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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離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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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2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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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반(離叛)
 
 
 

1

 
 
3
오늘 아침도 어멈은 벌써 세 번째나 내가 일어났는가 하는 여부를 살피고 들어가는 눈치였건만 나는 그저 자는 척 이불 속에서 그대로 뒹굴었다. 열한시도 넘었으니 아침을 안 먹은 몸이 어지간히 시장함을 느끼게 되면서도 일어나서는 또 먹어야 할 그 백미밥을 생각할 땐 뱀의 혀끝을 보는 것과 같이 몸서리가 떨려 시장한 배를 쥐어틀면서도 이렇게 아니 넘어졌게 되지 못한다.
 
4
백미밥을 먹으면 각기는 낫지 않는다는 것을,그리고 심하면 생명에까지 관계된다는 의사의 주의를 받게 되자부터는 차마 그 백미밥이 목구멍 너머로 넘어가질 않았던 것이다.
 
5
그러나 나는 내 생명이 귀하길래 시재의 고픈 배가 야속해서 이렇게 한껏 누워 넘어졌다가도 필야엔 일어나 억지로 눈을 감고라도 이 백미밥을 또한 아니 먹게 되지 못한다. 여기에 나의 고민은 크다.
 
6
백미밥은 병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팥밥을 지어 달라고 주인 마누라 더러 몇 번이나 부탁을 하여 오건만 마누라는 기어코 팥밥은 지어 주지 않는다. 쌀값과 팥값과를 비해 보면 결코 팥값이 앞서는 것은 아니나, 주인은 주인대로 그렇지 않은 이유가 또한 있었던 것이다 .
 
7
내가 이 집에 기숙을 한 지 반 년이 되건만 처음 두 달 것밖에 밥값을 치르지 못한 것이 그 벌이다. 밥값을 제때에 내지 못하는 나를 내어쫓자는 것이 그 계획으로 병자니까 병에 관계되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디 가서라도 돈을 마련해다 놓고 나가리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인데다 팥밥이란 여름 한철에 있어선 쉬기를 잘하는 것이어서 먹다 남으면 버리고 말게 되는데 대한 이해의 타산이 또한 있었고, 그리고 설혹 쉬지를 않는다손 치더라도 먹던 밥의 표가 나는 팥밥이니 다른 손님의 밥에 섞어도 못 주게 되고 병자 자신에게만 주자니 전혀 팥밥이 되고, 병자의 것이니 자기네도 먹기가 싫고 하여 결국은 버리는 것 밖에 없이 되고 마는 것이어서 도무지 팥밥은 하지 않아야 이롭다는 것이 그 전체적 이유다.
 
8
이러한 사실을 비로소 알았을 때 나는 이렇게도 인정에 매몰한 사람이 있을까 자못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밥값을 내라고 앙칼스레 조를 때는 밥을 팔아먹는 사람으로 아니 그럴 수 없는 일이거니 하여 너무 심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밥값을 내지 못하는 내가 도리어 미안함을 느끼어 왔으나, 병중에 있는 손님에 대해서 동정은 못 하나마 되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내어쫓음으로써 돈을 받는 것만이 당연히 하여야 할 일인 줄 아는 보통의 범주를 넘어선 주인 마누라임을 알았을 때 나는 내 목숨을 위하여 이 집을 떠나지 않아서는 안 되었다.
 
9
그러나 당장으로 치르고 나올 돈이 없다. 그래도 취직만 되면 살아갈 도리가 있으리라, 있는 세간을 거의 다 들추어 가지고 올라왔던 이백 원이란 돈은 되지도 못하는 그 취직운동이 한 달이 머다 한푼 없이 물어 가고 빈손 안에 손금만 지고 앉았게 되니 동무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게 된다. 동무라야 노· 홍· 조· 백· 허 다섯 사람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내가 언제부터 돈 한푼 없이 각기로 고통을 받고 있는 줄은 잘 알면서도 그저 모르는 체다. 아니 언제인가는 한 번 참다 참다 돈의 융통을 좀 원해 보았더니, 그들은 손실을 피하기 위하여선지 그적부터는 하나같이 나의 하숙에까지 걸음발을 딱 끊고 말았다.
 
10
그러니 도리가 없는 나는 병을 더치는 백미밥인 줄을 알면서도 이 집을 떠날 수가 없어 그저 운명에 목숨을 맡기고 눈치의 그 밥이나마 주어 고맙게 받아 먹고 지나는 수밖에 없었다.
 
 
 

2

 
 
12
어멈은 다시 나오는 기색이다. 신 끄는 소리가 중문턱을 넘어선다.
 
13
순간, 밥이라는 것이 다시금 전광처럼 눈앞에 번쩍 하고 나타날 때 나의 눈은 어느새 책상 위에 놓인 한 권의 서적에 곁눈질을 하였다. 그것은 철학에 관한 서적으로 내 생애에 있어 사람 된 나의 전부를 키워 준 자모와 같은 것이어서 어떠한 난처한 경우일지라도 품 밖에 내어 보내서는 안 된다는 내 신념도 그렇거니와 그것은 또한 난처한 경우일수록 그것에의 해결을 지어 주는 그야말로 내 생애에의 나침반과 같은 것이어서 이천여의 장서를 모두 팔아먹으면서도 그것만은 오직 품안에 품고 다니던 것이언만 너무도 절박한 사정이 어제 저녁 불면의 고민 속에서 차마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는 백반이 다시 내일 아침을 엿볼 때에 절대한 생명은 사랑하는 책이길래 생명을 위하여 희생하자고 알뜰히도 서두르는 것이어서 지금까지 끌어 오며 마침 나는 이것의 이론에로 정당화를 시켜 놓았던 것이다.
 
14
“아이 오정이 나세요 서방님!"
 
15
어서 일어나라는 말이다.
 
16
“나 밥 안 먹겠어."
 
17
시원한 듯이 어멈은 “왜 그러세요” 한마디의 물음도 없이 발꿈치를 돌린다.
 
18
“안 먹겠으면 진작 안 먹겠다구 할 게지 한껏 자빠져서 남의 골을 올리고야…… 빌어먹을 녀석!"
 
19
어멈의 보고를 받은 마누라는 중문 밖까지 들려라 하는 듯이 조금도 조심성 없게 뱉어 놓는다.
 
20
그러나 이러한 소리는 너무도 평범하리만치 나의 귀에는 익다. 그것은 조금도 내 감정을 움직이는 것이 못 된다. 나는 다만 흥! 하고 머리를 들어 어제 저녁의 고민 속에서 한 권의 서적과 같이 절대한 생명에의 후보로 나섰던 춘추의 합복을 벽에서 떼어 입고 그리고 예의 그 책을 집어 든 다음 왜 봉변을 당하였는지 아궁에 손잡이를 박고 넘어진 단장을 주워들어 전신에 피가 멎은 것 같은 무거운 폼을 의지하여 대문을 나섰다.
 
21
며칠 만에 걸음을 걸어 보는 다리는 전에 비하여 별로 더한 줄은 모르겠으되 결코 가벼워진 맛은 없다. 그러나 손끝에까지 무엇을 매어다 단 것같이 심하게도 팔깍 쫓아 떨어져 오는 것을 보면 병은 그동안에도 분명히 깊이 들어갔음을 알게 한다.
 
22
오랜간만이라 진고개라도 가 볼까 하던 나는 이런 몸으로 운동이 과하면 안 될 것을 짐작하고 관훈정 어느 서점으로 들어가 그 책을 마침내 일금 일 원 오십 전에 바꾸어 들었다. 팥죽을 한번 배껏 먹어 보자는 것이다.
 
23
그러나 팔은 긴또끼에도 있다. 타오르는 목은 우선 발부리 앞 다방으로 먼저 유혹한다. 나는 선풍기 가까운 야자수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긴또끼를 청했다. 섬벅섬벅 떠서 몇 숟갈 입에 넣으니 등골에 땀방울이 가다든다. 시원한 맛에 의자에 몸을 기대어 싣고 청량음료를 나르기에 분주한 끽다거얼을 하릴없이 바라보다가 나는 시야에 벌어지는 뜻아닌 그림자를 찾는다. 저쪽 매화분 뒤로 조·홍·노 세 사람이 헤엄쳐 들어왔던 것이다.
 
24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반가움에 그들을 맞기 위하여 빙그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때의 나의 시야에는 벌써 그들의 그림자는 어느 새인지 사라지고 만다.- 조군의 시선이 정면으로 나의 시선과 마주칠 때 조군은 무슨 보아서는 안 될 원수나 본 것처럼 얼른 시선을 피하여 누구를 찾으러 온 사람같이 휘 한 바퀴 장내를 둘러 살피는 지냥을 하더니 뒤에 달린 홍·노 양군에게 일변 눈짓을 하며 단장으로 앞을 가리켜 어서 나가자는 뜻을 말하던 것이다.
 
25
나는 맴을 돈 것같이 갑자기 정신이 휭하여졌다. 눈앞에서는 알 수 없는 무수한 원형의 그림자가 빙빙 떠돌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26
대개 그들이 요즘 나와 사이를 멀리하는 것이 나의 난처한 사정에 물질로써의 자기네들의 손실을 피하기 위한 의미에서일 것이겠거니 하는 정도에서 밖에 그들을 보다 더 악의로 해석하고 싶지 않은 나였건만 이렇게 만나서까지 인사 한마디 없이 전연 원수와 같은 태도로 대하는 것을 볼 때 내 가슴은 미어지게 아팠다.
 
27
내가 그들에게 이렇게까지 악감을 갖게 한 그러한 행동이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다만 턱을 여러 번 얻어먹고 한 번도 갚지 못한 것- 이런 것까지 생각하게 되면 이런 일은 있었다.
 
28
언젠가 조군은 이 삼복 고열에 나의 아직 벗지 못한 춘추의 합복을 가리켜 “나는 실장 너와 같이 다니기가 창피하더라. 나의 동무가 군과 같은 차림새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나.” 하던 것이요, 그런지 며칠 후 그의 여관을 찾아 갔을 때 그는 또 나의 양복에 눈질을 하며 “이 여관 집 딸이 나에게 호의를 가지는 모양이니 연애가 성립되기까지 군의 양복 자태는 제발 좀 사양하여 주게.” 하던 것이다.
 
29
그때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아무리 그것이 농담이라 치더라도 다소 무안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와 나와는 서로가 못 하는 말이 없이 지내오던 터이므로 이역 농담이었을 것이거니 하고 웃음으로 받고 말았으나, 이제 그들의 행동을 이렇게 살피고 그것을 되풀어 보니 그 언사는 분명 내가 역하여 참마음에 농담의 껍데기를 씌우고 하였던 말임이 틀림없었던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30
그러니 그 원인은 물론 나와 자리를 같이하면 나를 위해서 자기네의 인격이 떨어지게 된다는 그것이니 나를 대하여서는 재미없다는 것일 것이다.
 
31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도 변하는 것일까? 십여 년 동안 학교에서 맺어온 그와 나와의 교분은 그것이 결코 허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좀해선 허하지도 못하는 돈이라는 관계에 있어서까지 라도 네것 내것이 없이 서로 주머니를 뒤져 쓰던 그러한 처지였다. 참으로 그는 나를 못 잊어 함이 다른 그 어느 동무에게나 비할 정도가 아니었다.
 
32
내 집안이 어떠한 사정에서 일시의 몰락을 피치 못하여 일 년을 앞으로 남겨 놓은 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서는 안 될 운명에서 귀향의 도에 오를 때 동경역에서 품천(品川)까지 전송을 나오던 조군의 눈에서는 연인을 떨어지는 계집애같이 석별에 못 이기는 눈물이 끊임없이 두 뺨으로 흘러내려 나로 하여금 눈물을 아니 흘리게 하지 못하던 그러한 교분으로서의 그였다. 그렇던 그가 이제 돈이 없는 나라 해서 이렇게 원수같이 대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33
“어이 삐루?”
 
34
나는 술을 아니 청하지 못했다. 이때의 내 마음을 참고 이기게까지 내 마음은 세지를 못했다.
 
35
나는 가져오는 삐루를 사정없이 들이켰다. 본시 잘 먹지 못하는 술이었지만 아니, 술을 먹으면 각기에 해롭다는 의사의 주의까지 받은 것이었지만 나는 내 바른 정신을 아니 흐리우고는 배겨날 수가 없다.
 
36
그러나 술이 들어갈수록 정신은 더 똑똑해만진다. 나의 그 간난하디 간난한 주머니를 뒤집는 그 돈의 액수로는 족히 흥분된 내 정신을 흐리울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내 마음을 보다 더 괴롭히는 것밖에 더 되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3

 
 
38
며칠이 지났다. 그날 밤 새로 두시나 되었을까 잠이 드는 둥 마는 둥 어렴풋이 정신이 흐리었을 때 별안간 대문이 왈칵 하는 바람에 나의 눈은 놀람에 번쩍 뜨였다.
 
39
“누구요?”
 
40
“손님 왔습니다.”
 
41
자칭 손님이란다. 이상한 대답이다. 그러면 이 사람은 손님을 데리고 온 사람인가. 손님! 나를 찾아올 손님은 서울 장안에 없는데- 더구나 이 아닌 밤중에.
 
42
“누구를 찾으십니까?”
 
43
“이 방 손님 계세요? 오신 손님이 몸이 위태하시니 빨리 문을 좀 열어주세요.”
 
44
밖에서는 나의 방 뒷미닫이를 똑똑 두드려 보인다.
 
45
비록 나의 이름은 따져 부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방 손님 그것은 내가 틀림없다. 나를 찾아온 손님이다. 나를 찾아온 손님이 몸이 위태하다! 나를 찾아올 손님이 그러한 손님이 있을까? 나는 의아한 눈을 둥그렇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46
“당신은 대관절 누군데 누구를 찾으십니까?”
 
47
“어 어 어이 어 안군!"
 
48
이번에는 겨우 입술 끝에 떨어놓는 힘없는 다른 목소리가 분명히 나의 성자를 불러 놓는다.
 
49
나는 정신이 펄쩍 들었다. “안군” 하는 그 음성은 심히도 귓맛에 익은 음성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누구일까는 헤아려 볼 여지도 없이 내 벗의 한 사람이 몸이 위태하여 나를 찾아온 것이라는 생각에 어느새인지 나는 나도 모르게 문을 냅다 밀고 뛰어나가 대문 빗장을 더듬어 열었다.
 
50
대문을 정면으로 향하고 마주 놓은 한 채의 인력거, 그 위에는 한켠짝 손과 머리를 붕대로 동이고 전신에 피투성이가 된 사나이가 힘없이 고개를 어깨 위에 떨어치고 있다. 누굴까 살피어 보고자 머리를 쑥 내미니,
 
51
“아 안군!”
 
52
하며 손을 마주 내미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아! 뜻이나 하였으랴! 그것이 조군이라고야!
 
53
그 순간 나는 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보다 나를 왜 찾아 왔을까 하는 생각이 선뜻하게 나의 마음을 앞서 찌른다. 나와는 전연 인연을 끊은 것처럼 따돌리고 대하기조차 피하던 조군, 이제 그 조군이 나를 찾아왔다. 피에 젖어서 나를 찾아왔다. 이것이 정말 생시인가 나는 멍하니 서 있지 않을 수 없었다.
 
54
그러나 그 다음 순간, 피에 젖어 고민을 느끼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나는 어느새인지 그의 손을 덥석 더듬어 쥐었다.
 
55
그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몸을 비튼다.
 
56
“조군! 이게 웬일인가”
 
57
“…….”
 
58
역시 말없는 한숨과 같이 그의 입에선 확 하고 술 냄새가 풍기어 나온다. 그는 그 상처에 술까지 더할 수 없이 마비되어 있는 성싶다.
 
59
인력거꾼과 나는 좌우에서 그를 부축하여 방안으로 들여다 눕혔다.
 
60
“무 물 나 물 좀…….”
 
61
한참 동안 그린 듯이,아니 죽은 듯이 눕힌 그대로 넘어져서 몸 한 번 움직이지 않던 조군은 눈살과 같이 얼굴을 찡그리며 머리를 반쯤 든다.
 
62
그리고 주발에 남실거리게 떠다 주는 물을 꿀꺽꿀꺽 단숨에 삼키고 나더니 정신이 드는 듯이 휘 방안을 한 번 살펴보고는 다시 누우려다가 참기 어려운 무엇이 있는 듯이 강잉히 얼굴을 찌푸리며 이빨을 부득부득 간다.
 
63
“조군! 조군! 웬일이야? 이게-.”
 
64
“에익!”
 
65
대답도 없이 그는 방바닥이 깨어져라 두드리며 고함을 지른다.
 
66
“이놈! 이놈들! 이놈!”
 
67
“조군! 조군!”
 
68
원인을 모르는 나는 그저 멍하여 부를 밖에 없었다.
 
69
“죽는다. 나는 죽는다. 죽어.”
 
70
미친 듯이 몸부림을 하며 그는 눈물과 같이 설움까지 터뜨린다.
 
71
“조군! 조군! 조군! 조군!”
 
72
그가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나는 슬그니 겁이 나서 어쩔 줄 모르고 자꾸 불렀다.
 
73
“나는 죽어, 이 꼴을 하구 내가 이놈들을, 에이.”
 
74
“조군! 무슨 일이야 어떻게 된 일인데 그래”
 
75
“나는 동무두 없는 놈이야. 나는 죽어,내가 그놈들을…….”
 
76
그는 더욱 세차게 방바닥을 두드린다.
 
77
상처받은 그 손을 그렇게 함부로 쓰는 것이 마땅치 못한 것 같아 나는 그의 손을 우선 붙들었다.
 
78
“안군, 글쎄 안군, 내가 군을 찾아와서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건 참말 미안한 일이야. 그러나 사람이 이거야 원 안타까워 살 수가 어디 있나. 에이 씨-.”
 
79
분함을 못 참는 듯 멎었던 눈물이 다시금 주르르 미끄러져 나온다.
 
80
나는 너무도 격분한 그의 태도에 뭐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81
“글쎄 이놈들에게 내가, 그놈들을 동무라고 믿다니! 노가놈, 홍가놈, 허가놈 하나같은 놈들, 이놈들! 작당을 하고 나 나를…… 글쎄 내가 오늘 저녁 그놈들을 데리구 명월관엘 가지 않았겠나? 군! 그런데 말이야. 산홍이라는 기생년을 내가 뜻을 둔 지가 오랜 것은 군두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 오늘 저녁에두 그녀를 불렀드니 아 그년이 글쎄 나만 좋아서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서어비스를 불공평하게 하니까 이놈들이 샘이 나서 강주정을 부리며 트집을 잡지 않겠나. 그러드니 필야엔 홍가놈이 아, 산홍이년의 따귀를 갈긴단 말이지. 그게 글쎄 꼴이 무어겠나? 막잡이들도 아니구 적어도 최고학부들을 나온 인텔리들이 기생년에게 손을 대다니. 그래, 내가 그년을 붙들구 위로를 하는 척했더니 아 그적엔 날더러 꼭같은 자식이라고 막 달려들겠지. 홍가놈,노가놈,백가놈,허가놈 할 것 없이 이놈들이 왼통 달려 붙어서 나를 미친 개나 치듯 난타질을 한단 말이야. 내 이 양복 꼴이, 이 피를 좀 보게나? 내가 이제 원수를 못 갚나 군 두고 보게. 그놈 홍가놈의 대강이를 당장에 으스라치랬더니 내가 그놈을 안다리를 걸어 깔고 앉지야 못하겠나, 그만 식탁 위에 컵을 손으로 집고 넘어가는 바람에 이 손까지 아마 동맥이 끊긴 것 같은데 에이 내 이놈들을…….”
 
82
걸어진 침을 힘주어 삼키며 그는 뿌드득 다시 이를 간다.
 
83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조군을 대장 격으로 앞세우고 다니며 나를 그룹에서 따돌리는 그들,그들은 이제 대장 조군을 구타하였다. 일개 계집애의 시기로 구타하였다. 동무(나)를 버리고 동무한테 버림을 받은 조군, 버림을 받고 버렸던 벗(나)을 다시 찾아온 조군,조군은 나를 무슨 뜻으로 찾아왔을까?
 
84
“안군, 그러니 이 꼴을 하고 여관으루야 차마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여관에서는 나를 부량자로 틀림없이 볼 거야. 우선 그 윤희(여관집 딸)가 내가 매를 맞았다면 내 위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 윤희는 한참 내게 반했는데. 그래서 나는 윤희한테 내 이 꼴을 차마 보일수가 없어서 군을 찾아왔지. 너무 시끄러워 말게.”
 
85
나는 여기에 무어라고 대답할 말을 몰랐다. 자기의 인격을 보지하기 위하여 버려도 아깝지 않던 벗을 딱한 사정에 직면하여선 당당히 찾아올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나는 입안이 씀을 느끼고 아무 말도 없이 걸어진 침을 삼킬 뿐이었다.
 
 
 

4

 
 
87
밤을 새워 아침을 먹고 병원에 갔던 조군은 세 주일 동안의 치료를 받아야 되겠다는 진찰을 받고 돌아와서 그때까지 나에게 시끄러움을 부득불 좀 끼쳐야 되겠다고 하면서 여관에다가는 한 삼 주일 동안 북선 지방에 여행을 다녀온다고 전화를 걸어 놓았다.
 
88
그리고는 그 이튿날부터 나의 방에서 그냥 자고 일며 병원에를 다녔다. 돈 내음새를 맡은 주인 마누라는 조군에게 할 수 있는 한 친절을 다하는 눈치였다. 돈이 말하는 그 풍채에 홀대할 수가 없었던지 혹은 그를 영원히 자기 집에 붙들어 두고 밥을 팔아먹을 심계에서였던지 어쨌든 친절은 나에게 대하는 그러한 정도가 아니었다. 식찬 같은 것도 전에 나의 것에 비하여 배 이상이 늘었을 뿐 아니라 특별히 정성을 다하여 요리법에 애를 쓴 흔적까지 보였다.
 
89
이렇게 주인 마누라의 특별한 대우를 받으며 날마다 병원에를 다니던 조군은 보름을 넘어 다니고 나서 어느 날은 병원에를 가는 듯이 나가선 진종일을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그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까지도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90
사흘째 되던 날 저녁이었다. 나에게는 뜻밖에 ‘피솔’이라는 각기약 이백오십 그램의 한 병이 진고개 ××약방으로부터 조권수(趙權秀)라는 이름의 딱지를 달고 배달이 되어 왔다.
 
91
나는 이것을 보고 문득 놀라는 나머지 조군은 이 집을 아주 떠난 사람인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하니 조군이 이 집을 떠난 이유도 있을 것 같았다.
 
92
그날 아침 조군은 병원에를 떠나기 전에 자기의 집으로부터 오는 돈 3백원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돈을 찾고 보니 돈을 가지고서 병중에 돈이 없이 쩔쩔매는 나와 같이 있기가 차마 미안하여 슬그니 이 집을 떠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나에게 시끄러움을 끼친 보상으로 그 약을 사 보내고.
 
93
“그게 머예요?”
 
94
주인 마누라가묻는다.
 
95
“약인가 보군요.”
 
96
“그거 사오는 게유?”
 
97
그는 돈이 없다는 내게 약이 오는 것이므로 이상하여 묻는다.
 
98
“조군이 나 약 먹고 살아나라구 사 보냈나 보군요.”
 
99
“아이 참 사정 있는 양반두-. 그런데 그이는 사흘씩이나 멋 하구 안 들어온대요?”
 
100
“내가 걸 알 수 있습니까. 약을 사서 보냈을 때에야 아마 이젠 아니 들어올 사람인가 보죠.”
 
101
“머요! 안 들어와요”
 
102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손해 나지 않나요.”
 
103
“아, 그럼 우리 집은 머 아주 떠난 사람이게! 아니 무슨 사람이 그럴까? 아니 난 그날 아침에 돈 십 원을 좀 맡았다 달라고 주기에 받아 넣었드니 이제 그걸 그럼 식비로 쳤군. 멀쩡한 사람이 그게 무슨 인사야!”
 
104
마누라는 적이 섭섭한 표정이나, 그러나 식비는 잘리우지 않은 것만이 다행이라는 듯이 중얼거리며 허리에 찬 주머니를 치마 위로 한번 쓸어 본다.
 
105
이 기회에 마누라는 식비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하고 말머리를 내게로 돌려붙여 식비 채근을 또 할 것만 같아 아니아니한 마음에 나는 슬그미 방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106
(甲戌[갑술] 7월)
 
 
107
+ 〔발표지) 문장) (1941. 2)
108
〔수록단행본)『백치 아다다』 (대조사. 1946)
【원문】이반(離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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