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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한의 화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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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2
고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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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의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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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크의 성주 오스트왈트가 다만 심복 하인 한 사람만 데리고 근처 산속으로 놀러간 지 벌써 십여 일이 지났건만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고로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를 몹시 기다리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 에트벤의 마음 졸임은 여간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러 날 동안 아버지를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미친 사람모양으로 산과 들로 헤매고 혹은 마을로 돌아다니며 늙은이를 본 일이 없느냐고 사람마다 붙잡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찾아도 아버지의 모양은 영영 볼 수 없었습니다. 때는 한창 전쟁의 시기라 내 집 문만 나서면 천하 사람이 다- 나의 원수라고 하여도 좋을 만큼 험한 때이니 어디 가서 어떤 일을 당하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혹은 도적의 무리에 잡혀서 목숨을 빼앗기지나 않으셨는지 혹은 전부터 세력을 다투는 원수의 흉계에 빠져서 비참한 죽음을 당하지나 아니하셨는지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면 할수록 아버지의 신변이 염려되어서 산속 깊이 가시넝쿨을 쳐가면서 찾아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소식은 묘연히 알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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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버지의 행적을 찾을 수 없다고 낙망을 한 에트벤은 풀 없이 성으로 돌아와서 밤이면 괴로운 꿈을 꾸며 낮이면 평안치 못한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그날 그날 보낼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의 높은 층대 위에 올라가서 이제나 아버지가 돌아오실까 저제나 돌아오실까 하고 헛되이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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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 붉은 해는 지금 바야흐로 먼- 나라로 가라앉으려고 할 때 인적은 고요한데 한숨과 눈물로 높은 하늘을 무심히 쳐다보니 하나씩 하나씩 은실같은 광선을 뿌리고 나타나는 별의 무리는 반짝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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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별은 아버지가 계신 곳을 알겠건마는…… 하고 그는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탄식을 하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문득 에트벤의 마음에 번개같이 번쩍하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은‘손넥크’성의‘윌룸’이란 흉악한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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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넥크 성은 이 벨크 성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성입니다. 그 손넥크의 성주 윌룸이란 사람과 아버지 오스트왈트와는 오래전부터 서로 원수같이 반목하고 지내던 터였습니다. 무예와 덕망이 높은 자기 아버지 오스트왈트를 어떻게 하든지 죽음의 구렁에 쓸어 넣으려고 한다는 소문은 전부터 들은 터이라 마음이 호화로운 아버지 오스트왈트는 원수를 무서워하지 않고 손넥크 성 근처에 가셨다가 간교한 원수에게 잡히시지 않았나- 생각하니 전신이 불연 중 부르르 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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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튿날이었습니다. 손넥크 성 앞 넓은 길가 어느 커다란 정자나무 그늘에 앉아서 악기에 맞춰 처량한 노래를 부르는 유랑의 음악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는 물론 아버지를 찾으려고 위험한 원수의 땅으로 들어온 에트벤이었습니다. 원래 에트벤은 전국시대에 난 무사이지만 풍류에도 장기가 있는 청년이라 스스로 마음속의 비통한 정을 한 곡조 한 곡조 연주할 때 나무 끝에 불어오는 소리까지 같이 떨리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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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지나가던 농군 하나가 그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취하여 걸음을 멈추고 이슥이 듣다가 옆에 있는 나무 등걸이에 와서 걸터앉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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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잘하는걸! 어디서 온 사람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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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구수하게 말을 청하는 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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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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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에트벤은 대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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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면 아마 재미있는 일이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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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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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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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은 이 같은 문답을 하는 중에도 저 에트벤의 별 같은 눈이 늘 높은 성만 바라보는 것이 퍽 이상하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푸른 강물을 굽어보는 높은 언덕 위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그 성 속에 한편으로 돌로 벽을 쌓고 영창도 몇 개 되지 않는 단단한 탑은 묻지 않아도 죄인을 가두어두는 감옥이 분명하였습니다. 아- 만약 나의 아버지가 이곳에 오셔서 그놈의 손에 잡히셨으면 저 감옥에서 밝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갇히셨겠구나! 어린 에트벤은 가슴을 저미는 듯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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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줄을 알지도 못하는 농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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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저 성은 참 잘 지었지? 아마 다른 성보다 우리 성주의 사시는 성이 제일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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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훌륭합니다. 그런데 저 성 속에 또 높은 탑 같은 곳은 감옥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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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곳은 우리 성주가 혹 무엇을 잡아다가 넣어두는 곳인데 요전에도 큰 물건을 잡아왔다는데, 지나가는 무사를 붙들었다든가 꽤 나이도 먹은 모양인데 불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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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은 에트벤의 가슴은 몹시 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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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지나가던 무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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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자세히는 모르나 같이 가던 하인이 하나가 있었다고 불시에 잡아갔음으로 대항도 못해보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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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왜 그랬을까? 무슨 죄가 있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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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니 무슨 원한이 있는 사람인 모양이야. 좌우간 큰 소리로는 못할 말이지마는 우리 성주는 마음이 좋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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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주 앞에 가면 내 노래를 들어주실까요? 노자로 돈이나 좀 벌어가지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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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좋은 수가 있지. 사오 일 지나면 이 성에 큰 연회가 있어서 여러 곳 성주들이 오신다니까 자네가 가서 노래를 잘 부르면 벌이가 괜찮으리. 가보게. 자- 너무 오래 이야기했네. 또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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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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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벌써 의심할 여지도 없습니다. 아버지 오스트왈트가 저 손넥크 성 속에 갇혀 계신 것은 사실이다. 하루바삐 구해내지 않으면 안 될 텐데. 그렇게 하려면 며칠 후에 열린다는 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우선 벨크 성으로 돌아와서 일각이 천추같이 그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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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회가 열리는 날이 왔습니다. 손넥크 성은 아침부터 준비하기에 분망하였습니다. 초대받은 귀빈은 차례차례 참여하였고 굉장한 요리는 산같이 쌓였으며 비싸고 독한 술은 여기저기서 술잔이 넘쳐 흘렀습니다. 이런 때는 흥을 돋우러 자진해오는 음악사들을 거절하지 못하여 한 사람 두 사람 들어오는 대로 내버려두되 흉중에 큰 배포를 품고 들어오는 에트벤이 나타날 때 벌써 손님들은 반 넘어 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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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벤은 이 사이에 애교를 부려가면서 유행가를 하나둘 불러가면서 자석같이 차츰차츰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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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어떤 무사 한사람이 들었던 잔을 마시고 나서 성주 윌룸에게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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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서는 벨크 성주 오스트왈트를 사로잡았다더니 참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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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룸은 얼굴에 자랑하는 웃음을 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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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어요.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두 눈을 빼버린 후에 감옥 속에 넣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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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좀 불쌍한걸요. 오스트왈트는 활 잘 쏘기로 유명한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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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다른 무사가 말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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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을 못 보아도 움직이지 않는 과녁이면 맞출걸요. 내기라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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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번에는 먼저 말하던 무사가 말하였습니다. 이 말 한 마디에 성주 윌룸은 퍽 마음이 분한 듯이 벌떡 일어나 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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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자- 내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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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는 곧 성립되어서 오스트왈트를 성 속에서 불러내오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에트벤의 마음이야 어떠했겠습니까? 사모하는 아버지가 나쁜 성주의 손에 잡혀 앞 못 보는 장님이 된 것도 원통하고 슬프거늘, 하물며 만인의 앞에서 저런 술 취한 놈들의 희롱거리가 되어 놀림감이 되게 된다니 세상도 너무나 무정하다고 이를 갈면서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아아 그러나 거기에 끌려나오는 눈먼 아버지! 그 불행한 늙은 성주를 보느라고 이 젊은 음악가의 태도에 주의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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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위고 창백한 주름살 잡힌 얼굴에 분함과 원한을 가득히 품은 오스트왈트는 활과 살을 받아들고 떨리는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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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넥크 남작! 과녁은 어디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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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가 여기 지금 갖다놓은 이 술잔을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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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아버지는 한 개의 살을 활에 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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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지손이 딱 떨어지는 그곳에 나는 살대의 꽂힌 곳은 책장 위에 술잔을 맞쳤나? 아니 아니 늙은 성주의 원한 많은 화살은 과녁의 술잔이 아니라 손넥크 성주 윌룸의 포악무도한 가슴의 한복판을 뚫어 맞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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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의 아래 위에는 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저놈을 죽여라 눈먼 장님을 죽여라’ 하고 그 성 안의 사람들이 칼을 들고 우르르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벌써 손에 장금을 빼들고 오스트왈트를 호위하여 앞을 가리고 나간 사람이 있으니 이는 물론 유랑의 음악사인 그의 아들 에트벤이었습니다. 그는 소리를 높이해서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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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손넥크 성주인 극악한 흉인을 쏘아 죽인 불쌍한 앞 못 보는 오스트왈트 성주에 대하여 대항할 사람은 주저 말고 덤벼라! 여기 의 있는 칼을 잡은 그 아들 에트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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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감히 이 용감한 에트벤을 대적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은 입을 같이하여 에트벤의 효심과 정의의 승리를 칭찬할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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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앞 못 보는 무사는 벨크에 돌아와 효심 많은 아들의 위로를 받으면서 편안히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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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제5권 제8호, 1927.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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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원한의 화살 [제목]
 
  고한승(高漢承) [저자]
 
  어린이(-) [출처]
 
  1927년 [발표]
 
  동화(童話) [분류]
 
  아동 문학(兒童文學)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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