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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실(彈實)이는 단꿈을 깨뜨리고 서어함에 두 뺨에 고요히 굴러 내려가는 눈물을 두 주먹으로 씻으며 백설 같은 침의(寢衣)를 몸에 감은 채 어깨 위에는 양모(羊毛)로 두텁게 직조한 흰 숄을 걸치고 십자가의 초혜(草鞋)를 신고 후원의 이슬 맺힌 잔디 위로 창랑(蒼浪)히 걸어간다. 산뜩산뜩한 맨발의 감각 ─ 저는 파초 그늘 아래에서 어깨에 걸쳤던 것을 잔디 위에 펴고 앉았다. 장미화의 단 향기를 깊이깊이 호흡하며 환상을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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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세상을 못 본 무구(無垢)한 용자(容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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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白), “오오 홍장미화! 나는 동생을 위하여 꿈을 꾸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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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紅), “무슨 꿈? 언니 나도 언니를 위하여 꿈을 꾸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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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 더 빨개지며 “언니는” 하고 상냥히 눈을 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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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데 홍은 초연하여지며 “저어, 아시지요? 남호접(藍胡蝶)을? 그가” 하고는 감히 말을 하지 못하며 머뭇머뭇하는데 백장미는 더 궁금한 표정을 짓는다. 홍은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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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언니 내 이야기는 할 터이니 아무런 일이라도 노하지 않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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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꿈이니 노여워 마시오. 네? 언니, 저어, 꿈에 으응, 남호접 아시지요? 언니 왜 생각이 안 나시오. 내가 아는 나비들 중에 그중 화려하게 생긴 이, 왜 내가 더 피거든 온다고 약속하고 가신 이 말이요. 그이가 왔는데 제게는 아니 오고 저어, 언니께로 왔어요. 그리고 저를 돌아다도 안 보았어요. 그럴 동안에 언니도 저를 돌아다도 안 보시고 아주 득의(得意)스럽게 미소하시지요?” 하고 세상에 있지 않을 일같이,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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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 하고 웃다가 백장미가 “그래 동생이 노여웠나?” 하고 묻는데 홍장미는, “설마!” 하고 더욱 소리쳐 웃는다. 웃음을 그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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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어디선지 아주 참을 수 없는 슬픈 노래가 들리는구려.” 하고 한층 더 귀를 기울이매 홍장미는 영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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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그 노래 누가 하는지 아시오? 저어 해변에 절하듯이 굽어진 산이 보이지요? 거기 망양초(望洋草)라는 이가 창백한 얼굴을 하여 가지고 매일 노래한다오. 나는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어쩐지 눈물이 쏟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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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아, 동생 우리 오늘 심심하니 그를 찾아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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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데 홍은 곧 동의하였다. 백장미의 정(精)과 홍장미의 정은 전후하여 나란히 걸어서 망양초에게 날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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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초는 아주 쾌활히 웃으며 그들을 맞았다. 잠깐 보기에는 아주 비가(悲歌)를 부르던 이로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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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望), “오, 향기로우신 백 씨, 정열가이신 홍 씨, 두 분이 잘 오셨소. 당신들은 젊고 아름답기도 하시오.” 하고 손을 대하여 흔연히 탄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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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망양초 씨, 어쩌면 그런 비창한 노래를 하십니까?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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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노래도 들려주세요.”하고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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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황송합니다.”하는 망양초는 아주 적막에 제친 빛이 보인다. 홍장미는 귓속말로 백장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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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언니, 망양초 씨는 웃어도 웃는 것 같지가 않고 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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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초는 깊은 한숨을 지으며 눈물을 흘린다. 홍장미는 또 백장미에게 쏘개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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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언니 저이 눈에서 피눈물이 떨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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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미는 새파랗게 질리어 망양초에게 “우십니까?” 하고 묻는데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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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눈물이 흐릅니다 그려, 당신들을 대하매 내가 꽃을 피웠던 때를 회억(回憶)하여지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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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리 없이 운다. 홍장미는 또한 쏘개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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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는 저를 이해할 수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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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네가 좀 더 자라 시를 많이 보면 알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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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초 형님, 우리들을 위하여 형님의 노래의 이야기나 들려주셨으면 소원이외다. 우리들은 형님이 그 심히 슬퍼하는 것을 보매 차마 발길이 돌아서지 않는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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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초는 백장미와 홍장미를 가까이 앉히고 그가 젊었을 때에 담홍색의 꽃을 피웠을 때 한 옛적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아주 감개 깊은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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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꽃을 피웠을 때 담홍의 웃는 듯하던 꽃을 탐스럽게 피웠을 때 하루는 남호접이 와서 내 꽃에 머무르고 말하기를 너는 천심(天心) 난만히 울고 웃고 ‘자기’를 정직히 표현한다고 일러주며 후일에 또 올 터이니 이 해변에서 기다리라고 하시지요? 그래서 저는 10년째 하루와 같이 거문고를 타며 매일 기다리지요. 그렇지만 조금도 그가 더디 오신다고 원망도 의심도 아니합니다. 그러나 적적하니까 매일 노래를 합니다.” 하고 머리를 숙이며 눈물을 씻는다. 백장미도 홍장미도 연고를 모르면서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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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양초는 창백하였다가 이연(怡然)히 합장하고 천공을 우러러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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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미는 전신의 혈조(血潮)를 끓이며 백장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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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저기 남호접이 산을 넘어 나를 찾아오나이다. 속히 돌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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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실이는 눈을 번쩍 떴다. 저는 이같이 환상을 그려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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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아침 바람이 산들산들 분다. 잔파(潺波)를 띄우고 미소하는 청공(靑空), 상쾌히 관현악을 아뢰는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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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의 병에 우는 탄실의 눈물‥‥‥ 초엽(草葉)에 맺힌 이슬이 조일(朝日)의 광채를 받아 진주(珍珠)같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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