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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9시 10분에 부산에 도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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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친우들은 아직도 사람들이 살아 있는 최후의 거리인 바닷가의 무덤을 걸어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였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시간은 이 집에서 나만이 눈을 뜨고 있는 조용한 새벽입니다. 어젯밤 나는 소설가 김광주 씨와 어느 술집 지붕 밑 이층에서 폭음하였으나, 정신은 참으로 명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김씨의 저의 내부(來釜) 환영을 즐겁게 받았으나 지금 생각하니 나는 하루바삐 부산을 탈출할 생각입니다. 어디가 도시의 중립이며 내 위치를 결정하여야 옳을지 도무지 분간 못 하고 있습니다. 신문사 사장을 만났더니 “참 잘 오셨소. 여러 맹장들이 내부하였으니, 나는 안심이오” 하고 그는 반 야유의 말을 하자 그만입니다. 그래서 “나는 곧 얼마 있다 가족 있는 곳에 가겠습니다.”라고 확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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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산에 방을 얻어서 내려온 것도 아니며, 무엇을 하러 왔는지 도무지 모릅니다. 그저 어떤 불안 때문에 내려온 것 같은데, 그 불안의 정체는 언제까지나 신비로운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은 인식 못 하고, 보지 못하고, 우리의 생명이 종막을 지을 것 같습니다. 김경린 씨를 만났습니다. 그와 오랫동안 문학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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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일 후엔 대구에 가겠습니다.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가야 할지, 그것도 나 혼자서는 결단을 내릴 수가 없어서 여러 사람과 협의하겠으나 지금의 심정은 그만둘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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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용 장관께서는 참으로 요새 기분이 좋으십니다. 남들은 그만두실 것이라고 추측하나 내가 보기에는 좀 더 일할 것 같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얘기 한마디가 모두 격언 또는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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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편지 받으실 무렵 저는 어디 있을는지 모릅니다. 11시에는 이 통신과장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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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형이보고 잘 이야기해 주시오. 아빠가 곧 대구에 돌아간다고. 참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는 것은 당신이 스스로 생각하십시오. 다방에 오랫동안 나가 계시지 마십시오. 코티 하나 사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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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가면』(근역서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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