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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 플리트 장군과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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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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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플리트 장군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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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무심히 찻집에서 친우들과 떠들어대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 얼마 전 제 군 8 사령관 밴 플리트 대장의 영식(令息) 제임즈 중위가 북한 폭격에 참가하였다가 원인 모를 행방불명이 되었고, 또한 제임즈 중위는 밴 장군의 외아들로서 장군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하여 한국전쟁을 방문한 후 공군 장교인 그는 역시 한국에 있어서의 공군 작전에 참가하게 되었으나, 신문의 보도와 같이 그는 또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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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제임즈 중위의 불상사는 한국에 있어서의 커다란 뉴스였을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 우리나라 신문은 대대적인 보도를 하였고, 이 대통령도 밴 장군에게 위로의 서간을 보내었다는 것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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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다방에 모여 앉은 우리들은 제임즈 중위 행방불명에 관한 외신의 이것저것, 또한 육군은 템포가 늦어 공군을 지망하였다는 그의 현대적 감각, 이혼한 그의 아내는 현재 뉴욕 부룩클린 근교에서 이 비보를 들었을 것이라는 AP의 기사가 참으로 감명적이었다는 것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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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화제의 발전은 한국 고관의 자식들은 전사(戰死)는 고사하고 일본으로 도피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병정마저 기피하여 버리는데, 외국에서는 이런 일이 있기보다는 솔선, 자제들이 전쟁에 참가하여 공산군과 싸우고 있고, 또한 전사를 하는 데는 경탄치 않을 수 없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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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우리들의 대화 도중, 공보원에 있다는 V.브루노 씨가 찾아왔다. 그는 나와 처음 만나 반가이 악수하면서 ‘시’를 한 편 써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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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란 지금까지 우리들 화제의 중심이었던 밴 플리트 장군에게 보내는 헌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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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연히 생기는 일체의 현상에 놀라 일이 한두 번이 아니나, 밴 장군에게 보내는 시를 써달라는 데도 좀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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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대통령을 위하여, 국무총리를 위하여 시를 썼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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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궁정시인이나 계관시인도 있었던 것인데, 현대에 와선 시인(개인) 자체가 사회적 지위를 확립함에 있어서 어떤 권력 있는 자의 관력(官力)에 아부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다소 고민하였다. 밴 플리트 장군의 환갑을 한국 정부와 미 대사관에서 공동으로 경축하는 식석(式席)에서 무초 미 대사가 장군에게 바치는 시를 쓴다는 데 대하여……허나 결국엔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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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우리 한국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하여 침략자와 싸우는 미 제 군 사령관인 8 밴 플리트 장군에게 한국의 시민의 하나인 나는 시인으로서보다도 인간으로서 최대의 경애와 감사의 마음으로 보답하여야 할 것이며, 더욱이 이역 수만리 황폐한 싸움의 터전에서 초연과 파성의 요란함을 받아가며, 아들 제임즈 중위의 행방불명(거의 전사일 것이다)이란 괴로움을 참아야 할 심정인 장군의 환갑 축회를 마음껏 축하하는 것도 한국사람 된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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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씨는 나를 데리고 모 중국요리집으로 갔다. 조용한 방 한 구석에 앉아 나는 근 80행에 달하는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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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 씨는 원래가 화가라 하며 시에 대해서도 제법 견식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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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도 좀 E.E. 커밍즈(Cummings, Edward Estline)와 같은 조자(調刺)의 맛을 띠었으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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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제언했으나 그리 반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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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시의 제목은 “당신은 지금 얼마나 행복하십니까”인데, 이를 영역(英譯)으로 옮긴 것 “Whangap(환갑)”으로 되어 있고, 또한 시구에 “북한 어느 이름○○곳에서 제임즈 중위가 당신의 오늘을 축하하듯이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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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절은 삭제하였다. 왜 그 구절을 마음대로 고쳤느냐고 브루노 씨에게 물은즉, 환갑 축하식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면 다소 마음이 쓰라리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일리 있는 것이라고 긍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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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는 나의 헌시는 영문으로 완역되어 도안문체로 청서(淸書)되고, 이것을 밴 플리트 장군에게 무초 대사가 바친 것을 그 후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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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써보느라고 여러 해 동안 애를 썼고, 더욱이 천성의 비극의 하나로 시에 뜻을 바친 이상, 나는 시를 쓰는 데만은 성실하려고 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그 누구에게 헌시는 해본 적이 없다. 대수롭지 못한 몇 줄의 글 나부래기라 할지라도 내 시의 정신을 그리 쉽사리 남에게 바치기는 싫었고, 반면 자존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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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플리트 장군은 무척 즐거웠던 모양이다. 몇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전연 이름 모를, 알지도 못하는 일 ─ 한국의 젊은 시인이 보내준 시 한 편에 장군의 전고(戰苦)가 위로되었고, 환갑 축하회가 빛났다면 유엔 장병의 용전분투로……, 그들의 피의 대가로 우리가 안정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터이므로, 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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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근역서재, 1982)
【원문】밴 플리트 장군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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