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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없는 나그네의 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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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3
조명희
1
집 없는 나그네의 무리
 
 
2
만유(萬有)와 인생(人生)을 가로 보나 세로 보나, 이어 놓고 보면 떨어져 있지만 하나요, 갈라 놓고 보면 하나이지만 떨어져 있는, 다만 그 무슨 물건(섬싱)이, 떴다 잠겼다 솟았다 처졌다 하는 외줄기 무한도(無恨道)에 걸어가는 한 순례자(巡禮者)이다. 그렇다, 그는 영원(永遠)의 순례자(巡禮者)이다. 아메바가 우리의 전신(前身)일진 대 배암도 바위도 우리의 전신(前身)일지며, 우리 원망(原望)이 신불(神佛)일진대 석가(釋迦)와 기독(基督)이 또한 우리의 후신(後身) 일 것이다.
 
3
기린(麒麟)을 보고 우는 인간(人間)의 혼(魂)이 배암을 보고 원통(冤痛)의 눈물 흘림을 생각해 보라. 이것이 이 세상(世上)의 모순 (矛盾)을 한탄하며 형제적(兄弟的) 애감(愛感)에 부딪쳐 우는 가운 데에도 무의식(無意識)으로 자기(自己) 과거(過去)의 전신(前身)임을 비밀(秘密)히 느끼고 후래(後來)를 동경(憧憬)하며 영원(永遠)의 원망(願望)의 길을 걷는 순례자(巡禮者)의 눈물이 아니고 무엇이리오.
 
4
이 영원(永遠)의 도정(道程)에 걸어나가는 무리무리가 떴다 솟았다 하는 줄줄 마디마다 한 때의 보금자리치는 영혼(靈魂)이나 육체(肉體)의 집이 있음이라.
 
5
새는 하늘을 믿고 마음껏 날으며 보금자리를 믿고 나래를 치며, 나비는 일광(日光)을 믿고 나래를 펴며 시절(時節)을 믿고 꽃을 찾음이라.
 
 
6
밀레의 ⌜만종(晩鐘)⌟을 볼 때 우리는 이러함을 느낀다. 자연(自然)과 인간(人間)-평화(平和)와 노동(勞動)-고투(苦鬪)와 신앙(信 仰)-아름다운 하늘 밑 너른 들 밭고랑 사이에, 흙의 아들인 농부(農夫)는 저 태양(太陽)과 동무하여 즐거이 땀 흘리며 일하였다. 땅을 팔 적마다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의 괭이는 햇빛에 빛났을 것이다. 흙덩이가 넘어갈 적마다 그의 입에서는 노랙 흘렀을 것이다. 그의 괴로운 땀은 도리어 즐거움의 힘이 된다. 그러할 때마다 그의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이 마치 자모(慈母)가 어린 아기를 보아줌같이 언제든지 언제든지 그를 내려다 보고 있다.
 
7
발마은 언제든지 그위 주위(周圍)에 너울거리고 있다. 땅은 언제든지 그의 몸을 떠받쳐 주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 우주(宇宙)의 제왕자(帝王者)한 세계(世界)를 등에 짊어지고 서서 있는 제왕자(帝王者)이다.
 
8
그는 하늘을 믿으며 땅을 믿는다. 저의 집을 믿으며 저의 전지(田地)를 믿는다. 또한 시절(詩節)을 믿는다. 그는 모든 자연(自然)을 다 믿는다. 어린 아기가 자모(慈母)를 믿음같이 자연(自然)의 아들인 인간(人間)이 그의 어머니인 자연(自然)을 믿지 아니하고 어이 하리오. 보금자리! 그의 몸을 담은 보금자리! 흠! 자연(自然)의 흠! 그리고 지금은 저녁이 되었다. 해는 지평선(地平線)을 넘어가며 자금색(紫金色)의 황혼(黃昏)놀을 땅머리에 끼치었다. 어둠은 지면(地面)만큼 넓어져 간다. 그 어둠의 폭만큼 그는 생(生)의 고통(苦痛)의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는 사람과 싸우지 아니하면 아니 되며 사회(社會)와도 싸우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며 자연(自然)과 운명(運命)과도 싸우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그는 인간(人間)의 모든 불순(不純)과 모든 장처(長處)도 다 가졌을 것이다. 소유욕(所有慾)과 명예욕(名譽慾)과 정욕(情欲), 질화(嫉華), 허위(虛僞)의 모든 것을 다 가졌으며 그 반면(半面)에는 사랑, 정의(正義), 반성(反省), 진실(眞實) 등의 장처(長處)도 다 가졌을 것이다. 그는 부모 형제(父 母兄弟)와도 싸울 것이며 처자(妻子)와도 싸울 것이며 자기(自己) 자신(自身)의 불순(不純)고도 싸울 것이다. 그렇다. 그는 영원(永遠)히 싸울 것이다.
 
9
그러나 그는 믿는다. 사람을 믿으며 아내를 믿으며 자기(自己)의 진실(眞實)한 마음을 믿으며 진리(眞理)를 믿으며 신(神)을 믿으며 최후(最後)의 승리(勝利)인 구원(救援)받음을 믿는다.
 
10
그는 확실(確實)히 믿는다. 이 믿음으로 인(因)하여 그는 굳센 희망(希望)을 가지게 된다. 마치 지금 그의 서 있는 그림 모양으로, 그의 뒤로는 어둠의 폭 만한 고통(苦痛)의 짐을 짊어지고, 앞으로는 저녁놀고 같은 비장(悲壯)의 희망(希望) 빛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 굳센 희망(希望)의 힘이 조금도 짊어진 고통(苦痛)의 짐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해는 점점 다 넘어간다. 멀리 저녁 기도(祈禱)의 종(鐘) 소리가 울려온다. 두 부부(夫婦)는 일하던 괭이를 놓았다.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祈禱)한다. 남편은 아내를 위(爲)하여 기도(祈禱)하며 아내는 남편을 위(爲)하여 기도(祈禱)한다. 그들은 마음 속으로 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그 눈물은 행복(幸福)의 눈물일지 비통(悲 痛)의 눈물일지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눈물일 것이다.
 
11
그는 어떠한 일이 앞으로 온다 하더라도, 굳센 믿음의 마음 앞에는 무서운 것이 없을 것이다.
 
12
모든 것이 다 믿음의 위안(慰安)으로 누르고 말았다. 그 위안(慰安)으로 감격(感激)의 눈물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마음과 핏 속에는 도리어 환희(歡喜)가 넘칠 것이다.
 
 
13
보금자리! 그 마음의 보금자리! 흠! 영혼(靈魂)의 흠!
14
자연(自然)의 흠! 영혼(靈魂)의 흠! 노동(勞動)과 기도(祈禱)!
 
 
15
보라! 인간(人間)이 이같이 장엄(莊嚴) 신비(神祕)한 세계(世界)를 머리에 이고 산(山)더미 같은 고통(苦痛)의 짐을 등에 지고 태연(泰然)히 서서 영원(永遠)한 신음(呻吟) 가운데에도 환희(歡喜)의 소리를 부르짖음을.
 
 
16
가을이 되어 우리의 전원(田園)을 보라. 마을 초가(草家)집 뒷산(山)에는 붉게 익은 과실(果實)나무 가지를 척척 늘어뜨리었으며 앞 들에는 누른 이삭이 고개를 다복다복 숙이었으며, 뜰안에 앉아 일하던 촌부(村婦)는 양지(陽地)쪽 마당 맷방석 위에 너를 녹두(綠豆) 열매가 톡톡 튀는 소리에 갑자기 귀를 기울이게 되며, 낮을 지키던 울 밑에 닭이 미지(未知)의 나라 종(鐘)소리같이 평화신(平和神)의 울음소리같이 꼬끼요-곡-하는 소리에 낮은 다시 더 조용하며 볕을 다시 더 따시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전원(田園)의 평화(平和)를 볼 때 우리의 말 없던 입은 저절로 “흠! 자연(自然)의 흠! 따뜻한 흠!” 소리를 내게 된다.
 
17
그러나 생각해 보라! 이 천혜(天惠)의 흠을 우리가 가지게 되었나? 우리의 따뜻한 흠에 넌출져 열리었던 박 열매는 우리의 허리에 차게 되었나.
 
18
그러면 자연(自然)의 흠을 이룬 이 무리는 영혼(靈魂)의 흠만 가졌던들, 비록 사막(沙漠)을 좇고 바다를 건너 정처(定處) 없는 세계(世界)를 보금자리칠 양으로 걸어 나갈지라.
 
19
그러나 보라! 우리에게 이것이 있나? 우리에게는 철학(哲學)도 종교(宗敎)도 예술(藝術)도 아무 것도 없다. 울어야 눈물 담을 항아리가 없고 눈물 뿌릴 제단(祭壇)이 없다. 우리에게는 남에게 빌려온 철학(哲學)도 있었고 종교(宗敎)도 있었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영혼(靈魂)의 한때 기숙사(寄宿舍)는 되었더라도 우리 집은 아닐 것이다. 남의 것이라도 자기(自己)의 물건을 만든 것이면 자기(自己)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도 또한 하지 못하였 다. 헤브라이인(人)의 사막(沙漠)에 세운 집과 인도인(印度人)의 삼림(森林) 속에 세운 집을 우리 땅에 (그대로만 옮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땅에) 자연(自然)을 맞추어 우리의 몸과 영혼(靈魂)에 꼭 맞는 집을 지어갖든지 옮겨 고쳐 짓든지 하여야 할 것이다. 소수(小數)를 말하지 말고 전체(全體)의 우리를 놓고 보라. 남의 집을 그대로만 가지고 살지 못하게 됨은 우리 과거생활(過去生活)의 실패(失敗)를 보며 현재생활(現在生活)을 놓고 보아도 알 것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살 집을 장만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집을 세울 만한 힘이 없어서 그러한지, 있고도 경우(境遇)가 허락지 않아 그리하였든지 여기에는 얼른 말하기 어렵다.
 
20
그러고 보니 이 털도 나래도 돋지 않은 어린 새의 무리가 어미의 보금자리로부터 휘어나가게 되었으니 살길이 어디이뇨?
 
21
집 없는 나그네의 무리가 장차 어디로 향할고?
 
22
<좀더 구체적(具體的)으로 쓰고 싶지마는 자세히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생각하였던 바의 윤곽(輪廓)만 그리고 그만둠>
【원문】집 없는 나그네의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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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희(趙明熙) [저자]
 
  개벽(開闢) [출처]
 
  1924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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