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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창조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어려운 것은 비속성과 현실성, 예술성과 비현실성의 엄격한 구별이다. 그것의 구별이 어렵고 무의식적 혼동이 너무도 쉬운데 예술가의 가장 큰 고민이 있다. 이것은 일반의 모든 예술, 또 예술가의 공통점이지만 그중에도 특히 시 또는 시인에 우심(尤甚)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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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우리 시단을 보면 왕년의 여러 가지 유파가 소이(小異)를 버리고 일치적으로 예술적인 길로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정당한 경향이다. 시의 성장을 위한 당연한 발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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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보는 눈이 만일 흐리지 안었었다면 그 정당한 지향이 무의식적으로 예술성과 비현실성의 ‘용이한 혼동’을 초래 하지 안었는가 한다. 즉 ‘예술적’길을 급속도로 매진하는 동안에 어느덧 ‘비현실적’의 횡로로 많은 시인들이 들어가지 안었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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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실 그것이 곧 시라고는 하지 않는다. 마치 쌀과 배추가 즉 우리의 먹는 밥과 반찬이 아닌거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여러 가지 물리적, 화학적 가공과 조미를 기다려 비로소 밥과 반찬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쌀과 배추 없이 고명과 양념만의 밥반찬은 될 수 없다. 우리는 과거 한동안 날쌀, 날배추에 구미를 잃은 적이 많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쌀과 배추 그것까지 버리고 기피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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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는 이 현실에 있어 ‘리얼리즘’의 한계성을 잘 알고 있다. 이 한계성을 몰각하며 또는 무시한다면 그것은 즉 현실을 모르는 자이다. 그러나 한계성 그것이 즉 현실의 불가지(不可知)와 현실의 불가근(不可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시에 있어서도 최소한도로 현재 조선의 소설문학에 나타나고 있는 현실성 그만치라도 요구하고 싶다. 그것을 요구함에 있어서 나는 결코 시문학의 세계에만 어떠한 특전을 즉, 거기 대해서만 현실을 기피하여도 좋다는 특전을 주고 싶지는 않다. 비속성과 현실성, 예술성과 비현실성의 엄격한 구별은 소설문학, 희곡문학과 마찬가지로 시문학에 대하여서도 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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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나의 최근 조선시단 ─ 마찬가지로 3월 시단(詩壇)에 대한 소감이고 요구이다. 그러나 이것은 1, 2의 특례를 제(除)한 외의 총괄적 소감과 요구이고, 개개에 대한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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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愁[춘수]」(巴人[파인]) ─ 고전적(古典的), 동양적(東洋的) 유취(幽趣)가 담북 흐르는 시다. 마치 한폭의 전이(典雅)한 동양화를 대한 듯 그속에는 질적으로는 다소 다르고 박력도 차이가 있지마는 역시 「국경의 밤」 시대와 비슷한 씨의 독특한 이상주의적 정렬이 넘치고 있다. 씨는 어디까지든지 이상주의적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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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과 눈물의 노래」(吳章煥[오장환]) ─ 이 시인은 언제든지와 마찬가지로 이 현실에 대하여 강개(慷慨)를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이것은 씨가 현실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며 또 그렇다고 철없이 현실을 향락하려고 하지 않는 증좌(證左)이다. 그러나 현실을 참으로 사랑하려면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식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그 강개, 그 눈물이 막연한 그것이 안 될 것이며, 또 그 강개, 그 눈물이 영원한 그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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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더」 (一石[일석]) ─ 평범한 정서를 노래하는 평범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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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柳致環[유치환]) ─ 기교(機巧)하고 유아(幽雅)한 ‘스케치’ 한폭이다. 이 속에 특별히 무엇을 찾을 수는 없지마는 표현과 수법이 세련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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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새가 불면」(李漢稷[이한직]) ─ 이 시인은 고독과 독선(獨善)을 사랑하는 듯하다. 좀더 현실에 대한 관심과 정열을 가졌으면 표현엔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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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愁[객수]」(巴人[파인]) ─ 「文章[문장]」의 동씨작(同氏作) 「春愁[춘수]」와 비슷한 시풍이다. 다만 이러한 내용으로는 차라리 시조의 형식을 빌렸으면 훨씬 더 조화가 되지 않었을까 한다. 그리고 씨의 금후의 시는 내용, 형식에 있어 대개 이러한 시풍으로 나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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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무리」(張萬榮[장만영]) ─ 이 시인의 다른 저작(諸作)과 마찬가지로 표현이 아름답고 정연(整然)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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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瑕斑) 없는 주옥을 뀌어 놓은 것 같은 시가 아닌가? 다만 그 주옥이 어떠한 품질의 그것인가는 별문제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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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신시인들 중에서 표현이 가장 아름다운 시인을 들라면 나는 이 장씨(張氏)를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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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待夜抄[대야초]」(尹崑崗[윤곤강]) ─ 이 시인은 언제든지 우울과 절망을 안고 있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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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우울과 절망은 미지근하고 회색적인 그것이 아니고 심연 속과 같이 캄캄한 그것이다. 이것은 물론 현실을 사랑하는 데서 일어나는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실끝만한 ‘칸테라’의 불빛도 가지고 있지 않은 우울과 절망은 영원한 그것이 될 염려가 있는 것을 우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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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斑猫[반묘]」(李陸史[이육사]) ─ 나전(螺鈿) 세공같이 기교(機巧)한, 그러나 평범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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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 흙」(永郞[영랑]) ─ 표현이 호초(胡椒)같이 신열(辛烈)한 맛을 준다. 그러나 비애와 눈물이 너무도 소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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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冥想[명상]」「黃昏[황혼]」(辛夕汀[신석정]) ─ 침착한 시상, 정연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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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悲哀[비애]」「希望[희망]」(尹崑崗[윤곤강]) ─ 역시 우울과 절망을 노래한 시인데, 필자의 보기에는 이 시인은 자기 반성 관념이 너무도 강열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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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王子[왕자]이라면」(李燦[이찬]) ─ 尹氏[윤씨]의 시와 호대조(好對照)로, 희망·행복감·정열이 가득찬 시다. 분방, 웅건(雄健)하다. 그러나 그 희망, 정열에는 내성(內省)이 좀 부족하지 않는 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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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郞謠[화랑요]」(劉昌宜[유창의]) ─ 역사소설, 역사 희곡이 성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전을 내용으로 하는 시도 유행하고 있다. 다만 역사적 내용은 언제든지 현실과 관련을 시킨 데서만 가치와 의의를 찾을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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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 소감은 서상(叙上)과 같으나 지면 관계로 너무도 추략(粗略)한 것은 유감이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통감된 것은 각자의 시상적(詩想的) 구역이 모두 협착(狹窄)하고 따라서 ‘테마’가 고정적이며, 천편일률적인 것이다. 그래서 한사람의 시가 ABC잡지에 또 1,2,3,호에 발표한 것이 모두 한 여자에 치마 저고리만 갈아 입힌 것 같은 감을 주는 것은 결국 공간적으로 무한히 광범하고 시간적으로 무한히 발전하는 현실에 대한 관심·관찰·열정이 부족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표현에 있어 최근 2행 1절의 형성이 성행하는데 나는 이 새로운 형식을 ‘파마넨트’와 같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결국 내용에 규정되는데 아무 구속 없는 자유스러운 내용이면 그 형식도 마찬가지로 구속 없이 자유스러워야 할 것이다. 형식의 구속은 내용의 발전까지 저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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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은 극히 사소한 지엽적 문제이지마는 시의 용어에 있어 ‘……도다’ ‘……나니’ 등의 진부한 구식 용어를 최근 시작품에 많이 보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마는 나 보기에는 최근 시골 청년들이 ‘염낭줌지’를 차고 다니는 것을 보는 느낌을 준다. 망언다사(妄言多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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