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거울 ◈
카탈로그   본문  
미상
계용묵
목   차
[숨기기]
1
거울
 
 
 

1. 상

 
3
문혜는 아침 학교로 떠날 때마다 꽃분이가 근심이었다. 인제 열네 살이니 그까짓 게 무어 칠칠히 일은 하랴만 그래도 나이 봐선 못 하는 일이 없이 제법 하는 편인데도 어머니의 비위에는 틀렸다. 가다가 실수는 누구에게도 있는 일, 그런 걸 탓 잡자면 아니 잡힐 사람이 없을 것이다. 장작을 패고 숯불을 지피고 쌀을 일어 놓으면 그적에야 어머니는 부엌으로 내려와 솥에 쌀을 안치고 다시 들어갔다가 밥이 다 잦아야 한 번 나와서 밥을 푸는 일뿐이었고 상을 물리면 그 뒤치다꺼리 까지도 도맡는 게 꽃분이의 역할이다. 아니 아침 저녁의 식사 때문이 아니라 배급을 타오느니 찬거리를 사오느니 하는 잔심부름에다 빨래까지 겸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날이면 날마다 잠시나마 밑 붙일 짬이 없이 서서 돌아가며 손을 놀려야 하는 것이니 일을 적게 하는 데서보다 많이 하는 데 그 실수가 많이 따르게 될 것은 빠안한 일이다. 그것도 후에는 주의를 하라고 약간 욕으로 이르는 정도라면 혹 몰라도, 지독한 욕에다 손까지 대어서 하루도 몇 번씩 꽃분이의 눈물을 보고야마는 성질이니 꽃분이의 이러한 정경을 목도할 때마다 문혜는 혼자 안타까웠다.
 
4
보다 못해.
 
5
“아이 어머니 너무해요. 그만두세요.”
 
6
하면 그적엔 욕이 자기에게로 건너올 뿐 아니라 한층 더 서슬이 푸르러 꽃분이에게로 가는 욕이 좀더 심해짐으로 이즘은 어머니가 욕을 하거나 말거나 매를 치거나 말거나, 알은 체도 아니 하고 그대로 두고 만다. 아무리 지독한 욕이 나와도 잠자코 있는 편이 도리어 꽃분이를 위함이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7
문혜의 이러한 내심을 꽃분이도 모를 리 없다. 욕을 먹을 때마다 마음으로 동정을 하여 주고 아연히 여겨 주는 문혜가 고맙기 짝이 없었다. 그리하여 문혜가 옆에 앉아 있어야 어쩐지 마음이 든든한 것 같고 그렇게 서럽지도 않은 것 같아, 문혜가 늘 자기와 같이 집에 있기를 바랐으나 문혜는 날마다 아침이면 학교로 가야 했다. 그러므로 꽃분이에게는 문혜가 아침 학교로 떠날 때처럼 안타까운 일이 없었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처럼 반가운 일이 없었다. 마나님의 그 모진 욕에 차마 견디기 어려울 때는 그까짓 죽어라도 버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다가도 그러면 문혜의 그 자기를 위한 따뜻한 정은 영원히 받아 보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닌가 하면 금시 문혜가 그리워서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모든 것을 참아 오는 것이었다.
 
8
지금도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꽃분이는 책가방을 들고 마루로 나오는 문혜의 인기척을 엿듣고 금시에 날이 어두워지는 듯한 적막에 문을 방싯이 밀고 애처롭게 갸웃이 마루 쪽을 내다보았다.
 
9
이러한 꽃분이의 마음을 문혜 또한 모르진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꽃분이를 집에 혼자 두고 학교로 가는 것이 갈 때마다의 근심인데 이렇게 자기를 떨어지기 싫어 어머니가 보면 일을 아니 하고 넘석거린다고 욕을 먹을 줄 번연히 알면서도 자기를 가까이 하려는 꽃분이의 그 아연한 마음을 헤아려 볼 때는 정말 측은한 생각에 눈시울이 찌릿거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듣는데서 꽃분이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주는 수는 없다.
 
10
“어머니 저 학교에 다녀오겠어요.”
 
11
하고는 언제나같이 꽃분이에게는 눈짓으로만 다녀온다는 뜻을 보이고 또각또각 대문 밖으로 나갔다.
 
 
 

2. 하

 
13
“뭐냐!”
 
14
마나님은 그릇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
 
15
“아네요.”
 
16
“아니라니! 무에 쟁강 했는데?”
 
17
“아네요.”
 
18
“아니가 다 뭐냐!”
 
19
터르릉 하고 안방 문 밀리는 소리가 난다. 마나님이 달리어 나오는 눈치다.
 
20
책상을 훔치려고 거울을 옮겨 놓다가 그만 꽃병에 부딪쳐 쨍 하고 났던 소리다. 실수한 것이 없다.
 
21
그러나 달려 나오는 마나님은 무섭다. 실수는 없는데도 무얼 깬 게 아니냐고 바로 말을 하라고 자기 비위에 만족할 때까지 따집고 쥐어박고 할 건 늘 지나 보는 일이라, 빠안하다.
 
22
오늘은 웬일인지 마나님이 종일을 낮잠으로 참견이 없었으므로 요행 아무 일도 없이 지나게 되는가 보다 알았는데 문혜가 돌아올 시간이 되어 방이 너무 어지럽기에 말짱히 좀 훔쳐 준다고 들어갔던 것이 그만 또 이렇게 걸려들게 되었던 것이다.
 
23
‘빌어먹을 유리 부딪치는 소리가 왜 그리 쨍 할까?“
 
24
꽃분이는 거울이 꽃병에 부딪쳐 내는 그 쨍 하는 소리를 야속스럽게 여기며 거울을 채 놓지도 못하고 손에 든 채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25
문이 밀린다.
 
26
있는 힘을 다하여 미는 듯한 그 문소리도 놀라웠거니와 미간의 그 주름이 세 줄로 꼿꼿이 내려뻗히고, 한껏 독을 몰아넣은 듯한 눈초리를 세모지게 찡그린 마나님의 얼굴과 부딪칠 때 꽃분이는 머리끝이 쭈뼛하고 올려뻗히며 소름이 쭉 전신을 엄습해왔다. 그 순간 꽃분이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저도 모르게 걸음이 뒤로 물러가다가 비칠 하고 몸의 균형을 잃었다. 걸레를 담아 들여다 놓은 물대야에 발뒤꿈치가 걸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리보다 상반신이 먼저 뒤로 쏠리는 바람에 몸의 진정을 얻으려고 비칠비칠 발자국을 옮겨놓다가 그만 대야를 밟게 되어 더욱이 걸음의 균형을 잃게 된 꽃분이는 몸의 진정을 위하여 애를 쓰다가 손에 들었던 거울까지 떨어뜨렸다. 대야 가장자리에 허리를 맞은 거울은 쨍강하고 두 쪽으로 짝 갈라졌다.
 
27
“이년, 이년 이것 봐!”
 
28
문도 채 밀지 못하고 모로 비비적거리며 들어온 마나님은 다짜고짜 꽃분이의 볼따구니를 쥐어박고 끌채를 감아쥐었다.
 
29
마나님이 건너오지 않았으면 깨질 거울이 아니었으나 어쨌든 마나님의 눈 앞에서 일을 저질렀으니 이건 변명할 도리가 없다. 하는 대로 욕을 먹고 때리는 대로 맞을 밖에 없었다.
 
30
“글쎄 이년은 일을 한다는 게 일을 저지르는 일이것다! 거울 한 개에 이천 원두 넘는다드라. 이년아!”
 
31
한참 끌채를 흔들다 말고,
 
32
“울어? 무얼 잘 했다구 울어? 제 꼴에 거울은 무슨 거울, 들여다봐야 두꺼비 상이지. 계집년이 나이는 먹어 간다구 그 잘난 상판을 닦느라구 비싼 밥 멕여 가면서 속을 썩이는 네년이 잘못이야, 이년아!”
 
33
이번엔 볼따구니를 또 쥐어박고,
 
34
“이년아! 일 년이나 들인 길든 거울을…… 문혜가 작년 대학에 들어 갈 때 친구들께 선사로 받은 기념품이라구 끔직이 애끼던 거울인데, 이년아!”
 
35
또 두어 번 잔등을 쥐어박더니.
 
36
“짜꾸만 섰음 제일이니? 이년아!”
 
37
그리고 다시 끌채를 흔들기 시작하는데 문혜가 들어선다.
 
38
문혜는 대문 밖에서부터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무슨 일로 또 꽃분이를 골릴까, 꽃분이에 대한 측은한 생각이 순간 또 마음을 언짢게 하여서 들어가 꽃분이의 그 말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위로해 줘야겠다, 어머니의 애매한 욕에 오늘은 얼마나 시달리며 자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을까, 실수를 이해 못하는 어머니의 협소한 마음을 언제나 같이 야속하게 생각하며 달려 들어왔던 것이다.
 
39
“오, 너 오누나. 이것 봐라, 이년이 네 거울을 잡았다! 글쎄 이걸 어떻거니 이년을…….”
 
40
문혜는 의외의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좇아 눈을 주었을 때 물탕이 된 방바닥에는 두 쪽으로 동강이 난 거울이 물 위에 긍정하게 잠겨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41
순간, 문혜는 가슴이 철렁하고 눈앞이 아득하여지는 그 무슨 어려운 그림자가 지나가는 환영을 느끼었을 뿐 아무것도 감각하는 것이 없었다. 그 거울은 동무들에게서 선사를 받은 것이라고 어머니를 속여 오는 것이지만 실인즉 대학 입학 기념으로 그이에게서 받은 기념품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거울 속에 그이의 혼이 담긴 것처럼, 그리고 그 혼이 자기의 혼과 완전히 융합되어 있음을 만족하게 느끼며 책상 위에 세워 놓고 무시로 얼굴을 비취어봄으로 혼과 혼의 융합을 찾아내고는 삶의 보람이 거기에 있는 듯이 그야말로 생명같이 아끼던 거울이었다. 이제 그 거울이 두 조각으로 갈라져 아무렇게나 방바닥에서 구는 것을 볼 때 그것은 그이와 자기와의 장래의 파탄을 말하는 그 무슨 전도와도 같게 가슴 깊이 마치는 데가 있었던 것이다.
 
42
“저년이!”
 
43
문혜의 눈은 꽃분이를 쏘았다. 지금 밖에서 느끼던, 아니 오늘까지 여지껏 그를 불쌍히 여겨 오던 그 측은한 마음은 그 어느 감정의 한 귀퉁이에서도 움직여지는 일 없이 밉기만 한 꽃분이었다. 어머니의 욕이 천 번 지당한 것 같았다.
 
44
“인젠 저년두 상판에다 거울을 댄다? 너 없는데 네 방에 들어가 그 잘난 상판을 쓰다듬다가 아이, 그 아까운 거울을 잡았구나, 저년이…….”
 
45
“아니에요, 거울을 본 게 아니에요.”
 
46
꽃분이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리하여 그건 너무도 억울한 이야기라는 듯이, 그리고 그 사유를 문혜는 알아달라는 듯이 거울을 깨치기까지의 경위를 이야기하였으나 문혜의 귀까지도 그것은 곧이들리지 않았다.
 
47
“아 저년두 이젠…….”
 
48
정신없는 사람처럼, 처음 들어와 선 그대로 책가방을 든 채 꽃분이에게 쏘였던 눈이 좀더 매섭게 비낄 뿐이었다.
 
49
꽃분이의 눈에서는 걷어들었던 눈물이 새롭게 다시금 주르르 흘러 내렸다. 문혜는 왜 오늘따라 자기의 실수를 알아주지 못할까. 그 언젠가 걸레에 잉크병이 걸려 떨어져 깨어졌을 때에는, “어머니가 너무 오력을 펴지 못하게 욕을 해서 개 손이 제 자유로 놀려지질 않는 까닭이에요.” 하고 도리어 자기의 편을 들던 문혜였다.
 
50
억울한 실수에 등덜미를 쥐어박히며 문혜만이 알아주리라던, 그리하여 문혜의 돌아옴만이 그렇게도 그리웁던 꽃분이의 마음은 인제 의지할 데가 없었던 것이다. 문혜는 깨어진 거울이 차마 안타까운 듯이 동강이 난 조각을 주워들고 맞대어 붙여 보다가 인젠 그까짓 다 무모한 짓이라는 듯이 획 내동댕이를 치며 증오의 눈초리를 다시금 꽃분이에게로 돌려 쏘았다. 꽃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냥 흘렀다.
 
 
51
〔수록단행본〕*『현대한국단편문학전집』제8권(문원각. 1974)
【원문】거울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4
- 전체 순위 : 6409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797 위 / 88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거울 [제목]
 
  계용묵(桂鎔默) [저자]
 
  소설(小說) [분류]
 
◈ 참조
  거울(鏡)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본문   한글 
◈ 거울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9월 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