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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단상(斷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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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 10. 5~ 7
이병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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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斷想[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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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서리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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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危險[위험]한 熱情[열정]에 끌려서 才人[재인]의 것은 가시밭을 따라가는 무리여! 함부로 詩歌[시가]에 몸을 던지지 말고 또한 詩[시]를 짓는 것이 좋다하여 自己[자기]를 天才的[천재적] 詩人[시인]으로 自負[자부]하지 말고 함부로 快樂[쾌락]의 魅惑[매혹]에 빠지지 마라. 그리하여 오랫동안 自己[자기]의 재능과 力量[역량]을 저울질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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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分[천분]이 없는 作家[작가]가 無謀[무모]하게도 詩壇[시단]의 高峯[고봉]에 오르랴 하야도 그것은 틀렸다. 天來[천래]의 靈感[영감]에도 接觸[접촉]되지 않고 生得[생득]의 시인도 아닌 자는 永遠[영원]히 그 貧弱[빈약]한 才能[재능]밖에는 나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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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十七世紀[십칠세기] 佛蘭西[불란서]의 詩人[시인]이며 批評家[비평가]인 『니코라스·보아로』의 詩學[시학]에 쓰인 말이다. 나는 이 冊[책]을 읽다가 눈이 까막까막하여졌다. 그것은 그의 말이 全部[전부]가 金科玉條[금과옥조]가 아니요. 한 個[개]의 古典[고전]으로서 읽는다 하더라도 이 句節[구절]은 비록 異義[이의]가 있다하더라도 나의 가슴을 칼로 오려내고 나의 속에 깊이 감추어둔 나의 陰謀[음모]의 동란과 野慾[야욕]의 덩어리에 實[실]로 날카로운 침을 주었다. 그렇다 ― 나는 力量[역량]이 없다. 才能[재능]을 같지 못하였다. 나는 나의 熱情[열정]에 사로잡혀 나의 힘과 才能[재능]을 自省[자성]하기에는 너무도 잊어버리었다. 내가 내 自身[자신]에 물어보더라도 나는 한번도 나의 才能[재능]을 살펴본 적이 없다. 오 ― 직 熱情[열정]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정말 가시밭을 걸어왔다. 그것은 다른 사람도 걸었스리라. 그러나 그들은 才能[재능]이 있다. 나는 그들의 才能[재능]있는 사람들의 흉내를 내고 따라다니느라고 얼마나 荊棘[형극]의 苦生[고생]스런 길을 걸어왔으며 또한 걷고 있는가. 그러나 남은 發展[발전]이 있고 進步[진보]가 있건만 나는 아무런 發展[발전]과 進步[진보]를 찾지 못하였다. 정직하게 吐露[토로]하고 自白[자백]하고 싶다. 나는 정말 詩人[시인]이나 小說家[소설가]될 才能[재능]이 없다. 才能[재능]이 없었음으로 아무리 勞力[노력]하여도 역량이 없다. 내가 왜 이 길을 그리워하였으며 이 길을 걸을려고 앞뒤도 안살피고 덤벼들고 ― 나는 돌아 보았다. 確實[확실]히 나는 詩[시]를 지음으로써 快樂[쾌락]하였고 그 快樂[쾌락]에 魅惑[매혹][당]하지 않았나. 當[당]하였다 그리고 當[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冊[책]을 진작 보았다면 모르거니와 나는 只今[지금]에 걷고 있는 길을 中斷[중단]할 수는 없다. 中斷[중단]을 왜해! 千不當[천부당] 萬不當[만부당]! 누구가 무어라하나? 늙은 父母[부모]님이 눈물을 흘리시며 挽留[만류]하였고 親[친]하다는 동무가 주먹을 부르쥐고 忠告[충고]하였건만 나는 기어이 이 길을 걷지 않았나? 苦生[고생]스러우리라는 것은 벌써 짐작하였다. 荊棘[형극]! 흥불덩어리가 굴러다니는 溶液[용액]에라도 헤엄치고 건너가리라 成不成[성불성]은 問題[문제]삼지 안한다. 成[성]할 것만 擇[택]하고 不成[불성]할 것은 버렸다면 내가 내 될 것이 무엇이냐. 成[성]을 누가 保證[보증]하며 不成[불성]을 누가 坐斷[좌단]하랴. 그리고 큰 마음먹고 定[정]한 길을 出發[출발]한 後[후]에 不成[불성]할 氣味[기미]가 보인다고 中路[중로]에서 돌아서는 기얄픈 背叛[배반]은 싫다. 그리고 成[성]할 兆症[조증]이 보인다고 나아가는 그러한 功利的[공리적]이며 市町人[시정인]의 보상과 생죄의 간사함을 같기는 죽어도 싫다. 나의 배를 찢어가거라. 이것을 無謀[무모]라고 어느 놈이 말하느냐? 나는 다시 나의 몸서리친 것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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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撥[반발]이라할가? 나는 그 冊[책]을 사갈사갈 버리었다. 그리고 시골집에서 여름날 農家[농가]의 소죽쑨 더운 방에서 땀을 흘리며 겨울날 불도 안 때인 빈방에 煩雜[번잡]을 避[피]해가며 추운 줄도 모르고 드러백이여 책을 읽고 쓰다가 學校[학교]한 놈의 미친 꼬락서니이라고 洞里[동리]사람들의 嘲笑[조소]와 父母[부모]님의 置之度外[치지도외]의 꾸정을 들은체만체하며 싸우다가 나의 뜻을 일우고 눈을 넓히기 爲[위]하야 나는 배우려 서울을 왔다. 가을도 벌써 짙어가려 하고 나의 집 떠나올 때의 큰 뜻은 이룰 날이 아득한 그야말로 싹트지 안했구나. 詩學[시학]이란 그冊[책]은 찢어진 조각들이 나를 비웃고 치어다본다! 그러나 急[급]히 굴 것은 조금도 업다. 前世[전세]의 偉大[위대]한 藝術家[예술가]들의 來歷[내력]을 살피더라도 大成[대성]은 老來[노래]에 하였고 죽어가는 臨終[임종]에서도 붓을 움직이지 않았는가. 죽을 때까지 不成[불성]해도 조타. 오직 忠實[충실]한 文學[문학]의 兵卒[병졸]로 一生[일생]을 보내리라. 그리고 偉大[위대]한 作家[작가]의 作風[작풍]을 본받기 前[전]에 그들 中[중]에서 第一[제일] 完成[완성]에 가까운 人間[인간]을 求[구]하야 스승을 삼고 그 人間[인간]을 遺産[유산]으로 爲先攝取[위선섭취]하리라. 그리고 文學[문학]을 하기 위하야 나는 現實[현실]의 全的[전적] 動向[동향]에 큰 關心[관심]을 가지고 나의 洞察力[통찰력]을 붓기 도우리라. 文學[문학]을 하기 爲[위]하야 文學[문학]에 사로잡히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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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의 鈍感[둔감]과 나의 悲哀[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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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을의 悲哀[비애]를 가졌다. 平凡[평범]한 悲哀[비애]다. 그러나 그 悲哀[비애]를 나도 解得[해득]키 어려운 희미한 웃음으로 表現[표현]하여 버린다. 濫作[남작]을 避[피]하랴고 애써애써 從容[종용]히 想[상]을 錬[연]하야 지은 것이 九月二十九日[구월이십구일] 朝鮮中央日報[조선중앙일보]에 發表詩[발표시] 『아도와의 원수를 ― 무소리니의 부르는 노래』였다. 아침에 그 詩[시]를 보고 午前[오전]에 거리에 나가 P라는 친구를 만났다. P의 말이 『兄[형]의 詩[시]를 보았는데 그것은 誤解[오해]받기 쉬웁게 되었다더라』는 것이다. 勿論[물론] 이 말은 P로서 나에게 한 忠告[충고]였다. 나는 그것을 그냥 덮어치우기에는 너무도 나의 뜻이 許諾[허락]치 않았다. 나의 意圖[의도]와 全然[전연] 相反[상반]되는 讀後感[독후감]을 들을 때 나는 이것을 다시 檢討[검토]치 않고는 못배기었다. P가 말하는 感想[감상]에는 그것이 侵略主義[침략주의]를 高調[고조]한 反動的[반동적][시]로 誤解[오해]받기 쉬울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自己[자기] 辯名[변명]의 不遜[불손]한 覺書[각서]가 아니라 P와 같은 見解[견해]를 가진 讀者[독자]가 있을까하여 싫으면서도 檢討究明[검토구명]하고 따라서 이 誤解[오해]를 풀기에 努力[노력]하는 것이 나의 任務[임무]일 듯이 생각한다. 이것은 나 自身[자신]을 爲[위]하는 것보다 그 詩[시]를 爲[위]하는 것보다 읽은 사람이 많이 가질법한 認識錯誤[인식착오]를 깨우려는 唐突[당돌]한 생각이다. 이 唐突[당돌]은 一見[일견] 自身[자신]을 爲[위]하는 것 가트면서도 그래도 다보면 取[취]할 貴[귀]여움이 있을까한다. 그 詩[시]는 두말할 것도 없이 諷刺詩[풍자시]다. 諷刺[풍자]라는 것은 現實[현실]의 가장 困難[곤란]한 壓力[압력]밑에서 어떠한 不正[부정]과 不合理[불합리]를 正面[정면]으로 指摘[지적]할 수 없을 때 取[취]하는 一種[일종]의 方法[방법]이라고 생각한다. 勿論[물론] 冷嘲[냉조]와 飜弄[번롱]도 있을 것이며 攻擊[공격]도 있어서야할 것이다. 그러나 攻擊[공격]을 加[가]할 때는 正面[정면]이 되기 쉬우며 컴푸라 ― 주가 잘되지 안하는 수가 있다. 그리하여 나는 이 詩[시]를 쓸 때 『마리안·베 ― 도누이』의 寓話詩[우화시](미 ― 스니)를 생각하였고 權煥氏[권환씨]의 蔣介石[장개석]의 노래도 생각해 보았다. 그리하여 側面[측면]으로 主人公[주인공]을 믓소리니로 하고 그의 입을 빌어 그가 가진 바 陰謀[음모]를 吐露[토로]시키고 自白[자백]시켜 伊太利[이태리]의 미리타리즘의 正體[정체]와 에지오피아를 侵略[침략]하는데의 그들의 護身符[호신부]인 『아도와의 원수』가 어떠한 陰謀背後的[음모배후적] 性格[성격]미테 그것이 聖[성]스러운 國民動員[국민동원]의 푸로파간듸스의 用語[용어]로 되며 兵卒[병졸]에게 檄[격]하고 國民[국민]에게 檄[격]하는 『아도와의 원수』의 槪念[개념]을 暴露[폭로]하고 파시즘과 資本家[자본가]의 密約[밀약]을 들추어서 ××××戰爭[전쟁]의 特質[특질]을 究明[구명]하려는 意圖[의도]였었다.
 
 
9
그러나 이 諷刺[풍자]에는 恒常[항상] 훌륭한 拔巧[발교]를 要[요]하는 것인줄도 잘 알았다. 拔巧[발교]가 拙[졸]하면 그것이 相反[상반]되는 結果[결과]를 가져오는 危險[위험]한 方法[방법]인 것은 勿論[물론]이다. 그러나 나의 詩[시]가 아무리 지금 다시 스크랩을 들추고 읽어 보아도 反動的[반동적]임은 아니다. P의 말과 같이 反動的[반동적]이라고 본다면 그 讀者[독자]는 鈍感[둔감]이다. 이것은 自尊[자존]이 아니다. 나의 弱冠[약관]의 一篇[일편][시]가 烙印[낙인]받는 것이 원통하고 가을의 悲哀[비애]라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正堂[정당]한 認識[인식]을 시키고 난 뒤에는 나의 存在[존재]라기 보다 몸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그곳에 차라리 무게 있는 갑을 發見[발견]한다. 그 重大[중대]한 ××××戰爭[전쟁]의 正體[정체]를 暴露[폭로]하야 그것의 正確[정확]한 性格[성격]과 表情[표정]을 『캣취』하고 讀者[독자]로 하여금 認識[인식]을 주었다면 그것을 캣취하여 드러낸 카메라맨 性格[성격]인 나 自身[자신]은 機械[기계]와 함께 죽어도 좋다. 그러나 그 貴重[귀중]한 表情[표정]의 寫眞[사진]이 남에게 誤認[오인]받고 그 本來[본래]의 使命[사명]과 正反[정반]되는 結果[결과]속에서 機械[기계]와 함께 카메라맨이 짓밟혀 죽었다면 그것은 永遠[영원]의 悲哀[비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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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P가 나의 詩[시]를 잘못보고 誤解[오해]하였든지 내가 詩[시]를 잘못 썼든지 두 가지 中[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詩[시]의 惡結果[악결과] 反動性[반동성]을 發見[발견]할 때까지 自省[자성]하겠고 그 反動性[반동성]이 가장 正堂[정당]한 行動[행동]을 取[취]하야 謝[사]할 것이며 P의 誤解[오해]라면 P의 鈍感[둔감]을 啓蒙[계몽]하기 爲[위]하야 이글을 읽은 後[후]에 다시 한 번 그 詩[시]를 보아주기를 바라며 내가 다른 거울 쪽 같이 알아보기 쉬운 詩[시]를 못쓰고 어색한 諷刺[풍자]의 方法[방법]을 取[취]하게 되는 그것이 悲哀[비애]인 동시에 그것을 誤解[오해]하는 鈍感的[둔감적]인 親舊[친구] P에게도 悲哀[비애]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가을에 이 悲哀[비애]가 어느 때 어디서 난 것이며 將次[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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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 가을의 이 비애여! 그러나 決[결]코 센틔하지는 않다. 가장 리앨한 悲哀[비애]라 할까, 바깥에는 늦은 가을비가 내린다. 겨울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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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십], 二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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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日報[조선일보]》(1935. 10. 5~ 7)
【원문】가을의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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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기본
  # 가을의 단상 [제목]
 
  이병각(李秉珏)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5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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