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각해 보건대, 좋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는 모르겠으되, 나는 어떠한 작가한테서 뚜렷한 영향을 받은 것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문과대학을 마치었다면, 이런 때 하다못해 졸업논문을 쓴 걸 내놓고, 이야기 할 수도 있으련만, 학교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그런 까닭에 어떤 한 사람이나 한 시대의 외국작가를 계통적으로 연구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문학수업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이 이루어진 까닭에, 그 책과 그 책의 저자 가운데서 나의 영향을 찾아볼 밖에 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것조차 지금 제목을 붙여놓고 써보려고 하매, 남의 앞에 내어놓을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솔직하니 고백치 않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렇다 하고, 조선작가이거나 내지(內地)나 외국작가에게 송두리째 경도해 버린 경험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단언키 힘든 일이겠으되, 때로는 내 자신의 긍지가 되는 것도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3
하기는 고보 시절에 내가 굉장히 경도(傾倒)(〔傾倒〕의 오자-편자)했던 작가가 단 한 분 있다. 어떠한 근거가 있었든지, 전혀 우연한 일이였든지 간에, 그는 고(故) 개천용지개(芥川龍之介)다. 그러나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의 어느 구석에, 그의 영향이 들어 있는지는 나조차 알 수 없다. 중학 때에 쓴 작품(?)에는 개천의 것을 모방한 것이 대단히 많았고, 그의 저서의 장정화가, 소혈융일(小穴隆一) 씨를 본받아, 제법 내 원고를 매어 떡꿍을 장식했던 적도 결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날 내가 처음으로 「대하」를 상재하면서, 장정을 서투른 내 손으로 직접 한 것은, 내게 친분 있는 화가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소혈(小穴)이 같은 장정을 하는 이가 한 분도 없는 때문이었다는 것에, 혹은 중학시절에 받은 개천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같이 중학시절에 애호했던 작가 중에도, 말하자면 무자소로실독(武者小路實篤), 지하직재(志賀直哉), 횡광이일(橫光利一), 또는 스트린트베리 등등이 있어 그들의 끼친 바 영향은 아직도 그 흔적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나, 개천의 끼친 영향이 적은 것은 나 자신으로도 알지 못할 일이다.
4
그 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보아, 고리끼 같은 분의 영향은 가장 컸어야 할 터인데 불구하고 나는 그의 작품에서보다도, 그의 문학론에서 더 많이 영양소를 섭취했다는 것이, 부끄러우나 진실에 가까운 사실이다. 이 시기에 내지 작가로서는 덕영직(德永直)보다는 소림다희이(小林多喜二)(나의 초기의 발표 작품, 예컨대 「공장신문」, 「고무」, 「공우회」등은 태반 소림에의 경도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 뒤엔 충격을 주었다는 건, 내가 그들의 작품을 퍽 주의해 읽었다는 것으로 보아도,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상 싶다.
5
이렇게 적어오고 보면 실상 나에게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작가는 누구인지, 선뜻 들어서 말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전혀 작금 양년간, 내가 어떠한 작가를 눈붙여 보고, 또 어떤 작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왔는가 하는 것을 적어보는 것이 오히려, 자미(滋味)도 나고, 또 나를 이야기하는 데 참고도 될까 한다. 그러나 위선 털어놓고 말해보면 나는 작가활동을 시작한 이후, 독서할 여유를 많이 갖지 못하였다. 「죄와 벌」과 「지하실의 수기」같은 것을 읽은 기억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연구해 보려고 전집을 모았고, 발자크와 셰익스피어를 읽으려고 그들의 작품도 모아놓았으나, 아직 계통적으로 연구한 적이 없고, 그렇게 흔한 지드, 발레리도 아직 연구치 못하고 있다. 직업도 안 갖고 그대로 번둥번둥 놀면서, 어째서 마음대로 독서할 겨를이 없는지, 우인들이 모두 여러 것을 공부하는 걸 보면 때때로 내 일이 한심하여 민망스럽기 조차 한 것이다. 아직도 시간을 이용하는 법이 째이지 못한 탓인지, 혹은 문필을 능숙하니 해치우는 기술이 부족한 탓인지, 소설 같은 걸 하난 생각하든가, 쓰고 있든가, 하는 중에는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손에 붙질 않는다. 눈이 멀개서 번둥번둥 그렇다고 낮잠 하나 변변히 못 자고 하루 해를 보내는 일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6
작금 일년간 장편소설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읽어도 보았고, 나 자신 장편소설에 손을 댈 때의 준비로, 우리 우인작가나 내지(內地)의 장편이나 서구의 장편이나를 눈 붙여보았고 특히 리얼리즘의 문제를 핵심으로 하여 장편소설의 개조 같은 것을 생각해 보노라고 했으나 그 시에 자료될 만한 것으로 계통적으로 연구한 것도 아무 것도 없다. 우연한 기회가 돌연히 생겨서 급작스레 장편에 착수하면서 엉겁결에 가족사 연대기를 계획해 보았으나 그 유명한 토마스 만의 「붓덴부르크 일가」나 또는 콜스워지의 것이나 로제 마르탱 뒤가르의 「티보 일가」나, 또는 그보다도 더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같은 것도 연구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가족사나 연대기를 계획하면서도 태서의 이름이 높은 그 류의 명작조차 해부해 볼 겨를이 없었으니, 누구의 영향을 바르게 받았을 리 없다.
7
「대지」같은 건 유행을 따라 읽어보았으나, 또 「대지」식으로는 거의 우리 형편이 쓰기를 허락치 않았고, 혹시는 퍽 전에 읽었던 솔로호프 같은 이의 영향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은 불과 두 편, 「고요한 돈」과 「개척된 처녀지」일 뿐으로 무슨 영향일 것이랴마는, 원체 내가 다른 것보다 세밀히 읽고 분석해 보았고, 그 주인공들의 생기 발랄(潑剌)한데 매혹되었던 것이 사실이므로 4, 5년 전의 일이라 할지라도 역시 어딘가 그 때의 영향이 남아 있을는지 모르겠다.
8
위선 장편이 1부(「대하」)를 써놓고, 한번 문우 제씨에게 비판을 받으려고, 가족사 연대기를 리얼리즘의 구현과 나의 종래의 지론과를 통일시켜서 장편개조론을 2, 3차 제창해 보았는데, 아직도 별로 비판 같은 것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제2부의 준비차로, 지금 전기(前記)의 태서에서 유명한 가족사소설들을 읽어보고 연구하는 중에 있으니, 혹시 차후에는 이 중의 어느 작가의 영향이 내 작품에 현저히 나타날는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것이 없다 말하는 게 온당(穩當)할까 한다. 오히려 나는 우리 문단의 중견작가 제씨들의 소설이나 생각에, 더 영향을 받아오는 것이 부끄러우나 사실인 상 부르다.
9
이 외에 우리 고전에 의한 영향을 생각할 수 있는데, 거리낌없이 명언해도 좋겠으나 나는 아직 춘향전이나 남정기나 향가나 용비어천가 등에서 아무러한 영향도 받지 못하고 있다. 한 번 혹은 두 번씩 읽기는 했는데 아직 그렇게 감탄하거나 영양을 섭취했거나 한 일이 없었다. 나의 연구태도가 부족한 탓이라 하여 금후도 틈 있으면 공부해 볼 예정이지만, 위선 다른 일이 바빠서 문고본 같은 걸로 나는 대로 틈틈이 다시 읽어볼까 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금후로 미룰 밖에 별도(別途)가 없다. 공부도, 연구도, 영향도, 나에게 있어서는 금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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