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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作家)의 시야(視野)와 문예비평(文藝批評)의 중용성(中庸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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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3. 9 ~
이해문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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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作家[작가]의 視野[시야]와 文藝批評[문예비평]의 中庸性[중용성]
2
─ 工場作家李北鳴論[공장작가이북명론]을 中心[중심]으로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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昨年十月中旬[작년시월중순] 中央紙[중앙지]에 發表[발표]된 朴勝極氏[박승극씨]의『初陳[초진]』 讀後感[독후감]에 依[의]하면 李北鳴氏[이북명씨]는 朝鮮[조선]이 가진 唯一[유일]한 勞働者出身[노동자출신]의 作家[작가]라고 한다 勞働者出身[노동자출신]의 作家[작가]가 그렇치않은作家[작가]보다 얼마나 貴[귀]한 것이냐? 이것은 問題[문제]도 안되는 말이다. 어느作家[작가]가 勞働者出身[노동자출신]이건 大學出身[대학출신]이건 그것은 다만 社會[사회]가 주는 知識看板[지식간판]이나 쓸데없는 履歷[이력] 더듬이에 不過[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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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기에 우리가 考究[고구]할 것은 朝鮮[조선]의 所謂旣成女人[소위기성여인]의 大槪[대개]가 大學[대학]이나 또는 專門[전문] ─ 그렇지 못하면 中學[중학]이라도 마춘 사람들뿐이라는 그 點[점]뿐이다. 그리고 또 都市[도시]에서 活動[활동]하는 분만이 가장 燦然[찬연]한 그리고 悲慘[비참]한 朝鮮文人[조선문인]의 榮譽[영예]를 걸머지고 있는가 하는 點[점]이다 勿論職業的關係[물론직업적관계], 親友[친우]에依[의]한 感化等[감화등][극]히 自然[자연]스러운 原因[원인]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鄕村[향촌]에서 피저린 努力[노력]을 하야 싹트랴는 朝鮮[조선]의 將來作家[장래작가]를 現在文壇[현재문단]을 左右[좌우]하고 잇는 쩌나리스트들이 아모 生覺[생각]없이 休紙筒[휴지통] 귀양을 보내고 自己[자기]나 或[혹]은 自己[자기]와 親交[친교]잇는 作家[작가]를 짓밟힌 시들은 싹들 우에 올녀앉히고『曰[왈] ─ 朝鮮文人也[조선문인야]』라 하는 不當[부당]이 잇지않은가 하는 疑惑[의혹]이 있는 것 뿐이다 어떤 作家[작가]의 作品[작품]을 論[논]할 때에 그의 履歷[이력]이나 現在環境等[현재환경등]을 말하야 그의 作家的地位[작가적지위]나 또는 作品[작품]의 優劣[우열]을 判斷[판단]하랴는 것은 決[결]코 眞正[진정]한 文藝批判家[문예비판가]의 態度[태도]가 아닌줄노 生覺[생각]한다 이것은 다만 評論家[평론가]로서의 正當[정당]과 冷情[냉정]을 잃은 오즉 그 作家[작가]에 對[대]한 先入見[선입견]에 捕虜[포로]되어서 評筆[평필]의 自由[자유]를 가지지 못한 無氣力[무기력]한 形式的論評[형식적논평]에 不過[불과]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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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品[작품]의 評價[평가]나 作家[작가]로서의 地位判定[지위판정]은 다만 그 作家[작가]의 正當[정당]한 洞察力[통찰력]을 말하는 視野[시야]의 廣狹[광협], 題材[제재]의 適否[적부] 表現技巧[표현기교]의 程度[정도]와 및 그 作品[작품]이 民衆[민중]에게 주는 思想的影響[사상적영향] 또는그 作家[작가]의 作品行動[작품행동]에 있어서의 努力如何[노력여하]로서만 決定[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7
假令[가령] 어느 일터에 酷毒[혹독]한 人夫監督[인부감독]을 하는 什長[십장]이 있어 그가 文藝作家[문예작가]이었다고 하자. 하면 그가 自己[자기]의 甚[심]한 監督[감독]에 못익여 괴로워하는 人夫[인부]의 心情[심정]이나 또는 反抗的行動方法等[반항적행동방법등]을 極[극]히 正當[정당]히 敍述[서술]한 小說[소설]을 發表[발표]하였다면 그를 아는 어느 文藝批判家[문예비판가]는 그의 二重人格[이중인격]이나 또는 非行[비행]을 作品[작품]과 隔離[격리]한 別個[별개]의 意味[의미]에서 論難[논란]할 수는 있을지언정 다만 그의 實踐的生活[실천적생활]과 對照[대조]하야 作品行動[작품행동]의 假面[가면]을 말하므로서만 그 作品[작품]의 價値[가치]나 또는 作家的地位[작가적지위]를 論斷[논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8
勿論[물론] 어느作家[작가]이고 作品行動[작품행동]에 相應[상응]한 實踐的 努力[실천적노력]이 있을수 있다면 보다 貴重[귀중]한 것이며 그의 作品[작품]이 더욱 生命的[생명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優秀[우수]한 作品[작품]도 쓸만한 實力[실력]이 없는 作家[작가]에게 社會[사회]에서나 또는 評家[평가]로서 作品[작품]에 相應[상응]하는 或[혹]은 相應[상응]하랴는 實踐的 努力[실천적노력]까지 要求[요구]한다면 그것은 다만 無理[무리]한 二重的要求[이중적요구]이며 過重[과중]한 責務[책무]를 지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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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中央日報[조선중앙일보]》 1936.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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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意味[의미]에서 筆者[필자]는 이에 作家[작가]의 作品上[작품상]의 人格[인격]과 實生活[실생활]의 人格區分[인격구분]의 必要[필요]를 主張[주장]하는 者[자]이며 이에 따라 過去[과거]에 있어 左翼批評家[좌익비평가]의 가저온 態度[태도]의 誤謬[오류] 所謂同伴者的好意[소위동반자적호의]의 害毒[해독]을 指摘[지적]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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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誤謬[오류]와 失當[실당]의 一例[일례]로써 나는 工場作家李北鳴氏[공장작가이북명씨]에 對[대]한 私感[사감]을 말하고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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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北鳴氏[이북명씨]는 그동안 自己[자기]가 體驗或[체험혹]은 目睹[목도]한 窒素肥料工場[질소비료공장]을 題材[제재]로 한 短篇[단편]을 몇 篇發表[편발표]한 것이었다 그러한 體驗[체험]이 없고 그러한 工場[공장]의 事實[사실]을 몰러왔든 朝鮮[조선]의 어떤 作家[작가]나 批評家[비평가]는 그의 이러한 特異[특이](?)한 題材[제재]의 作品[작품]을 驚異[경이]와 讚歎[찬탄]으로서 對[대]할 수도 있을른지 모른다. 또는 階級文學[계급문학]을 開拓[개척]하는 同伴者的[동반자적] 立場[입장]에서 많은 好意[호의]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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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禮[예]가 過[과]하면 禮[예]가 아니라는 옛말과 같이 同志批判[동지비판]에 있어서도 極[극]히 冷酷[냉혹]한 忠告[충고]가 없는 好意[호의]는 決[결]코 참된 好意[호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八分以上[팔분이상]의 『좋다』를 連發[연발]하는 批判[비판]은 도리어 그 作家[작가]를 害[해]하고 그의 前途[전도]를 局限[국한]하는 結果[결과]를 招來[초례]케 하는 過誤[과오]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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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말하는 李北鳴氏[이북명씨]의 評價[평가]에 있어서도 朝鮮[조선]의 左翼批判家[좌익비판가]의 冷情[냉정]과 正當[정당]을 잃은 批判[비판]이 叙上[서상]의 過誤[과오]를 犯[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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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批判家[비판가]의 그동안의 李北鳴論[이북명론]은 枚擧[매거]의 煩[번]을 避[피]하고 다만 『初陳[초진]』讀後感[독후감]에 있어서의 朴勝極[박승극]의 評的態度[평적태도]를 본다면 氏[씨]로서도 極[극]히 冷情[냉정]한 立場[입장]에서 執筆[집필]하였다는 말을 섰으나 다음 句節[구절]은 確實[확실]히 評者[평자]의 冷情[냉정]을 떠난 好意的言辭[호의적언사]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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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北鳴氏[이북명씨]도 其間[기간] 어찌할 수 없는 事勢[사세] 밑에서 作品發表[작품발표]에 無限[무한]한 困難[곤란]을 가젔든 것이다』 云云[운운]이나 또는『꾸부러진 潮流[조류]를 힘있게 헤치고 소사올른 것이 지금 論及[논급]하랴는 李北鳴氏作品[이북명씨작품]이다』等[등]이며 그리고 四月號中央誌[사월호중앙지]의『工場街[공장가]』나 其他[기타] 年前作品[연전작품]까지 들어서 그의 作家的素質[작가적소질]에 囑望[촉망]을 앗기지 않은 勝極氏[승극씨]로서 어찌하야 李氏[이씨]의 近作[근작]인 八月號朝鮮文壇誌[팔월호 조선문단지]의 『어리석은사람』같은 槪念的未熱品[개념적미열품]에 對[대]하야는 一言半球[일언반구]도 끄내지 않었느냐는 點[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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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氏[박씨]의 所謂[소위] 『偉大[위대]한 作品[작품]』인 『初陳[초진]』이 東京文藝誌[동경문예지]에 當選[당선]되였음을 읽고 이것은 朝鮮文發表[조선문발표]까지를 要望[요망]한 氏[씨]로서 朝鮮文[조선문]의 그것과 같은 作品[작품]에 比較[비교]하야 이다지 懸隔[현격]한 水準以下[수준이하]의 作品[작품]이 生産[생산]되였느냐 作家[작가]에게 말하는 것은 朴氏[박씨]의 當然[당연]히 가져야 할 衷情[충정]이아닐가 한다. 다만 勝極氏[승극씨]가 『어리석은 사람』를 尙今[상금] 읽지 못했다거나 또는 該作[해작]도 亦是[역시] 『初陳[초진]』에 比類[비류]하는 程度[정도]의 것으로 알고있다고 하면 問題外[문제외]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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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筆者[필자]의 提論[제론]하는 바 核心[핵심]은 李北鳴氏[이북명씨]나 或[혹]은 朴勝極氏[박승극씨] 個人[개인]을 非難[비난]하거나 攻擊[공격]하자는데 있는 것이 아니요 作家[작가]의 視野問題[시야문제]에 重要[중요]한 關心點[관심점]을 두고 붓을 든 것이다 오즉 工場[공장]만을 題材[제재]로 하고 作品[작품]을 發表[발표]하여온 李北鳴氏[이북명씨]에게 우리는 作家[작가]로서의 全幅的囑望[전폭적촉망]을 보낼 수가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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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作家[작가]의 作品[작품]을 읽을 때이든지 그 作品[작품]에 無限[무한]한 興味[흥미]를 가지고 對[대]하는 것이다. 이번 作品[작품]에는 人生[인생]의 如何[여하]한 一面[일면]이 描寫[묘사]되였는가 或[혹]은 社會[사회]의 如何[여하]한 缺陷[결함] ─ 病的[병적] 社相[사상]이 露出[노출]되었는가 ─ 이것은 作品[작품]을 읽는사람의 가질 수 있는 또는 갓지않을 수 없는 愉悅[유열]과 興味[흥미]의 焦點[초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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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萬若[만약] 어느 作家[작가]의 作品[작품]을 通[통]하야 말하랴는 그 알기 前[전] 秘的[비적]인 作家[작가]의 心胸[심흉]을 미리부터 짐작하고 그의 作品[작품]을 對[대]하게 된다면 表面上[표면상]으로는 아모리 忠實[충실]한 態度[태도]로써 그의 作品[작품]을 끝까지 通讀[통독]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作品[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요 먼저 作家[작가]의 걸어논 看板[간판][혹]은 짐작으로서 그 作品[작품]의 描寫限界[묘사한계]를 알지마는그의 作品[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쓸데없는 義務感[의무감]에서 다만 속빈 강정이를 씹는 所謂[소위]에 不過[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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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勝極氏[박승극씨]의 文辭[문사]와 같이 李北鳴氏[이북명씨]가 勞働者出身[노동자출신]의 作家[작가]라고 하자. 그러면 勞働者體驗[노동자체험]과 그가 가질 수 있는 感情[감정]이며 態度[태도]를 作品[작품]을 通[통]하야 말하는 것은 至極[지극]히 當然[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所謂體驗[소위체험]이란 것 朴勝極氏[박승극씨]의『唯一出身[유일출신]』 等[등]의 文字[문자]를 使用[사용]하게 된 根據[근거]로는 北鳴氏[북명씨]가 窒素肥料工場勞働者[질소비료공장노동자]라는 點[점]뿐이다. 그러나 北鳴氏[북명씨]는 그 工場體驗[공장체험]만으로 完全[완전]한 作家[작가]가 或[혹]은 將來[장래]를 囑望[촉망] ─ 期待[기대]할 수 있는 作家[작가]가 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一個工場[일개공장]만을 題材[제재]로 여러개 作品[작품]을 發表[발표]하는 것이 作家[작가]로서의 視野[시야]의貧困[빈곤]을 말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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工場[공장]의 機械[기계]나 或[혹]은 其他[기타] 무슨 部門部門[부문부문]을 論描[논묘]하는 것이 아닌 以上[이상] 一個工場[일개공장]의 事實[사실]로써 그렇게 여러개 作品[작품]을 製作[제작]할 수는 없으며 또는 있다하더래도 그것은 그 作家[작가]로서의 視野[시야]의 貧困[빈곤]이 가저오는 오즉 作家的存在認定[작가적존재인정]의 要求書[요구서]의 連發[연발]에 不過[불과]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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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朝鮮中央日報[조선중앙일보]》 1936.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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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工場[공장]을 題材[제재]로 하야 여러개 作品[작품]를 製作[제작]함보다는 한두 篇[편]이라도 能[능]히 그(工場[공장])의 가진바 缺陷[결함]과 動態[동태]와 勤勞者[근로자]의 가질 수 있는 態度方法等[태도방법등]을 描破[묘파]하면 고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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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므로써 工場[공장]의 體驗[체험]을 가진 李氏[이씨]로서그많지 作品[작품]을 發表[발표]했고 그많지 自己所産[자기소산]인 工場作品[공장작품]의 認定[인정]을 받은 以上[이상]은 이제는 視野[시야]를 딴 方面[방면]으로 돌릴 必要[필요]가 있다 萬若[만약] 이 以上[이상] 그다지 傑作[걸작]도 아닌 工場作品[공장작품]을 또 生産[생산]한다면 그것은 남의 춤에 기뻐하야 作家[작가]로서의 工場未練[공장미련]에 戀戀[연연]하야 억지로 作品[작품]을 生産[생산]한 것으로서 한낫 工場作品認定要求[공장작품인정요구]로 看破[간파]하고 우리는 歸重[귀중]한時間[시간]을 그런 作品[작품]을 一顧[일고]하는 愚[우]에서 暫時[잠시]의 消遺[소유]을 喪失[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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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非單[비단] 李北鳴氏[이북명씨]의 作品[작품]에서만이 아니요 其外[기외]에도 이러한 좁은 視野[시야]의 作家[작가]가 있다면 좀더넓은 視野[시야], 人生社會[인생사회]의 全幅[전폭]을 視[시]하랴는 努力[노력]을 우리의 期待[기대]하는 作家[작가]에게 要求[요구]하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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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서만 우리는 化石化[화석화]해 버리지 않은 完全[완전]한 作家[작가]의 養成[양성]을 促[촉]하는 所爲[소위]가 될 것이다. 하야 다음으로는 世界水準[세계수준]을 向[향]하야 邁進[매진]하는 朝鮮作家[조선작가]의 群像[군상] 속에서 한사람 식의 完全[완전]한 作家[작가]의 存立[존립]을 갖는 때의 喜悅[희열]을 豫徵[예징]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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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外題[외제]같이 여기에 一言[일언]할 것은 쩌나리즘의 意識無意識的[의식무의식적]으로 犯[범]하고 있는 過誤[과오]와 害毒[해독]이다. 어느 新聞[신문]이나 雜誌社[잡지사]를 勿論[물론]하고 朝鮮文化[조선문화]의 建設[건설]과 文學發展[문학발전]을 爲[위]한다는 正念[정념]이 없는 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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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者[필자]도 文學靑年[문학청년]의 하나이지만 나는 이 病的[병적]인(語弊[어폐]가 있을른지 몰으나) 朝鮮文學[조선문학]의 發展[발전]에서만 眞正[진정]한 朝鮮[조선]의 明日[명일]을 發見[발견]하리라고는 生覺[생각]지 않는다 다만 過去近十年[과거근십년]의 藝術道[예술도]에 對[대]한 努力[노력]을 버릴 수가 없어 이제는 끝까지一生[일생]을 通[통]하야 藝術道[예술도]에 바칠 決心[결심]을 하였을 뿐이다 이러한 말을 하는 筆者[필자]는 무었을 生覺[생각]하였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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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조선]에는 文學的[문학적] 政治的[정치적]으로 주림을 가진 靑年[청년]이 年年增加[연년증가]되고 있다 그들의 向路[향로]는 政治[정치], 經濟[경제], 文學等[문학등] 여러가지 分路[분로]가 있겠지마는 여러가지 情勢[정세]로 文學[문학]을 즐기게 되어 沈鬱[침울]과 悲哀[비애]와 人生[인생]의 暗黑[암흑]과 불같은 꿈의 理想[이상]을 吐呑[토탄]하는 感情[감정]의 所有者[소유자]가 되는 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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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新聞雜誌[신문잡지]의 寄稿現象[기고현상]이나 또는 敢然出資[감연출자]하야 數千數百圓[수천수백원]의 돈을 消費[소비]하고마는 群小雜誌[군소잡지]의 明滅[명멸]에서 우리는 明確[명확]히 이것을 認識[인식]할 수가 있다.
 
34
그러나 筆者[필자]는 決[결]코 여기에 그러한 現象[현상]의 朝鮮的效果如何[조선적효과여하]를 論考[논고]하랴함이 아니다. 다만 朝鮮文化[조선문화]의 大道[대도]를 바라보는 正念[정념]에서 이 群小作家[군소작가]와 文學靑年[문학청년]의 滿域奔流[만역분류]를 嚴正啓導[엄정계도]하야 그들의 精力消費[정력소비]를 效果[효과]있게 하고 그들의 經濟的犧牲[경제적희생]의 눈물겨운 苦鬪[고투]를 보다 意義[의의]있게 하는 點[점]에서만 우리는 朝鮮[조선]의 旣成文人[기성문인]이나 其外[기외]의 文化的先驅諸賢[문화적선구제현]에게 敬意[경의]와 尊崇[존숭]으로써 付從[부종]의 信望[신망]을 보낼 수가 있을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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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朝鮮中央日報[조선중앙일보]》1936.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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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朝鮮文化[조선문화]의 嚴正批判[엄정비판]과 文學[문학]의 正當[정당]한 發展向上[발전향상]을 企圖[기도]하랴는 態度[태도]를 보여주든 『批判[비판]』誌[지]가 十一月續刊號[십일월속간호]를 내인 것은 우리로서 雙手[쌍수]를 들어 慶賀[경하]할 바이나 그 編輯餘墨[편집여묵] 『허리를 펴면서』를 읽어볼 때 『…文藝[문예]에 있어서 金海剛[김해강], 金炳昊氏等名作[김병호씨등명작]과 李無影[이무영], 嚴興燮氏[엄흥섭씨]의 傑作[걸작]은 太陽[태양]처럼 燦爛[찬란]하다 그 外[외] 이것저것 할 것없이 一粒[일립]만을 힘드려 뽑은 것이니 諸君[제군]은 반듯이 喝采[갈채]할 줄 안다.』─ 라는 文句[문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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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粒[일립]이란 말을 여기에 쓴 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며 一般讀者[일반독자]를 諸君[제군]이라고 나려다 보는 編輯者[편집자]는 한 便[편] 말하자면 親分[친분]으로 (寄稿[기고]하므로 보아) 自己[자기]의 便[편]인 執筆者[집필자]를 말함에 있어 氏[씨]의 名作傑作[명작걸작]으로 축혀세우고 말었다. 이러고서야 무슨 眞正[진정]한 朝鮮文化[조선문화]의 建設[건설]을 爲[위]한 것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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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또한 朴勝極氏[박승극씨]의 李北鳴評[이북명평]의 態度[태도]를 말한 叙上[서상]의 『禮[예]가 過[과]하면 禮[예]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名作[명작]도 傑作[걸작]도 아닌 作品[작품]을 名作傑作[명작걸작]이라고 하는 것은 한낟 嘲弄[조롱] 아니면 오즉 戱言[희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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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所謂[소위] 名作傑作[명작걸작]의 內容[내용]을 보건대 筆者[필자]의 關心[관심]하여 오는바 詩[시]만을 가지고 明言[명언]한다면 海剛[해강]의 『더위먹은 都市[도시]의 밤아』라는 詩[시]는 朝鮮詩壇[조선시단]의 重鎭[중진]인 氏[씨]로서는 너무나 期待[기대]에 어그러지는 作品[작품]이어서 그의 여러해 前[전] 作品 (例[예]를 들면 一九二九年 朝鮮詩壇五號[일구이구년조선시단오호]의 『昇天[승천]하는 旭日[욱일]을 가슴에 안으려』라는 詩[시]와 또한 그 以後[이후]의 文藝諸誌[문예제지]에 發表[발표]된 많은 作品[작품])에 比[비]하야 避色[피색]이 있음은 勿論[물론] 今年八月號朝鮮文壇誌[금년팔월호조선문단지]의 『새벅의 乳房[유방]』에도 뒤지는 作品[작품]으로 氏[씨]의 가진바 獨特[독특]한 情叙[정서] 奔流[분류]하는 듯한 詩想[시상]의 表現[표현]도 없고 오즉 冗漫[용만]에 흐른 作品[작품]이었다. 그리고 金炳昊氏[김병호씨]의 詩[시]에 있어서도 오래인 沈默[침묵]에 依[의]한 所致[소치]인지 『母性愛頌[모성애송]』은 決[결]코 氏[씨]의前作[전작]에 對比[대비]하야 進境[진경]을 보여주는 名作[명작]이나 傑作[걸작]은 아니였다 다음 李無影氏[이무영씨]의 中篇[중편] 『老農[노농]』은 繼續物[계속물]이므로 여기 말할 수 없고 嚴興燮氏[엄흥섭씨]의 『숭어』라는 短篇[단편]은 筆者[필자]로서 小說評[소설평]의 造詣[조예]가 없어 大膽[대담]한 짓인 것 같으나 어떤 農夫[농부]가 숭어 까시로 因[인]하야 목메어 죽은 딸의 怨恨[원한]을 地主[지주]에게 가서풀어버리고 나종에 發狂[발광]까지 하도록 맨든 것은 여기에 社會的[사회적] 또는 個人的[개인적]으로 쌓인 怨含[원함]과 忿怒[분노]가 있었다 하나 可[가]히 首肯[수긍]하기까지는 어려우니, 朴英熙氏[박영희씨] 등 初期作品[초기작품]에서 얼마의 進境[진경]을 보인 程度[정도]의 傾向的作品[경향적작품]을 未脫[미탈]하지 않었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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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턴 敍上[서상]함과 如[여]히 傑作[걸작]이 못되는 作品[작품]을 傑作[걸작]이라 하야 執筆者[집필자]를 待遇[대우]한다고 反[반]히 戱言[희언]이나 弄談[농담]으로 辱[욕]을 보인 보다는 編輯人[편집인]이나 社長[사장]의 生活費一部[생활비일부]를 꺾어서라도 多少[다소]의 煙草代[연초대]나마 饍賜[선사]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生覺[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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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 또한 오즉 批判誌[비판지]만을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요 一般[일반] 쩌나리스트 諸賢[제현]에게 敢[감]히 보내는 畏濫[외람]한 警告[경고]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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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論[본론]을 草[초]하는 바 筆者[필자]의 心境[심경]을 要約[요약]해 말한다면 어떤 個人[개인]이나 雜誌經營者[잡지경여자] 新聞編輯人[신문편집인]을 非難或[비난혹]은 排擊[배격]하자함이 아니요 오즉 우리가 要求[요구]하는 넓은 視野[시야]를 가진 作家[작가]의 出現[출현]을 爲[위]하야 同伴者的好意[동반자적호의] 또는 親交際[친교제]에 依[의]한 不當[부당]한 推獎[추장]을 하지 않고 中庸性[중용성]을 잃지 않은 嚴正[엄정]한 立場[입장]에서 文藝作品[문예작품]을 批判[비판][장]하여 주었으면 ─ 하는 간절한 微衷[미충]에서이니 叔上[숙상]에 呶呶[노노]한 中[중] 어떤 個人[개인]이나 雜誌社[잡지사]의 感情[감정]을 사게 한 말이 있었다면 이것은 筆者[필자]의 本意[본의]가 아니믈 惠高[혜고]하야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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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時感數題[시감수제]란 題目[제목]을 걸었기로 『技巧[기교]와 詩[시]의 本能[본능]』라는 表題[표제]로 最近朝鮮詩人[최근조선시인]들의 詩風[시풍]을 檢討[검토]해보랴 하였었으나 이것은 筆者[필자]의 時間的事情[시간적사정]으로 因[인]하야 다음 機會[기회]로 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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妄言多謝[망언다사] (乙亥十一月中旬於無限川邊[을해십일월중순어무한천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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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 : 《朝鮮中央日報[조선중앙일보]》1936. 3. 13
【원문】작가(作家)의 시야(視野)와 문예비평(文藝批評)의 중용성(中庸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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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문(李海文) [저자]
 
  # 조선중앙일보 [출처]
 
  193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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