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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희와 금붕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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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1.1.
고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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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와 금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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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이 되었습니다. 부드러운 대기 가운데는 아릿한 아지랑이가 끼고 간사히 가는 바람이 사르르 불어와서 버들가지를 흔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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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의 집 뒤뜰에도 어리고 생기 있는 파-란 풀들이 하나씩 둘씩 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벌써 비단 위에 고운 채석을 옥침한 듯이 가지런히 요를 깔았습니다. 겨울 동안 창문을 꼭 닫고 무거운 이불을 덮고 병상에 누워서 답답하고 괴롭던 옥희의 방에도 이제는 들창문을 할신 열어놓고 연하고 따뜻한 태양광선을 마음껏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옥희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봄바람에 다- 헤치며 펴버린 머리칼을 날리면서 바깥뜰을 내려다보게 된 것을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오다가다 다리팔이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열심히 바깥을 내다보고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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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에 나란히 선 진달래와 노란 꽃이 벌써 반쯤 봉오리가 폈습니다. 오다가다가 멀리서 제비와 참새가 봄을 노래하는 것 같은 유쾌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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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공기는 스스로 가엽고 녹신-하였습니다. 옥희는 매일 그 꽃들이 봉오리가 조금씩 벌어지는 것을 재미있게 내다봅니다. 버들잎이 하나씩 둘씩 점점 늘어가는 것을 손꼽아 셀 것 같이 주의해서 보는 것으로 하루하루의 봄날을 보내며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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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도 옥희가 매일 열심히 보고 어리고 고운 근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저 -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컴컴하고 음침하던 것 같은 겨울 하늘과 달라 푸르고 양기 있는 봄 하늘은 무슨 경치보다 고상하고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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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푸르고 멀고 높은 그 정한 하늘 그 아래 솜송이 같고 함박꽃 같고 연사의 춤추는 것 같은 흰구름 만 덩이가 뭉게- 떠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할 거룩한 경치인지 몰랐습니다. 그것은 맑은 바다 속 같고 훌륭한 성인의 가슴속 같았습니다. 오다가다 그 넓고 깊은 하늘을 그 솜송이 같은 흰구름이 다- 가리고 그 사이로 조금씩만 푸른 하늘이 내려다보일 때에는 꽃처럼 연신 웃는 얼굴을 내놓고 옥희를 손짓하여 부르는 것 같고 혹은 거룩하고 뜻 깊은 종소리가 가랑랑히 울려 새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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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푸른 끝 모르는 하늘에는 옥희의 알지 못할 무슨 힘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옥희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그것을 사모하며 사랑하였습니다. 어떻게 그곳에 갈 수가 없을까 어떻게 그 힘을 가득히 마음껏 쥘 수가 없을까 하는 것으로 어린 가슴을 적지 않게 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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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태양의 나라,기이한 종소리가 들리는 저 나라를 가고 싶고 가고 싶어서 못 견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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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제 병이 나으면 가리라’ 하고 생각하였으나 저- 한없이 높고 깊은 곳에는 아무리 병이 나아도 갈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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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옥희는 더 어렸을 때 어마님이나 혹은 시집간 형님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생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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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어린 남매들이 자기 어머니를 잡아먹고 어머니 복색을 하고 온 호랑이 때문에 밤중에 도망을 나와서 하나님에게 열심히 기도를 한 결과 금동아줄을 내려 보내서 곧 타고 올라가서 누의는 해가 되고 오래비는 달이 된 이야기를 늘-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금동아줄이나 내려 보내 주셨으면 하고 가만히 기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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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버들호렉이 소리가 점점 많아지고 진달래 노란 꽃이 만발할 때 오랜 병상에 누웠던 옥희의 병도 많이 나았습니다. 아직 기운이 회복되지 못하였음으로 그대로 누워 있기는 하지마는 두통과 열은 거진 다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옥희의 몸에 병이 점점 나아갈수록 옥희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갑니다. 옥희의 얼굴에는 날로 근심의 빛이 늘어갑니다. 조금만 무슨 심사 틀리는 일이 있으면 금방 눈물이 핑 - 돌면서 여윈 손으로 가슴을 괴롭게 만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항상 먼- 하늘만 쳐다보고 하염없이 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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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다만 병을 앓고 나서 몸과 마음이 약하여졌음이라고 말하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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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전에 옥희의 다니던 학교 선생님이 옥희에게 금붕어 세 마리 담은 유리 어항 하나를 갖다주었습니다. 옥희는 낮에는 창으로 바깥 하늘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날을 보내지만 어젯밤에는 머리맡 상 위에 금붕어를 보는 것으로 심심함을 참고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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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유리 항아리 속에 물은 칠분이나 담겼습니다. 전신이 다- 밝고 금빛 도는 조금 큰 붕어가 한 마리요, 등으로부터 배까지 반만 벌겋고 꼬리는 세 갈래로 난 조금 작은 붕어가 두 마리였습니다 이 세 마리 붕어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돌아다닙니다. 옥희는 그것이 마치 유쾌히 노는 것 같지는 않고 어디로 도망갈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옥희는 저 금붕어가 불쌍하게도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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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들이 옥희의 앞으로 올 때에는 조금 조그맣게 제대로 보이지마는 옥희의 저편으로 갈 때에는 제 몸덩이보다 몇 배나 더 크게 보였습니다. 옥희는 그것이 퍽 이상하고도 재미있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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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 차차 그 금붕어에 대하여 이상한 생각이 많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저것들은 돌만 먹고 사나’, ‘왜 사람처럼 말을 못하나?,‘물속에서 어떻게 살까? 나 같으면 한시도 못할 터인데’하는 의심을 품을 때마다 옥희는 자기가 금붕어보다 얼마나 행복한 지위에 있는 것을 짐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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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을 생각할수록 옥희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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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 한번 어머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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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저 금붕어들은 저- 넓은 연당속으로 가고 싶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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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도 부드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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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가 다 살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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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습니다. 이 말에 어머님은 아무 대답도 안 하시고 그대로 바느질을 하시는 것을 보고 옥희는 다시 말을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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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불쌍해요. 어머니 - 좀 답답하겠지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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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눈물이 그렁그렁 하였습니다. 어머님은 앞으로 와서 옥희의 머리를 어루만지시면서 눈물을 씻어주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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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왜 우니? 남들도 다- 놓고 보는걸. 그리고 도로 갖다 놓아주면 또 잡혀가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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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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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 속으로‘그렇다’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금붕어의 신세가 불쌍하게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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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사랑해서 기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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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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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다가 여덟 살 된 옥희의 오라비가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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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금붕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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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손으로 어항 놓인 책상을 탁 쳤습니다. 고요히 돌아다니는 금붕어들은 갑자기 난리를 만난 듯이 도망을 다닙니다. 물은 흔들- 파도를 치는 대로 붕어들이 꼬리를 빨리 저으며 좁은 자기네들 세계에서 피해 다닙니다. 더욱이 제일 작은 놈이 제일 무서움을 많이 타는 것 같이 제일 빨리 빙빙 돌아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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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비는 재미나는 듯이 손가락을 어항 속에 넣어 물을 휘저었습니다. 그때는 세 마리가 일제히 한 군데로 우- 몰렸다가 손가락 가는 데마다 피해 돌아서서 또 우-몰려다닙니다. 마치 까막잡기를 할 때에 눈감은 사람이 오면 서로 우르르 몰려나는 듯이 죽을 기를 다- 쓰면서 도망을 다니는 것을 옥희는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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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야 장난 마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라비는 들은 척 만척하고 그대로 손가락을 휘두르고 섰습니다. 금붕어들은 숨이 찬 것 같이 입을 자주 놀리면서 부르르 떨듯이 전신을 놀리면서 피해다닙니다. 옥희는 그만 눈물을 머금고 목 메인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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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가만두어라! 만약 붕어가 말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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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원망하듯이 오라비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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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 하루 아침에 거룩하고 이상한 꿈에서 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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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 전과 같이 금붕어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금방 유리 어항이 수백 칸 되는 큰 바다같이 커지면서 그 속에 물은 깊고 푸른 강물같이 고요히 파도를 칩니다. 그 많은 강물 위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곱게 걸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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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는 물에 비쳐 아래위로 채석다리를 놓은 것 같았습니다 옥희는 한 편으로 너무 휘황하여 무서운 마음조차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지금까지 꼬리를 치고 놀던 금붕어가 변하여 번쩍 하는 금빛 밝은 빛의 활옷 같은 것을 입고, 황금빛 머리를 뒤로 곱게 풀어 헤친 아름다운 여신이 되어 물속에서 불끈 솟아올라 무지개다리 위에 섰습니다. 그 까맣고 또렷―한 눈으로 처음에는 옥희를 무섭게 보더니 차차 부드럽게 내려다보며 예쁜 얼굴에 웃음을 띠었습니다. 옥희는 화려하고 기이하고 예뻤으나 목이 꽉 막혀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넓고 푸른 하늘 문이 열리면서 오색구름을 타고 금붕어 여신은 나는 것같이 고요히 올라갑니다. 하늘 위에부터 오는 상쾌한 바람에 여신들의 고운 옷자락은 펄펄펄 나부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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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깊은 알 수 없는 하늘 속 세계에는 금은들로 지붕을 하고 산호, 진주로 기둥을 한 궁전 같은 누각이 있으며 , 그 속에서는 금붕어를 환영하는 유량한 음악 소리가 새어나옵니다. 금붕어의 여신들이 타고 올라가는 구름 양 끝에 백설 같은 날개가 달린 여신이 서서 인도를 하며 오색구름이 올라가는 곳마다 눈을 쏠 듯한 기이한 서광이 빛나서 온-하늘을 색색으로 곱게 장식합니다. 옥희는 그 거룩한 광경을 감격한 눈물조차 머금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금붕어의 여신 셋은 백옥 같은 손으로 옥희를 향하여 손짓을 하면서 셋이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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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야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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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야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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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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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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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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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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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야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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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야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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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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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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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펄 날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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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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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야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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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야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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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가 이런 알 수 없는 꿈을 깨니 봄날 아침 해가 옥희의 베갯가를 비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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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 그 꿈에 보던 그 광경이 아직 눈을 휘황케 하며 그 노랫소리가 아직까지 귀를 울립니다. 옥희는 마치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것같이 마음이 시원한 듯하고 환-한 듯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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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 얼른 생각난 듯이 어항을 보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세 마리의 금붕어는 죽어서 둥둥 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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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금붕어는 그만 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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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옥희는 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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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 그만 눈물을 흘리면서 꿈꾸는 듯한 눈으로 창을 열고 넓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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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티 끌 한 점 없이 환- 하였습니다. 옥희는 그 자리에 엎드려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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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는 그날부터 도로 병이 더해 점점 열이 높아졌습니다. 눈은 상혈이 되어 붉으면서도 항상 꿈꾸는 것같이 몽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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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노란 꽃이 지고 복사꽃이 만발한 때, 푸르고 넓은 하늘은 다른 날보다 한층 더 밝고 정한 날,새벽 해가 동산에서 붉은 빛과 무한한 기운을 토하면서 올라올 때 옥희의 집 조그만 문에서 는 옥희의 장사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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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의 적은 영혼은 아마 아름다운 금붕어와 같이 저 - 해의 나라 무지개 나라로 올라갔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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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신년 제4호 3면, 19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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