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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적 현실의 논고 - 창작방법과 작가의 세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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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8.17~
이병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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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的現實의 論考[조선적 현실의 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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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創作方法[창작방법]과 作家[작가]의 世界觀[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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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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藝術[예술]에 있어서 世界觀[세계관]은 藝術[예술]의 內容[내용]이며 藝術家[예술가]에게 있어서 世界觀[세계관]이란 藝術創作[예술창작]의 方法[방법]인 것이다. 作家[작가]는 어떠한 作品[작품]에 있어서 그 어떠한 題材[제재]에 依[의]하야 自己[자기]의 世界觀[세계관]을 吐露[토로]하며 表明[표명]하는 것인가, 어떠한 題材[제재]를 選擇[선택]하야 그것을 全體[전체]와의 어떠한 關聯[관련]을 시킬까, 그것의 現代[현대]에 있어서 社會的[사회적] 道德的[도덕적] 意義[의의]를 如何[여하]히 보나 하는 것은 作家[작가]가 가진바 世界觀[세계관]이 決定[결정]하는 것이며 創作方法[창작방법]에 依[의]해서는 조금도 決定[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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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觀[세계관]이란 嚴正[엄정]한 科學的[과학적] 立場[입장]에서 確立[확립]되여야 하는 同時[동시]에 實[실]로 天才的[천재적]인 洞察[통찰]을 가져야 한다. 어떠한 人間[인간]이든 世界觀[세계관]을 안 가진 者[자]는 없다. 가지기는 하였지마는 그 世界觀[세계관]이 科學的[과학적]이냐 아니냐 하는 問題[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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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課題[과제]된 『리알리즘』에 있어서도 問題[문제]의 核心[핵심]과 『포인트』는 實[실]로 『리알리틕』하게 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떠한 見地[견지]에서 쓸까 하는 것이 問題[문제]인 것이다. 어떻게 쓰느냐 하는 데는 勿論[물론] 創作方法[창작방법]이 應答[응답]할 것이다. 그것은 리알리틕하게 쓰라고! 그러나 그 리알리틱하다는 것이 現實[현실]대로 보고 쓰는 가운데도 歪曲[왜곡]됨과 正當[정당]함이 있는 것이니 이것은 實[실]로 現實[현실]을 對[대]하는 作家[작가]의 世界觀[세계관]에 依[의]하야 現實[현실]의 科學的[과학적] 洞察[통찰]과 歪曲[왜곡]된 非科學的[비과학적] 洞察[통찰]이 있을 것이다. 꼭 같은 現實[현실]일지라도 보는 사람의 世界觀[세계관]의 如何[여하]에 依[의]하여 검게도 보일 것이며, 희게도 보일 것이다. 作品[작품]에 있어서는 但只[단지] 그것을 幻想的[환상적]으로 썼는가 克明[극명]히 描寫[묘사]하였는가 하는 데보담 그것이 如何[여하]한 題材[제재]를 如何[여하]히 取扱[취급]하였나 하는데 作品[작품]의 藝術的[예술적] 價値[가치]를 決定[결정][당]하는 것이다. 여기에 어떠한 作家[작가]가 朝鮮[조선]의 現實[현실]에 있어서 代表的[대표적] 表情[표정]인 農村[농촌]을 描寫[묘사]한다 하자. 여기에 世界觀[세계관]이 問題[문제]되는 同時[동시]에 作品[작품]의 生死[생사]를 判決[판결]할 重要[중요]한 作家[작가]의 洞察力[통찰력]이 問題[문제]된다. 科學的[과학적] 世界觀[세계관]을 具有[구유]치 못한 作家[작가]의 눈에는 朝鮮[조선]의 農村[농촌] 別道理[별도리] 없는 곳이며 그것은 一沫[일말]의 光明[광명]도 찾을 수 없는 地獄[지옥]일 것이다. 이리하여 그 作家[작가]가 보이는 그대로 그의 天才的[천재적] 描寫[묘사] 手法[수법]으로 作品[작품]을 生産[생산]하였다 하자. 그렇다면 그것이 리알리틱한 作品[작품]이 아니라 그것은 現實[현실]을 歪曲[왜곡] 시켰다고 볼 수 잇다. 그 世界觀[세계관] 自體[자체]가 歪曲[왜곡]되였으니 그 보는 바 視覺[시각]이 다르며 그 보이는대로 한 것이 作品[작품]의 結果[결과]일 것이니 作品[작품]의 價値[가치]로 보아 零[영]에 가까운 것이다. 왜 그러냐하면 科學的[과학적]으로 朝鮮[조선]의 農村[농촌]을 洞察[통찰]한다면, 다시 말하면 科學的[과학적] 世界觀[세계관]을 가진 作家[작가]가 이 現實[현실]을 洞察[통찰]할 때면 前者[전자]와 다른 角度[각도]로 보일 것이다. 그것은 人間[인간]과 自然[자연]과의 對立[대립]으로 하여금 어찌할 道理[도리]가 없고 그 禍[화]를 克服[극복]시킬 方法[방법]이 없는 實[실]로 不可避[불가피]할 것이나 그것은 보담 高揚[고양]된 文化的[문화적] 武器[무기]가 그들에게 있었다면 能[능]히 自然[자연]의 威嚴[위엄]을 征服[정복]하고 어느 程度[정도]의 禍[화]를 免[면]할 것이며 現出[현출]치 않으면 안 될 化學方程式[화학방정식]에 아까운 必然[필연]일 것이며, 이 現實[현실]이란 작가가 볼 수 있던, 없던 間[간]에 確實[확실]히 그 獨自的[독자적] 軌道[궤도]를 걷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意味[의미]에서 世界觀[세계관]이란 創作方法[창작방법]의 本質的[본질적] 契機[계기]인 同時[동시]에 이것의 工學的[공학적] 確立[확립]을 强調[강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X光線[광선]이 이 人體[인체]의 細胞[세포] 사이를 投射[투사]하야 그것의 살을 뚫고 그 속을 正當[정당] 明確[명확]히 비치어내듯이 科學的世界觀[과학적 세계관]만이 實現[실현]의 批判[비판]의 正鵠[정곡]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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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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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함으로 近者[근자]에 世界觀[세계관]이 確立[확립]되지 못한 ─ 科學的[과학적] 世界觀[세계관]을 가지지 못한 一連[일련]의 評論家[평론가]나 作家[작가]들은 急潮[급조]처럼 밀리는 不安[불안]속에서 自己[자기]의 가질 바 態度[태도]와 行動[행동]을 잃어버리고 그것을 逃避[도피]하거나 自己[자기]의 歪曲[왜곡]을 合理化[합리화]시키기 爲[위]한 窮餘策[궁여책]으로 朝鮮的[조선적]이란 武器[무기]를 가지고 나왔다. 進步的[진보적]인 文化[문화]의 싹 위에 그 特有[특유]한 毒水[독수]를 뿌렸다. 이러한 空氣[공기]의 波濤[파도]에 밀리여 『復古的[복고적]』이데오르기 ― 가 擡頭[대두]하였다. 無批判[무비판]의 復古主義[복고주의] ─ 古典[고전]의 無批判[무비판]적 繼承[계승]과 아울러 『朝鮮的[조선적]』이란 大衆[대중]의 눈을 어둡게 할 灰色的[회색적] 스로 ― 간을 가지고 나왔다. 아무리 混沌[혼돈]되였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混沌[혼돈]되였을 때는 없다. 그것은 文學[문학]만이 아니라 文化[문화] 全體[전체]에 亘[긍]하야 그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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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進步的[비진보적] 藝術家[예술가], 評論家[평론가] 들은 카프의 消滅[소멸]을 拍手[박수]하고 文學[문학]의 黨派性[당파성]을 옛날의 老論小論[노론소론]으로 解釋[해석]하고 自己一流[자기일류]의 强篳[강필]로 文學[문학]의 黨派性[당파성]이란 朝鮮文學[조선문학]을 分散[분산]시키고 망쳐놓았다고 大聲怒呼[대성노호]하며 急造[급조]의 政黨的[정당적]이며 政黨然[정당연]하게 『文學家協會[문학가협회]』란 거룩한 團體[단체]를 發起[발기]하고 그들의 文壇的[문단적] 失地[실지] 回復[회복]을 꾀하고 있다. 이것은 한個[개]의 貴[귀]여운 動作[동작]의 表情[표정]이며 性格[성격]의 發露[발로]로 보아 우리는 注祝[주축]와 警戒[경계]를 今後[금후]에 約束[약속]하거니와 過去[과거]의 進步的[진보적] 作家然[작가연]하던 一連[일련]의 作家[작가]와 評論家[평론가][중]에도 이 亞流[아류]와 惡症的[악증적]인 熱病[열병]에 걸려 狂犬[광견]처럼 날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作家[작가]는 創作[창작] 以前[이전]의 世界觀[세계관]을 허수히 하였으며 評論家[평론가]는 評論[평론] 以前[이전]의 世界觀[세계관]을 허수히하야, 新興[신흥] 文學[문학]을 한 개의 流行[유행] 乃至[내지] 一時的[일시적] 潮流[조류](洪曉民氏[홍효민씨]의 朝鮮農民文學論[조선농민문학론])로 알고 아무런 科學的[과학적] 知識[지식]과 經驗[경험]의 批判[비판]에서 세운 確乎[확호]한 世界觀[세계관]도 없이 傾向的[경향적] 口吻[구문]과 熱語[열어]를 備用[비용]함으로써 新興藝術運動[신흥예술운동]의 一人[일인]이 될 光榮[광영]을 享樂[향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前者[전자]의 反動的[반동적] 復古主義[복고주의] 크릅은 벌써 렛텔을 부친 지 오래며 그들은 다만 適時適處[적시적처]의 그들의 本色[본색] 發揮[발휘]일 것이요 따라서 그들의 『가라구리』를 大衆[대중]이 正直[정직]하게 알고 있으나 第二[제이]의 朝鮮的[조선적]인 亞流[아류]는 이것이 過去[과거]에 그 글이 카프의 成員[성원]이라는데 있어서와 그것이 似而非的[사이비적] 保護色[보호색] 올 所持[소지]한 만큼 危險性[위험성]이 더 많고 反動的[반동적] 結果[결과]의 量[양]이 더할 것이다. 그들은 實[실]로 朝鮮的[조선적]인 幸福[행복]을 가졌고 따라서 朝鮮的[조선적]인 悲劇[비극]의 武器[무기]를 가졌다. 그것은 恰似[흡사]히 朝鮮[조선]이란 것이 世界[세계]와는 因線[인선]이 먼 虛空[허공]의 것으로 出發[출발]한다. 創作方法[창작방법]의 檢討[검토]에 있어서도 그들은 새로운 리알리즘이 外國[외국]에서 낳고 그것이 東京[동경]을 거쳐 朝鮮[조선]에 들어온 한 개의 流行物[유행물]로 認識[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一流[일류]의 排他的[배타적] 口吻[구문]과 朝鮮的[조선적]인 催淚銃[최루총]을 가지고 性急[성급]히 擡頭[대두]한다. 그들은 외국의 새로운 리알리즘이 提唱[제창]된 것을 朝鮮[조선]에 直移植[직이식]시키는 것은 不可[불가]하다. 外國[외국]의 會社體制[회사체제]와 朝鮮[조선]과 다르니 創作方法[창작방법]도 새로운 리알리즘도 不可[불가]하다. (略[략]) 이것은 一見[일견] 正當[정당]한 것 같으면서도 其實[기실] 公式[공식]인 文字[문자]의 奴隸[노예]가 되고 있는 것이니 要[요]는 새로운 리알리즘의 本質[본질]을 모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알고도 意識的[의식적]으로 混沌[혼돈]을 가져오려고 하는 것이나 또 그렇지 않으면 남의 글을 보는데 躁急[조급]히 反駁[반박]하기 爲[위]한 誤謬[오류]이나 세 가지 中[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서 누구 말이 옳고 누구 말이 그르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어느 句節[구절]은 옳고 어느 句節[구절]은 그르다고 말하기보담 차라리 새로운 리알리즘에 對[대]한 내 個人[개인]의 所感[소감]을 披露[피로]함으로써 이 問題[문제]의 果敢[과감]한 檢討陳[검토진]에 參加[참가]할 光榮[광영]을 얻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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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그들은 『새로운 리알리즘』을 否認[부인]하기 爲[위]하야 그들 常套手段[상투수단]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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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發生的[발생적] 條件[조건]을 判異[판이]한 外國[외국]의 社會體制[사회체제]와 朝鮮[조선] 그것과를 混同[혼동]한 觀念主義的[관념주의적]인 移植行動[이식행동]』을 미워하였다. 勿論[물론] 여기서는 아무리 좋은 飮食[음식]과 營養劑[영양제]가 있더라도 그것을 남의말만 듣고 無條件[무조건]하고 먹는다는 것은 愚[우]의 極[극]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리알리즘』이 아무리 좋은 方法[방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無條件[무조건]하고 移植[이식]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同時[동시]에 그것을 正當[정당]히 認識[인식]치 못하고는 移植[이식](正當[정당]한 意味[의미]에서) 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의 移植[이식]에의 反對[반대]가 但只[단지] 外國[외국]의 社會體制[사회체제]와 朝鮮[조선]의 그것이 다르다는 데 있어서는 啞然[아연]할 따름이다. 이것은 一言[일언]으로 答[답]하면 外國[외국]의 藝術創作方法[예술창작방법]만이 아니라 國際性[국제성]의 一環[일환]으로서의 外國[외국]에서 提唱[제창]한 創作方法[창작방법]인 것이다. 이것의 國民的[국민적] 特質[특질]과 國際性[국제성]의 眞實[진실]한 理解[이해]가 必要[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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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말은 國民的[국민적] 特質[특질]만을 躁急[조급]하게 吸收[흡수]하고 國際性[국제성]은 잊어버리었음으로써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勿論[물론] 새로운 리알리즘이 發生[발생]되었다기보담 提唱[제창]된 것은 外國[외국]이다. 그리고 外國[외국]의 社會體制[사회체제]와 朝鮮[조선]은 다르다. 그러나 새로운 리알리즘이 外國[외국]의 體制[체제]속에서 낳다는 것은 그들 反對論者[반대론자]들이 말하는 特別[특별] 取扱[취급]할 그러한 根據[근거]는 없다.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요 ― 略[략] 外國[외국] 新興部隊[신흥부대]는 豊富[풍부]한 經驗[경험]과 過去[과거]의 文學的[문학적] 遺産[유산]의 批判[비판]과 自由[자유]스러운 文藝科學[문예과학]의 硏鑽[연찬]위에서 他國[타국]의 어디보다도 高度[고도]의 發展[발전]을 하였고 그것이 이러한 社會的[사회적] 土壤[토양] 우에서 發生[발생]치 않았다면 그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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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새로운 리알리즘의 當面[당면] 命題[명제]로서 外國[외국]과 朝鮮[조선]이 달리하는 것은 事實[사실]이다. 이것을 가지고 그 創作方法自體[창작방법자체] 를 反對[반대]한다는 것은 確實[확실]히 根本的[근본적]으로 認識[인식]이 不足[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外國[외국]의 그것의 當面命題[당면명제]는 『建設[건설]에 있어서 作家[작가]는 새로운 리알리즘의 創作方法[창작방법]의 武器[무기]를 가지고 寄興[기흥]할 것』을 要求[요구]하였다. 이것은 ○○外[외]에는 適用[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나라를 勿論[물론]하고 新興作家[신흥작가]는 自己階級[자기계급]의 課題[과제]에 대하여 忠實[충실]하여야 할 것만은 共通[공통]된 命題[명제]이고 이것을 모르고 그들 反對論者[반대론자]는 外國[외국]의 社會體制[사회체제]와 朝鮮[조선]이 다르니 새삼스리 『辨證法的[변증법적] 리알리즘』이 必要[필요]하다고 大聲怒號[대성노호]하였다. 그러나 外國文壇[외국문단]에 提唱[제창]된 그 創作方法[창작방법]이 外國[외국]을 中心[중심]삼아 다시 말하면 國民的[국민적] 特質[특질]이 있다 하자. 그러나 그것에만 注意[주의]하고 다른데는 注意[주의]치 안함은 實[실]로 이 問題[문제]의 解決[해결]를 그르치는 原因[원인]이라는 것이다. 너무나 近祝的[근축적]인 것이다. 外國[외국]에서 出現[출현]된 創作方法[창작방법]이 그 나라의 當面課題[당면과제]에 結合[결합]되었다고 다른 나라에서 通用[통용]못될 것은 없다. 勿論[물론] 外國[외국]에서 唐麵命題[당면명제] 그대로 通用[통용]할 수는 없다고 하여 根本自體[근본자체]를 反對[반대]할 수 있을까. (略[략]) ― 그것은 勿論[물론] 스태로타입 그대로 外國[외국]에 通用[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各[각] 自國[자국]의 現實[현실]에 立脚[입각]하여 그것의 獨自的[독자적]으로 行爲[행위]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略[략]) ― 各國[각국]의 民族的[민족적] 現實[현실]에 適應[적응]되여 各各[각각] 具體的[구체적] 코 ― 스에 있어 通用[통용]되는 略基礎的[약기초적] 母體[모체]가 되는 것과 同一[동일]한 意味[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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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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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알리즘의 根本內容[근본내용]을 理解[이해]하기 爲[위]하여 우리는 그것의 形式[형식]과 創造[창조]의 淵源[연원]에 對[대]하야 鎭重[진중]히 考察[고찰]할 必要[필요]에 當面[당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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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聯作家同盟[련작가동맹]의 規約[규약]에는 여기 對[대]하야 다음과 같이 採擇[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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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의 數年間[수년간] 소베 ― 트 藝術文學及[예술문학급] 文學批評[문학비평]은 그 새로운 創造的[창조적] 原則[원칙]을 創造[창조]하였다. 이 創造的[창조적] 原則[원칙]은 一方[일방]에서는 過去[과거]의 文學遺産[문학유산]의 批評的[비평적] 攝取[섭취], 他方[타방]에서는 새로운 文化成長硏究[문화성장연구]의 土臺[토대]로서의 새로운 사회주의적 리알리즘의 原則[원칙]속에 그 主要[주요]한 表現[표현]을 發見[발견]하였다.(나우카版[판] 소作家同盟規約第二五四頁[작가동맹규약제254혈]〉卽[즉] 새로운的[적] 리알리즘의 創作方法[창작방법]의 基本的[기본적] 發生源泉[발생원천]을 새로운 文化[문화]의 成長[성장]에 두었다. 이것은 흔히 그 創作方法[창작방법]이 소同盟[동맹] 一國[일국]에 限[한] 하야 奉信[봉신]할 수 있는 代辨[대변] 같으나 그러나 그것을 조금 冷情[냉정]히 深奧[심오]하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첫째 ××××文化[문화]와 푸로레타리아 文化[문화]와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어버이와 아들의 血族的[혈족적] 關係[관계]를 찾을 수 있다. 소同盟[동맹]의 今日[금일]의 命題[명제]이며 現實[현실]인 새로운 文化[문화]란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며 天地奐出[천지환출]의 神話的[신화적] 出現[출현]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文化[문화]의 發展的[발전적] 基盤[기반]위에만 成立[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文化[문화]는 새로운 文化[문화]의 合法則的[합법칙적] 廷長[정장]이며 儼然[엄연]한 歷史的[역사적] 妥當性[타당성]을 가진 것이다. (이 가운데 實[실]로 唯物辨證法的[유물변증법적] 飛躍[비약]과 止揚[지양]이 있었던 것은 勿論[물론]이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資本主義體制[자본주의체제] 밑에서 發生[발생]하고 있으며 發生[발생]한 ×× 새로운 文化[문화]가 蘇聯[소련]의 發展[발전]된 새로운 文化[문화]의 母體[모체]이며 基盤[기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가장 重要[중요]한 이 새로운 創作方法[창작방법]을 理解[이해]하는 자물쇠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리알리즘의 發生淵源[발생연원]의 하나가 새로운 文化[문화]의 成長[성장]속에 있다 하여 文字[문자] 그대로 躁急[조급]하게 새로운 文化[문화]의 範圍[범위]를 蘇聯[소련]의 社會的[사회적] 體制[체제]에만 넣어서 말하는 誤謬[오류]를 犯[범]하야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그것은 언제든지 그것의 前身[전신]이며 母體[모체]이며 基盤[기반]인 새로운 文化[문화]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되며 그리함으로서 참된 唯物辨證法的[유물변증법적] 考察[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음의 創造淵源[창조연원]은 藝術及文學[예술급문학]의 過去[과거]의 全歷史[전역사] 過去[과거]의 文學的[문학적] 遺産[유산]의 批判的[비판적] 攝取[섭취]에 있다 하였다. 이곳에 우리가 主意[주의]할 것은 遺産[유산]의 批判的[비판적] 攝取[섭취]에는 아무런 制約[제약]이 없이 모든 過去[과거]의 作家[작가]와 作品[작품]으로부터 우리에게 지금 所用[소용]되는 文學的[문학적] 營養素[영양소]를 廣範[광범]히 攝取[섭취]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리알리즘의 達成[달성]과 ××를 爲[위]해서는 리알리스트의 遺産[유산]과 로맨틔스트의 遺産[유산]까지도 攝取[섭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의 學說[학설]이 哲學經濟學及[철학경제학급] 社會主義[사회주의]의 過去[과거]의 代表者[대표자] 學者[학자]로부터 攝取[섭취]한 『直線的[직선적]이며 直接[직접]의 繼續[계속]』인 것과 같이 새로운 리알리즘도 과거의 社會[사회]와 封建社會[봉건사회]를 莫論[막론]하고 過去[과거] 全歷史[전역사]의 文化的[문화적] 蓄積[축적]의 合法則的[합법칙적] 發展[발전]인 同時[동시]에 『直線的[직선적]이며 直接[직접]의 繼續[계속]』인 것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쎅트도 存在[존재]치 안한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이 새로운 創作方法[창작방법]은 過去[과거]의 一切[일절] 藝術的[예술적] 方法[방법]에 對立[대립]하면서도 그것을 辨證法的[변증법적] 否定[부정]에서 成立[성립]된 새로운 文學創作方法[문학창작방법]이란 結論[결론]을 없기에 躊躇[주저]치 안한다. 다시 말하면 人類歷史[인류역사]의 過去[과거]에 잇서 發生[발생]하야××××××××에서 아무런 拘束[구속]없이 發達[발달]되는 새로운 文學[문학]의 創作方法[창작방법]인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反對論者[반대론자]로부터 提供[제공]된 『××××××와 ××××體制[체제]의 相違[상위]』를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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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개와 고양이』의 差[차]가 있고 물과 불의 相違[상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대로 同一[동일]한 立場[입장]에 있어서 現實[현실]이 달라질 때마다 文學的[문학적] 再現[재현]의 方法[방법]이 갈려야만 된다면(例[예]를 들면 一次[일차] 五個年[오개년] 計劃時[계획시]에는 새로운 리알리즘을 奉信[봉신]하고 二次[이차] 五個年[오개년] 計劃時[계획시]인 까닭에 또 다른 리알리즘을 가진다 云云[운운])우리는 大體[대체] 이 急潮[급조]히 變[변]하는 現實[현실]에 對[대]하야 몇 百個[백개]의 創作方法[창작방법]을 가져야 할 것인가. 새로운 리알리즘으로부터 새로운 리알리즘에 옮겨오게 된 것이 蘇聯[소련]의 一次[일차] 五個年[오개년] 計劃[계획]이 二次[이차] 五個年[오개년] 計劃[계획]으로 現實[현실]이 옮겨왔다고 變更[변경]되었으니 朝鮮[조선]에는 創作方法[창작방법]과 새로운 리알리즘이 妥當[타당]하다고 말한다. 大體[대체] 그러면 소同盟[동맹]의 一次[일차] 五個年[오개년] 計劃[계획]때는 소同盟[동맹]에서 辨證法的[변증법적] 리알리즘이 새로운 리알리즘으로 옮겨왔다는 것은 現實[현실]의 相異[상이]보담도 創作方法[창작방법]의 高揚[고양]된 發達[발달]이며 보담 正當[정당]한 그것으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文學[문학]의 發生當初[발생당초]부터 發展[발전]하기 始作[시작]하였으며 따라서 發展[발전]되고 있는 것이다. 創造[창조]한 모든 것의 繼承者[계승자]가 되여 그 不必要[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모든 必要[필요]한 것을 完成[완성]하며 移用[이용]하야 自己[자기]의 利益[이익]에 奉仕[봉사]한다는 것은 眞實[진실]이며 그것은 참된 生活[생활]의 辨證法[변증법]인 것이다』(베유 ― 친) ― 規約[규약]에 對[대]하야 二四三頁[이사삼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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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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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盛[성]히 誤解[오해]받고 있는 創作方法[창작방법]에서 새로운 리알리즘에 옮겨 온 理論的[이론적] 根據[근거]를 캐보기로 하자. 첫째 辨證法的[변증법적] 리알리즘의 誤解[오해]와 創作方法[창작방법]으로서는 未備[미비] 不完全[불완전]이 어디 있었는가 하면 『現實[현실]을 深刻[심각]히 正當[정당]하게 描寫[묘사]하야낼 길을 作家[작가]와 現實[현실]과의 사이의 實踐的[실천적] 相互關係[상호관계]의 過程[과정]에서 찾지 않고 새로운 世界觀[세계관]의 學究的[학구적] 習得[습득]에서 찾음으로 作家[작가]의 世界觀[세계관]의 再敎育[재교육]이란 封建的[봉건적]이며 啓蒙的[계몽적]인 指示[지시]』밖에 주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 指示[지시]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섹트와 誤謬[오류]를 犯[범]하였고 이것을 참되게 批判淸算[비판청산]치 못하였음으로써 創作上[창작상] 許多[허다]한 困難[곤란]과 따라서 創作[창작]과 評論[평론]의 不振[부진]을 가져왔던 것이다. 여기에 反[반]하여 새로운 리알리즘은 作家[작가]와 現實性[현실성]과의 相互關係[상호관계]속에 卽[즉] 作家的[작가적] 實踐[실천]속에 現實[현실]의 正當描寫[정당묘사]의 根本的[근본적] 契機[계기]뿐만 아니라 正當[정당]한 世界觀[세계관]을 찾아내는 契機[계기]를 發見[발견]하게 함으로써 作家[작가]의 創意性[창의성]과 創作的[창작적] 自由[자유]에 對[대]하여 아무런 偏見[편견]도 없는 廣範[광범]한 水門[수문]을 열어 준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리알리즘의 辨證法的[변증법적] 리알리즘에 對[대]한 優位性[우위성]인 것이다. 이러함으로써 전에 말한 바와 같이 前者[전자]의 보담 高揚[고양]된 方法[방법]으로서 새로운 리알리즘이 提唱[제창]된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유 ― 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새로운 리알리즘은 쏘베 ― 트 文學[문학]의 기본적 방법이다. 이 方法[방법]은 푸로레타리아의 世界觀[세계관]에 依據[의거]하야 있다. 새로운 리아 世界觀[세계관]이 그 基礎[기초]가 되어 있다. 따라서 世界觀[세계관]과 方法[방법]과를 對立[대입]시키며 또한 分離[분리]시키는 것은 斷然[단연]코 批評[비평]할 價値[가치]가 없다.』이 말은 전자에 말한 世界觀[세계관]과 創作方法[창작방법]의 關係[관계]에 있어서 作家的[작가적] 實踐[실천]속에서 現實[현실]의 正當描寫[정당묘사]할 根本的[근본적] 契機[계기]와 正當[정당]한 世界觀[세계관]을 만들어낼 契機[계기]를 發見[발견]한다는 말과 同一[동일]한 것이다. 現實[현실]이 如何[여하]히 發生[발생]하며 如何[여하]히 進展實現[진전실현]하고 있으며 將次[장차] 그것이 社會[사회] 發展[발전]의 法則[법칙]에 依[의]하야 必然的[필연적]으로 어떠한 結果[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態度[태도]가 卽[즉] 맑쓰主義歷史觀[주의역사관]인 것이다. 이러함으로써 現實[현실]의 當面課題[당면과제]와 코 ― 스에 應[응]하며 結合[결합]시키는 것이 問題[문제]이지 決[결]코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無根據及[무근거급] 基歪曲[기왜곡]된 理論[이론]으로 이 새로운 創作方法[창작방법]의 當爲性[당위성]을 黙殺[묵살]하며 朝鮮的[조선적] 現實[현실]에 妥當性[타당성]을 否定[부정]하고 大局的[대국적]이며 實質的[실질적]으로 許多[허다]한 誤謬[오류]를 가진 俗學的[속학적] 리알리즘을 淸算克服[청산극복]치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새로운 리알리즘은 푸로레타리아가 戰收[전수]한 最高[최고]의 創作方法[창작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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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藝術家[예술가]는 敎養[교양]에 있어서 그 世紀[세기]와 同等[동등]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 헤 ― 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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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一切[일절]의 疑懼[의구]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일절의 怯懦[겁나]가 죽지않으면 안된다.』─ 딴테 ― 神曲[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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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中央日報[조선중앙일보]》(1935. 8. 17~22)
【원문】조선적 현실의 논고 - 창작방법과 작가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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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각(李秉珏)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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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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