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나 바이플레이어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성격은 건실한 또는 애정 문제에 얽힌 사람보다는 역시 인간의 정기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다소 부정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물론 이러한 상태에 있어서 영화 속의 인물들은 자신이 저지른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무척 고민도 하고, 그것을 숨기려고 애도 쓰니깐 관객인 우리들은 이들을 동정할 경우도 많은데, 그것을 동정이나 찬성의 입장을 떠나서라도 나는 지극히 좋아하는 것이다.
3
지금은 죽고 스크린에서 사라진 존 가필드의 영화 「사랑의 공포」를 볼 때 나는 한없이 그에게 매력을 느낀다. 영화는 별로 우수한 것이 아니었으나, 경찰관을 실수로 죽이고, 마침 숨은 집이 범죄 후 풀pool에서 만난 여자의 집이다. 그 집에서 지낸 2일간에서도 그는 어떻게 하든지 도망치려고 애를 쓰는데, 여기에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미한 생에 대한 ‘희망’을 그려보는 인간의 발악적인 마지막 고뇌가 나의 가슴을 찌른다.
4
「제3의 사나이」에서도 해리 라임으로 나오는 오손 웰즈도 잊을 수 없는 주인공의 하나다. 모순과 무질서, 그리고 강하고 남을 속이는 자만이 잘살 수 있는 현대를 축소한 듯한 것도 비엔나에서 라임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페니실린을 위조하여 그것을 사용한 여러 부녀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자신의 행동을 긍정하면서도 옛날 친구에 대한 우정에는 변함이 없다. 대차륜(大車輪)에서 친구와 만나기 위해 위협함도 겁내지 않고, 웃음을 띠고 태연히 걸어오는 라임의 모습이나 어두운 언덕에서 담배를 피워물고 레스토랑을 내려다보는 라임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그 인상적인 표정을 투영해 주는 것이다.
5
마지막 그가 두 손을 ‘맨홀’에서 내밀고 아래서 총을 겨누고 있는 조셉 코튼을 바라볼 때의 냉정한 체념에 가까운 얼굴은 모든 불길했던 인생의 최후적인 순간의 모습을 그가 혼자서 상징해 주는 것이 아닐까.
6
「황금의 관(冠)」에서의 루카(클라우드 도판)와 만다(세르주 레지아니)도 근래에 본 중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볼 때 마치 그들과 함께 그룹이 되어 19세기 말엽의 파리의 뒷골목을 함께 걸어다니고 행동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욕과 음울이 지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서로 갈등하는 인생의 어느 한 단면은 언제나 잊을 수 없는 나의 마음 한구석의 세계이다. 이 영화의 피날레, 즉 경찰서 내에서 추격해 온 루카를 향하여 총을 쏘는 만다 그리고 그가 쓰러진 후 모자를 벗고 땀을 씻는 만다의 얼굴……, 이것은 오랜 동안 다른 영화가 묘사치 못한 훌륭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7
이외에도 많은 감명적인 인물과 장면이 있으나, 여기에 그것을 다 적을 수도 없고 단지 몇 가지의 예만 들었으나, 앞으로 내가 보고 싶은 것은 「공포의 보수」이다. 그 시나리오를 읽은 후 나는 오랫동안 정신이 없었다. 모두 등장하는 인물은 다른 세상에서 버림받고, 인간의 마지막 토지를 찾아온 사람들이며, 그들은 그곳에서 또다시 떠나기 위하여 갖은 최선을 노력했으나, 끝끝내 그 절박된 것을 뛰어넘지 못하고 죽고 마는 것이다. 이런 인물의 등장은 내가 지금까지 기다리고 바라던 영화의 세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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