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저녁 후 김복만 군이 첫 득남(得男)을 자축하느라 청했던 생각이 깜박 나서 어둡기는 하고 어쩔까 망설이다가 내려갔다.
3
도중 빙판에 미끄러져서 무르팍을 깠다. 망설이다가 하는 출입에는 개개 이런 액이 따르더라.
4
헌 바지저고리에 외투만 걸치고 탈모(脫帽) 바람으로 들어섰더니 시인(詩人)의 요정(料亭)인데 하인들이 민숭민숭 소 닭 보듯 한다.
5
객석(客席)은새려 큰방에 혼자 들어앉아 우동 한 그릇 달랑 먹고 갈 긴찮은 손님으로 보았기도 십상이리라.
6
친구의 청을 받아 놀기만 하재도 자본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왈 상당한 몸치장.
7
에디슨이 귀히 초대를 받고 갔다가 기름 묻은 작업복이 화(禍) 되어 호텔 문지기한테 쫓겨왔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8
회객(會客)은 김재선(金在善), 현동염(玄東炎) 외 1인의 실명씨(失名氏)와 나까지 네 사람이고 자리의 주인 김군 해서 다섯. 뒤에 온 기생도 만약 인두수에 넣자면 도합 일곱.
9
딸이 아니요 득남이라서 더 기쁠 며리가 있느냐 없느냐는 요란스러우니 접어놓고, 득남을 했다고 졸라서 자축연을 베풀게 해야 옳은지, 거꾸로 친구들이 설도를 해서 당자를 청해다가 축하를 하는 게 옳은지, 아마도 후자가 순리인 성싶다. 나 하나만 에뜨랑제지 주객(主客)이 다 동향(同鄕)의 동학지우(同學之友)들이라 또 주호(酒豪)들이고 해서 자리는 흥 있이 잘 어울려 갔다.
10
내가 부주(不酒)의 죄로 불기(不期)의 여흥에 출연인물이 되었다.
11
꼬뿌술을 돌림으로 들이대는데 그 거역(巨役)을 먹기보다 더 힘들여 겨우 면하고 보니까 기생 하나이 그득찬 한 고뿌를 바로 냉수나 마시듯 주죽 들이켠다. 저 사내꼭지 좀 보라는 것같이 내심에 점직했다.
12
아뭏든 노기(老妓)도 아니면서 젊은 게 제법 걸기(傑氣)가 있어 보이고 유쾌하길래 그놈 한 고뿌 더 먹어라 소리를 쳤더니 궐녀 주정인지 심술이 났는지 넘실넘실하게 큰잔 한 고뿌를 부어가지고 와서는 나를 먹이고라야 말 기세로 턱밑에다가 들이대면서 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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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군에 의하면 송도(松都)의 유수한 ‘인텔리 기생’이란다. 아프리카 오지에 간 호기심으로 대체 ‘인텔리 기생’이란 어떻게 생긴 것이며 ‘기생적 인텔리’의 육중한 본령을 어떻게 발휘하나 보쟀더니, 이건 고뿌술을 들이대면서 고시랑거리되, 댁이 글로 보기에는 제법 활달한 것 같더니 실물은 왜 이리 용졸하냐는 둥 어찌 그리 변통성이 없느냐는 둥 구박이 자심하다. 이런 권주(勸酒)는 생후 처음이다. 치마 두른 족속의 독서유죄(讀書有罪)타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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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안 먹으니까 조끼 호주머니를 잡아 벌리면서 쏟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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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고 쾌락했더니 내 대신 조끼 호주머니가 마침내 한 고뿌의 대주(大酒)를 먹고, 또 흘린 게 있어 바지도 천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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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주(不酒)의 수난보다도 기생이 술을 안 먹는다고 그 술잔을 치마폭에다가 쏟아버릴 뱃심이 없는 내 따위의 소심인(小心人)에 비하면, 기생으로 술 안 받는 손님한테 술고뿌 둘러씌우는 궐녀씨의 심장 장히 든든한데 낯이 없어, 오냐 너 잘했다고 크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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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흥에 혼자 떠서 집 뒤 산기슭을 거닐고 싶었으나 설중(雪中)의 말승냥이가 겁나 이내 집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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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는 벌써 여러 해째 담을 쌓았으면서 당장 임시변통으로 창작을 해서 바로 써두었던 걸 베껴 보내는 체 어엿이 내놀 비위는 없고 부득이 탁상력(卓上曆) ‘메모’난을 뒤져보았다. 뒤져보나마나 어휘 생각나는대로 적어둔 것이 대부분이요, 그 외는 궁상스런 원고료 ‘조지리’나 외상거래 등 숫자가 아니면 간혹 행세할 만한 대문이 있대야 일기류와는 항렬(行列)이 멀고, 또 그뿐더러 진시황의 처분거리밖에 못되는 것들이다. 그런 중에 요행 관무사촌무사(官無事村無事)한 걸로 술벼락 맞은‘부주수난기(不酒受難記)’가 한 토막 끼여 있어 이것이면 일기로 둘러꾸며도 무난할 성부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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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메모 행세(行勢)로 채울 겸 간간 군가락을 넣어 수행(數行)을 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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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亞日報[동아일보] 1938.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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