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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
◇ 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1월) ◇
카탈로그   목차 (총 : 12권)     처음◀ 1권 다음
문석환 의사
1
馬 島 日 記
 
 
2
家書後錄 兼諸師友書
 
 
3
병오 12월 28일 舍弟 奭煥 再拜上書.
 
 
4
형에게 올리는 편지 병오
 
5
이 달 17일에 써서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더욱 외로운 형제1)의 감회가 절실합니다. 올해도 저물어 가서 비단 얇기만큼 남았는데 기체후 만안하오시며 형수님의 기체 역시 만안하오시며 조카들도 효도 잘하며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저[舍弟]는 몸에 탈이 없으나 간간히 물과 흙에 길들지 않아 혹은 현기증이 일어나서 비록 피곤함이 많지만 이것은 안쓰러울 것이 못됩니다. 다만 조상의 묘소를 떠나며 친척을 버린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옷깃에 가득하여 하늘만 바라볼 뿐입니다. 送舊迎新에 모두 만안하시기를 빕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살펴주십시오. 글을 올립니다. 이번 달 12일에 올린 편지는 혹은 분실되었는지 도달하여 읽으셨는지요? 조(曺) 친구가 볼 일이 있어 公州府에 이르러 勉菴 선생의 상여가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주점 喪次에서 상주를 위로하며 곡하고 즉시 ▣▣▣▣ 다만 볼 일로 인하여 그렇게 한 것이나, 실로 제가 객지에 사는 정상이 어떠한지를 살피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라건대 형님께서는 이 사람의 후한 배려를 잊지 마십시오. 지금과 같은 말세 인심에 혐의를 피할 단서가 없지 않은데도 이 사람이 이와 같이 하였으니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매사를 함께 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曺兄에게 올리는 답장은 이번 달 13일에 부쳤는데 근간에 보셨습니까? 소식 듣기를 마지않습니다.
 
 
6
병오 12월 28일 문하생 文奭煥 再拜 上書.
 
 
7
明庵 선생에게 올리는 편지의 別紙 성함은 申梜
 
8
勉菴 선생의 상사는 들보가 부러지는2) 탄식만 절실할 뿐입니다. 먼저 고국에 있을 때에 문안을 많이 빠뜨렸는데 하물며 외국의 뚝 떨어진 곳에서 편지마저 아득한 곳이겠습니까? 뜻밖에 주신 편지를 받고 매우 그리운 정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섣달 추위에 기체후가 한결같이 만안하시고 집안의 모든 분들도 고루 편안하심을 알게 되었으니 제 정성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저[門下生]는 대마도에 온 이후로 병에 걸에 편안한 날이 없으나 다만 여러 사람들이 자루에 가져온 책에 빠져 들어감으로 해서 經書의 의미를 강론하여 스스로 즐기며 날을 보내는 것이 다행일 뿐입니다. 나머지는 송구영신에 만안하시기를 빕니다. 이만 줄입니다. 살펴 주십시오. 글을 올립니다.
 
 
9
仲兄에게 올리는 편지
 
10
연말이 비단 얇기만큼 남았는데 형님께서 우애하시는 정은 반드시 아우노릇 못하는 아우 때문에 좋은 상황이 아닐 것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마음과 정신이 삭아들고 산란하여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때에 기체후가 손상이라도 있지 않으신지 알지 못하여, 멀리 있는 제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저[舍弟]는 외국에서 연도가 바뀌니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눈물만 뿌릴 뿐입니다. 그러나 天命이 있는 곳에 반드시 살아 돌아가 형제간에 즐길 날이 있을 것이니, 지나치게 상심하지 마시기를 바라고 바랍니다. 나머지는 송구영신에 만안하시기를 빕니다. 이만 줄입니다. 올려 아룁니다.
 
 
11
병오 12월 28일에 硯末 4) 文奭煥 書.
 
 
12
崔萬奉·朴分吉에게 보내는 답장
 
13
매우 그립던 나머지 편지를 보고 서러움과 감사함이 교차하네. 부모를 모시는 귀하의 생활이 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실로 먼 곳의 내 뜻에 맞아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나[拙狀]은 친척을 東都에서 이별하고 한 몸이 포로3)로 떨어져 있으면서 연도가 바뀌려 하니 감격되는 눈물이 물을 퍼붓는 듯하네. 옛날 성인께서는 시간을 아끼셨는데 스승(나)의 마음은 하물며 그보다 천만 배나 떨어지는 사람임에랴. 오직 마음과 뜻을 용맹정진하여 부질없는 생각을 끊어버리고 경전 속에 빠져 들어가야 하네. 구하면 통하지 않을 리가 없고 행하면 화합하지 않을 리가 없다네. 이것이 멀리 있는 사람이 두 분에게 깊이 바라는 바이네. 稧를 설립한다고 하는 것은 ‘자네들이 竿頭의 형세’에 있으면서 이 무용한 사람을 위하여 만든 것이라, 한편 부끄러우며 한편 기뻐하면서 우선 절중할 것이네. 보내준 돈 10냥은 군박한 나머지 긴요하게 쓰며 감격함이 진실로 어떠하겠는가? 나머지는 이만 줄이네.
 
 
14
李奇男·金鳳鉉에게 하는 답장
 
15
그리던 차에 편지를 받고 부모를 모시는 귀하들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얼마나 위로되고 기쁜가? 나[鄙狀]는 대단한 병이 없네. 오직 제군들은 나를 아끼는 마음을 미루어 나가면 내가 제군들을 아끼는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네. 마음에 맹세하고 힘써 강독하여 멀리 있는 사람의 바램을 저버리지 말고, 일후에 부치는 편지는 반드시 직접 쓸 것이고 대필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네. 나머지는 이만 그치네.
 
 
16
金寶物에게 하는 답장
 
17
편지가 오자 감격됨이 많거늘 하물며 부모를 모시는 자네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기까지 함이겠는가? 매우 위로되고 위로되네. 나[雲樵]는 그전대로이나 현기증[眩暈]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네. 인생이 비록 처지의 높낮이가 있으나 하늘이 부여한 것은 같아서 實心으로 공부를 하면 모두 선인이 될 수 있네. 용감한 뜻으로 진보하여 수시로 노력하여 나의 바램을 저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네. 무릇 이것은 허투로 하는 것이 아니라 폐부에서 나오는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게. 나머지는 일일이 쓰지 않네.
 
 
18
병오 12월 28일 雲樵 書.
 
 
19
朴泰順·鄭學善에게 하는 답장
 
20
갈망하던 차에 편지를 접하니 정말 꿈을 깬 듯하네. 부모를 모시는 그대들이 편안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위로와 기쁨을 헤아리지 못하겠네. 나[雲樵]는 비록 병이 없다고 하더라도 평소 병을 제거하기가 어려우니 그 외국에서 어찌하겠는가? 근원이 없는 물이 없고 뿌리가 없는 나무가 없으니 독서하지 않으면 무엇에 쓰겠는가? 오직 바라건대 부지런히 독서하고 독실히 공부하여 외국에 있는 나를 저버리지 말게. 나머지는 일일이 쓰지 않네. 차후로는 편지를 모두 직접 쓸 것이고 대필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네.
 
 

 
 
21
1907년 1월
 
 
22
11일 계묘.
 
 
23
12일 갑진.
 
 
24
13일 을사.
 
 
25
午時에 대대장이 통역에게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26
“林遯軒과 安華儂이 함께 왔다.”
 
27
고 운운하였으므로, 곧 川上과 함께 가서 대대장을 만나고 돌아와서 말하기를,
 
28
“지금 駐韓司令部의 전보가 있어서 林·安 두 사람을 감금에서 풀어주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공문이 일간에 도착할 것 같은데 이를 우선 축하합니다.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공문이 도착하는 날에 출발하는 것이 가할 것입니다.”
 
29
하니, 林遯軒이 말하기를,
 
30
“이것은 특별 사면이니 은혜와 감사가 많습니다. 귀하 사신의 보호에 크게 의지하여 몸이 탈이 없이 고국에 돌아가게 되었으므로 더욱 감명이 큽니다. 다만 감금된 10사람이 함께 돌아갈 수 없어 떠나가고 남아 있는 서글픔이 있는데, 장차 어떻게 헤어지겠습니까? 서글픔이 기쁨보다 앞섭니다.”
 
31
라고 하였다. 대대장이 말하기를,
 
32
“공문이 비록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나 여러분도 모두 감등되어 2~3년 안에 반드시 모두 환국하게 될 것입니다.”
 
33
라고 하였다.
 
 
34
14일 병오.
 
 
35
오시에 大隊部로부터 열 사람을 불러 말하기를,
 
36
“한국 황태자의 嘉禮를 치를 때에 국내외의 여러 죄수에게 형벌을 가볍게 하고 등급을 줄이게 하였습니다. 柳濬根·南敬天·李侙·申鉉斗 네 사람은 양력 26일부터 14년 29일까지이고, 李相斗는 6년 4월 29일이고 崔重日은 2년 4월 29일이고 文奭煥은 1년 10월 29일이고 申輔均은 1년 4월 29일이고 林某·安恒植은 완전 사면할 뜻으로 주한사령부의 훈령이 있어 이에 선고합니다. 완전 사면되는 사람은 1~2일 머물면 노자[盤纏]를 마땅히 나누어 보내줄 것이니, 감금된 사람들은 안심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오늘과 같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37
라고 하였다.
 
38
(문석환이 청하기를 ▣▣▣▣ 林某에게 예를 차리고 말하기를,
 
39
“나는 식견이 고루하지만 그대는 문장이 풍부하니 내가 어찌 감당하겠는가.”
 
40
하니, 말하기를,
 
41
“만약 허락하지 않으면 이는 멀리 버리는 것입니다. 도리어 부끄러움과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절로 탄복하는데 지금부터 이로써 양해하시기 천만번 바랍니다.”
 
42
하고 遯翁이 객지 중에 가지고 있던 「周易備旨」6권, 「玉篇合附」1책을 나에게 주고 대마도를 나온 뒤에 돌려주게 하였다. 曆書 한 건을 申鉉斗에게 주고 용도에 따르는 사소한 물건들을 다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인삼 10뿌리를 川上春治에게 주어 부모를 봉양하게 하였다.
 
 
43
15일 정미.
 
 
44
遯軒에게 올리는 別章 시는 이러하다.
 
 
45
陪從杖屨客窓頭  어른을 모시는 객지에서
46
別淚淋漓灑碧流  이별 눈물 주르르 푸른 물결에 뿌리네
47
無限春風無限意  무한한 봄바람에 무한한 생각
48
江天漠漠暮雲愁  강가 하늘 아득한데 저녁 구름 서러워라
49
歸程故國三千里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 삼천리
50
征袖飄颻客意新  떠나가는 옷깃 나부껴 나그네 뜻 새로워라
51
嚴原楊柳春猶在  嚴原의 버드나무5) 봄철에 푸르게 있어
52
分送離情繫遠人  떠나는 정을 나누어 보내어 멀리 가는 사람에게 얽어매네
 
 
53
遯軒이 文奭煥에게 주는 시는 이러하다.
 
 
54
圓機活動立源頭  圓通機變의 활동은 근원이 서야 하니
55
一竇寒泉萬派流  한 줄기 차가운 샘이 만 갈래로 흐르네
56
行行分合終成海  가고 가서 나뉘고 합하여도 마침내 바다를 이루니
57
逢別於人不足愁  만나고 헤어짐은 사람에게 근심할 게 못되느니라
58
前秋萬里同爲客  지난 가을 만 리 땅에 함께 나그네 되었다가
59
春到獨行愁轉新  봄이 되어 홀로 떠나 근심 더욱 새로워라
60
金槖雖空羲易在  돈 주머니 비록 비었어도 周易이 있으니
61
借君履道作幽人  그대에게 빌려주어 도를 닦아 隱君子를 만드노라
 
 
62
華儂에게 드리는 별장 시는 이러하다.
 
 
63
傷心別路暮江頭  마음 상하는 이별 길 저녁 강 머리에서
64
濕盡靑襟淚未收  푸른 옷깃6) 모두 젖어 눈물을 거두지 못한다오
65
高鴻歸北春天遠  높이 나는 기러기 북쪽으로 돌아가는 봄 하늘은 아득한데
66
聊對寒梅獨自愁  추위 속에 매화를 마주 보며 홀로 서러워한다오
67
三千里外同爲客  삼천리 밖에 함께 나그네 되어
68
怊悵今朝獨出門  서글피 오늘 아침에 홀로 문을 나서네
69
爲憐白髮歸猶晩  백발에 돌아가는 것이 늦는 것도 가련한데
70
催送烏檣日未昏  타신 배 재촉해 전송함에 해가 아직 저물지 않았소
 
 
71
여러 사람이 별장을 주었는데 眉湖의 시는 이러하다.
 
 
72
秋以相逢春以別  가을에 서로 만났다가 봄에 헤어지니
73
且欣且感語難成  한편 기쁘고 한편 느꺼워 말을 하지 못하네
74
去留不一何須說  떠나고 남는 것이 한결같지 않음을 어찌 말할 필요 있나
75
萬里歸帆次第行  만 리에 떠나가는 배 차례로 가는구나.
 
76
昔時兩位來  옛날에 두 분께서 오셨다가
77
今日單身去  오늘 단신으로 가시는구려
78
痛矣頹山悲  선생께서 돌아가신 애통함을7)
79
對人何以語  어찌 남에게 말하겠소
 
80
靜觀
 
 
81
前秋七月陪師行  지난 칠월에 선생을 모시고8) 떠나와서
82
同苦半年最有情  함께 고생한지 반년에 가장 정이 들었네
83
怊悵今朝相送別  서글피 오늘 아침에 서로 송별하니
84
好還故國伴春行  고국에 잘 돌아가며 봄을 짝해 가네
 
85
南湖
 
 
86
蒼茫雲樹惹愁深  아득히 푸른 구름 서린 나무9)는 깊은 시름 자아내니
87
試把君情較我心  그대의 정을 내 마음에 견주어 보라
88
陽關數闋相送遠  陽關曲 몇 곡조10) 불러 멀리 전송하니
89
一棹春風闢海陰  봄바람에 노 하나로 바다 어둠 헤쳐 가네
 
90
友鹿
 
 
91
來亦後先去後先  온 것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는 것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니
92
此時情緖倍悽然  이 때의 정서 갑절이나 처량하구나.
93
半年同苦今相別  반년이나 함께 고생하다가 지금 이별하니
94
雲樹杳茫海外天  구름 서린 나무 아득한 바다 밖 하늘이라.
95
同作前秋萬里行  지난 가을 만 리 길을 함께 왔는데
96
今朝又奈別離情  오늘 아침 이별하는 감정 또 어떠한가.
97
陽關數曲嚴原路  양관곡 몇 곡조 부르는 嚴原 길
98
感淚淋漓咽海聲  느꺼운 눈물 주르르 오열하는 바닷물 소리.
 
99
滄湖 2수
 
 
100
白雪嚴原路  흰 눈 덮인 嚴原 길
101
三餘受聖書  세 가지 남는 시간에 경서(經書)를 수업하였네.
102
去留何足說  떠나고 머물음을 어찌 말할 것이랴.
103
顔色自依如  안색이 절로 의연하구나.
 
104
思雲
 
 
105
遯軒이 여러 사람에게 회답하는 시를 써서 眉湖에게 주었는데 이러하다.
 
106
從古英雄無不讀  예부터 영웅들은 독서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107
精硏庸學一家成  중용(中庸)·대학(大學)을 정밀히 연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네.
108
今日後先何足道  오늘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어찌 말할 것이 있으랴.
109
滿堤芳草待君行  둑에 가득한 방초 그대의 행차를 기다린다네.
 
110
十朋客半年  열 명 친구 객지 생활 반년
111
今日二人去  오늘 두 사람이 간다네.
112
去留怊悵情  떠나고 머물음에 서글픈 감정
113
相對不能語  서로 마주보고 말을 하지 못하네.
 
114
靜觀
 
 
115
燕子同來鴈獨行  제비와 함께 왔다가 기러기와 홀로 가니
116
春風秋月兩關情  봄 바람과 가을 달에 양쪽으로 끌리는 정이라
117
星星白髮偏相惜  희끗희끗 센 머리 유독 서글픈데
118
其奈靑山杜宇聲  청산 杜宇11) 소리에 어찌할까
 
119
南湖
 
 
120
靑山不重海難深  청산도 무거울 것이 못되고 바다도 깊을 것이 못되는데
121
一見平生一片心  한번 만나 평생토록 일편단심이었네
122
第待今年南至日  다만 올해 동짓날
123
地雷動處破頑陰  땅에 우레가 일어나는 곳에 몽롱한 암흑이 흩어지기를 기다리네12)
 
124
友鹿
 
 
125
來時我後我今先  올 때엔 나보다 뒤였는데 내가 지금 먼저 가니
126
君自傷心我亦然  그대 절로 상심하고 나 역시 그러하네.
127
願言山陰雪月夜  원컨대 山陰에 눈 속의 달 밝은 밤에
128
一棹搖搖萬里天  노 하나를 흔들어13) 만 리 길 가고 싶어라.
129
不忍相離步步行  차마 서로 헤어져 걸음을 떼지 못하겠으니
130
征雲流水更牽情  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에 더욱 정이 끌리네.
131
丈夫一淚非容易  장부의 한번 눈물 쉽지 않으나
132
其奈君歌作楚聲  그대 노래 초나라 소리14)를 내는 것에 어찌 할까.
 
133
滄湖
 
 
134
聞喜還無喜  기쁨을 들어도 도리어 기쁨이 없어
135
爲君不卷書  그대를 위하여 책을 덮지 않노라.
136
明朝東海上  내일 아침 동해 가에
137
分手意何如  이별 악수에 마음이 어떠할까.
 
138
思雲
 
 
139
華儂 역시 화답하여 주는 시를 나에게 주었는데 이러하다.
 
 
140
步步思君低仰頭  걸음마다 그대를 생각하며 숙였다 들었다 하는데
141
海雲初起洞烟收  바다 구름 갓 일어나고 골짜기 안개 걷히누나.
142
羈中祗自望鄕切  객지 중에 다만 객지 생각만 간절한데
143
出外還生萬種愁  밖에 나오니 도리어 온갖 근심 생기는구나.
 
 
144
나와서 海老屋의 집에 머물러 화답해 전송하였다.
 
 
145
爲客半年碧海中  나그네 되어 푸른 바다 속에서 반년 지내더니
146
今朝分手各西東  오늘 아침에 이별하고 각각 동서로 나뉘네.
147
來同去異君休說  같이 왔다가 다르게 떠남을 그대는 말하지 말라.
148
誰識蒼天理不窮  푸른 하늘 이치가 무궁함을 누가 알리.
 
149
眉湖 주다
 
 
150
君住我歸意不中  그대는 남고 나는 돌아가니 마음에 마땅치 않아
151
如何一路各西東  어찌하여 같은 길을 가다가 각각 동서로 나뉘는가.
152
立龜巖似離亭立  龜巖에 서자 離亭15)에 선 듯하니
153
嗚咽滄波逝不窮  흐느끼는 바다 파도 한없이 지나가네.
 
154
華儂 화답하다
 
 
155
萬里來同去不同  만 리에 같이 왔다가 같이 가지 않으니
156
可憐人事各西東  가련한 사람 일이 각각 동서로 나뉘네.
157
離亭無限傷心路  이정에서 한없는 상심스러운 길에
158
又是梅花弄雪中  매화가 눈 속에 희롱하네.
 
159
南湖
 
 
160
客館運回春意生  객관에 운수가 돌아와 봄뜻이 나니
161
感君今日見天明  오늘날 밝은 하늘 보는 그대에게 감사하네.
162
嚴原海水深千丈  嚴原의 바닷물 천 길이나 깊은데
163
不及華儂▣▣▣  華儂에 ▣▣▣ 못 미치네.
 
164
靜觀
 
 
165
一夜春風送海寒  하룻밤 봄바람이 바다 추위를 보냈으니
166
嗟君萬里去平安  아! 그대 만 리를 감에 평안하라.
167
餘生於此頭還白  남은 인생 여기에서 머리가 다시 희어지는데
168
相別非難誼是難  이별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정의가 어려운 것이라오.
 
169
友鹿
 
 
170
多感君行向洛陽  서울로 떠나가니 그대에게 감회 많으니
171
潸然涕淚滿衣裳  주르르 흐르는 눈물 옷깃에 가득하네.
172
聊將數字傳家信  몇 자 적어 집에 소식을 전하니
173
爲報伴春還故鄕  봄과 함께 고향에 돌아간다고 알리게.
 
174
滄湖
 
 
175
君羈嚴原我洪陽  그대는 嚴原에서 객지살이하고 나만 홍양(홍성)으로 가니
176
龍鐘雙淚濕衣裳  꾀죄죄한 모습에 두 줄기 눈물이 옷깃을 적시네.
177
九十春光今未半  구십일 봄날 아직 반이 안 지나갔으니
178
莫期花霰還早鄕  꽃이 싸라기눈 맞아 또한 고향에도 이를 것이라고 얘기하지 말라.
 
179
華儂 화답하다
 
 
180
曉風拜別兩先生  새벽 바람에 두 선생님을 송별하니
181
其奈一悲一喜情  한편 서글프고 한편 기쁜 감정을 어찌하나.
182
次第歸家知不遠  차례로 집에 돌아감이 멀지 않음을 알겠으니
183
綠楊芳草滿春城  푸른 버들 향기로운 풀이 봄 성에 가득하구나.
 
184
思雲
 
 
185
海天漠漠海雲生  바닷가 하늘 아득히 바다 구름 생기니
186
萬里無涯此日情  만 리에 끝없는 이날 감정이라.
187
臨別一言爲君贈  이별에 임하여 한 마디 말 그대에게 주니
188
立心如鐵意防城  마음 먹기를 쇠처럼 하고 뜻을 성처럼 호위하라.
 
189
華儂 화답하다
 
 
190
16일 무신.
 
 
191
수감되어 있는 여러 사람이 遯軒·華儂과 송별하였는데, 그 연연하게 차마 못해하는 감정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랴? 조금 뒤에 川上이 본대에서 노자돈[盤纏]을 가지고 와서 두 사람에게 88냥을 지급하였다. (그 두 어른의 여로의 처소는 이미 海老屋일본인 호에게 분부하여 음식과 거처를 잘 주선하도록 하였다.)
 
 
192
17일 기유.
 
 
193
川上에게 말하기를,
 
194
“우리들이 청컨대 밖에 나가 다시 두 어른께 송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195
하니, 말하기를,
 
196
“이것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들을 위하여 대대장에게 말하여 그 가부를 따르겠습니다.”
 
197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198
“잘 말해 주시오.”
 
199
하였다. 조금 뒤에 돌아와서 말하기를,
 
200
“(▣▣ 네 사람이 나가도) 되겠습니다.”
 
201
하니, 말하기를,
 
202
“(이미 허락했는데 어찌하여 반만 나가고 반은 못나갑니까?)”
 
203
하였다. 말하기를,
 
204
“이것은 대대장(의 말입니다. 내가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205
하였다. 오후에 나는 申輔均·南敬天·申鉉斗와 함께 川上을 따라 나갔다. 海老屋과 병사 한사람이 역시 따랐다. 廳樓에 올라가 선생에게 절하고 앉으니) 술을 데워 마시라고 권하고 과자를 내어 안주로 하고 각각 두어 순배를 하였다. 배편을 물으니 아직 모른다고 하였다. 1시간을 대화하자 川上이 떠나기를 재촉하였다. ▣▣ 華儂과 청루를 내려오고, 거리로 나와서 다시 川上에게 요청하기를,
 
206
“島雄莊介는 바로 지난 가을에 우리들이 의지한 분이고 (머물러 잤던 집입니다. 잠시 방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207
하니, 말하기를,
 
208
“감금된 사람이 이와 같이 해서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임모(林某)·안모(安某)는 마땅히 방문해야 합니다.”
 
209
하였다. 華儂이 말하기를,
 
210
“잠시 길가에 머물러 있으면 내가 마땅히 가서 말하겠습니다.”
 
211
하니, 川上이 말하기를,
 
212
“이 근처는 바로 憲兵所입니다. 마땅히 금법에 걸릴까 우려되니, 조금 담장 깊은 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213
하였다. 이윽고 島雄이 그 처자와 함께 나와서 상면하였다. 비록 언어는 자세히 알지 못했으나 정의는 어찌 다르겠는가. 그 슬퍼하며 기뻐하는 심정은 피아간에 사사로움이 없었다. 이 사람은 평소 살림이 한산하여 자신이 살아갈 방책이 없었는데 그 식구의 얼굴이 메마른 것은 참담하여 차마 볼 수 없으나, 그 마음을 쓰는 것이 선량하며) 온후하여 과연 인간에 드믄 사람이었다. (병사가 헤어지기를 재촉하여 서로 울면서 헤어졌고, 도웅도 곁에 있다가 눈물을 뿌렸다.)
 
214
遯翁이 나에게 부탁하여 말하기를,
 
215
“몸을 잘 보전하여 속히 귀국하도록 하고 손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좋을 것이오.”
 
216
하였고, 華儂 역시 그와 같이 하였다. 나는 절하고 말하기를,
 
217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218
하고, 다시 警備營을 향하여 오니, 그 서운한 감정은 형언할 수 없었다. 돈옹이 주었던 과자 한 주머니를 가지고 와서 나오지 않은 네 사람과 나누어 먹으면서 울적함을 삭일 거리로 삼았다. 滄湖와 바둑 한 판을 두고 마쳤다.
 
 
219
18일 경술.
 
 
220
遯軒이 좌중에 편지를 보냈는데 말하기를,
 
221
“오늘 저녁에 배편이 있습니다.”
 
222
라고 하였다. 오후에 (川上이 말하기를,
 
223
“내가 지금 나가는데 海老屋에 부치는 말은 없는가?”
 
224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225
“잠깐 기다리면 편지를 쓰려고 하오.”
 
226
라고 하였다. 川上이 말하기를,
 
227
“내가 다시 들어오리니 석양에 집에 돌아갈 때 보내도 무방하오.”
 
228
라고 하였다.) 조금 뒤에 돌아와 알리기를,
 
229
“기선이 이미 출발하고, (그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230
고 하였다. 한번 이 말을 듣고 반나절을 인형처럼 있었다.) 川上이 영수증표 2장을 가지고 와서 申鉉斗에게 요청하기를,
 
231
“林·安 두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각각 본가에 보내되 모두 이름 아래에 도장을 찍어 명함과 함께 들여보내 뒷날 증거로 하시오. 이 영수증은 노자를 주는 것과 관계되는 것이오.”
 
232
라고 하였으니, 그 치밀함이 이와 같았다. (병사 中島高·佐護質 두 사람이 말하기를,
 
233
“조금 뒤에 뱃머리에 나와서 귀국하는 사람들을 전별하시오.”
 
234
라고 하였다.)
 
 
235
19일 신해.
 
 
236
병사 山田德茂가 日誌를 보기를 요청하므로 즉시 주었다. 조금 뒤에 되돌려 주고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237
“문자를 빌려 보니 실로 내가 마음에 감동하였소. 내가 공 등의 심사를 살펴보니 곧바로 감동하는 눈물이 있게 되었소.”
 
238
하므로, (답하기를,
 
239
“자잘한 문자가 비유하기에 부족하나, 그대의 위로는 실로 감명되니 특히 감사하는 바이오.”
 
240
하였다. 山田이 말하기를,
 
241
“공이 감금된 것은 몇 년이었습니까?”
 
242
하니, 말하기를,
 
243
“1년 10개월이오.”
 
244
하였다. 山田이 말하기를,
 
245
“광음이 화살과 같으니 염려할 것이 못됩니다.”
 
246
하므로, 말하기를,
 
247
“그렇습니다.”
 
248
하였다. 장관 한 사람이 와서 여러 사람들 옷의 깔끔한지 살피고 갔다.)
 
 
249
20일 임자.
 
 
250
본대로부터 여러 사람들의 때 묻은 옷을 잿물에 타서 빨기 위해 가지고 갔다. (오시쯤에 食主 石田義一이 요청하기를, 여러분 중에 나이가 젊고 힘이 센 자가 두레박 줄로 우물을 길어서 이전의 오물을 쳐내고 새로이 깨끗하며 찬 샘물을 내게 하자고 하였다. 이전의 우물은 이미 울타리 밖 50보쯤 되는 곳에 있어서 마땅히 이 우물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이 새로운 우물집을 지은 뒤에 板木을 비늘처럼 늘어놓아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우물을 파서 뜻밖을 예방하였으니, 이는 의심하지 않을 것에 의심한 것이다. 이 우물을 새로 파는 것은 진흙과 악취의 실마리가 없을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이 하였다. 우물에 두레박줄을 넣어 다 꺼낸 뒤에 과자와 사탕을 나누어주어 먹였다. 이 일은 의당 식주가 스스로 담당해야 할 일인데, 인부의 비용을 이롭게 여겨 이렇게 하였으니 우리들이 어찌 사양할 수 있겠는가.)
 
 
251
21일 계축.
 
 
252
二十一日 癸丑 晴
 
 
253
22일 갑인.
 
 
254
遯翁·華儂이 부산에 나가 같은 書幅에 편지를 부쳤는데, 그 편지에 말하였다.
 
255
“뜻밖에 배편이 있어서 午時 초에 타고 왔습니다. 다행히 순풍을 타고 큰 바다를 편히 건너 酉時 말에 艸梁에 도착하니, 만 리나 막혔습니다. 대마도로 머리를 돌리니 아득한 이 회포는 湘水16)의 물결을 다하며 汶水의 대나무17)를 다할지라도 모두 기록할 수 없습니다. 대저 여러분의 객지 건강은 편안합니까? 출발에 임하여 간략히 써서 川上에게 대신 탐문하는 편지를 동봉하여 부쳤는데, 도달하여 보셨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더욱 간절히 멀리서 빕니다. 우리들은 어제 일본인 朝屋의 집에서 자고 지금 부산에 도착하여 낮차를 탈 계획입니다. 나머지는 뒤쪽에 남겨두고 이만 줄입니다.”
 
256
商務社에 이르러 들으니, 담배를 끊는 일로 논의를 내어, 임금께 아뢰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신문에 있으므로 뒤에 기록하니 보신 뒤에 즉시 담배를 끊는 것이 어떻습니까?
 
257
國債를 갚는 일과 백성들이 담배를 끊는 대금을 모으는 일로 임금께 아뢰었더니 下敎하기를,
 
258
“애처로운 우리 赤子같은 백성들이 國債의 報償과 담배 값을 모으는 일은 짐이 담배를 피울 수 없으니 담배를 들이지 말라.”
 
259
하였답니다. 이 이외에 각처에서 담배를 끊겠다는 말을 신문에 올려서 다 기록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260
川上이 말하기를,
 
261
“담배를 끊는 일은 별로 이익되는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이와 같이 합니까?”
 
262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263
“韓國 백성들은 국채 보상의 일로 이와 같이 계획을 하였는데, 여기의 객지살이 하는 사람들도 吸烟할 방도가 없는 것은 떠나가는 두 사람에게서 이미 목격한 바이오. 이로 말미암아 편지를 써서 우리들로 하여금 단념케 하는 것이 또한 신민의 도를 닦는 것이오.”
 
264
하였습니다. (川上이) 말하기를,
 
265
“그렇기는 그렇습니다. 공 등이 여기에서 곤액을 받는 것은 나라를 위하며 임금을 받드는 의리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나라를 위한 신민의 도리에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266
하니 (내가)말하였다.
 
267
“일의 성패는 天運에 달렸지 인력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268
“나라를 위하는 도는 천하의 백성이 모두 일반입니다. 우리나라가 비록 공 등을 이 섬에 留置하였으나, 대소 관원을 물론하고 모두 그 절의를 장대하게 여기고 은밀히 그 충심을 칭송하니 누가 비난하겠습니까?”
 
269
“만일 도적이 있어 밤에 공의 집에 들어가서 그 기물과 보화를 탐취한다면 공은 편안히 앉아서 덤덤히 바라보며 그 도적을 쫒지 않겠습니까. 응당 방어하여 모두 탈취당하지 않게 하리니 나라를 위하는 도리도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
 
270
“그렇습니다. 閔宗植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271
“우리나라의 대대로 녹을 받는 신하입니다.”
 
272
“이 사람이 어찌하여 시세를 알지 못하고 거사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273
“이 사람은 한국에 있어서 대대로 柱石의 신하가 되어 국가와 흥망 고락을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금일의 거사는 成敗와 利鈍을 따지지 않고 하여 그렇게 된 것이고, 몸과 집, 그리고 名利를 위한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274
“거주지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275
“본래 서울 안에 살다가 이번에 충청남도 定山郡에 살게 되었습니다.”
 
276
“돌아가는 崔大監과는 같은 고향입니까?”
 
277
“그렇습니다.”
 
278
“최대감과 관작은 누가 높습니까?”
 
279
“崔元老는 정2품 贊政이고 閔大人은 종2품 參判입니다. 품계 역시 正과 從의 구별이 있고, 작위 역시 班列의 차례가 있어 민대인이 최원로에게 한 계급 미치지 못합니다.”
 
280
“민종식의 거사는 몸이 욕보고 집안이 망가지고 국가에 이익이 없으니 그에게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281
“국가 위란의 시기를 당하여 그 직책을 맡은 이가 자신을 죽이며 집을 망치지 않고 국가를 근심하지 않는 것은 직책을 맡은 자가 해야 할 바가 아닙니다. 비록 평범한 한 사나이와 부녀자일지라도 마땅히 함께 분격해야 하는데 하물며 그 소임이 중대한 사람이겠습니까?”
 
282
川上이 또 말하였다.
 
283
“최대감의 충의는 어떻습니까?”
 
284
“최원로의 충의는 온 나라가 함께 알 뿐만 아니라 천하가 함께 들어 아는 바입니다. 수십년 전부터 글을 올려 대궐문을 두드리고 말이 비록 매우 절실하였으나, 임금께서 들으심이 밝지 못하여 여러번 진노하시고 여러 소인배들의 의논을 써서 金甲島로 정배한 지 수년이었고, 또 濟州에 安置한 지 수년이었으나, 상소로 간언하기를 그치지 않아 수십 평생 일신의 계획은 國事를 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금번 거사는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나라를 위해 진심갈력하여 죽은 뒤에야 그만두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 책임을 다하기를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마땅히 천하와 후세에 신하된 이들에게 경계가 될 만합니다.”
 
285
“그렇습니다.”
 
 
286
23일 을묘.
 
 
287
軍醫 소대장이 여러번 내 병을 살피러 왔다. (애호하기를 친구처럼 하였는데 병이 어느 증세인지를 증험하려는 뜻이었다.) 똥을 조금 가지고 갔다고 한다. 川上과 본부 大隊室을 가서 찾았다. 그 사람이 나와서 맞이하고 이어서 근일에 몸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다. 말하기를,
 
288
“전일에 비하여 조금 줄어든 형세입니다.”
 
289
하니, 말하기를,
 
290
“약물을 추후 보낼 테니 잘 조섭하시오.”
 
291
라고 하였다. 말하기를,
 
292
“자주 왕림하여 문병해 주시고 약물에 많이 의지하니 실로 개인적으로 감사드립니다.”
 
293
하니,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川上과 객지 처소로 돌아오자, 한참 점심을 대청에서 먹고 있었다. 반찬은 계란으로 생선을 싸서 구워 먹었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매월 5~6회였다.
 
 
294
24일 병진.
 
 
295
崔相集·申輔均·李相斗의 집 편지가 왔다. 遯翁은 부산에 있으면서 李侙에게 편지를 부쳤는데 말하였다.
 
296
“예를 생략합니다.18) 哀體19)가 몸을 버티어 편안하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는 이미 연철한 편지 중에 말하였습니다. 喪笠은 商務會議所에 사서 놓고 그들로 하여금 인편을 구하여 부쳐 보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편국은 부칠 수 없고, 다만 소식편을 구한 뒤라야 부쳐 보낼 수 있다고 하니, 이해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297
또 南敬天에게 편지를 하였는데 말하였다.
 
298
“網巾 장식과 중국 갓끈[唐纓]을 사서 올리니 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편지 봉투 안에 싸서 보낸 것입니다.”
 
299
欄上頭註: 오후에 崔參奉의 처남 任相鎬와 李主事의 아들 火+邕가 모두 옷을 부쳐왔는데 편지가 먼저 도착하였다. 봉투 안에는 모두 그들 며느리의 한글 편지가 있었다. 申輔均의 아들 台鉉·禹鉉이 그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올렸고, 속에는 南熙의 편지가 있었는데 신보균의 숙부이다. 한 통의 편지는 우현이 申鉉斗에게 안부한 것이고, 한 통의 편지는 또한 한글 편지였다. 봉투 하나는 바로 柳濬根의 舍伯이 부친 편지였다.
 
 
300
25일 정사.
 
 
301
川上이 말하기를,
 
302
“내일이 육군의 명절입니다.”
 
303
하므로, 내가 말하였다.
 
304
“무엇을 말하여 육군의 명절이라 합니까?”
 
305
“몇 년 전에 旅順 항구에서 일본과 러시아가 접전하여 일본이 승첩하였는데, 명일이 바로 그날입니다. 이 전쟁의 승리는 육군에 있으므로 육군의 명절이 되었습니다. 오늘까지 기념하여 온 나라가 영광스러워하고 군인은 모두 술취하며 배불리 먹고 즐깁니다.”
 
306
“해군 역시 그와 같습니까?”
 
307
“해군은 아닙니다. 해군의 명일은 對馬派戰勝의 때인데 날짜는 잊었습니다.”
 
308
“이 전쟁도 러시아와 한 것입니까?”
 
309
“그렇습니다.”
 
310
林川郡 朴通政 寅和의 宅에 올리는 편지를 쓰고, 그대로 川上에게 부쳐 우편국으로 나가게 하였다.
 
 
311
26일 무오.
 
 
312
담장 밖에 편편한 백사장이 있는데 바로 이 섬의 군인들이 훈련하는 곳이었다. 바로 그 중앙에는 큰 기 하나를 세웠는데 가운데는 홍색이었고 가장자리는 백색이었다. 홍색은 해를 형상한 형상이었다. 세 갈래로 줄을 매어 각각 수백 보에 뻗쳤고, 오색의 작은 기를 줄지어 달았는데 그 줄이 빛나 그림자를 희롱하였다. 그 아래에 군인들이 고슴도치 털처럼 모여 기습법과 정공법의 형세로 나뉘고, 앉았다 일어났다 물러났다 나아갔다 하여 서로 공격하는 모양을 지었고, 대포 소리가 골짜기를 진동하여 시간이 지나간 뒤에 그쳤다. 정오에 밥을 내어 왔는데 음식이 다른 날과 달랐다. 그 군인들이 먹는 것은 과연 우리들보다 성대하였다.
 
313
오후에 脚戱場을 개설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기술을 걸어 그 승부를 겨룰 때에 손뼉을 치며 소리 질렀다. 곁에서 구경하는 자들 역시 많았고, 시간이 지나서야 마쳤다.
 
314
우리나라 檀君은 기원이 4천 2백 40년이고, 箕子는 기원이 3천 29년이고, 孔子는 誕降이 2천 4백 58년이고, 대한은 開國이 5백 16년이고, 청국은 光緖 30년이고, 일본은 明治 40년이다. 이것은 또한 역대의 일대 볼거리이므로, 그 소견을 살펴 기록한다.
 
315
본국 英親王의 혼례는 애초 이 달 27일로 정하였고, 그 다음은 단연코 3월로 행하기로 하였으나, 백성들이 담배를 끊어 모금하여 국채를 보상하는 일로 해서 7월로 물려 정하고 아직 택일을 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백성이 그 임금에게 보답하는 것은 이와 같이 지극한데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이와 같이 지극하지 않은 것인가. 그러나 담배를 끊는 일로 말한다면, 이는 백성들에게 말단(상업) 이익을 보여서 근본(농업)을 힘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임금은 백성을 도리로 교화하는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백성은 공무를 의리로 받드는 방도가 있어야 한다. 임금이 백성을 가르치되 도리로 하지 않으면 백성이 공무를 받드는 의리가 폐기된다. 공무를 받드는 의리가 폐기되면 임금노릇하는 도리가 끊어지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임금이 백성을 교화하는 것은 어진 정무만한 것이 없고 백성이 임금을 위하는 것은 농업·잠업만한 것이 없다. 어진 정무가 흡족한 곳에 백성이 스스로 풍족하고, 백성이 스스로 풍족하면 국채의 보상은 걱정할 것이 없다. 무슨 연고로 국가의 토지를 들어 다른 이에게 주어 장악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풍족하게 하는가. 그렇다면 쌀과 기장의 낱알은 기름진 윤택함에 베풀 곳이 없고 금과 구슬의 채취는 산천의 보배에 도움될 것이 없으니, 안타깝지 않을 수 있는가. 이는 다른 까닭이 없다. 임금이 어진 정무를 행하지 않고 백성의 경애가 돈독하지 않으며, 국내로는 화근이 담장 안에서 나오고 국외로는 재앙이 뜻밖에 침노하며, 국가의 재용은 날로 소모되고 백성의 산업은 날로 곤란받기 때문이다.
 
316
백성은 국가의 근본이다. 근본이 한번 흔들리고서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은 아직 있지 않았다. 어찌 백성으로 하여금 仁義에 흡족하지 않게 하고, 농업·상업을 힘쓰게 하여 다만 자잘하게 담배를 끊는 것으로 일을 삼아 국채를 갚기를 기대하는가. 나는 이것으로 백성들에게 말단(상업) 이익을 보여서 근본(농업)을 힘쓰지 않게 한 것이라 한다.
 
 
317
27일 기미.
 
 
318
本(舍 고용인 築城은 바로 食主 石田義一이 부리는 자였다. 축성은 나이가 젊고 일을 경험하지 않아 때로는 우리들에게 저버리는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경비소에서 그 내막을 살펴 알고 石田을 많이 꾸짖었으므로, 石田이 부득이하여 그를 폐기하였다. 川上이 이 뜻으로 우리들에게 말을 하므로 답하기를,
 
319
“나이가 젊은 사람이 비록 조금 실수가 있었다고 해도 그 일의 형세를 듣건대 매우 넉넉하지 못하여 양식이 떨어진 데에서 나왔으니 반드시 배고프고 피곤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오. 잠시 용서하여 미래에 고치지 않은 것을 보게 된 뒤에 내쫓는 것이 좋을 듯하오.”
 
320
하니, 川上이 말하기를,
 
321
“이 일은 이미 본부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어서 내 마음대로 판단하여 할 수 없습니다. 또 그 사람됨이 허물을 고치기를 어려워하니, 지금 비록 잠시 외면을 꾸미더라도 마음에 부끄러워 할 줄을 모릅니다. 바로 전처럼 할 것이니 허락할 수 없습니다.”
 
322
하였다.)
 
 
323
28일 경신.
 
 
324
辰時 후에 申鉉斗의 집 편지와 옷 보자기 봉투가 이르렀다. 그런데 봉투를 펴서 살펴보니, 그의 장인 李商興 씨의 편지와 처남 李佑承, 그의 재종숙 申世均, 재종형申鉉宅, 당숙 申永均, 집안 살림을 맡아보는 사람 참봉 金永在, 妻侄 李昌龍의 편지가 있었다.
 
 
325
29일 신유.
 
 

 
326
각주)
327
1)  원문 ‘鴒’은 ‘鶺鴒’의 생략으로 형제의 친함을 말한다.
328
2)  원문 ‘摧樑’은 들보가 부러진다는 뜻으로, 선생이나 丈席의 죽음을 말한다.(「禮記」 檀弓 上).
329
3)  원문 ‘南冠’은 춘추 초나라 사람 鍾儀가 남방의 관을 쓰고 진나라에 수감되었던 고사에서 유래하며, 타향에 갖혀 있는 사람을 말한다.
330
4)  벼루돌 끝이라는 뜻으로 자기를 일컫는 말이다.
331
5)  송별을 나타내는 소재. 한나라 때 長安 사람들이 이별하게 되면 覇橋에 이르러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고 헤어진 고사에 의거한다.
332
6)  원문 ‘靑襟’은 ‘靑衿’과 같으며 儒生을 말한다. 「詩經」(鄭風 子衿)의 “푸릇푸릇 그대의 옷깃(靑靑子衿)”에서 온 것인데, 傳에 “청금은 푸른 옷깃이다. 배우는 사람이 입는 것이다.(靑衿 靑領也 學子之所服)” 하였다. 이에 의해 성균관·향교의 學生 명부를 靑衿錄이라 한다.
333
7)  원문 ‘頹山’은 泰山이 무너진다는 뜻으로 선생의 죽음을 말한다.(「禮記」 檀弓 上). ‘山頹樑摧’를 붙여 쓰기도 한다. 여기서는 勉菴 崔益鉉의 서거를 뜻한다.
334
8)  원문 ‘倍師行’ 3자는 平聲이고 ‘行’은 結句와 韻字가 겹쳐 오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335
9)  친구가 멀리 떨어져 있어 그리워함을 말한다. 원문 ‘雲樹’는 당나라 杜甫의 「春日憶李白」의 “위북의 봄날 나무, 강동의 저물녘 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에 의해 떨어져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는 뜻으로 쓰인다.
336
10)  陽關曲은 渭城曲의 별명으로 이별시를 말한다. 당나라 王維의 「送元二使安西」의 “양관 서쪽으로 나가면 친구 없으리라.(西出陽關無故人)”에 의한 것이다. 원문 ‘數闋’은 수곡(數曲)과 같다. ‘闋’은 악곡 하나가 끝남을 말한다.
337
11)  杜鵑. 우는 소리가 ‘不如歸(돌아감만 못하다)’로 들린다고 한다.
338
12)  희망·광명이 실현되기를 기다림을 말한다. ‘동짓날 땅에 우레’는 「周易」(復卦 象傳)의 “우레가 땅 속에 있는 것이 복이니, 선왕이 이것을 본받아 동짓날에 관문을 닫는다.(雷在地中 復 先王以至日閉關)”에 의한 것이다. 동짓날은 一陽이 회복되는 시점이다. 「周易」 八卦에서 坤(☷)은 地(땅)에 해당하고 震(☳)은 雷에 해당하는데, 이들 두 괘가 상하로 결합되면 맨 밑에 陽이 하나가 있는 64괘의 復卦(양이 회복되는 괘)로 된다. 이는 하나의 양이 처음 생겨나 회복되는 상징이 되고, 동지 시각에 낮이 길어지게 되는 것과 맞물려, 동지의 一陽始生이 되는 것이다. 이는 길조의 시작, 국운의 회복 등을 암시한다.
339
13)  눈 속의 달빛에 친구를 찾아감을 말한다. 진나라 山陰에 사는 王徽之가 剡溪에 있는 친구 戴逵를 찾아간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왕휘지가 눈내린 뒤의 달밤에 홀로 술을 마시고, 左思의 招隱詩를 읊는 중에 갑자기 隱者인 대규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급히 배를 타고 대규의 문앞까지 갔으나, 마침내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오자,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니 말하기를 “본래 흥을 타고 왔다가 흥이 다해 돌아간다. 어찌 꼭 安道(대규의 자)를 만나야 하랴.(本乘興而來 興盡而反 何必見安道邪)”라고 하였다.(「晉書」 王徽之傳).
340
14)  원문 ‘楚聲’은 슬프고 격앙된 곡조를 말한다. 진나라가 6국을 멸망시킨 뒤에 사방이 원망하였는데 초나라가 더욱 분발하였고, 강호의 격앙된 인사들이 초성을 숭상하였다.
341
15)  이별하는 정자라는 뜻으로, 송별하는 자리를 말한다.
342
16)  舜이 죽었을 때 그의 부인 娥皇·女英이 통곡한 곳. 눈물이 대나무에 떨어져서 대나무에 얼룩점이 생겼다고 한다.(述異記)
343
17)  「史記」(樂毅列傳)에 “汶篁(문수의 대나무밭)”이라 하고, 그 索隱에 “汶上之竹(문수 가의 대나무)”라고 하였다.
344
18)  원문 ‘省禮’는 服人 자신이 또는 喪制에게 하는 편지 첫머리에 쓰는 말. 省式.
345
19)  슬픈 몸이라는 뜻으로 喪中에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
【원문】마도일기(馬島日記) (19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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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3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