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금 막 고베를 떠나려고 합니다(9일 7시). 앞으로 적어도 20일간은 당신에게 편지 못 합니다.
3
잘 있으시오. 조금도 잊지 않습니다. 사랑합니다.
6
선창에서 눈부시게 고베의 네온이 보입니다.
13
13일간의 항해를 오늘 밤으로 끝마치고, 내일 아침에는 시애틀에 도착합니다. 4, 5일간은 뱃멀미로 고생했으나, 지금은 좋아졌고, 걱정은 잠을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자지 못해서 큰일입니다. 집안일은 어찌 되어가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으나, 알 길도 없고, 그저 낙관주의로 지내기로 했습니다.
14
세형, 세화, 세곤이나 잘 놀고 있습니까? 밤마다 당신과 애들을 꿈에 보고 헛소리를 합니다. 참으로 보고 싶습니다. 미국에 거의 20여 일이나 머물다가 한국에는 늦어도 4월 말까지 돌아갈 것이니 그때 즐겁게 만납시다. 집안이 무척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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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에서는 하는 일이 없어서 하루에 책을 두 권가량 읽으며, 영어 공부도 제법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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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형이 학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수송국민학교에 보내시오. 식모는 구했습니까? 얼마나 혼자서 애를 쓰는지. 이젠 돌아가면 절대로 고생시키지 않을 작정이며, 당신의 애정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내일 육지에 올라가 또 쓰겠습니다.
21
22일 새벽 4시, 우리들의 배는 빅토리아섬과 워싱턴주의 좁은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그 지점은 붉고 푸른 등화로써 배의 진로를 가리켜주는 케이프 플레터리라는 곳이며 캐나다와 미국과의 접경 사이를 배는 지나가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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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자 유달리도 붉은 태양은 바다에 그 모습을 반사시키고 대안을 두고 미국과 캐나다의 고요한 산과 집이 전망되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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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삼림, 호수와 같은 조용한 바다, 적과 백으로 이룬 인간의 가옥, 벌써 연기가 흐르는 집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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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먼저 올림피아시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길게 뻗쳐져 있는 시애틀항 앞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침 8시의 태양은 그 거리의 고층 건물을 내리쬐고 있고, 우리들은 추위도 모르고 황홀히 그곳을 바라다봅니다. 해변가에 꿈에 나타나는 집처럼 아름다운 미국의 농촌이 보입니다. 택시가 어느 집마다 그 뜰 앞에 한두 대는 꼭 있습니다. 한 한 시간쯤 시간이 지나간 후 정확히 말하자면 9시 35분, 배는 섬과 육지 사이에 가로놓은 길이 2000미터 가량 되는 다리 아래를 지나갔습니다. 그 웅장하고 우미한 다리의 모습은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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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11시 45분에 올림피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워싱턴주의 수부이며, 인구는 그리 얼마 많지 않은 곳입니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상륙 수속 때문에 하루를 배에서 자고 23일 상륙했습니다. 이곳에 2, 3일 있은 후 터코마, 에버렛을 거쳐 포틀랜드에 가겠으니, 그땐 꼭 당신의 편지 받았으면 합니다. 그동안 한 한 달 동안만 참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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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가면』(근역서재, 1982)
31
오늘은 3월 28일입니다. 그동안 올림피아와 터코마와 시애틀, 애버렛을 거쳐 오늘 포트엔젤레스로 갑니다. 아무 일 없습니다. 당신 스프링(북한어로, 주로 뜨개천으로 만들어 속에 받쳐입는 소매가 짧은 셔츠 ─ 편집자)과 사이즈를 몰라 양복지를 샀습니다. 어린애들 것도 모두 샀습니다. 집의 생각이, 더욱이 당신 생각이 간절합니다. 돈도 거의 떨어져서 마음이 쓸쓸합니다. 세형, 세화, 세곤이에게 뽀뽀합니다. 4월 5, 6일경 포틀랜드에 갔다가 8, 9일경에는 향한(向韓)이 될 것입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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