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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轉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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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
최서해
1
轉 機[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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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화는 오늘 아침에 여느 때보다 한 시간 가량이나 일찍 출근하였다. 그가 사에 들어선 때는 아홉시 오 분 전이었다. 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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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렇게 일찍 출근한 것은 일을 일찍이 마치고 오후 세시에 영도사로 나가려는 까닭이다. 어떤 친구가 오늘 오후에 영도사에서 생일 턱을 한다고 어젯밤에 박인화도 청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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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으로 흘러드는 아침 햇발은 벌써부터 더위를 몰아붓는다. 그는 창을 열어 놓고 문장(門帳)을 내린 뒤에 자기 책상 앞에 앉아서 어제 보다 남은 원고와 준장(準張)을 끄집어내 놓고 부지런히 붓질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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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렇게 일하고 있을 때였다. 층층다리로 쿵쿵 올라오는 자취 소리가 들린다. 빠르고 둔탁한 것은 사환애의 발소리다 하고 생각하는데 그가 앉은 맞은편 문이 열리면서 디미는 것은 아니나다를까, 검데데하고 기름한 사환 애의 얼굴이었다. 방바닥을 쓸고 책상들을 닦아 놓은 것을 보아서는 벌써 왔다가 어딘지 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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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디 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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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화는 사환의 인사를 받으면서 그를 치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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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댁으로 누가 가시잖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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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환은 딴전을 부리면서 그를 치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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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왔어…….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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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의아한 눈초리로 사환애를 마주 바라보았다. 사환애는 저편 테이블 위에 놓은 종이 조각을 집으려고 그편으로 몸을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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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누가 선생님댁 번지를 묻고 길까지 물어 보는뎁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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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니 집은 종이 조각을 들여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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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백영훈씨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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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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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환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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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이가 오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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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받아든 종이 조각을 들여다보았다. 서투른 연필 글씨로 휙휙 ‘백영훈’이라 쓰고 또 그 옆에 ‘최일천’이라 썼는데 그 이름 아래에 죽을 사(死)자만은 한문으로 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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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까 전화로다 묻든뎁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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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건 뭐냐? 이 죽을 사 자는 왜 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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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그는 머리를 좌우로 기웃거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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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최일천이라는 이가 오늘 아츰에 죽었대요…….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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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은 자기의 서투른 글씨가 남의 눈에 뜨이는 것이 부끄러운지 어색스럽게 벙긋하면서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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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천이가 죽다니? 네가 전화를 잘못 받잖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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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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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받기는 왜 잘못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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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사환은 응석이나 부리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면서 입을 벌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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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를 소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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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풀리었던 박인화의 안면 근육은 긴장한 빛을 띠었다. 그는 피우던 담배를 끄고 벌떡 일어나 모자를 떼어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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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녀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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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나가 버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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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다리로 내려오는 그의 머릿속은 여운이 흐르는 종 속같이 엥하였다. 어젯밤 새로 한시까지 그 죽은 사람하고 지껄이고 또 오늘 생일턱 먹으러 영도사로 같이 가자고까지 약속하던 기억이 그의 머리를 슬근히 엄습하자 봉긋한 턱 위에 넓적한 입과 커단 콧구멍을 연해 벌렁거리면서 잠시도 쉴새없이 떠들던 그 사람 좋은 친구의 그림자도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그 사람이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딴세상 길을 밟았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찾아가면 그 커닿고 검은 눈에 웃음이 그득해가지고 맞아 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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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새삼스럽게 목숨의 믿을 수 없는 것을 느끼었다. 살았노라고 전차를 타고 죽은 사람을 찾아가는 자기의 목숨도 자기의 목숨 같지 않았다. 지금 당장에 끊어질는지 몇 날이나 더 부지할는지 누가 보증하랴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허무주의자나 된 것 같았다. 종로에 가고 오는 사람이나 전차를 내리고 타는 사람들은 모두 일전 총독부 의원에서 구경한 앙상스런 백골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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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샌전 정류장에서 전차를 내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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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가까운 볕은 청진동 큰길에 쨍쨍히 떨어지었다. 지나가고 지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더위에 헐떡거리었다. 그는 발끝에 먼지를 일으키면서 큰길로 옮아오다가 왼편 둘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오랜 가물에 씻기지 못한 또랑에서 증발되는 구린내는 먼지와 같이 사람의 숨을 막는 것 같다. 어린애 둘이 그 또랑에 빠진 고무 볼을 끄집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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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화는 사랑채의 작은 대문 안에 들어섰다. 그 대문 밖은 평시나 다름없이 조용하였다. 그는 밖에서 대문을 안으로 밀 때까지도 그 죽었다는 친구가 마중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여느 때 같으면 단단히 잠그었을 대문이 이날은 거침없이 열리는 것부터 이상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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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마당에 들어서니 대청 마루 끝에 걸터앉았던 주인의 둘째아들 백영훈이가 일어서면서 인사를 하였다. 백은 몸집이 가늘고 눈이 감정적으로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를 보는 인화의 감정은 이상스러웠다. 그것은 그가 항상 자기 집에 몸을 붙이어 있던 최일천이란 그 죽은 친구의 뒷공론을 잘하던 까닭이었다. 대청 마루 위에는 죽은 사람의 형되는 이가 주먹을 쥐인 두 손을 무릎 위에 놓고 먼 자취를 보는 듯이 퀭히 앉아 있다. 그리고 마당에는 낯 모를 사람이 둘이나 섰으며 백윤호의 형과 일전 어떤 상가집에서 본 듯한 상스럽게 생긴 늙은 염장이가 담뱃대를 물고 대청 마루에 잇닿은 방문 앞에 앉아 있다. 열어 놓은 문으로 병풍이 들여다보이는 것을 보고 그 방이 시신 모신 방인 줄 깨달았다. 어느새 줄기직[菌席]이며 관널을 갖다가 툇마루에 놓았다. 여름볕이 들이쪼이는 이 마당에는 처연한 침묵이 흘렀다. 그 모든 것을 본 인화의 자신도 어느덧 그 쓸쓸하고도 무시무시한 침묵에 찍히어 눌리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하는 듯이 두툼한 입술을 경련적으로 움직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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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게 어찌된 변이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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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정숙한 어조로 그 죽은 이의 형을 바라보면서 허리를 굽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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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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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내는 비로소 제 정신을 차린 듯이 입맛을 다시고 잠깐 입을 열었다. 그 죽은 이의 형도 인화와 친한 사이였다. 좀한 일에 잔걱정이 없는 것이라든지, 친구에게 충실한 것이라든지, 돈과 계집에 무심한 것이라든지, 그리고 좀 싱거울만치 말이 많은 것은 죽은 아우 최일천이와 방불하였다. 그네들은 사 남매인데 죽은 사람의 아래로 있는 누이동생의 손아래 되는 막내동생은 바람꾼이어서 지금도 주소가 불분명하고 누이는 시집 갔다가 방탕한 남편의 소위로 시집에서 쫓기어나서 지금은 본정 어떤 일본집에서 고용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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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들 사 남매 중 결혼한 것은 그 누이와 지금 여기 와 앉아 있는 맏형 뿐이었으나 모두 집을 해치고 떠돌아다닌다. 죽은 사람은 배우로 몇 해 다니다가 그것도 극계가 소조해지니까 지금 있는 백영훈의 집에 몸을 붙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황천객이 된 그의 아버지는 관후하고도 돈냥이나 거느리고 살았는데 동학란 때에 백의 아버지가 죽게 된 것을 자기 목숨을 희생하다시피 하면서 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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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백윤호의 아버지가 목숨이 붙어 가지고 전라도에서 울리는 부자가 된 것도 그 덕이 많았다. 그러나 백가의 집안에서는 그런 인연이 있었던 둥 말았던 둥 그저 관후한 인정을 쓰는 듯이 최일천이 붙이어 두고 밥알이나 먹이었으나 대접은 청지기의 아들 보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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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밖에서 도는 소문이었다. 최일천의 집에서 흐르는 것을 들은 이는 없었다. 그는 어쩌다 술이 취하고 허물없는 친구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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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같이 더러운 놈이 세상에 또 있겠나마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머리를 디밀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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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강개한 어조로 말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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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 저런 사정 대강 짐작하는 인화에게는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자살이나 아닌가 하는 의심도 없지 않았으나 그의 부드럽고도 좀 끈직끈직한 점이 있는 성격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같이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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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병이 그렇게 갑작스럽게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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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는 마루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백윤호더러 나직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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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말을 들으면 그는 심장마비를 죽은 것이었다. 어젯밤 우리가 흩어진 뒤에 최일천이는 백과 백의 형과 같이 대청 마루 곁방에서 잤는데 오전 네 시쯤 되어서 백의 형의 잠귀에 이상스러운 소리가 들리었다. 그는 흐릿한 잠눈을 떠 보니까 전기불에 비치어서 파랗게 보이는 최일천이가 침을 지르르 흘리면서 그렇게 신음하였다. 백의 형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두 눈이 둥글해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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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벌떡 일어나서 베개에서 떨어진 최일천의 머리를 흔들면서 몇 번 불렀으나 아무 대답도 없이 신음 소리만 점점 미약하게 들리었다. 그는 더욱 겁이 나서 손목을 잡아 끄니까 온기가 끊어진 팔은 어쩐지 뻣뻣하였다. 그는 아우를 깨어서 의사를 부르게 하고 일변 안을 뛰어들어가서 그 연유를 말하고 나오니까 이때는 신음 소리마저 끊어지었다. 의사는 숨 끊어진 뒤에 왔었다. 검사한 의사는 심장마비라는 진단을 하였다. 그가 평소에 토질이 있어서 간간이 피를 내뱉았고 술을 과히 먹었다. 심장 약한 이가 술을 과하거나 몹시 흥분이 되면 심장마비를 일으킨다고 의사가 말하더라고 하면서 백의 형은 새벽 광경이 다시 눈앞에 떠오르는지 양미간을 찡기고 눈을 크게 뜨면서 공포에 긴장된 표정을 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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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설명이 끝나자 무거운 침묵은 다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흘렀다.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문 인화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지 낙천적으로 생긴 번들번들한 이마 아래 커다란 눈은 약동하는 생기가 스러진 듯이 흐릿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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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이 가까와 올수록 볕은 뜨거웠다. 그 불 같은 볕발로도 이 마당에 흐르는 쓸쓸한 기운을 몰아내지 못하였다. 종로에서 울리어 오는 분주잡답한 소리는 이 마당과는 거리가 먼 딴 세상의 음향 같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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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깨뜨리는 대문 소리와 같이 누가 옷 보퉁이를 들고 들어왔다. 그것은 최일천이가 이제로부터 몇 만 년을 입고 있을 수의(壽衣)이었다. 마지막 옷이다. 그것을 보던 박인화는 입고 먹는 문제는 죽음으로써 간단한 해결이 되는구나, 속으로 뇌이다가 아침에 아내가 쌀 걱정, 의복 걱정하던 것이 생각나서 자기고 모르게 코웃음을 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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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호의 형이 그 옷 보퉁이를 받아가지고 염장이의 뒤를 따라 시신 방으로 들어가자 대청 마루에 앉았던 죽은 이의 형도 머리를 떨어뜨리고 뒤를 따라 들어갔다. 저편 울타리 그늘 아래 섰던 사람들도 조용히 그 방문 앞으로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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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화의 가슴은 그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에 울렁거리었다. 어떤 겨울에 산길을 가다가 눈 속에서 보던 얼어 죽은 송장의 그림자가 그의 머리를 언뜩 지나갔다. 그는 미양간을 찌푸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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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러한 불쾌한 인상을 머릿속에 남기지 않도록 송장은 보지 않으려고 늘 생각하여 왔다. 이번에도 송장은 안 본다고 아까 사에서 나올때부터 생각하였다. 송장을 본다는 것은 저승길을 밟는 자기와의 사이에 무슨 불길한 인연을 맺는 것같이 느끼어지었다. 자기의 아름다운 삶에 한 덩어리의 검은 구름을 받는 것 같았었다. 그것이 얼토당토않은 생각이거니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쓸어버려지지 않는 생각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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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가만히 앉아서 담배만 피웠으나 그렇게 앉아 있기도 싱거웠다. 한편으로는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송장이 보고도 싶은 호기심에 궁둥이가 들먹거리었다. 그의 호기심은 기어이 그의 시선을 송장에다 끌어다 붙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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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 방문 밖에 가서 섰다. 방안에는 병풍을 둘렀다. 그가 살았을 때에는 일고지혜(一顧之惠)도 주지 않던 병풍이 죽은 그를 위하여는 둘리어지었다. 그것도 주인 영감이 항상 나와 계옵시는 이 사랑 끝방에 두른 류의 값진 병풍은 아니다. 켸켸묵어서 절고 뚫어진 병풍인데 어느 광 속에 처박아 두었던 것을 끄집어 내었는지 거미줄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을 보는 박인화의 가슴은 일종의 증오의 염(念)에 묵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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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에 누인 시신에는 그가 덮던 회색 담요를 고요히 덮어 놓았다. 들석한 담요 귀퉁이 밑으로 종이에 싸서 수키왓장을 받쳐 놓은 시성판 모서리가 보이었다. 방안은 유난히 우중충한 것 같고 무슨 불쾌한 냄새가 인화의 콧구멍으로 소르르 흘러들어서 온몸의 피를 적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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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이는 수의 가지고 들어온 사람과 함께 줄기직을 들여다 끊어서 백지에 뚤뚤 말아 놓고 북포 필을 끊어서 장매와 가름매를 장만한 뒤에 수의 보퉁이를 끌렀다. 수의는 세포로 안팎을 질러지었다. 이런 베나마 최일천의 몸에는 처음으로 걸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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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집 주인의 혜택이었다. 오늘의 장비도 이집 주인의 관후한 맘씨에서 나온 것이라고 인화의 곁에 선 태극선 든 이가 구역이 날이만침 혀를 채면서 수근거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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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이의 손으로 회색 담요는 벗겨지었다. 얼굴을 솜으로 가린 시선은 지매로 삼교를 지었다. 땀 배인 고의적삼은 그의 평생을 말하는 것 같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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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에서 마지막 입히었던 그 땀 배인 의복은 저승으로 영영 입고 갈 수의와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아래로부터 순서를 밟아 입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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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송장은 죽어서까지도 가난한 이의 설움을 면하지 못하였다. 죽은 사람이니 비단으로 온몸을 감으나 누더기에 싸나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마는 보는 이의 가슴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죽은 사람에게서도 산 사람의 사회의 공평치 못한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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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도 학대받던 그 생명은 죽어서도 대접을 못 받았다. 소렴이자 대렴으로 그것도 대강 잠상식로 하여 장매와 가름매에 칠교를 단단히 묶여서 관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고 무친하다시피 된 그의 식은 몸뚱이가 이만침 꾸리게 된 것도 대접이라면 대접이라고도 하겠으나 그것은 대접이라는 것보다도 부득이한 감정의 소위라고 하는 것이 가당치나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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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빛이 파랗게 질리어서 입술을 감빨고 앉았던 형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는 새삼스럽게 설움이 복받치는가? 억압되었던 감정이 풀리었는지 관 속에 넣으려는 방아채 같은 시체를 부둥켜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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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십시요! 보낼 사람은 어서 보내야 하는 게지.”
 
69
하고 툇마루에 나와서 들여다보던 백윤호의 삼촌은 점잖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소리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시체를 으스라지라는 듯이 끌어안으면서 시체의 머리에 자기 얼굴을 비비었다. 급격한 느낌과 같이 흘러내리는 뜨거운 골육(骨肉)의 눈물은 식은 골육의 머리를 적시었다. 아우여! 마지막 주는 형의 눈물을 받는가 마는가?
 
70
소리 없는 그 눈물은 소리 있는 눈물보다도 더 아프게 모든 사람을 찔렀다. 이 방안과 뜰에는 아까보다 더 무겁고 더 아프고 처연한 침묵이 흘렀다. 모든 사람들은 한 걸음 한 걸음씩 자기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게 이 침묵에 얼어들어서 선후를 잊은 듯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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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염장이만은 평범하였다. 그는 돌이나 나무로 깎아 놓은 기계처럼 남이야 울건 말건 제 맡은 일만 하려고 하였다. 형의 품에 안기었던 시체는 염장이의 손에 들리어서 관 속으로 들어갔다. 그 형은 관 속에 든 시체를 부둥키면서 몸부림을 하였다. 남의 집이라고 그러는지 터지어 나올 듯한 울음 소리를 참는 양은 확연히 드러났다. 그는 얼마나 괴롭고 쓰라리랴?
 
72
조실 부모하고 코 흘리는 아우를 자기 손으로 길러 내인 그 형의 가슴이다. 그것도 넉넉한 형편이 되어서 벗기지 않고 굶기지 않고 길렀으면 또 모르겠다. 아우는 형을 위하고 형은 아우를 생각하여 음식이 생기면 서로 적게 먹으려고 하면서 그 목숨이 이어 왔다. 이렇게 장성한 사 남매들이언만 기구한 운명은 그저 그네들을 농락해서 한 곳에 모여 못 살고 서로 그렇게 지내어 왔다. 그러다가 참혹히도 사 남매 에서 가장 인정이 도탑다는 최일천이가 서른 셋이라는 청춘으로 서리를 맞았다.
 
73
그 형도 북간도 가서 돌아다니다가 월전에 돌아왔다. 그는 돌아오는 길로 경찰에 검속이 되어서 취조를 받다가 며칠 전에 나와서 여관에 묵었다. 그런 관계로 그도 아우가 죽은 지 세 시간이나 지나 아침 아홉시에야 기별을 받고 뛰어온 것이다. 그 누이는 본정 어떤 일본집에 있는데 죽은 오빠밖에는 그 집을 아는 이가 없었다.
 
74
그러므로 기별은 물론 못하고 한 달에 두어 번씩 틈을 타서 오빠 보러 오는데 인제는 그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막내동생의 주소도 불분명해서 알리지 못하였다. 사 남매 중에서 먼저 가는 최일천이를 보내는 것은 오직 사 남매 중에서 그 형뿐이었다.
 
75
마지막으로 눈 감는 아우의 음성 한 마디 못 들어 본 형의 마음의 어떠하랴? 그보다도 아우의 전도를 축복하던 형의 눈으로 기를 못 펴다가 꺾어지는 아우의 마지막을 보는 때, 그 가슴이 어떠하랴?
 
76
“흑흑……내……내……가 못생겨서 너……너이들을……고……고생을 시키다가…….”
 
77
백윤호의 삼촌의 권을 못 이기어서 물러앉는 그는 이렇게 목메인 소리로 뇌이면서 주먹으로 눈을 비빈다. 그것을 보는 박인화의 가슴도 스르르 풀리었다. 죽고 사는 것은 생물의 원칙이거니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죽는다는 것이 마음에 켕기고 최일천의 신세라거나 그 형의 울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자기도 그런 운명을 밟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밟는 것만 같이 느끼지 않았다. 한평생 이렇게 쪼들리어 지내다가 빛발 없이 숨이 끊어지는 것도 원통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그런 목숨을 가지고도 내일을 바라고 애쓰는 인간들이 너무나 허수하게도 느끼어지었다. 지금 여기 서 있는 자기도 저처럼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천근 같은 흙에 묻히어서 흙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날은 약속할 수는 없는 날이다.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를…… 또는 지금 담박이 될지를 누가 누구하고 약속하랴 하고 생각하니 자기의 존재는 너무도 보람이 없었다. 미래는 바랄지언정 지금을 허수로이 여길 것이 아니었다. 이 시간이다. 자기의 삶에 의의 있는 행복을 당기려고 힘쓸 것도 이 시간이요, 자기의 존재를 없앨 것도 이 시간이다. 내일을 바람이요, 지금은 힘이다. 지금의 힘을 잃으면 내일의 바람도 허무한 것이다. 사람은 일 분이면 일 분, 일 초면 일 초, 그 일 분이나 일 초를 살았거든 살아 있는 그 힘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뒤로 미루지 말라, 버려두지 말라, 그것이 참말로 그대가 소유한 유일무이의 생명인 줄 모르는가 하고 혼자 속으로 뇌이면서 인화는 주먹을 쥐었다.
 
78
어느새 천개를 덮고 은정을 질렀다. 칠칠 대신으로 송연(松煙)칠의 검은 영구(靈樞)는 구의(樞衣)를 입고 출구할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79
이리하여 그는 갔다. 크면 클 수 있는──무한히 클 수 있는 한 개의 젊은 생명은 우악한 그림자에게 잔인히도 밟히다가 기를 펴 보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길이길이 존재를 거두었다.
 
80
한나절 뜨거운 뙤약볕에 화단의 분꽃은 잎까지 시들었다.
 
81
남산 아래서 울리어 오는 오적(午笛) 소리는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인생에게 무슨 묵시(默示)의 충동을 주는 것 같았었다.
 
 
82
발인은 오후 두시나 세시 가량에 될 것 같다는 것이 모든 사람의 말이었다. 별로 시간을 정한 것이 아니라 모든 준비가 되는 대로 어서 치워 버리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 죽은 주검을 오늘로 땅에 넣게 되는 것이다.
 
83
박인화는 묘지까지는 못 가더라도 발인까지는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중론에 의하면 발인까지는 일러도 두 시간은 잘 기다려야 되겠다. 그새에 무료히 섰기도 우스운 일이다. 그나 그뿐인가? 벌써 사오 삭이나 월급 지출을 못 하는 거지 같은 사라고 할 값에 아침에 잠깐 머리를 디밀었다가 나온 뒤로 이렇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온종일토록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책임감이 허치 않았다. 또 그나 그뿐인가, 생각하면 그보다도 중대한 문제가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에 아내가 저녁 쌀을 부탁을 하던 것이었다. 그것도 사에 가서 회계를 졸라 돈 원이나 만들어 보내야 할 일이었다.
 
84
그는 발인 시간에 또 온다는 약속을 남기고 나오다가 영도사로 갈 시간과 상치되는 것을 생각하고 머리를 잠깐 기웃거리었으나 그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휘적휘적 걸어서 종로로 나왔다. 분주잡답한 소리 속에 나서니 무슨 무거운 압박에서 벗어난 듯이 자유로운 듯도 하나 까닭 없는 쓸쓸한 느낌도 솟았다. 가고 오는 사람들도 그렇게 보이고 늘 보는 집들은 어디라 지적할 수 없이 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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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정류장 앞에서 전차를 내린 그는 그이 모가지를 올가미한 잡지사인 신세계사(新世界社)로 쏜살같이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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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따라 금전 출납을 맡은 최군이 들어오지를 않았다. 다른 사원들도 저녁 쌀 없느니 때일 나무가 없느니 하고 월급은 못 줄 값이나 며칠 걸러 돈 원씩 가불 하는 것도 오늘 또 식었다고 모두 뿌루퉁해 섰다. 화나는 분수로 말하면 의자를 둘러매뜨려서 잡지사인지 깨묵덩인지를 부숴 놓고도 싶었으나 그것도 소용 없는 것이거니 느끼어지는 때 박인화의 가슴에 솟던 분은 절망의 비애로 변하였다. 그래도 조선서는 지식 계급이요 상당한 지보를 가지었다는 사람들이 이 꼴이다. 뼈가 빠지게 애를 쓰고도 갈데올데 없이 배를 주리고 있다. 밥 얻으러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어린것처럼 얼굴이 노랗게 되어서 돈 원이나 생길까 하고 기다리는 꼴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인화 자기도 그런 무리 가운데의 한 사람이거니 생각하니 절망과 저주와 분노와 비애가 어느 것이 더하고 제하고 없이 한꺼번에 가슴을 찌른다. 오오 조선은 이렇게도 사람을 용납지 못하는가 하고 탄식을 하다가 이런 굴욕 속의 생명이나마 이어 가려고 버둥거리는 자기와 그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가래침을 뱉고 싶었다. 매일 몇 푼 안 되는 돈에 목을 매달고 그렇게 살아가면 뭘 하는 것이며 그러다가 죽으면 뭣 하는 것인가. 최일천의 죽음도 굴욕(屈辱)의 죽음이었다. 굴욕 속에서 살다가 굴욕 속에서 죽은 죽음이거니 하고 생각하니 이때까지 최일천에게로 가던 동정은 햇발 받은 아침 안개처럼 점점 엷어지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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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에서 도로 나온 그는 어디서 어떻게 변통하여 볼까 하는 생각으로 어떤 친구를 찾아갔더니 그도 집에 없었다. 그의 화는 더 북받치었다. 그러는 새에 세시가 넘었다. 그는 귀치않다 생각하면서도 이마의 땀을 씻으면서 청진동으로 쫓아가니 벌써 상여가 나간 뒤이다. 대문 밖 불 놓은 자리에서 남은 연기가 죽어가는 이의 목숨같이 오를 뿐이다. 한편으로는 미안도 하고 한편으로는 시원도 하였다.
 
88
그는 하는 수 없이 집에 돌아와서 몇 가지 남은 책을 집어내다가 팔았다. 어디 나갔다 집으로 들어가면 자기 손만 치어다보는 식구들 때문에 가슴이 묵직하였다. 이 원 칠십 전 받은 중에서 오십 전은 전차비와 담뱃값으로 이원 이십전은 데리고 나온 이웃집 애에게 주어서 집으로 보내었다. 그럭저럭 네시가 넘었다. 영도사로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었다. 그는 공연히 심기가 피이지 않아서 그리로도 가기 싫었다. 간대야 쓸데없이 떠들고 시간이나 보낼 것이다 하고 한참 망설이었으나 버릇의 힘은 그를 동대문행 전차에 끄집어 올리었다. 전차를 타고도 그는 한참이나 주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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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서 갈아탄 청량리행 전차에는 문밖을 나가는 똑딴 미인들과 말쑥한 신사들이 많이 탔다. 분과 향수와 경쾌한 의복으로 복색을 감추려고 애썼으나 그 가면 밑으로 엿보이는 김빠진 고무공 같은 뺨하여 충혈이 된 눈하며 시들고 검푸른 입술하며 창백한 살결은 그네들의 내부 생활을 너무도 뼈지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는 인화 자신도 연해 양복벌이나 얻어입고 절간 놀이나 다니는 체하는 그런 무리의 한 사람임을 느끼는 때에 그는 전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오늘의 힘을 잃으면 내일의 바람도 허무한 것이다. 이 시간이다. 귀중한 이 일 분, 일 초다’ 하고 아까 최일천의 죽음에서 받은 쇼크를 또 받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차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 아직도 아름다운 계집과 단술과 친구들과 떠들던 버릇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쓰라리고 무거운 가슴을 만지면서 고민하다가 여름 시외의 푸른 경치에 팔려 버리었다. 스치는 바람에 잔물결을 짓는 나락판이며 흰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먼 산들 그리고 맑은 볕과 광활한 문밖 하늘은 청춘의 마음을 미칠 듯이 자유롭게 끌어당기었다.
 
 
90
두 눈에서 술이 흐를 듯이 취한 박인화가 자동차에 실리어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 큰길에 이른 때는 그날 밤에 새로 한시가 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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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부터 일어난 바람은 열 두시가 가까와서 소낙비를 몰아치었다. 파란 번갯불이 탐조경 빛발같이 먼 산까지 보이도록 창살 같은 빛발 속을 스치자마자 산천이 뒤집히는 듯한 우뢰 소리가 흐릿한 그의 귀를 간간이 때리었다. 그는 영도사에서 누가 어떻게 자동차에 담아 주었는지 전연히 몰랐다. 술취한 흐린 정신에도 몸이 흔들리고 중심을 잃은 것이 느끼어지었던지 눈을 떠 보니 자동차 속에서 들었었다. 그는 갈 대로 갈 데까지 가거라 하고 쓰러지면서 차체의 동요가 심하니까 입과 콧구멍으로 먹은 것을 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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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이 사람 정신차리게……. 자…… 어서 뛰어들어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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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자기 집앞에 오서 어떤 친구가 흔드는 바람에 차에서 비틀비틀 내리어섰다. 그는 비틀걸음을 치면서 골목으로 헤어나가 대문 안에 들어서니까 물에서 건지어 놓은 쥐가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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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하고 찬비를 맞은 까닭인지 정신은 좀 돌아서는데 두통이 나고 가슴이 어떻게 구르는지 누워서 견딜 수 없었다. 젖은 양복을 쥐어짜 널어 주는 아내가 곤한 듯이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면서 들어와 머리를 동여 주는 것이 미안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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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두통은 점점 더 심하였다. 왼편 머리는 도끼로 때리어 부수는 것처럼 어떻게 쏘는지 눈알까지 굴릴 수 없었다. 그리고 가슴이 몹시 구르고 어질어질하여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올라오는 구역을 못 참았다. 요, 이불, 방바닥 할것없이 진탕같이 걸죽한 것을 한 말이나 토하였다. 시티하고 구린 냄새가 방안에 넘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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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이 큰일났구료! 국 좀 끓이어드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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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아내의 목소리는 더욱 황송스러웠다. 그는 머리질로 싫다는 뜻을 표하였다. 그의 아내는 세숫물을 떠다 놓고 방바닥을 걸레친 뒤에 자리를 뒤집어 깔아 주었다. 집 식구들은 먹었는지 말았는지 알은 척도 하지 않고 혼자 나가서 고기, 술, 밥에 물린 놈은 지겨워서 토하고 옷까지 망쳐 가지고 들어와서도 머리가 아캐니 가슴이 구르느니 하면서 똥물보다 더 고약한 것을 한방안이나 토해서 항상 주린 배를 다시금 죄이는 집안 식구들까지 못 견디게 구는 것을 생각하면 유구무언이다. 백배 사죄를 해도 시원하지 않겠다. 그러고도 턱하면 식구를 나무라고 의기양양하는 자기의 생활은 생각할수록 너무나 방종하고 이기적이었다. 그런 생각은 지금만 하는 것이 아니요, 가끔 하면서도 생활을 고치치 못하는 자기가 너무도 무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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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은 여전하나 연속적으로 구르는 가슴은 내리었다. 그러나 간간이 두근두근 구르는 때면 숨이 꺽꺽 막히면서 째르르한 아픔을 받았다. 이때 그의 머리를 번개같이 지나가는 어떤 생각에 그는 본능적으로 일어나 앉았다. 심장 약한 사람이 술을 많이 먹으면 심장마비를 일으키기 쉽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 까닭이었다.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지근지근 치면서 심호흡을 하였다. 그의 눈앞에는 뻐드름한 최일천의 시신이 나타났다. 시신은 점점 뚜렷이 나타났다가 다시 흐릿하여지더니 다시 구름 속에 들었던 달처럼 슬근히 나타난다. 다시 나타나는 그 시체는 박인화 자신의 시체이었다. 그 시체는 관 속에 들었다. 그 위에는 천근 같은 흙이 덮인다. 그는 그만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면서 벌떡 일어났다 앉았다. 그리고 심장의 마비나 방지하는 듯이 눈을 부릅뜨면서 심호흡을 하였다. 그것을 보던 그의 아내는 겁이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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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시우? 대단히 괴로우시우? 글쎄 웬 약주를 그리 잡수시오.”
 
100
하면서 드러눕는 그의 머리를 짚어 보더니 냉수에 설탕을 풀어 왔다. 그는 자기가 한 것이 열적은지 아무 대답도 없이 누웠다가 설탕물을 마시고 다시 드러누웠다. 아내가 모르게 심호흡을 하고 심장 있는 쪽을 마찰하면서 은근히 눈앞에 떠오르는 그 흉한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고 하였다.
 
101
짧은 여름 밤은 어느덧 새었다. 날 샐 때에 잠이 든 인화는 아홉시가 넘어서 눈을 떴다. 몹시 울린 뒤의 종 속같이 뗑한 그의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은 모두 꿈만 같았었다. 그러나 의식이 선명하여 올수록 모든 기억은 또렷이 나타났다. 어젯밤 추태를 생각하니 부끄럽고도 우스웠다. 자기 한 사람의 방종으로 애꿎은 식구들까지 못 견디게 굴었다. 무엇 하느라고 가슴을 만지고 심호흡을 하였는가. 심장마비는 예방해서 무엇 하려는가. 자기는 어째서 더 살려고 애썼는가.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더러운 굴욕의 생명을 굴욕 속에서 굴욕적으로 이어 가고자 애쓴 데서 불과하다. 어젯밤 그 더러운 한 장면은 이때까지 계속해 내려온 자기 생애의 축도(縮圖)이었다. 자기는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이 실낱 같은 목숨을 붙이려고 애썼다. 그것은 아무 값 없는 목숨이었다.
 
102
그는 그 목숨이 그저 붙어 있는 것이 기적같이 느끼어지었다. 그까짓 값없이 살아 온 목숨은 하나는 말고 몇 백 만이 끊어진들 우리 인류에게는 무슨 손상이 되랴. 그런 목숨이 새로 솟는 햇발을 갖게 된 것만 감사하고 죄송한 일이다. 이 감사하고 죄송히 받은 목숨을 어떻게 새로 살리고 새로 늘릴 것인가?
 
103
“이 시간이다. 자기의 삶에 의의(意義)있는 행복을 당길 것도 이 시간이요, 자기의 존재를 없앨 것도 이 시간이다. 내일은 바람[望]이요, 지금은 힘이다. 지금의 힘을 잃으면 내일의 바람도 허무한 것이다. 사람은 일 분이면 일 분, 일 초면 일 초, 그 일 분 일 초를 살았거든 살아 있는 그 힘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뒤로 미루지 말라. 그것이 참말로 그대가 소유한 유일무이의 생명인 줄 모르는가.”
 
104
하고 어제 시신을 보면서 느낀 생각이 다시 그의 머리를 지나갔다. 그는 그로도 모를 충동에 벌떡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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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오는 아침 햇발과 맑은 바람은 약동하는 그의 새 생명을 무한한 세계로 끌어올리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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