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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양애가(牧羊哀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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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곽말약(郭沫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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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牧羊哀歌[목양애가] (金剛山[금강산]의 悲歌[비가]) (郭沫若[곽말약])
 
 
 

일(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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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金剛山) 일만이천봉 산실영(山神靈)이 벌서부터 내 혼백을 해천말리(海天萬里) 밖에서 조선으로 꺼더디렸다. 나는 조선에 도착한 후 이 금강산 아래 일본해(日本海)에 면한 한 조고만 마을에 살었다. 마을 이름은 선창리(先蒼里)라 부르며 호ㅅ수는 겨우 십여 호에 지나지 않고 모다 바다를 바라보고 산을 등지고 있으며 반은 새집이었다. 집집마다 앞에는 울타리를 했고 또 꽃나무 소나무가 때때로 울 넘어로 보였다. 왼 마을과 바다ㅅ가 전부가 모다 솔바이고 다만 마을 근방에 몇 섬지기의 농토가 있고 뽕나무가 몇 줄 있을 뿐이다. 배추꽃 메물꽃으로 그 몇 정보(町步)ㄴ가 되는 농토는 금벽색(金碧色)으로 ▣이어 있다. 그 동남편 소나무 숲 속에 적벽강(赤壁江)이라는 적은 내가 흐르고 있는데 일만이천봉의 산골물을 모아서 아침이나 저녁이나 구슲은 소리를 내며 사나운 일본해 바다ㅅ물 속에 삼키여버려 남쪽으로 가고만다. 내가 처음에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나를 가ㅅ자 중국인(中國人)이라 의심하고 어느 집에서나 다 재워주지 않었다. 다행히 마을 남쪽 끝에 윤씨(尹氏)라는 나이가 오십이 너머보이는 할멈이 하나 있었다. 단 혼자 외로이 살며 부첫님을 모시고 있었다. 내가 찾어온 뜻을 잘 듣고 내가 멀고 먼 데서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을 불상히 여기어 그 집에 머므르게 해주었다. 윤씨네 집 대문에는 백지의 문연(門聯)이 붙었는데 조선 풍속으로는 아즉도 대문에 춘연(春聯)을 붗이어 또 백지를 쓰는 것이 똑 그 나라 장사 집과 마찬가지다.
 
4
거기에 씨어 있는 것은 시(詩)로 된 글이었다. 대문을 들어스면 중원(中園)이 있어 여기에는 많은 꽃나무가 심어 있었다. 정면의 기으는 한 줄로 세 칸이 늘어 있어, 가운데가 대청이고 양편이 방이었다. 대청 뒤로 또 벽이 하나 있어 이 벽을 격하여 앞뒤로 나누어져서 그 사이는 문으로 서로 통케 되었는데 앞 칸 가운데다가 부처님을 모시는 제ㅅ상을 하나 놓고 거기에 왼손에 염주(念珠)를 가진 옥자관음(玉磁觀音)이 모셔 있었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집 뒤 배추밭이 바로 금강산 골작이에 연해 있다. 윤할멈은 나더러 바른 손 편 방에 있으라고 했다. 방에는 별다른 물건은 아무 것도 없고 다만 촉대(燭台)가 하나 있을 뿐으로 양쪽 문을 열고 잘 살펴본즉 오랫동안 사람이 거처하지 않었었는지 몬지가 보 - 야케 앉어 있었다.
 
5
윤할멈네 집에 있게 된 후 어느듯 일주일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렸다. 나는 매일 날세가 좋고 흐리고 간에 아츰 일즉이 이러나 곳 산으로 구경 나가서 날이 저무러서야 겨우 도라왔다. 일주일도 몯되여서 나는 마을 뒤에 있는 구선봉(九仙峯)을 빼놓고는 이 큰 금강산을 거이 다 도라단였다. 비로(毘盧) 미륵(彌勃) 백마(白馬) 영낭(永郎) 등 일만이천봉의 아침 저녁의 곻은 모양과 비 올 때 날개일 때의 풍취가 이미 내 머리ㅅ속에 깊이깊이 백히어 있어 한 번 눈을 딱 감고 앞을 바라보면 곳 활동사진과 같이 그 인상의 하나하나가 환 - 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다만 가석하게도 내가 문인도 아니요 화가도 몯되여서 똑 그대로 그것을 글로 쓰지도 몯하며 그림을 그리지도 몯한다. 그래서 형제들 동무들한테도 즉접 와서 보라는 수밖에 없다.
 
 
 

이(二).

 
7
홀로 구선봉(九仙峯) 꼭대기 선인정(仙人井) 옆에 서서 서쪽으로 석양에 빛의인 금강의 장엄(莊嚴)한 모양과 떠도는 구름을 바라보니 내 영혼은 그만 경치에 취해서 꿈속에 있는 듯하였는데 그 때 벼란간 산 밑으로부터 부러오는 바람은 한 가닥의 노래ㅅ소리에 실어왔다. 노래ㅅ소리는 구슲으고 처량한 게집아이 소리가 분명하다. 귀를 기우려 들은 즉
 
 
8
해ㅅ님을 마지하야 산에 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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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ㅅ님을 보내면서 산을 나리네
10
해ㅅ님은 한 번 가도 또 오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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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모리(牧羊郎[목양낭])는 한 번 가고 오지를 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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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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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 애처럽고나.
14
양은 그대를 그리것만 그대는 이것을 알어주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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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소리는 중단되었다. 새끼양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온다. 은은한 방울 소리가 들리다 안들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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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목에 달은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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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하나 그대의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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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한 번 가고 오지를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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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끈이 다 - 달어서 끊어질가 염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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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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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 애처럽고나.
22
양은 그대를 그리건만 그대는 이것을 알어주느냐?
 
 
23
노래 소리는 점점 머러저 청양한 저녁 공기 속에 흘러 한 마디 한 마디 가슴속에 사무처서 사람의 눈물을 짜낸다.
 
 
24
나에게 가위가 없었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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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털을 깍지를 안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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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어 있는 영(英)님의 가위ㅅ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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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어질 때 내 맘도 사러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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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풀은 끈 없었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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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을 달어매지 않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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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끈 하나라도 끊어질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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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영님 옆에 가까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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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저도 몰르게 눈물이 흘러나렸다. 나는 불이낳게 이러나서 산 꼭대기 서북쪽에 서있는 소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아래를 나려다보니 다만 높은 성(城) 길 우에 여나무 마리나 되는 양떼가 어슬풋한 저녁 해ㅅ볓 속에 게집아이 하나를 둘러싸고 천천히 몰려가는 것이 보인다. 그 게집아이는 우에는 파 - 란 적삼을 입고 밑에는 회색 치마를 입고 맨발로 노래를 부르면서 거러가고 있는데 노래ㅅ소리는 점점 머러저 아러 듣기 어려워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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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 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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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서러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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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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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도 몯 덤빌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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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함부로 덤벼들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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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와 목숨을 내어걸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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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쓰고 한사코 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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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 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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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서러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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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집아이의 노래ㅅ소리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저녁해와 같이 사라저버리고 게집아이의 그림자도 앞산 모통이로 숨어버렸다. 나의 마음은 마치 맑고 찬 샘 속에서 세례(洗禮)를 받은 것 같었다. 나는 소나무 밑에 멍 - 하니 서서 어느 결에 벌서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산은 모다 잠들고 별들만 빤짝이며 먼 동해ㅅ물 끝에서 반달이 떠올랐다.
 
 
 

삼(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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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 그이는 우리 민(閔)씨 집 패이(佩荑) 큰애기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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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윤할멈은 둘이 대청마루 끝에 앉어서 낮에 본 이야기를 하였는데 윤할멈이 그 양모리하는 게집아이의 일홈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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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명문(名門)의 큰애기가 왜 그처럼 손수 양모리를 한답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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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묻는 말에 그는 무한한 감동을 이르킨 것 같다. 그는 잔뜩 공중의 밝은 달만 바라보고 한참 동안이나 아무 대답도 없다. 달빛 알에 흘긋 그의 눈을 살펴보니 벌서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 있다. 나는 그 일을 너머 캐물어 그를 괴롭게 한 것을 후회하였다. 내가 숨을 죽이고 그저 묵묵히 있으랴니까 할멈은 눈물을 씼고 나 있는 쪽으로 돌아 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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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통한 지난 일을 이야기해 본데야 무었합니까. 그러나 손님이 그만치 친절히 무르시니 그 친절한 말슴이 고마워서도 어찌 그냥 거절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치만 그 많은 이야기를 어데서부터 꺼내야 옳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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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간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또 이야기를 게속하였다.
 
50
― 패이 큰애기는 본래는 여기ㅅ사람이 안이고 십년 전에는 서울 대한문(大漢門) 밖에 살었읍니다. 큰애기 아버님 되시는 민숭화(閔崇華) 대감은 본시 이조(李朝)의 자작(子爵)이였는데 그 때 조정에는 간신(奸臣)의 일파가 나서 외국인과 내통하야 무슨 합병조약(合倂條約)인가를 맺었읍니다. 민자작 일파는 몇 차레나 주상(奏上)하시여 조정에서 간신을 물리쳐 나라를 편케 하기를 청하시었지만 한 번도 도라보시지도 않었답니다. 자작께써는 대세(大勢)가 이미 기우러저 회복하기 어려운 것을 깨달으시쟈 관직(官職)을 버리시고 일문(一門)을 거나리고 서울서 이 곳으로 이사해 오셨답니다.
 
51
자작의 전부인(前夫人) 김씨(金氏)는 십육년 전에 별세하시고 후처 이씨(李氏)한테선 자손이 없었읍니다. 김씨부인이 도러가실 때 패이 큰애기는 겨우 다섯 살이였는데 자작께서는 대단히 불상히 여기시어 저더러 큰애기를 잘 돌보아 디리라고 하시었읍니다. 우리 윤씨 문중은 선조 때부터 모다 민씨ㅅ댁 하인이였으며 내 남편 윤석호(尹石虎)도 역시 민씨 댁 집사(執事)였읍니다. 나는 본시 아들이 하나 있었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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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마디마디가 울음 소리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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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들 윤자영(尹子英)이는 민자작께서 당신의 이름자를 따다가 지으신 것으로 자작께서는 퍽 귀여워하시여 늘 “영아! 영아!” 불르셨읍니다. 자영이는 패이 큰애기보다 한 살 우였고 큰애기는 늘 자영을 영이 오빠라고 불르며 자영이는 덩다라 외람하게도 큰애기를 패이 누이라고 불렀읍니다. 그들 둘은 서로 사랑해서 마치 친형제와 진배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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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부인도 역시 명문의 귀하신 따님으로 어릴 쩍부터 일본(日本)에 유학하시고 졸업하신 후에 또 런던(倫敦[륜돈]) 파리(巴里) 윈나(維也納[유야납])를 유람하셨읍니다. 국내서보다도 국외에 더 많이 게섰읍니다. 귀국하실 때 나이가 겨우 스물 둘이시고 그 때 김씨 부인이 도라가신 후 막 삼년이 지났는데 이씨 댁에서 중매인이 나서서 혼인 말이 있자 얼마 안되여 자작의 후실이 되였읍니다. 자작께서 퇴관하시기 전에는 이씨 부인은 서울 사교계(社交界)에서 첫재 둘재 가는 신식부인(新式婦人)이였읍니다. 손님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총명 영니(聰明伶俐)하고 학문 있고 재간 있는 신식부인이 어떻게 평범한 생활을 즐길 수 있으며 산촌 생활의 고생사리를 참어나갈 수 있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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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작께서 이 곳으로 오신 후 저 고성(高城) 정안사(靜安寺)에 게시면서 일절 영화를 버리시고 세무에는 간섭하지 않으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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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안에서 거처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큰애기는 점〃 커갔읍니다. 우리 부부를 이 선창리(先蒼里)에 살도록 주선하여 주시고 자영이만 절에 남어 이삼십 마리의 양을 사시어 그 아이한테 괄리하게 하섰음니다. 그 때 우리 자영이는 벌서 열두 살이 되여 날 좋은 날이면 늘 양을 몰고 산 앞 산 뒤로 돌아단였음니다. 때로는 패이 큰애기도 같이 따라갔읍니다. 그들들은 몇 번이나 길을 잊어버려서 그 때마다 얼마나 우리를 놀라게 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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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그들이 어느 때 한 번 밤중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어서 자작께서는 우리 집에서 놀고 있는 줄만 아시고, 중 몇 사람을 시켜 데리러 왔섰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둘이 다 우리 집에는 없었음을 알고 그제서야 우리 집 사람들도 놀래여 분주히 사방으로 찾기 시작하야 해금강까지 갔더니 멀 - 리 바다ㅅ가에서 양 한 떼가 졸고 있는 것이 보였읍니다. 자영이는 큰 바우에 의지하고 패이 큰애기는 자영이의 억개에 의지해서 둘이 다 벌서 잠이 들었었읍니다. 그 날 밤도 역시 오늘밤처럼 달이 밝었는데 환 - 한 달빛 아래 바다ㅅ물이 흔들리여 그들은 꼭 큰 요람(搖籃) 속에서 자고 있는 것 같었읍니다. 그들의 그 때 광경이 나는 지금도 잊어지지 안는구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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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양을 몯 데리고 갈 때는 그 때마다 자영이는 절에서 중들과 주먹질하는 무도(武道)를 배웠고 밤에는 큰애기와 같이 자작 게신 앞에서 글 읽기와 글씨 쓰기를 배웠읍니다. 아모 연고 없이 이렇게 사년이 지나 우리 자영이는 열여섯 살이 되고 패이 큰애기는 열다섯 살이 되였을 때 자작께서 늘 말슴하시기를 머지 않어 그들을 데리고 대국(大國=中國[중국])에 가서 그들의 식견을 넖이게 하겠다는 것이었지요. 아! 누가 사람의 일을 알었겠읍니까? 우리 자영이는 바로 그 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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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할멈은 가슴의 상처를 닻인 듯이 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도 일종의 큰 불행이 닥처올 불길한 증조를 깨닷고 나는 몸에 소름이 쪽 - 낓었다. 때마침 하늘 높이 돋은 달이 검은 구름 속에 싸여버려 더욱 처참한 기분을 돋아주었다. 나는 감이 또 그 뒤를 묻지 몯하고 윤할멈이 울음을 끝치기만 기달리었드니 그는 눈물겨운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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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 그 해에 ― 그의 애비한테 ― 애비한테 ― 죽었답니다!
 
61
말하며 또 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 역시 눈물이 쏘다저서 그를 위로하는 말을 하랴 하얐으나 한 마디도 말이 나오지 않었다. 나는 다만 차를 한 잔 따러 마시라고 권했더니 할멈은 그것을 몇 모금 마시고 또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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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으니 내가 자영이의 유서(遺書)를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게속합시다.
 
 
 

사(四).

 
64
밤이 깊어가고 한데ㅅ바람이 제법 차서 윤할멈은 나를 방안으로 불러디렸다. 나는 그와 같이 내가 거처하는 방으로 드러가서 자리 바닥에 앉었다. ― 조선 사람의 습관은 자리에 앉고 자리에 자서 아직도 우리나라 고대 풍속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윤할멈은 봉투를 가지고 왔는데 내가 등불 밑에서 받어 읽어보니
 
 
65
어머님! 저는 지금 막 - 양을 몰고 나갔다가 집에 도라온 길인데 양 우리 옆에서 봉투 한 장을 주섰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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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아버지가 떨어트리신 것일 겜니다. 그런데 것봉이 벌서 떨어저 있기에 그 내용을 읽어보니 아! 어머님! 몯 볼 것을 보았읍니다. 보고 나서 저는 그만 혼비백산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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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저는 지금 자작을 구하기로 맹세했읍니다. ― 패이 누이의 ― 아버지를. 나는 아버지가 이러한 엄청난 불의의 죄명을 입는 것을 참아 그대로 볼 수 없읍니다. 아버지가 벌서 절에 와 게실 줄 알고 사방으로 찾었으나 몯 맛났읍니다. 어머님! 제 생각으로는 여기서 이 일이 탈로되어버리면 아버지 혼자만 관게되는 것이 안입니다. 제가 오늘밤 절에서 찾아 돌아단이다가 어떻게든지 해서 아버님을 그대로 물러가 시게만 하면 이것이 제일 상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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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제가 만일 죽는 한이 있드라도 어머님! 너머 설어 마십시요! 생각하면 살어서 망국지민(亡國之民)이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빨리 ▣ 버리는 것이 상쾌한 것도 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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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시간이 닥처와 길게 몯 쓰겠읍니다. 밀서(密書)는 보신 후 불에 살러 버리십시요! 빼다지 속에 있는 일기 두 권은 패이 누이를 주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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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자영 올림.
 
 
71
이외에 또 편지 한 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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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石虎) 전
 
73
십일 몯 맛났오. 당신이 오늘 저녁에 절로 오시요. 내가 방안에서 열락하면 한 그물에 모조리 다 ― 잡을 수 있을게요. 동봉한 시(詩) 한 수는 분명히 모반(謀反)의 시며 일을 이룬 후에 곳 장안사(長安寺)에 있는 헌병대(憲兵隊)로 쫓아가서 자수(自首)하는 데 이 시만 내보이면 반다시 모면할 것이니 속히 틀림없이 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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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씨(閔李氏) 유월 십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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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왜 이리 쨍쨍하게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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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 우의 싹을 쪼여대느뇨.
77
산이 문허져 싹이 이미 죽으니
78
해의 기세 더욱 높도다.
79
이군(羿君)의 활을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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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우에 너를 쏘으리라.
81
노양(魯陽)의 창을 얻어
82
산 우에 네 목을 베이리라.
83
이궁노괘(羿弓魯戈) 구할 바이 없어
84
눈물 속에 피가 되여 산에다 뿔이는도다.
85
길고 긴 이 날은 언제나 밤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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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이 원한은 언제나 풀리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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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의 날의 글 대한유민 민숭화(大韓遺民閔崇華) 땀을 씨으며 씀.
88
(原文[원문])
 
89
炎陽何杲杲[염양하고고], 晒我山頂苗[쇄아산정묘].
90
土崩苗己死[토붕묘기사], 炎陽心正驕[염양심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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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得后羿弓[안득후예궁], 射汝落海濤[사여낙해도].
92
羿弓魯戈不可求[예궁노과불가구], 淚流成血洒山丘[루류성혈쇄산구].
93
長晝漫漫何時夜[장주만만하시야], 長恨漫漫何時休[장한만만하시휴].
94
怨白行[원백행] 大韓遺民[대한유민] 閔崇華[민숭화] 揮汗書[휘한서]
 
 
95
윤할멈은 내가 일일히 다 보기를 기다려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96
― 그 속에 사연을 손님! 잘 아셨겠지요.
 
97
우리 자영이는 그 해 유월 열하로ㅅ날 죽었읍니다.(조선 사람은 지금도 대개 음역을 쓴다.) 그 날 점심 후 정안사에서 상자 아이가 와서 석호에게 편지 한 장을 주었읍니다. 석호가 곧 나가기에 나는 자작께서 무슨 일이 있으시여 불르신 줄 알었는데 밤중이 지나서 급하게 허둥지둥 뛰어 드러왔었오. 얼마 안 있다가 또 사람이 찾는 소리가 나기에 내가 나가서 문을 열고 내다보니 중이 둘이 나를 보고 외치기를
 
98
― 아주머님! 큰일났읍니다! 당신 아들이 누구한텐지 맞어 죽었어요!
 
99
나는 그 끝말 한 마디를 듣자 그야말로 청천에 벽력이지요. 석호도 안에서 들었는지 방안에서 화다닥 뛰어나와 ‘잘몯 죽였구나! 잘몯 죽였구나!’ 소리 질르며 총알같이 문 밖으로 뛰여나갔읍니다. 나도 역시 정안사로 쫓아가서 먼저 자영이 방에 드러가 보았더니 책상 우에 편지 한 장이 놓여 있는데 그 겉봉에는 ‘모친친계(母親親啓) ― 자영’이라는 여섯 자가 써있어 나는 그것을 품속에 감추어버리고 사람들이 야단스럽게 떠들면서 왔다갔다 하는 데로 들어갔읍니다. 내가 자영이를 봤을 때는 그의 얼골은 피투성이였고 가슴은 벌서 싸느렇게 식었읍니다. 나는 그 자리에 업들어저서 그대로 인사불성이 되고 말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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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깨났을 때에는 이미 환 - 하게 밝은 대낮이라 나는 이것이 무슨 나뿐 꿈이나 안인가 의심했지요. 잘 살펴보니 나는 패이 큰애기 방에 누어 있었든 것입니다. 큰애기가 내 옆에 앉어있었는데 벌서 너머 울어서 두 눈이 빨갛고, 이것을 보니 나도 새삼스럽게 또 서러워저서 통곡했읍니다. 몸을 움지겨 이러나려고 해봤으나 네 수족이 똑 중풍 걸린 사람처럼 뻣뻣해저서 다시는 움지기지 몯할 것 같었읍니다. 큰애기는 내가 깨난 것을 보고 나를 드려다보며 여러 가지로 위로해 주었는데 나는 더욱 더욱 설어만젔고 큰애기도 느껴 울면서 내 옆에 업드러저 버렸읍니다.
 
101
얼마 안되여 자작의 내외분이 방으로 드러오시어 자작께서 말슴하기를 ― 자영이의 염(殮)을 하여야 할텐데 석호는 도모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102
나는 그제서 겨우 석호가 그 때까지도 절에 오지 않은 것을 알었고 또 급작이 자영이의 유서가 생각나서 큰애기더러 내 주머니에서 끄내여 자작께 올리게 했읍니다. 자작께서 그것을 펼쳐보실 적에 또 편지 한 장이 뚝 떨어젔읍니다. ― 즉 이씨 부인의 밀서(密書) 말입니다. 그러자 이씨 부인은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읍니다. 자작께서 자영이의 유서를 다 읽으시기를 기달리어 패이 큰애기도 밖으로 나가시었어요. 아마 일기를 가질러 가는 줄 알었드니 과연 그랬었읍니다. 이씨 부인의 밀서는 큰 불을 이르켜 자작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너무나 화가 나시여 말슴도 몯하시고 한 반나절이나 몸부림치시며 큰 소리로 몇 마디 자영이를 부르시고 통곡하시었읍니다. ―‘나는 네가 빨리 장성해서 나라를 위하야 힘쓰기만 바랬더니 우리 이 ― 애비와 딸을 위하야 죽을 줄을 누가 알었겠니. 아! 내 무슨 맘으로 또 다시…?’
 
103
자작께서 말심이 채 끝나지도 않어서 패이 큰애기가 밖에서 뛰여들어와 이씨 부인이 자영이 방에서 자살했다고 알리었읍니다!
 
 
 

오(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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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불이 거이 꺼지게 되고 불빚이 흐미했다. 윤할멈은 심지를 돋구고 잠시 숨을 돌러가지고 다시 이야기를 게속했다.
 
106
― 이씨 부인은 자영이와 같이 묻었는데 모다 정안사 안에 있읍니다. 나는 절에서 이레 동안이나 누어 있다가 겨우 일어났읍니다. 석호는 그 날 밤에 나간 후 영영 소식이 없어 결국 및었는지 죽었는지 알지도 몯합니다. 내가 몸이 좀 난 후에 절에 남어서 자작과 큰애기 시중을 들겠다고 했드니 자작께서 절대로 들어주시지 않으시고 자작께서는 머리를 깎으시고 중이 되시었읍니다. 또 패이 큰애기는 그대로 절에 남어서 한편 조석으로 봉사(奉侍)하시고 한편 자영이가 생전에 괄리하던 양을 혼자 도맡어 보게 되였읍니다. 손님! 이것이 바로 패이 큰애기가 손수 양모리를 하게 된 연고올시다. 참 불상하지 않습니까? 큰애기는 늘 내게 말하기를 자영이 오빠가 도러가신 후로는 큰 양이고 적은 양이고 모다 잘 먹지를 않어서 몇 해도 몯되여 벌서 거이 반이나 죽었다는 것입니다. 양이 한 마리 죽으면 그 때마다 큰애기는 몹시 슲어하시어 꼭 자영이의 무덤 옆에다가 양의 무덤을 써주었읍니다. 나는 자영이를 생각만 하면 그는 황천(黃泉)에 가서도 필경 그렇게 쓸쓸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육(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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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할멈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이 생각 저 생각이 오락가락해서 도모지 곤히 잠이 들지 않었다. 겨우 잠간 잠이 드니 정신이 황홀하야지며 홀연이 내 몸은 정안사에 있었다. 절 안에는 과연 윤자영의 무덤이 있고 무덤 앞에 세운 비석에는 ‘자비원 동남 윤자영지묘(慈悲院童男尹子英之墓)’라는 열 자가 뚜렸이 써 있었다. 그 은저리에는 양의 무덤이 무수히 있고 또 내가 낮에 본 패이 큰애기가 마침 무덤 앞에 꿀어 앉어서 기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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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전경(全景)이 돌연 무도장(舞蹈場)으로 변했다! 한복판에 홀연히 묘령의 젊은 남녀가 벌거버슨 채 춤을 추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은저리에는 수많은 양들이 사람처럼 일어서서 춤을 춘다. 또 홀연이 수많은 사자 표범 호랑이들도 역시 그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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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황홀한 무대에 돌연히 키가 짝달막한 흉한(兇漢)이 나와서 내 머리를 향하야 번쩍 칼을 빼어 나려친다! 나는 ‘아’하며 깜작 놀래 깨니 왼 몸에 싸느란 구슬땀이 흘렀다. 맍어보니 다행히 피는 아니었다. 등잔불은 벌서 껒었고 날은 아직 밝지 않었다. 나는 날이 채 밝이도 전에 윤할멈에게 인사하고 떠나왔다. 이처럼 구곡간장이 다 끊어지는 듯한 슲은 나라에 철석(鐵石)같은 심장(心腸)이 아니고서는 누가 잠시라도 머을러 있을 수 있겠느냐? 끝.
【원문】목양애가(牧羊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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