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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흥덕왕(興德王)의 휘는 처음에 수종(秀宗)이라 하셨으나 뒤에 경휘(景徽)라고 고치시었다. 즉위하신 그 해 12월에 왕비 장화 부인(章和夫人)이 승하 하시니 왕은 부인을 잊지 못하시고 늘 마음에 슬픈 생각만 가지시어 조그마한 즐거움도 취하시지 아니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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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하들은 왕의 마음에 감복도 하였거니와 어떻게 하여서든지 그 마음을 기쁘게 하여 드리려고 다시 새 왕비를 세웁시사고 왕에게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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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 새도 짝잃은 슬픔을 가지는 것이어늘 하물며 사람이리오. 어찌 차마 무성하게 다시 또 왕비를 세울 수가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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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왕은 끝끝내 신하들의 말을 들으시지도 않을 뿐더러 시녀들에게 까지도 친근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평생에 먼저 간 장화부인을 그리시면서 외로운 탄식을 끊치지 못하시다가 위에 계신 지 11년 동안을 흉년과 온갖 재변까지 맛보시고 마침내 부인이 돌아가신 12월 같은 그 달로서 붕어하시며 마지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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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의 몸은 다른 땅에 외로이 묻지 말고 평생에 그리던 왕비의 무덤에 같이 묻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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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신하들에게 유연까지 계시어 승하하신 몸으로나마 사랑하시던 이 곁으로 가시고야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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