] 世界[세계]의 좋지 못한 假象[가상]과 虛僞[허위]를 버리고 그것에 精神[정신]에 依[의]하야 만들어진 보담 높은 現實[현실]을 주는 것이다. 이리하여 다만 假象[가상]으로부터 距離[거리]가 멀다는 것은 藝術[예술]의 諸現象[제현상]에 日常的[일상적]의 現象[현상]이 아니고 보담 높은 實在性[실재성]과 보담 眞實[진실]한 定在[정재]와를 돌려보내는 것이다. (甘粕譯[감박역] 헤 −겔 美學[미학] 辨證法[변증법] 十四頁[십사혈])』라고 하였다.
 
31
이러한 헤 −겔의 말은 多分[다분]의 觀念論的[관념론적] 냄새가 있음에도 不拘[불구]하고 이것을 逆解[역해]한다면 엔겔스의 빠르사크論[론]에 있어서 所調[소조] 『典型的[전형적]인 情勢[정세](環境[환경])에 있어서의 典型的[전형적]인 性格[성격]의 表現[표현]』이라는 唯物論的[유물론적] 命題[명제]로 發展[발전]시킬 수 있으며, 우리의 攝取[섭취]해도 좋을 遺産[유산]이라고 생각한다. 典型[전형]을 創造[창조]할 때는 個性[개성]을 重要視[중요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個性[개성]없는 典型[전형]은 죽은 미이라와도 같은 것이다.
 
32
過去[과거]의 文學[문학]이 圖式的[도식적] 政治主義[정치주의]에 빠졌을 때 命題[명제]의 强要[강요]로 말미암아 典型[전형]을 創造[창조] 못하고 個性[개성]을 죽인 까닭에 이것은 文學[문학]의 桎梏[질곡]으로 化[화]하였던 것이다. 그러하여 機械[기계]와 같은 人間[인간]이 創造[창조]되며 抽象化[추상화]되어서 作中[작중]의 主人公[주인공]은 아무 誤謬[오류]도 犯[범]하지 않고 政治的[정치적] 英雄[영웅]으로서 登場[등장]하여 現實[현실]의 典型的[전형적]인 個性[개성]가진 人間[인간]과는 사이가 멀게 神秘化[신비화]되였었다. 그것은 文學[문학]의 前進[전진]을 爲[위]하여 當然[당연]히 淸算[청산]되어야 할 것이었으며 이것을 淸算[청산]하고 桎梏[질곡]에서 벚어남으로 하여 作家[작가]의 創作水門[창작수문]은 自由[자유]롭고 널찍하게 열리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사이는 圖式主義[도식주의]의 桎梏[질곡]을 벗어나서 지나친 藝術性[예술성]의 强調[강조]로 말미암아 典型[전형]을 創造[창조]치 않고 個性[개성]만을 가지고 나오는 文學[문학]의 새로운 桎梏[질곡]은 十二分[십이분]의 警戒[경계]가 있어야 할 것이며 이것은 抽象化[추상화]된 ─ 普遍化(보편화)될 수 없는 架空的[가공적] 타입으로 創造[창조]되고 을 指摘[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3
로보 −트는 現代科學[현대과학]이 만들어진 驚異[경이]다. 그러나 이것은 人間[인간] 그놈의 個性[개성]이 없는 까닭에 人間[인간]과 같이 行世[행세]할 수 없으며 典型[전형]없는 個性[개성]은 香氣[향기]를 뿌리고 다니더라도 藝術[예술]이라 말할 수 없다.
 
34
『一流[일류] 劇作家[극작가]와 小說家[소설가]들의 創作[창작]한 偉大[위대]한 典型[전형]은 同時[동시]에 또한 藝術[예술]의 世界[세계]에 있어서의 偉大[위대]한 個性[개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깊은 意味[의미]에 있어서 現實的[현실적]인 同時[동시]에 또한 象徵的[상징적]인 것이다. 文學史上[문학사상]에 이것이 重要[중요]한 意義[의의]를 가진 것은 實[실]로 이 두 個[개]의 長點[장점]을 兼備[겸비]한 點[점]인 까닭이다.』하고 규 −요가 그의 『社會學上[사회학상]으로 본 藝術[예술]』가운데 말한 것은 現實[현실]의 藝術的[예술적] 認識[인식]에 對[대]한 觀念論的[관념론적]인 點[점]은 있으나 個性[개성]과 典型[전형]과의 關係[관계]를 指示[지시]한데 있어서 注目[주목]한 말이다.
 
35
이와 같이 藝術上[예술상]에 있어서 眞實[진실]한 타입은 普遍化[보편화]된 것을 特定[특정]한 個性[개성]을 가진 것으로 할 때 비로소 創造[창조]되는 것이다.
 
 
36
《朝鮮日報[조선인보]》(1936. 5 .31~ 6. 6)
【원문】예술(藝術)과 창조(創造) - 소재(素材)에 대(對)한 작가(作家)의 기량(伎倆)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8
- 전체 순위 : 5163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109 위 / 182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예술과 창조 [제목]
 
 
  이병각(李秉珏)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6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참조
 
  # 창작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예술(藝術)과 창조(創造) - 소재(素材)에 대(對)한 작가(作家)의 기량(伎倆)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