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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憂愁) 동일(冬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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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이병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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憂愁[우수] 冬日[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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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는 서울이 싫어졌다. 十年[십년]이 넘도록 있었으니 싫증도 날법하나 내가 서울을 싫어하는 理由[이유]는 따로 있다. 寒熱[한열]의 差[차]가 甚[심]한 것과 近來[근래]에 와서 人口[인구]가 늘어가는 데 따라 人心[인심]이 야박해진 것이 싫다. 村[촌]에서 生長[생장]하여 서울을 올 때는 그리운 서울이었기에 왔다. 그때 생각에는 서울은 아버지의 품안처럼 무엇인지 모르게 너그러운 것을 느꼈다. 서울 以外[이외]의 都市[도시]로서 서울보다 훨씬 아름답고 큰 곳이 있다하더라도 나는 기어이 서울이 좋았을 것이다. 어려서 생각에 서울은 사람들도 모두 얌전하고 兩班[양반]스럽고 오랜 집들과 거리가 있으려니 그곳에 가서 제만 똑똑하게 굴면 남에게 對偶[대우]도 잘 받고 出世[출세]를 하여 옛날 할아버지들이 留京[유경], 留京[유경]하고 애써 서울로 올라가려던 그 뜻을 받들 수 있으려니 하였다. 實相[실상] 내가 처음으로 서울을 오던 지금으로부터 十五年[십오년][전]만 하더라도 서울은 나의 期待[기대]에 어그러짐이 없이 조흔 곳이었다. 下宿主人[하숙주인]의 順厚[순후]한 얼굴이라든지 말솜씨가 마음에 들었고 옛 모양을 갖추운 거리와 집들 그 거리에 걸어다니는 靑年[청년]들은 모두 智識[지식]을 崇尙[숭상]하였고 착하여지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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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十五年[십오년]동안 서울은 너무나 急[급]히 變[변]하여 버리었다. 옛집들과 옛거리가 헐리고 사람들의 마음씨도 이와 함께 헐리어서 각박하고 못 되어졌다. 兩班[양반]스럽고 맑은 서울 말소리는 어디가고 지금은 거리에 나서면 시골서도 어디 못된 市井[시정]가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서울에 모여들어 말버릇과 마음씨들이 고약해졌다. 茶[차]집엘 가나 安全地帶[안전지대]에서나 사람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手形[수형]이야기 鑛山[광산]이야기 等等[등등] 아 - 서울은 장사치들만 사는 곳이며 仲介人[중개인]들이 占領[점령]해버리였나? 맑은 목소리 조용한 音聲[음성]으로 글 이야기를 들려다오. 그뿐 아니라 十五年[십오년] 동안은 너무 덥고 너무 춥다, 生活[생활]이 푸근해서 寒熱[한열]을 避[피]하는 수가 얼마든지 있다면 이는 도리어 재미있을지도 모르나 生活[생활]은 나그네 살림살일망정 해마다 더 가난해지는데 寒熱[한열]은 더 甚[심]해지니 견디기 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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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웁지도 못하면서 무겁기만 한 외투깃을 잔득 올려붙이고 코끝이 새빨갛게 되어가지고 홀홀 불면서 걸어다닌다든지 낮불커녕은 밤불도 十二孔炭[십이공탄] 한 개를 넣어서 피다가 꺼져버린 부엌 아궁이, 싸늘한 방안에서 귀를 부비고 누었다는 것은 苦生[고생]스러운 일이다. 무슨 청승으로 이 苦生[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따스한 南方[남방], 오십사 오십사하고 父母[부모]들이 기다리는 곳을 두고 이 야박하고 땅불이 나는 서울에 무엇이 좋다고 기어이 留[유]해야 할 것이냐. 이것도 한갓 虛榮[허영]이다. 서울에 머물러 있어서 담빡 사당에 꽃이 피고 榜[방]소리를 낼 것같이 벼르던 끝이라 아무 것도 가짐이 없이 호작추름한 몸, 단벌 옷 보통이를 둘러매고 歸鄕[귀향]하는 것은 自尊心[자존심]이 許諾[허락]하지 않는다. 渡江[도강]할 面目[면목]이 없어서 江東[강동]엘 못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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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病[병]을 얻었고 마음이 病[병]을 얻었고 그리고 靑春[청춘]은 가버리었고 家産[가산]은 없어진지라, 야박하고 추운 서울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구박을 받고 苦生[고생]을 할망정 落鄕[낙향]할 수 없는 것도 딱한 일이다. 더욱 시골서 父母[부모]님이 오라 오라하다가 그도 氣盡脈盡[기진맥진] 지금은 置之度外[치지도외]로 꾸지람 下書[하서] 한 장이 없으니 으스대일 곳 조차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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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이나 올 겨울에는 마음이 개이지 않고 찌푸러져서 내가 지은 罪[죄]라든지 잘못으로 말미암아 닥쳐오는 여러 가지 不幸[불행]스러운 일과 사나운 꼴도 다 못 물리치고 허우덕거리는 판에 내가 잘못하지도 않고 남이 잘못하여 내게 자꾸 禍[화]가 닥쳐오니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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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친구라든지 그렇지 않으면 나와 무슨 인연 있는 사람이 잘못하여서 내가 餘禍[여화]를 입는다면 그래도 억울하기가 덜할 터인데 이는 생기맹기 얼굴도 만나본 일이 없는 사람의 저지른 禍[화]가 나에게 닥쳐와서 골치를 앓게 하고 있다. 며칠 전 내가 다니던 新聞社[신문사]에 人事[인사]치를 일이 있어서 갔었는데 마침 저녁 新聞[신문]이 나올 때라 各社[각사]에서 온 新聞[신문]들을 펼쳐놓고 比較[비교]하고 잇던 編輯部[편집부] 책상머리에서는 웃음이 터지고 친구들이 나를 부르기에 가보았더니 N新聞[신문]에 三段[삼단]으로 큼직하게 내 이야기가 나지 않었나? 놀라서 읽어보니 內容[내용]인 즉 積善町[적선정] 사는 李秉珏[이병각][씨]란 사람이 和信百貨店[화신백화점]엘 가서 여기저기 구경하고 돌아다니다가 一千七百圓[일천칠백원]짜리 꽃병을 떨어트려서 깨트려 버렸는데 和信社長[화신사장]이 特別[특별]히 辨償[변상]을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하여 社長[사장]의 갸륵한 뜻을 稱頌[칭송]하였고 일을 저질러 놓은 李秉珏[이병각]이란 사람의 談[담]에 曰[왈] 『感謝[감사]해서 눈물이 난다』고 大書[대서]하였다. 實相[실상] 그만한 事實[사실]이 그처럼 大書特筆[대서특필]할 것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말하는 것은 내가 몇 달 前[전]까지 新聞記者[신문기자]로 다니던 터이라 前職[전직] 經驗[경험]으로서 할 말은 있으나 그것은 이야기하는 것이 쑥스럽기에 말할 것도 안 되나 남의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깨트리고 그 위에 은혜 를 입었다는 恩惠[ ]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조흔 일은 못되는데 이 事件[사건]의 主人公[주인공]으로 내가 登場[등장]되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내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모르거니와 그 事件[사건]이 일어나던 날은 和信[화신]에 들어가 본 일이 없는 터이고 그때 나는 新堂町[신당정]에 살았으나 친구들에게 一一[일일]이 내 住所[주소]를 알리키고 다니지 못한 터이라 그날부터 내 이야기는 내 친구 모인 곳마다 벌어졌다. 거리에 나가면 꽃병 깨트린 人事[인사] 人事[인사] 一一[일일]이 辨明[변명]하려니 믿어주지도 않을뿐더러 구찬하기가 짝업다. 시골 친구들은 아주 慰問[위문] 편지 비슷한 것을 보내고 『자네 一生一代[일생일대]의 잘못이라 꾸진 다음 今後[금후]에는 조금 덜 돌아다니도록 注意[주의]하는게 어떠냐』고 忠告[충고]의 편지가 날아든다.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꽃병을 깨틀였다는 사람을 차자가 부둥켜안고 『우리 同姓同名[동성동명]이여 어떻게 數[수]가 사나워서 꽃병을 깨틀였소』하고 痛哭[통곡]이라도 하고 싶도록 원통하다. 그러나 꽃병을 잘못하여 깨트려버리고 新聞[신문]에 오른 李秉珏[이병각]이란 사람도 그 運數[운수]가 사나웠던 것이요 잘못한 일도 없이 이름이 같다는 罪[죄]로 餘禍[여화]를 입은 나도 그날 數[수]가 不吉[불길]했으며 一千七百圓[일천칠백원]짜리 꽃병 값을 물리지 않었다고 稱頌[칭송]을 바든 和信社長[화신사장]도 우리 李秉珏[이병각][씨]와 같이 그날 運數[운수]가 좋지 못하였던 것만은 事實[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세 사람 가운데서는 첫째 當事者[당사자] 두 사람은 各各[각각] 있을 법하여서 한편은 損害[손해]를 입고 한편은 남의 恩惠[은혜]를 입었으나 나는 그야말로 뜻하지 않은 불벼락을 마진 第一[제일] 재수 사나운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이름의 秉字[병자]는 李哥[이가]의 行列[항렬]로 흔히 쓰여지는 字[자]이니 흔하게 있으나 밑에 珏[각]자는 아주 괴벽스런 글字[자]로서 좀처럼 나오지 않을뿐더러 웬만한 사람은 年賀狀[연하장]가튼데 珏字[각자]를 班字[반자]로 誤記[오기]하여 보내는 이가 많으며 親舊[친구]들 中[중]에도 音[음]이 『각』이라는 것만 알았지 무슨 각字[자]냐고 물으면 모르는 이가 많다. 이렇듯 괴벽한 글字[자]가 어째서 同姓同名[동성동명]이 있서 이 꼴을 當[당]했을까 하고 머리를 끼웃거려 보아도 事實[사실] 있는데야 憂鬱[우울]만 하였지 소용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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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信[화신] 事件[사건]이 있은지 不過[불과] 三日[삼일]이 안 되어서 요번엔 그와 다른 意味[의미] - 다시 말하면 頌德記事[송덕기사][중]의 主人公[주인공]으로 또 李秉珏[이병각]이가 登場[등장]하였다. 光化門通[광화문통] 네거리에서 M社[사]의 H君[군]을 만났더니 『요즘음 자네는 左衝右突[좌충우돌], 자네 아니면 新聞記事[신문기사] 거리가 없을 지경으로 아주 花形[화형]이 되었데』하기에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오늘 저녁 新聞[신문]을 보라 하였다. 덮어놓고 太平通[태평통]엘 달려와서 揭示板[게시판]에 매여 달렸더니 아닌게 아니라 요번엔 司諫町[사간정] 사는 李秉珏[이병각]이란 사람이 旱災義捐金[한재의연금]으로 二十圓[이십원]을 내었는데 奇特[기특]한 靑年[청년]이라고 稱頌[칭송]이 쓰여 있었다. 이것은 和信[화신] 事件[사건]이 比[비]하여 조금 덜 창피한 것은 事實[사실]이나 自己[자기]와 꼭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아니요 세 사람 式[식]이나 出現[출현]해서야 精神[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司諫町[사간정] 李秉珏[이병각]은 前[전]부터도 내가 發見[발견]한 일이 있었다. 外勤記者[외근기자]로 다니던 昨年[작년] 여름 司諫町[사간정]에 무슨 事件[사건] 探訪[탐방] 하려가서 番地[번지]를 찾고 돌아다니노라니 가게 집 옆에 아주 또렷한 李秉珏[이병각]이란 門[문]패가 달려있었길래 한참 서서 집을 둘러보았더니 그다지 큰집이 아니라 역시 李秉珏[이병각]이도 넉넉한 편이 아니고나 하고 그 날 일은 잘 보지 못하고 돌아온 일이 있는 터이라 그가 義捐金[의연금]을 내여서 新聞[신문]에 稱頌[칭송]이 藉藉[자자]하게 난 것을 보고는 그다지 놀랍지 않었다. 實相[실상]이지 나를 아는 친구들이면 나에게 二十圓[이십원]이란 餘裕[여유]가 있을 理[리] 萬無[만무]한 것을 잘 알고 있길래 이는 곳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임을 알게 될 것이나 이것도 역시 그날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壯[장]한 일을 한 奇特[기특]한 靑年[청년]이라고 人事[인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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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천하]에 몹쓸 놈으로 自處[자처]하는 내가 갑작이 남에게 稱頌[칭송]을 받게 되니 이것도 또한 憂鬱[우울]이다. 一一[일일]히 辨明[변명]을 해야 되는 터이라 和信[화신] 事件[사건] 때만 하더라도 잘못을 積善町[적선정] 李秉珏氏[이병각씨]가 하고 人事[인사]는 司鍊町[사련정] 李秉珏[이병각][씨]와 내게까지 돌아왔는데 司鍊町[사련정] 李秉珏[이병각][씨]가 義捐[의연]을 한 뒤에는 그 稱頌[칭송]이 積善町[적선정] 李秉珏[이병각][씨]와 내게까지 돌아오는 것을 보면 역시 착한 일을 하여야겠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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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하여 딴 李秉珏氏[이병각씨]에게까지 더러운 욕을 듣게 해서는 안 되겠으나 左右間[좌우간] 이 세 사람의 同名人[동명인]이 가진 連帶[연대]를 나는 抛棄[포기]하지 않은 限[한] 나의 憂鬱[우울]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 한 사람이 이름을 고친다 하더라도 남은 두 사람이 그냥 있는 限[한] 나는 언제든지 李秉珏[이병각]이란 音響[음향]과 色彩[색채]에 對[대]하여 繪畵的[회화적]인 것과 音樂的[음악적]인 『센티멘탈』을 갖고 있을 터이니 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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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나 以外[이외]의 두 사람이 모두 改名[개명]해버리고 나 한 사람만 從前[종전]대로의 이름을 쓰되 商標登錄[상표등록]처럼 登記[등기]를 내여서 不可侵[불가침]의 무슨 形式[형식]을 밟게 해준다면 좋을 것이나 이것은 無理[무리]한 일이고보니 性急[성급]한 놈이 술값 치루는 셈으로 내가 먼저 改名[개명]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불꽃같이 치밀 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關係[관계] - 詩[시]를 쓰는 사람으로의 이름이라든지 或[혹]은 나와 親[친]한 사람들과의 書信[서신]이라든지 여러 가지 手續[수속]이 煩雜[번잡]해질 터이니 갑자기 改名[개명]도 못하고 한편 이 이름을 짓느라고 내 어렸을 때 아버지와 아저씨들이 모여 앉어 며칠동안 玉篇[옥편]을 뒤지고 애쓰던 것과 『파고다』公園[공원]에서 解名[해명]하던 점쟁이가 아주 좋은 이름으로 揚名於後世[양명어후세]하겠다던 것을 생각하니 덮어놓고 輕率[경솔]히 改名[개명]하기도 싫어지고 거울을 드려다 보고 제 얼굴이 여러 개로 나타나는 요술을 본 것처럼 一種[일종] 야릇한 强迫觀念[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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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조선일보]
【원문】우수(憂愁) 동일(冬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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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각(李秉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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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