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靑丘永言[청구영언]은 序[서]에 ‘歲戊申春玄窩鄭潤卿序[세무신춘현와정윤경서]’ 라 한 것과 後跋[후발]에 ‘丁未季夏下浣磨嶽老樵[정미계하하완마악로초]’ 라 한 것으로 보아 大槪 英宗 三年[대개 영종 삼년 ] 或[혹]은 四年[사년]까지에는 完成[완성] 되였다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 約[약] 二百二十年前[이백이십년전] 일이다.
3
撰者[찬자] 金天澤[김천택]은 字[자]를 伯涵[백함] 혹은 履叔[이숙]이라 하고 號[호]를 南坡[남파]라 하며 門地[문지]가 微賤[미천]하여 벼슬은 겨우 捕校[포교]에 끝이였으나 金壽長[김수장](海東歌謠[해동가요]의 撰者[찬자]), 金聖器[김성기](琴客[금객])와 함긔 敬亭歌壇[경정가단]을 代表[대표]하는 一代[일대]의 歌客[가객]이다. 鄭潤卿[정윤경]의 序[서]에 “金師操琴[김사조금], 履叔和而歌[이숙화이가], 其聲瀏〃然[기성유유연], 有可以動鬼神發和陽[유가이동귀신발화양], 二君之技[이군지기], 可謂妙絶世矣[가위묘젤세의]” 라 한 것으로 보아도 그가 唱曲歌[창곡가]로서 얼마나 非凡[비범]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4
靑丘永言[청구영언]은 現存[현존]하는 時調集[시조집]으로는 가장 오래인 것으로 全部[전부] 千十數首[천십수수]에 達[달]하는 尨大[방대]한 量[양]의 時調[시조]를 曲調[곡조]에 依[의]하여 分類[분류]하고 卷末[권말]에는 將進酒[장진주] 以下[이하] 十七首[십칠수]의 歌詞[가사]를 添付[첨부]하였다. 이 曲調[곡조]에 의하여 分類[분류]하는 方法[방법]은 撰者[찬자] 金天澤[김천택]이 唱曲家[창곡가]니까 아주 當然[당연]한 일이나 決[결]코 金天澤[김천택] 一個人[일개인]의 趣味[취미]에 끝이는 것이 아니다.
5
高麗中葉[고려중엽] 乃至[내지] 末葉[말엽]에 發生[발생]한 時調[시조]는 李朝[이조]에 들어와서 매우 盛行[성행]하여 黃眞伊[황진이] 鄭松江[정송강] 尹孤産[윤고산] 等[등]의 大作家[대작가]가 輩出[배출]하고 時調文學[시조문학]의 黃金時代[황금시대]를 現出[현출]하였는데 그 때가지의 作家[작가]는 大漑[대개] 上層官僚[상층관료]들로 그 作風[작풍]도 따러서 傲慢[오만]하고 道學的[도학적]이고 觀念的[관념적]이었다. 그리다가 壬辰倭亂[임진왜란]과 丙子胡亂[병자호란]의 兩次[양차]의 大戰禍[대전화]로 因[인]하여 朝鮮[조선]의 産業經濟[산업경제]는 極度[극도]로 破壞[파괴]되고 社會機構[사회기구]도 弛緩[이완]되어 上層官僚[상층관료]들의 生活[생활]은 漸次[점차]로 沈滯[침체]되어 그들의 時調[시조]도 막다른 골목에 다달렀다.
6
英宗[영종] 正祖[정조]의 時代[시대]는 이 뒤를 이어 社會的[사회적]으로는 根本的[근본적]인 아무 改革[개혁]도 없이 一時的[일시적]인 小康[소강]은 얻은 時代[시대]인데 그러나 上層官僚[상층관료]는 임의 前進的[전진적]인 氣漑[기개]를 잃고 도리혀 中人階級[중인계급]의 商業資本家[상업자본가]로서의 進出[진출]이 顯著[현저]하여 時調文學[시조문학]에 있어서도 中人階級[중인계급]이 그 헤개모니를 잡게 되었다. 敬亭山壇[경정산단]의 成長[성장], 金天澤[김천택]의 靑丘永言[청구영언], 金壽長[김수장]의 海東歌謠[해동가요]의 撰集[찬집]은 모다 이 具體的[구체적]인 表現[표현]이다.
7
이 中人[중인]들의 時調[시조]는 商業[상업]에 從事[종사]하는 市民[시민]이 中心[중심]인만치 上層官僚[상층관료]들의 時調[시조]와는 그 風格[풍격]이 닯어서 훨신 享樂的[향락적]이고 卽興的[즉흥적]이다. 그리하여 好色[호색], 滑稽[골계], 寫實[사실]에 置重[치중]하여 道學者[도학자]들이 상을 찡그림에 充分[충분]하다. 이러한 二三[이삼]의 例[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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削髮[삭발] 僧[승]져閣氏內[각씨내]이말드러보쇼 어득佛當[불당] 안에念佛[염불]만외다가자人生[인생]죽어지면 홍독로턱을괴아 롱 안희入棺[입관]야燒火[소화]後[후]찬되면 空山[공산]구즌비에우지지귓것네 아니될가 眞實[진실]노말드러마을 두로혀면 子孫滿堂[자손만당]야 富貴榮華[부귀영화]로百年同樂[백년동락]줄모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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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반]여든에쳣게집을니흐통하통우벅쥬벅 죽을번살번타가와당탕드리다라이리져리니 老道令[노도령]의마음흥글항글이滋味[자미]발져아로던들긜젹부터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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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갓치소난님을번갓치번만나 비갓치오락가락구름갓치허여지니 胸中[흉중]에바람갓튼한숨이나셔안갓치픠더라
12
우희웃셧소나무바불젹마다흔들〃〃 올에셧버들무음일죠셔흔들 〃〃〃〃〃〃하노 님그려우눈물은올커니와입고코어이무음일죠서후루록빗니
13
술이라면쇼믈혀듯고 飮食[음식]이라면헌말등에藥[약]다오듯 兩[양]수종다리잡조지팔과흘긔눈에안팟장이고쟈 男便[남편]을망셕즁이라 안쳐두고보랴 門[문]밧긔桶[통]메옵쇼고웨匠事[장사]네나자고이거라
15
가버슨兒孩[아해]ㅣ들리거뮈쥴테를들고 川[천]으로往來[왕래]며 가숭아가숭아져리가면쥭니라이리오면나니라 부로나니가숭이로다 아마도世上[세상]일이다이러가노라 (李廷鎭[이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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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남무들사오져장야네남무갑얼니자 싸리나무同[동]의말이오검쥬남무同[동]의닷되오 合[합]야마닷되오니삿여보오불잘뭇슴 진실노번곳삿이면양삿이오리
18
이러한 時調[시조]를 前時代[전시대]의 上層官僚[상층관료]이 지은 ― 鄭夢周[정몽주]의 丹心歌[단심가], 死六臣[사육신]들의 哀傷歌[애상가], 李聾巖[이농암]의 漁父詞[어부사], 周世鵬[주세붕]의 道學歌[도학가], 李退溪[이퇴계]의 陶山十二曲[도산십이곡], 李栗谷[이율곡]의 高山九曲[고산구곡], 훨신 나려와서 金尙憲[김상헌]의 忠義歌[충의가], 尹孤山[윤고산]의 山中新曲[산중신곡], 漁父四時詞[어부사시사] 等[등]과 比較[비교]하여 볼 때에 비록 名稱[명칭]과 形式[형식]은 같은 時調[시조]나 內容[내용]과 風格[풍격]은 아주 닯어서 同日[동일]에 論[논]할 바가 아니다.
19
靑丘永言[청구영언]은 前時代[전시대]의 上層官僚[상층관료]들의 時調[시조]도 힘써 收錄[수록]하고 그 當時[당시]의 中人[중인]들의 享樂的[향락적] 卽興的[즉흥적]인 時調[시조]도 많이 收錄[수록]하여 이러한 時調文學[시조문학]의 新氣運[신기운]을 엿보는 데 가장 좋은 資料[자료]가 될 것이다.
20
李朝末葉[이조말엽]의 時調[시조]는 高宗時代[고종시대]에 朴孝寬[박효관]安玟英[안민영]의 編纂[편찬]한 歌曲原流[가곡원류] 속에 大漑[대개] 收錄[수록]되었는데 如前[여전]히 中人階級[중인계급]이 中心[중심]이 되여 金天澤[김천택], 金壽長[김수장]의 業績[업적]을 그대로 繼承[계승]한 데 不過[불과]하며 結局[결국] 時調文學[시조문학]에 있어서는 靑丘永言[청구영언]이 最古[최고], 最大[최대], 寶典[보전]이라고 斷定[단정]할 수밖에 없다.
21
이 貴重[귀중]한 寶典[보전]의 解放[해방] 後[후]의 첫 出版[출판]에 際[제]하여 同好子[동호자]의 一人[일인]으로서 簡單[간단]히 所感[소감]의 一端[일단]을 말하여 贊同[찬동]의 意[의]를 表[표]하는 바이다.
22
一九四十六年 七月 三日[일구사십육년 칠월 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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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王産[주왕산]편, 『靑丘永言[청구영언]』, 정음사, 1946년 7월 3일.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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