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무산문학가의 창작적 태도 ◈
카탈로그   본문  
1927.10.9~
윤기정
목   차
[숨기기]
1
무산문학가의 창작적 태도
 
2
— 현단계에 처하여
 
 
 

1

 
 
4
조선의 무산계급문예운동은 역사적 필연과 객관적 정세와 의식적 전위분자 등의 계급적 행동에 의하여 ----- 전무산계급 해방운동과 함께 현단계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5
그러면 당면한 현단계란 어떠한 단계며 어떠한 과정인가? 또한 여하한 이론과 여하한 행동으로 여하히 가정해야만 할 단계인가
 
6
나는 먼저 현단계를 규명하지 않으면 아니 될 곳에 이르렀다. 조선의 무산계급운동은 자연생장적 의식기를 벗어나서 완전히 목적 의식기에 도달하였다. 목적 의식기에 도달하였다는 말은 조합주의적 경제투쟁에서 전 무산계급적 정치투쟁으로 방향전환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국부적 투쟁에서 전선(全線)적 투쟁으로 진출한 것이다. 그러면 현단계란 말은 방향 전환기를 지나선 순전한 대중적 정치투쟁을 목표로 하고 투쟁하여 나아가는 투쟁이다.
 
7
무산계급 운동에 있어서 이와 같은 단계를 당면하게 된 이 때에 또한 과정하려는 이 때에 문예운동은 어떻게 움직여나갈 것인가
 
8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이 예술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무산계급적 운동의 일익(一翼)적 임무를 다하고자 하는 운동이라면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 귀결일 것이다.(나는 문예로서의 어째서 방향전환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는 이유를 이 아래(四—에 구체적으로 논평하겠다.)
 
9
그러면 무산계급운동을 어떻게 움직여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간단해진다. 왜? 맑스주의적 방법론 인식하에서 집중되어 나아가는 우리들의 정치는 정치로서의 특수체계가 있고 문예는 문예로서의 특수체계가 있다고 각각 분리해서 특수성만을 고집하고 주장하는 그런 다원논자의 이론을 비합리적 비합법적으로 인증하기 때문에 문예운동도 무산계급 운동과 함께 방향전환을 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문예운동과 무산계급 운동이 이원적 성질을 띠우지 않고 진전되는 관계상 문예로서의 정치적 진출을 하게 되는 것이다.
 
10
그래 우리는 이곳에 주체적 목표를 세우고 이론투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특수사정하에 있는 조선이라는 몰론 객관적 정세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구체적 이론 전개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문예로서의 방향전환을 했으니 정치적 진출을 했느니 하고 나부터라도 떠들기만 했지 방향전환을 했으니 실질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이론은 세울 수 없다는 것이 환경에 대한 솔직할 고백이 되겠다.
 
11
그렇다고 우리는 방향전환 한 것이 도리어 침묵기에 들어가 버리고 말 것인가? 아니다. 어느 한계 내에서 현 단계를 과정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이론을 확립하기에 노력하기를 마지않을 것이다.
 
 
 

2

 
 
13
나는 위에서 불충분하나마 현 단계를 간단히 구명하였다고 생각한다. 한 말로서 요약해 말한다면 전 무산계급운동이 정치적 투쟁 하나만을 목표로 하고 한 군데로만 집중하는 시기에 당면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현단계를 과정하는 무산문예가는 어떻게 창작적 태도를 가질 것인가? 어떠한 작품을 쓸 것인가?
 
14
나는 이 문제를 대답하기 전에 어째서 창작적 태도라든가 작품 --- 운운하였다는 것을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예운동에 있어서 이론 확립이란 말은 그 이론에 의하여 작품을 쓰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론이 작품보다도 항상 앞서 나가는 것이다. 문예이론이 문예운동 자체 내에 재하여 일체의 행동을 규범하는 기본 행동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론에 의하여 창작적 태도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문예운동 부분 내에 있어서 작품 행동이란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작품을 운운하고 창작적 태도를 논급코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의도 하에 무산문예가는 어떻게 창작적 태도를 가져야만 현 단계에 배치되지 않는, 과연 프롤레타리아 생활 의도에 의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문예운동으로서 중대한 문제를 논의하여 보고자 한다. 그러면 먼저 현단계에 배치되지 않는 작품은 어떠한 작품이며 프롤레타리아 생활에 의한 작품은 어떠한 작품인가를 구명하겠다.
 
15
(1)현단계에 배치되지 않는 작품이란 물론 정치적 사실을 내용으로 한 작품을 지적해 말하는 것이다. 정치적 폭로로써 무산예술 운동이 전 무산계급운동의 일익적 행동을 감행하는 데 있다. 먼저도 작품 행동이란 말을 하였지마는 문예운동의 기본적 요소인 작품이 한 개의 행동으로 인정되는 까닭은 문예운동이 무산계급 운동의 일익적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16
그러면 방향전환 후에 목적의식적 작품이란 정치투쟁의 요소를 구비해야만 현단계에 어그러지지 아니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17
이런 이유로 당면한 작품행동은 맑스주의적 인식하에 강제적으로라도 통일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현단계에 . 처하여 맑스주의적 방법론에 의하여 인식한다는 말은 당면의 정치적 투쟁 목표를 향하고 작품 행동을 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거듭 말하는 것 같지마는 무산계급운동이 정치투쟁에 총역량을 집중하고 투쟁하여 나가기 때문에 문예운동도 정치투쟁을 목표로 하고 방향전환을 거리낌 없이 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전무산계급의 총력량을 집중하여 투쟁하는 목표가 유독 정치에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정치투쟁은 무산계급의 최상의 유리한 운동이며, 최선의 민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예운동으로의 방향전환도 이유도 이 곳에 있다.
 
18
(2) 프롤레타리아 생활 의지에 의한 작품이란 어떠한 것이가? 나는 먼저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의지란 어떠한 것인가를 구명한 다음에 그 생활의지에 의한 작품은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간단히 써보겠다.
 
19
양대 계급이 대립해 있는 이원적인 현존 사회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 생활의지란 어느 때까지 프롤레타리아적으로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계급을 하루라도 더 속히 해방하겠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의식이 현 단계에 이르러 일층 농후하여졌고 일층 격렬하여진 이유도 프롤레타리아 생활의지에 의한 계급적 요구가 필연적으로 전개되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자연생장기를 지나서 목적의식기를 과정하는 무산계급의 생활의지란 현존사회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데 있다. 아니다. 부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세계를 개조하고자 하는 데 프롤레타리아 생활의지가 집중되어 있다. 개조를 전제로 한 행동이 현존 사회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 생활의지의 진정한 발로다. 발로라기보다 역사적 필연이다. 이와 같이 변혁적 행동으로 집중되는 이유는 무산계급이 자기 계급을 해방하기 위한 당연한 생활의지이다.
 
20
그러면 위에 말한 바와 같은 프롤레타리아 생활의지에 의한 작품이란 어떠한 것인가? 어떠한 것이어야만 할 것인가?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이 예술운동에만 그치고 만나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고 계급적 해방의 일익적 임무를 다하고자 한다면 또한 일 분야의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면 물론 작품도 프롤레타리아 생활의지에 의하여 표현될 것이다. 보라! 초기 - 자연발생기 - 에 있어서 일반 작품이 비조직적 반항, 증오, 살육 등으로 일관한 이유도 그 시기에 프롤레타리아 생활의지의 표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목적 의식기에 이르러서는 이중의 힘이 교호작용을 하고 있다. 하나는 본질적 생활의 힘이요, 또 하나는 강제적으로라도 목적의식을 주입해서 표현하게 되는 힘이다. 이 두 사실은 이 모두가 계급 해방에 있고, 변혁 행동에 있는 것은 재론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러면 이상에 논의한 것을 종합해서 한 말로 단언한다면 프롤레타리아 생활의지에 의한 작품이란 변혁적 행동을 내용으로 하는 데 있다. 이유로는 거듭 말하는 것이지마는 현 계급에 처한 프로의 생활의지란 자기 계급의 생활을 만족하지 않고 전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계급해방의 수단으로 변혁적 행동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무산계급의 행동이 한군데에 집중되는 이 때에 작품 행동도 동일 행동을 감행해야만 한다.
 
 
 

3

 
 
22
나는 위에서 먼저 현단계를 구명하였고 다음에 구명한 단계를 과정하는 무산문예가로서는 의식적으로 변혁의 사실을 내용으로 하고 작품을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간략하게 표명하였다. 그러나 위에 논의하여 온 사실이 현 과정을 과정하는 무산문예가로서의 취할 바 창작적 태도는 아니다. 다만 어떠한 내용을 가져야 하겠다는 것을 개념적으로 서술한 데 불과하다. 그러면 나의 근본의도가 여기에 그치고 말 것인가? 아니다. 나는 지금부터 근본 의도를 구체적으로 토의하여 보겠다. 다시 말하면 현 단계에 처한 무산문예가는 어떻게 창작적 태도를 가져야만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구명하여 보겠다는 것이 나의 근본의도이다. 나는 먼저 자연발생기에는 창작을 어떠한 태도로 하였는가부터 시작하겠다.
 
 
23
(1) 자연발생기의 창작적 태도
 
24
조선에 있어서 초기의 프로문학 작품이란 거지 불평, 불만, 증오, 반항, 살육, 빈궁, 분노 등으로 일관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프로문예하면 벌써 빈공문예, 반항문예, 살육문예 등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25
이때에 프로작가의 창작적 의도는 어떠하였는가? 한 개의 작품을 쓰는 데도 반드시 그 작품의 내용이 무산계급의 비참한 생활을 그리거나 무산자가 유산자에게 반항하는 사실을 그리거나 또한 부르주아와의 ○폭한 행동에 극도로 흥분되어 그 작품의 주인공이 결국 사람을 죽이고 말게 된다. 이외에 또 다른 내용이 있었다면 계급의식을 고취하기에 힘을 썼다.
 
26
이기영씨의 작품「쥐 이야기」는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데 가장 교묘한 듯하면서도 가장 힘 있는 작품이다. 그 뒤에 이씨 작품은 대부분이 프롤레타리아가 아사하는 데까지 이르는 비참한 생활의 원인이 사람의 팔자소관이라든가 소위 운명이라는 데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 그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계급적 입장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려고 노력하여 왔다.
 
27
최서해씨의 작품 「탈출기」는 프롤레타리아의 빈궁을 가장 심각하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기아와 살육」은 제목과 같이 기아와 싸우는 주인공이 무의식중에 여러 사람을 살육하는 데까지 이르는 경로를 그린 것이야말로 자연발생적 작품이었다. 또한 최근의 작「홍염」으로 말하면 자연발생기에 있어서 최후의 작품인 동시에 대표작이라고 인증 아니 할 수 없을 만큼 무게있는 작품이었다. 비록 한 사람의 집에 불사르고 도끼로 한 놈의 호인(好人)을 찍어 죽였다는 행동이 부르계급에 크나큰 치명상을 주지 못하였고, 전 무산계급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손 치더라도 자연발생기의 작품으로는 성공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주인공이 대상인 호인을 단순히 호인으로만 보아서는 큰 오해이다. 물론 작가의 의도로 호인에게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으로 보아 방향전환의 색채를 약간 표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8
이와 같은 서해씨의 작품은 거개 빈궁 속에서 살아온 씨의 자신의 체험적 심각한 필치로 비록 개인행동에 그치나 프롤레타리아의 반항하는 사실과 현실에 반역하는 행동 등을 그렸고 조선 사람의 비참한 생활 - 프로계급의 빈궁을 가장 인상적으로 가장 심각하게 표현한 점으로 보아 초기 성공한 작가라고 인증 안할 수 없다.
 
29
송영씨의 작품「용광로」로 말하면 조직적 착취기관하에 노동하는 노동자의 생활을 그린 점으로 보아 또한 주인공 자신이 선전 선동을 목적으로 무겁게 움직여 나가는 점을 보아 목적의식기에 진전을 보여주려는 흔적이 있는 작품이었다. 한 공장의 내부들 그리고 거기에 종사하는 착취군의 노동자를 그린 점으로 보아 조합주의적인 듯하면서도 조합주의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완전한 제2기적 작품은 아니었다. 방향전환기의 작품은 더구나 아니었다. 말하자면 비조직적, 목적의식의 작품이다. 여하간 자연생장기에 잇어서는 좀 앞선 작품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최근의 작「군중정류」로 말하면 주인공의 행동이 개인적에 그치지만 않았다는 것만은 취할 점이 있지만 그 외에는 모두가 자연발생기에 속한 내용이다.
 
30
김영팔씨의 작품「싸움」으로 말하면 ○○혁명에 있어서 가장 취할 만한 희곡이었다.
 
31
박영희씨의 작품「지옥순례」로 말하면 자연발생기의 작품으로 나의 감격성을 가장 힘있게 자극한 것이다. 인간의 맨 밑바닥 생활의 분위기를 그린 점으로 보아서 빈궁이라는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만치 악착한 짓을 감행하게 한다는 점으로 보아서 가장 감명을 주는 작품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32
조명희씨의 작품 「저기압」으로 말하면 저기압에 짓눌린 프롤레타리아의 고뇌를 가장 무겁게 그린 작품이다. 이외에는 많은 작품이 거개프로의 참담한 생활을 그렸고 계급적, 반항의 사실 이해의 탐구 등을 내용으로 한 표현이었다. 또한 개인적 분노에 의한 상해, 살인, 방화 등을 내용으로 한 작품이 자연발생기의 특색이었다. 그러면 이상의 사실을 제재로 한다면 반드시 프로 작품으로 인증될 것인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을 내용으로 한 작품이라고 그것이 모두가 프로작품은 될 수 없다. 또한 노동자를 제재로 한 작품이라고 그것이 반드시 프로문학이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노동하는 사람이 창작한 문학이라면 그것이 프로 작품으로 인증될 것인가? 그것은 더구나 아니다. 그러면 어떠한 작품이 진정한 프로작품이 될 수 있는가? 한마디로 단언한다면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파악한 작가라야만 진정한 프로 작가이며 진정한 프로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계급적 입장에서 인생관, 사회관, 세계관 등을 계급적으로 하지 않으면 도저히 프로작품을 쓸 수 없다.
 
33
이와 같은 사실이 구체화된 때에 목적의식기로 질적 전환을 보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예상에 자유주의자들이 무정부적 상태로 자연발생적 작품을 제작하던 것이 맑스주의적 인식하에 목적의식을 목표로 하고 동일진영 내에 결성되어 문예품을 만들려는 것이 곧 문예운동이다. 이 까닭에 무산자 문예란 말과 무산자 문예운동이란 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문예운동의 본질이란 문예행동에만 그치지 않고 전선운동에 일익적 임무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운동이다. (어째서 문예운동도 무산계급운동에 일익적 임무를 다해야만 하겠다는 것은 이 아래 - 4의 - 에 가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겠다) 자연발생기의 창작적 태도를 간단히 말하자면 무산자 문예만을 만들기에 노력하였다.
 
34
여기에서 두 가지 분파가 생기에 되었으니 하나는 프로 작가가 예술을 예술품답게 쓰려고 하는 태도며 또 하나는 자기계급을 해방하기 위한 변혁적 행동을 주제로 하는 태도이다. 그러면 초기 - 자연발생기 - 의 작품을 창작하려는 무산문예가의 태도로 말하면 빈궁만을 그리려고 하였고 또한 개인적 행동에 그치는 비조직적 비맑스주의적 반항의 사실을 그렸고 무엇을 쓸까 보다는 어떻게 써서 작품으로서만 완성하려는 새로운 예술파의 행동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무산문예운동은 목적의식기로 질적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될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35
(2) 목적의식기의 창작적 태도
 
36
목적의식기에 당면한 무산문학가는 어떻게 창작적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목적의식이란 물론 ? 변혁적 행동에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산문예가는 변혁적 의지에 의하여 작품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변혁적 의식을 완전히 파악하려면 진정한 맑스주의자가 아니고서는 아니 된다. 자연발생기에 있어서는 비맑스주의자라도 계급적 반항의 사실을 쓰거나 무산자의 생활을 그리기만 하여도 프로작품으로 보아왔다. 이곳에 근본적 오해가 있고 모순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발생적 작품을 부정하고 목적의식기로 질적 전환을 손쉽게 하게 된 것이다. 이 까닭에 목적의식기에 있어서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면 절대로 프로작품을 쓸 수 없다. 그러면 맑스주의자인 무산문예가는 창작하는 데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우리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변혁할까 하는 태도를 파악하게 된다. 또한 작품 하나라도 어떻게 쓸 것인가 하고 고심하는 것 보다 무엇을 써야만 계급해방에 도움이 될까 하는 변혁적 행동에 노력하는 태도를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목적의식기에 처한 창작가란 한 개의 작품을 위한 작품만을 만들려고 하는 데 그치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손으로 된 작품이라는 것은 먼저 ○○○○○○○○라도 생활의지에 의한 ××적 요소를 구비하였는가 아니 하였는가가 문제의 초점이다. 위에서 말한 계급해방 하나만이 무산계급 앞에 가로 놓여있을 뿐이다.
 
37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같은 진영 내에 두 가지의 커다란 과제가 잠재하여 있다. 이와 같은 근본적 문제의 태도를 바로 잡기 위하여 좀 구체적으로 구명하겠다.
 
38
하나는 한 개의 작품이라도 어떻게 쓸까 - 어떠한 형식 어떠한 기교로 묘사를 위한 묘사를 해서 어떻게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들까 하는 태도이며 또 하나는 무산계급의 고유의 예술을 만들려고 하는 태도이다.
 
39
(A) 어떻게 써야만 할 것인가를 중요시하고 예술품다운 예술품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예술문제에만 그치고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술적 요소만을 구비한 작품표준, 작품편중을 하는 문예로서만 완성하여 보겠다는 데 근본적 오해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태도를 취하여야만 될 것인가. 현 시기에 제작가는 반드시 무엇을 쓸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위하여 어떻게 쓸 것인가를 염두해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급××을 위한 변혁적 작품을 쓰는데 어떻게 표현할 것 같으면 근본 의도를 잘 발휘할 수 있을까가 문제의 초점이 된다는 말이다. 또 한번 거듭 말한다면 목적의식적 선전, 선동을 더한층 효과 있게 할까하는 태도를 가져야만 한다.
 
40
(B) 무산계급의 고유한 예술을 만들려고 하는 태도를 어째서 과제로 인식하게 되는가? 현 사회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를 위하여 문예품을 만든대야 예술품답게 감상할 수 없다. 현 시기란 신문화를 건설하여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구문화를 파괴하는 과정을 과정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순전히 프로계급에게 감상시키기 위하여 작품을 쓴다는 태도는 현단계를 인식하지 못한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한 행동은 현단계를 과정하여서도 인식부족, 인식착오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절대로 프로계급에게 예술품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작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직 현단계(급)에 적합한 예술행동이 있을 뿐이다.
 
 
41
나는 아래에 같은 진영 내에서도 현단계의 인식착오, 인식부족으로부터 기인된 오해가 목적의식기에 얼마나 어그러졌는 것을 지적하고 다음에 현 단계에 처한 창작가의 태도를 철저히 구명하여 보겠다. 어떠한 분은 프로작품의 내용을 ××조선의 생활상으로 하라고 한다. 그러면 ××된 조선을 그리기만 한다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자연주의 작가 모양으로 현실을 그대로 그리기만 한다면 불합리한 현실이 고쳐지겠다고 어리석게 믿는가? 아니다. 재현만으로는 절대로 현실의 모순이 고쳐질 리 없다.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는 ○개가 있을 뿐이다. 어떠한 분은 예술본능이 움직이는데 표현욕이 생겨 예술품을 제작하게 된다는 둥 고전문학도 가치를 시인하며 연구와 비판의 필요를 느낀다고 하는, 아주 현단계를 망각한 그야말로 우○를 거침없이 토하였다. 나는 이외에 더 깊게 논평하기를 피하거니와 같은 진영 내에 약간의 오해는 상호비판에 의하여 맑스주의적 인식하에 통일되리라고 확실히 믿는다. 어떠한 분은 상호비판에 의하여 이론확립을 기한다는 말을 오해해서 확립한 예술이론으로 프로예술품을 제작하는 줄만 안다. 현재에 있어서 문예이론확립이란 투쟁이론이며 변혁적 예술행동의 전제조건이다.
 
42
또 한 가지 오해는 무산계급 문예를 창작하여 프로문예가로서의 임무를 다하려고 하는 데 있다. 또한 문예인으로서 만족하려는 듯한 경향도 없지 않다. 우리는 이와 같이 오해를 바로 잡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 무산계급 문예운동의 출발점이 초문학적 행동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사실이라면 문예가로서만 완성을 기하려는 행동은 철저히 배격해야만 한다. 또한 무산문예 운동의 본질이란 단순하게 문예만을 위한 문학운동, 문단운동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생활운동, 사회운동, 전무산자계급운동 등의 일익적 임무를 다하는 데 있다. 무산계급의 세계변혁의 의지와 미래사회를 동경해마지 않기 때문에 목적의식기인 현 단계에 처한 창작가의 태도란 어떻게 해서 사회주의문학을 건설하겠다는 게 아니라 변혁적 의지를 파악하고 아니한 데 있다 무산게급운동이 프로 . 작가의 임무인 것은 물론이다. 이와 같은 임무를 구체화하고자 하는 것이 이 곳 문학운동한계 내에 변혁적 의지를 의식적으로 주입하여 작품 행동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전체성을 통한 특수성을 인증하게 된다.
 
43
목적의식기의 문예가로서 파악해야만 하는 태도는 작품을 위한 의지를 맑스주의적 인식 하에 조직적으로 표현하기를 노력해야만 한다. 강제적으로라도 --------- 또한 계급운동을 망각하고 소위 예술운동에 의하여 작품을 쓰려고 하는 순수예술가에 속한 태도로 창작을 하여서는 절대로 아니 된다. 먼저도 말하였지마는 무엇을 쓸까를 생각한 다음에 그것을 일층 효과를 내기 위하여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목적의식적 작품을 어떻게 표현해야만 변개적 행동에 더 큰 효과를 발휘하여질까 하는 것이 문제의 초점이요, 현 단계에 처하여 가장 긴요한 창작적 태도이다.
 
 
44
(신문 연재일 일 회 누락)
 
 
45
(1) 문예운동이 무산계급운동에 일익적 임무를 어째서 다하게 되어 있는가? 나는 이 위에서 무산계급 문예란 말과 무산자 문예운동이란 말의 그 의의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지적했다. 무산자 문예는 비목적 인식인데 반하여, 문예운동은 목적의식적 행위이다. 목적의식적 행위라는 말은 전체 생활적인 계급 해방적 행위, 변혁적 행위인 것은 물론이다. 문예운동이 목적의식적 행위를 감행한다고 그 운동만이 계급해방을 할 줄로 믿는다. 무산운동자는 물론 예술의 효과를 과중평가하는 것 같은 새로운 예술지상주의자들은 절대로 아니다. 이 까닭에 전체성을 통한 일익적 행위라고 한다. 여기에 일관적으로 임무를 다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46
(2) 일익적 임무를 어째서 다하지 않으면 안 되게까지 되었는가는(2)는 (1)과 교호관계가 있다. 문예로서의 일익적 임무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 그런 태도를 파악한 사람 - 은 이원적 성질을 인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문예운동과 무산계급 운동을 이원적으로 해석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술은 예술로서의 특수한 체계가 있고 경제는 경제로서의 특수체계가 있고 정치는 정치로서의 특수체계가 있다고 비과학적, 비변증법적 해석을 하는 다원론자가 아니기 때문에 예술을 독립특수체계를 고취 주장하지 않고 전체 성적 운동에 일익적으로 참가하게 된 것이다. 투쟁기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 생활의지란 변혁적 목표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프롤레타리아 생활의지에 의한 문예운동이라면 문예로서의 일익적 임무를 다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47
(3) 정치투쟁과 문예운동
 
48
나는 위에서 문예로서도 반드시 방향전환을 해야만 할 이유를 지적해서 논평하였다. 그러면 현 계급에 당면하여서는 문예로서의 정치적 진출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합리적 사실이라면 어떻게 진출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이것은 상호 비판적, 이론투쟁에 의하여 구명될 것이다. 정치투쟁기에 문예이론 확립이란 정치 투쟁적 사실, 정치적 폭로 등을 내용으로 한 작품 행동에 그치는 것이다. 방향 전환한 현 단계의 작품행동이란 전체성을 내용으로 한 정치적 활동이어야만 한다.
 
 
49
(4) 프로예술의 특수성
 
50
무산계급 문예운동 진영 내에서는 프로예술의 특수성을 부정하는가
 
 
51
우리는 계급이란 전체성을 전체성 그대로 망각한 특수성을 인증하지 않을 뿐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전목표인 변혁행위는 무산계급운동의 전체성이다. 이와 같은 전체성을 통한 특수성이면 부정하게 되지 않는다. 그 까닭은 프로문예 운동이 전체운동 가운데 부분적 지위를 점령하고 전개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52
또한 예술의 특수성만을 고집해서 예술은 예술로의 독립적 특수체계가 있다고 현단계를 인식하지 못한 맹목적 주장을 열렬히 하는 반면에 예술행동을 과중시하여 문예운동이 곧 실제운동인 줄 오해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이것은 모두가 현 계급의 인식부족, 인식착오에서 기인되는 오류이다. 우리도 정치형태와 예술형태가 각각 다른 것을 안다. 그러나 이원사회에 있어서는 무산계급은 정치행동 하나만이 자기 계급 행방하는 데에 유일한 수단이다. 완전한 해방의 투쟁목표이다. 이러한 시기에 있어서 예술형태의 특수성을 고집한다는 것은 전체성을 모르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전체성을 저버린 예술의 특수성만은 성립할 수 없다.
 
 
 

5

 
 
54
간단히 쓰겠다는 것이 너무나 길어서 지루하여졌다. 지금부터는 될 수 있는 대로 요령만 따서 간단하게 결론을 쓰겠다. 현단계에서는 여하한 이론 여하한 작품을 요구하는가? 이것은 곧 작가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론투쟁은 이론 확립을 위하여 감행되는 것이요, 창작가로서는 현 계급에 확립된 문예이론에 의하여 정치적 활동을 내용으로 한 작품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위에서 목적의식기에 처한 무산문예가의 창작적 태도는 어떻게 해야만 된다는 것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투쟁목표가 정치적 행동에 있는 현단계에서는 어떠한 태도를 파악해야만 할 것인가
 
55
목적의식기를 논의할 때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거듭 말한다. 작품을 위한 작품을 쓰려고 하지 않는 태도와, 어떻게 쓸까를 중대시하지 않고 어떠한 것을 쓸까 하는 데에 전력을 하는 태도를 가져야만 한다. 프롤레타리아에게 예술품으로 감상시키기 위해서 작품을 쓰지 말고, 정치적 운동, 정치적 투쟁을 요소로 한 작품을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떻게 써야 할까 하는 것도 무엇을 좀 더 효과 있게 표현하기 위한 태도이다. 새로운 형식과 새로운 기교로 어떠한 것을 쓰기 위하여 거기에 규범되지 않으면 안 된다. 현단계에 당면하여 무엇을 쓸까, 어떠한 것을 쓸까 하는 것은 모두가 정치투쟁 범위 내에서 취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앞에는 어떠한 것이 가로놓여 있는가? 현단계에 처해서는 오직 해방문제가 있을 뿐이다.
 
 
56
『조선일보』,1927년 10월 9 - 10월 20일
【원문】무산문학가의 창작적 태도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2
- 전체 순위 : 7070 위 (5 등급)
- 분류 순위 : 1655 위 / 1794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윤기정(尹基鼎)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27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문학평론 [분류]
 
◈ 참조
 
  # 창작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무산문학가의 창작적 태도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9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