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전국문학자대회 축사 ◈
카탈로그   본문  
1946.2
여운형
1
전국문학자대회 축사
 
 
2
(여운형 선생 등단하자 만장은 우레 같은 박수)
 
3
그동안 나는 수일간 감기로 누워 있었기 때문에 어제부터 대회가 열리는 줄 알면서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무슨 축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조선의 가장 중대한 문제인 문화건설을 위하여 훌륭한 토의를 듣고 나도 여러 가지를 배우려고 말하자면 방청객으로 나온 것입니다.
 
4
아까 사회하시는 분이 나를 소개할 때에 선생이란 말을 붙여주시었는데, 나는 여러분의 선생 될 아무런 자격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을 진심으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또 존경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러니 내가 여러분 앞에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5
여러분은 저 혹독한 일본 제국주의의 가진 압박 밑에서도 그 고결한 지조와 높은 사상을 굽히지 않으려고 마지막에는 붓을 꺾고 혹은 해외로 몸을 피한 이도 있고, 혹은 농촌에 숨어 길쌈을 매고 또는 거리에서 꽃을 팔면서 갖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이 자리에 한데 모여서 또다시 우리 국가와 민족의 새로운 건설을 위하여 붓을 들고 나설 것을 의론하시니 어찌 공경하는 마음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6
나도 지난날 여러 번 생각하였지만 내가 무슨 운동가로서 등산을 한다거나 무엇을 하고 다니는 것을 오락으로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나 자신은 문학가가 되지 않은 것을 퍽 후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치객이 된다고 날뛰기보다는 차라리 문학계에 들어갔었더라면 내 답답하고 서러운 시절에 시라도 한 구절 지으면서 즐길 수 있었을 걸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7
만약 여러분이 이제라도 나무라지 않으신다면 책 상자를 짊어지고 여러분의 뒤를 따르며 배우고 싶습니다.
 
8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우리의 적은 밖으로부터 오는 수도 있지만, 안에서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적에 대하여서는 총이나 칼을 들고 막아야 하겠지만, 안에 있는 적은 곧 내환은 혓바닥이나 붓으로 막아내야 할 것입니다. 옛날부터 붓을 드는 사람이 나라를 위하여 피를 흘리고 싸운 일이 많지만, 우리가 적을 하루속히 퇴치하기 위하여서는 무인도 총과 칼을 버리고 붓을 쓸 때라고 생각합니다.
 
9
40여 년간 일본 놈들이 짓밟아 놓고 간 여러 가지 흠집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직도 내환이 많아서 새로운 문학건설의 새 살림을 괴롭히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모든 독소를 먼저 깨끗이 물리치고 새 조선의 건설에 병이 되는 것을 뽑아버려야 합니다. (박수)
 
10
국가의 혼란기에 있어서는 문인들의 붓끝이 총칼보다도 더 힘이 있는 것이니 여러분은 그 정당한 필봉으로 이 모든 장애물을 정복하고 청소해 주십시오. 나 자신도 문학을 하고 싶은 생각이 끊어질 때가 없습니다.
 
11
우리 선배인 단재 신채호 씨가 외국으로 떠나가실 때 시를 한 구 적었는데, 그 시구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12
行到山窮水盡處[행도산궁수진처](걸어서 도착하니 산 막히고 물 마른 곳)
13
任情歌哭亦難爲[임정가곡역난위](님의 정 읊을래도 이 역시 어렵더라)
 
 
14
이렇게 한탄하셨지만 나도 이렇게 노래하고 싶은 때가 시시(時時)로 일어납니다.
 
15
저번에 우리 혈육의 어린 동무들이 무참하게도 거꾸러진 저 학병 3분 말입니다. 이 건국의 꽃이 되어 사라진 세 학병을 장사 지내는 날 나는 삼청동 골짜기를 향해 혼자 울다가 참지 못해 망우리까지 따라갔습니다. 씩씩하고 젊은 세 어린 동지를 땅속에 묻어놓고 돌아서며 나는 차라리 시인이 되었던들 이 쓰라린 심정을 노래로나 지었을 것을 하고 한탄했습니다. 나는 주먹보다도 붓을 들고 나서서 이분들의 높은 뜻을 이어주고 싶었습니다. 저 유명한 빅토르 유고가 나폴레옹에게 쫓겨나갈 때 무어라고 하였습니까?
 
 
16
내가 붓을 버리지 않은 한 아무 때고 너를 넘어뜨릴 날이 있을 것이다.
 
 
17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여러 선생의 뒤를 따라간다면 혹 후학이라고 만학이라고 나무라지 마시오. 이때까지는 문학의 문외한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문하생이 되어서 죽기 전에 여러분 앞에 훌륭한 글 한 줄 써 보이겠습니다.(박수)
 
18
우리 조선 문학은 말은 우리말이면서 글자는 남의 나라 글을 썼기 때문에 읽기에 곤란하고 익히기에 힘들었습니다. 소위 진서(眞書)니 한문이니 해가 지고 그것만 숭상하면서 정작 제나라 글을 천대했으며 또 글을 배운다 하더라도 옛날에는 벽돌에 새겨서 쌓아두거나 댓가지에 써서 도가니에 찰만큼 간직해 두어야 했고, 또 종이가 나와서도 그 값이 비싸기 때문에 글을 한다는 것은 일부 특권계층에 속한 사람들만이 저이들의 계급적, 정신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혹은 그 생활을 향락하기 위하여 발달시켰을 뿐입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사대주의적 사상을 부어준 데도 이 한문 문학이 얼마나 많은 해독을 끼쳤는지 모르겠습니다.
 
19
3·1운동을 계기로 하여 우리 민족이 수십만의 피를 희생하고 겨우 제나라 문학을 언문일치로 바른 길 위에 세우기는 하였으나, 나는 우리 문학작품 속에서 가끔 이런 말을 보게 됩니다. “무슨 숙종대왕이 수라를 자시고 ‥‥” 혹은 “상감마마가 ‥‥받자와‥‥” 이런 따위의 묵어빠진 옛 낱말을 그냥 쓴다고 하면 여러분이 부르짖는 봉건적 잔재는 없어지겠습니까?
 
20
나는 여기서 이것만은 확신합니다. 우리는 가장 급선무가 우리 민족문학을 세워야 합니다. 거기에는 큰 혁명적 각오가 필요합니다. 중국의 호적이도 언문일치의 문학혁명을 부르짖었고, 서양에서도 스펠링이 많다고 해서 문학 혁명을 일으킨 일이 있지만은, 우리 조선이야말로 우리 문학의 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가 왔습니다.
 
21
즉, 언문일치는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노동자나 농민이 읽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문학, 다시 말하면 평민문학으로서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모든 계급적 언어를 떠나서 대중적으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 민족 고유의 문학을 찾고 지켜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특권계급이 사용하던 그 따위 봉건적 존칭같은 여러 가지 거북스러운 표현은 우리 생활에서 하루 속히 없애버려야 하겠습니다. (박수)
 
22
우리가 우리 주위를 살펴본다면 우리 사람이 우리말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더욱이 일본 놈들이 우리말을 못 쓰게 한 악독한 정책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23
우리 문학은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다 같이 알아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도록 하여야만 원만한 발전이 될 줄로 생각합니다. 우리말 가운데는 또 외국 말이 들어와서 이미 국어화한 것도 있고 또 한문 문자가 많이 우리말 속에 생활화되어 있는데, 이런 것을 무턱대고 배척하는 것 같은 경향은 소위 국수주의로 나타나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파쇼적인 행세를 하려고 하니 우리 진보적 문학인들은 이 점에 있어서도 싸우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이런 모든 싸움을 통해서 여러분은 우리 조선 문학이 진실로 조선 인민대중의 문학이 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박수)
 
24
나는 시나 소설의 기교와 방법을 잘 모릅니다만 때로는 부심해서 훌륭히 쓴 시도 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굳이 글이 꼬불꼬불하고 말이 까다로워서 잘 알아볼 수 없는 것이 많은데, 물론 작자는 고매한 사상을 나타냈겠지만, 나 같은 독자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 감흥을 받을 수가 없는 일이 많습니다. 시나 소설이 정말 훌륭하려면 우리 민족이 아무나 다 같이 느끼고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써야만 할 것입니다. 옛날 백낙천 같은 시인도 시를 써 가지고는 꼭 이웃집 노파를 찾아가서 보였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노파가 읽고도 흥이 난다고 해야만 그것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25
그런데 우리 조선 사람의 대부분은 즉 농민이나 노동자들은 하두 고생하고 시달리며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모릅니다. 기뻐도 웃을 줄 모르고 슬퍼도 울 줄 모릅니다.
 
26
말하자면 정서적인 세계가 그만 딱딱한 조약돌 밭처럼 굳어졌다는 말씀이에요. 그러니 이 딱딱한 조약돌 밭에다가 부드러운 거름을 하고 아름다운 예술의 물을 부어주었으면 그 물의 생명이 약동하는 인간성이 다시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27
이런 점을 생각하시어서 문학가 여러분들은 우리 문학을 일반대중의 문학으로 육성시키도록 근본적으로 혁명해서 어느 특권계급에 이용되지 말게 하고 참으로 우리 근로인민과 같이 싸워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나는 죽기 전에 한 편의 시나 짧은 소설 한 토막이라도 써서 여러분 앞에 내놓을 것을 약속합니다. (환호 갈채 박수)
 
 
28
(-《건설기의 조선문학》, 1946년 2월호)
【원문】전국문학자대회 축사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연설문〕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7
- 전체 순위 : 5234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104 위 / 1794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1) 신앙으로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여운형(呂運亨) [저자]
 
 
  194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연설문(演說文)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전국문학자대회 축사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5월 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