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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프로예술운동이 각 부문 - 문학, 연극, 영화, 미술, 음악 - 의 기술자 등의 예술적 활동이 아니었던 것은 누구나 부인치 못한 명확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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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있어서 과거에 우리들의 예술운동을 엄정한 의미에서 본다면 부르예술운동이라기보다 프로예술운동이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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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들이 살아 나아가는 사회가 유물변증법적으로 발전되는 것과 같이 우리들 예술운동에 있어서도 모든 행동이 어느 때까지 고정되어 있지않고 전체의 운동을 위하여 새로운 계단으로! 진전에 진전을 거듭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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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을 계급적으로 걸어가는 우리들의 연장으로서의 일체 예술을 이용하지 않고 그대로 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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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수원동지들의 과감한 투쟁으로 된 조선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미술전람회를 ---- 그리고 영화계에 있어서 여러 동무들의 부절한 이론 투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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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우리들이 예술운동은 원칙적 규범 하에 부분적 기술적으로 절대로 통제를 잃지 않고 날로 성장한다. 아지, 프로, 조직 등 이 세 가지를 위하여 효과적, 강력적 표현이 아니어서는 연장으로서의 예술이 아무런 가치와 의의가 없고 예술적 기능이 말살되기 때문에 우리들은 새로운 프로 예술가 - 각 부문의 계급적 기술자 - 를 다량으로 요구하게 되었다. 이것은 새로운 계급에서 새로운 계급으로 향하려는 준비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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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중요한 ‘모멘트’에 있어서 과거에 유독 발전하여 가장 많이 업적을 남긴 문예영역에는 어떠한 활동이 있으며 장차 어떠한 예비행위가 있는지 같은 진영 내의 여러 동무와 더욱 미지의 동지들에게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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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문학적 활동이 새삼스럽게 문제되고 논의하지 않으면 아니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수삼년 이래로 여러 동지 간에 계속적으로 이론전개를 보게 되든지 간에, 무산문예의 대중화문제, 프로문예의 내용과 형식문제 등이 현하 문예 영역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 되어 어느 정도까지 규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문학적 활동에 있어서는 더 한층 신국면을 타개해야하며 문예 제작상, 적극적 활동을 감행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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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활동에 있어서 긴급한 당면 문제는 어떠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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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지, 프로, 조직 등에 효과성이 있는 작품을 제작할 것은 물론이지마는 이러한 연장으로서의 문예품을 어떻게 노농대중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기관지를 발행함으로써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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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같은 진영 내의 동지들은 반동문예이론의 극복을 위한 이론투쟁. 시, 소설, 희곡 등 일체 작품에 대한 엄정한 계급적 비평. 작품행동에 있어서 만난(萬難)을 배제하고 의식적으로 창작에 힘쓸 것. - 그렇다고 제작만을 생각해서 질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우수한 작품을 매월 한두 개씩이라도 계속하여 제작하기를 서로 힘쓰자는 말이다. 한 개의 작품으로서 수천수만의 대중을 아지·프로하고 또한 조직할 수 있는, 현계단이 요구하는, 과연 위대한 작품을 우리들은 다량으로 제작하여 우리들에게 부여된 계급적 임무를 다하기를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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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프롤레타리아 시인, 소설가, 창작가 등이 반드시 해야만 할 정당한 과업이 아니냐. 그러함에 불고(不顧)하고 우리들의 활동은 최근에 와서 과연 미약하였다. 우리들은 먼저 자체의 강대화를 힘쓰자.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만난을 배제하고 문학적 활동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 작가의 활동이 미약하면 미약할수록 무산문예운동의 강대화를 도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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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으로서의 일체의 예술은 바야흐로 그 가치와 기능을 발휘할 시기가 왔다. 우리들은 손과 손이 으스러지도록 맞붙잡고 강력히 효과적인 문예행동을 적극적으로 적의 앞에 전개시키자. 이것이 우리들의 - 전체운동으로 보아 미미하나마 - 계급적 행위인 문학적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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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여 조선 프로예술운동은 최후 승리의 날을 바라보고 싸우는 가운데 날로 성장하고 진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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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예영역에 있어서 새로운 동지의 규합은 우리들의 일 가운데 어느 때든지 부분적 중요한 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에 우리들의 기관지가 없던 만치 신진의 획득이 어려웠고 또한 신진에 대하여 유의하는 점이 소홀하였던 것은 한낱 오류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럼으로 신진획득에 다대한 관심과 적극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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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가운데에서 프로작가가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우리들 문예운동은 그만치 강대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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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오락이다. 문예도 오락이다. 창작하는 사람도 오락으로 쓰고 독자도 오락으로 읽는다. 오락 중에는 고상한 오락이다.” (강조점 - 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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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지적한 문구는 본지 5월 - 문예이론특집 - 호 중 『조선의 문예 이론은 어디로 귀결될까』란 제목 밑에 주요섭씨의 주장이다. 주장이라느니 보다도 씨의 예술관, 문예관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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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의 논문 가운데 프로문학을 운위하였고 우리들 운동에 있어서 선전의 방편으로 일체의 예술을 이용할 것이라 하며 ××을 선전하는 것이 가한 것임을 역설까지 하였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더 한층 문예의 오락설이 문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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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프로문예는 오락일까? 더구나 창작하는 프롤레타리아 작가의 태도가 오락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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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천부당만부당이다. 예술의 본질이, 문예의 본질이 오락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일체 예술의 모든 형식적 가능을 이용하게 된 때에 그 예술품은 벌써 훌륭한 무기이다. 그리고 일반 프로 작가는 붓을 들고 창작에 임할 때에 그 기분과 감정은 전지(戰地)에 나아간 투사와 같은 것이다. 왜 그러냐하면 프롤레타리아의 생활로 하고 프로의 격정을 격정으로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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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 사람의 프로작가가 오락 기분 내지 오락적 태도로서 한 개의 작품을 제작한다면 그 작품의 결과는 오락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리고 한 개의 문예품은 프롤레타리아가 읽어서 일시적 오락에 머물렀다면 프로문예는 아무러한 사회적 기능을 발휘하였다고 할 수 없다. 또한 프로문예 자체가 프롤레타리아에게 끼친 영향이 오락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면 프로작가는 당연이 붓을 꺾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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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 아래 주요섭씨가 본지 지상에 미국 프로작가 미카엘 골드씨를 소개한 일문 중 가장 중요한 골드씨 자신의 말 - 문예관인 - 을 인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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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나 개인으로서 이 세계적 ××운동에 일조라도 되게 함에는 문학이 최상의 방도라고 신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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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작가의 작품과 그를 소개하는 씨로서 문예의 오락설, 더욱 창작상 태도에 있어서 오락 운운은 주씨의 한낱 오류가 아니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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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 작가로서는 한 사람도 작품제작을 오락으로 하지 않는다. 절대로 우리들의 작품 행동이 오락은 아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주씨는 금번 과오를 범한 프로문예창작 상 소위 오락설을 반드시 취소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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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부터 5월창작의 개평(槪評) - 개평이라기보다 작품을 읽고 느낀 바 감상을 간단히 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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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준 작 『하나님의 딸」(同上[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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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李澹) 작 「두 죽음」(同上[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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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일 작 「거리의 여자」(同上[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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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길 작 「허영녀의 독백」(同上[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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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서 작 「그 여름의 하숙생활」(同上[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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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친우요 동지인 노군을 그리움에 못 이겨, 지나간 일의 한토막을 추억하는 것이다. 노군은 전위적 인물이다. 가정을 등지고 정든 고향을 떠나 큰 뜻을 품고 북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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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물은 다른 사람보다 독특한 에피소드가 많을 것이다. 딴 길을 걷는 사람의 행동은 어느 모에든지 비범함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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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삼사십도 눈보라치는 북국 너른 벌판에서 자기 일 개인의 생명을 내어놓고 전 인류의 행복의 날, 평화의 날을 가져오기 위하여 헤매고 의논하고, 계획하고 싸우는 노군도 자본주의사회제도하에서 가장 증오하는 도적질, 이 사회의 도덕이 조금도 용납지 않는 도덕질을 자기 자신이 연극으로 꾸밀 만큼 딴 길을 걷는 사람의 행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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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의 목적이 개인주의적 이기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집단적 일을 위하여 감행한 데에는 다시금 생각 아니 할 수 없다. 이것은 확실히 반역이었다. 자기 가정에 대한 반역이오, 이 제도와 도덕에 대한 반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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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물을 추운 겨울 눈 오는 밤에 내지에 아직까지 편안히 앉아있는 동무로서는 그의 안부를 생각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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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었다. 화로불을 마저마저 이스러지고 창밖에 눈송이 더욱 깊다. 생각나는 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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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 눈구덩이에 가서 파묻혀 있을까. 깊은 밤 추운 거리를 잠 잘 곳 찾아서 헤매이고 있을까. 혹은 방울 소리 딸랑딸랑 개에 매인 설매 타고 눈 깊은 벌판을 달리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북국의 거리 으슥한 회관에 모여서 낯선 동지들과 일을 꾀하고 있을까 ---. 어디를 가 있든 비나니 건재하라! 잘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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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추억」일편의 마지막 구절이다. 얼마나 동지애에 그윽한 말이냐. 이 작품 속에 ‘나’라는 인물이 그런 말을 하였다고 우리들일의 동정자는 아니다. 그도 노군과 같은 인물이다. 싸우는 전위의 인물인 것이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보아서 우리들이 요구하는 작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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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을 읽고는 북쪽으로 간 동지 포석(抱石)의 생각이 새삼스럽게 간절하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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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취할 점이 없는 가벼운 콩트이다. 내용은 콩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애, 삼각관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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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자에 대하여 많은 기대를 가졌었다. 이분의 역작이라 할만 한 『오몽녀』(시대일보지상에 연재)를 재독까지 한 나로서는 큰 기대를 아니 가질 수 없었다. 사오 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작품의 인상이 나의 머리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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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까지 씨의 의식이 전환되지 않았는가? 나는 그때 『오몽녀』를 읽고 반드시 의식전환이 있어 앞으로 프로 작가로서의 상당한 활동이 있으리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오늘에 있어도 기교의 향락을 하려는 형식주의자인 씨를 대하게 될 때에 나로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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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있어서 오직 취할 점이라고는 부르주아의 생활 중 한 부분인 음분(淫奔) 뿐이다. 그들의 패퇴하는 생활, 가증한 생활을 좀더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표현했더라면 효과가 컸을 것이다. 이 소설 속에 산동이의 행동은 개인적 분노에서 출발해가지고 개인적 복수로 그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사회면 기사식 같은 ‘一’ 의 부분은 이 소설에 있어서 오히려혀 없느니만 같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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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개인에 대한 복수를 위하여 머나먼 북쪽서 와가지고 피를 흘리며 싸우다가 귀중한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이 사건의 모순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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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가 ‘一’ 의 부분을 쓴 것은 이 소설을 과장하려는 있는 것 같으나 그것이 오히려 이 작품을 우습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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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결한 여성 하나가 부르주아에게 유린을 당하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어디까지 객관적이며 인정적으로 냉정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 그 작품 속에 휩쓸려 들어가서 자기도취 자아향락에 기울어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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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건 전개에 있어서 통일을 잃어 산만하고 문장이 서툴러서 읽기에 여하간 곤란한 작(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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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두 가지가 다 취할 것이 없는 레벨 이하의 작품이다. 이러한 습관에 가까운 것을 거리낌 없이 발표한다는 것은 작자 자신의 앞으로 창작 생활을 위하여 마땅히 삼갈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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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作)은 살 길을 찾아서 북쪽 나라에서 헤매다가 그래도 생활의 안정을 얻지 못하고 결국 죽어가는 몸을 이끌며 고국을 바라보고 돌아오다가 두사람이 일시에 죽어버리는 것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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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림, 추움, 학대 등들 유랑민으로서 이처럼 ○한다는 것을 여실히 표현하였다. 그러나 죽음의 길을 스스로 취한다는 것은 약자의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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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지 환경이 그럴수록 좀더 씩씩하게 살고 장하게 살자고 외침이 작자로서의 반드시 취할 길이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만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로서 긍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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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作)은 어느 정도까지 성공한 작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의 연인과의 관계를 계급적으로 대립시킨 데 효과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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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연한 계급적 이데올로기의 파악 건실한 필치 등 이것이 우리로서 씨의 장래를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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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더 굳세야 한다. 너희들의 모든 환락을 빼앗아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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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일정은 씨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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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있어서 연인을 생각하는 것이 지나치게 비열하고 가증하다고 할 만치 전개시키는 것이 이 작자의 수뇌(首腦)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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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작품행동에 있어서 큰 활동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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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적으로 아무 것 취할 게 없다. 인호의 행동이 너무나 소극적이오, 보수적인 데 이 작품은 실패하였다. 그리고 표현형식의 새로운 맛이 조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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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한한 생활의 한 토막을 여실히 묘사한댔자 사회적으로 아무러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오히려 일 개인의 빈궁의 원인이 불합리한 사회, 경제조직의 결함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느니만 같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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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작품은 수삼년 전 『조선지광』에 게재하였던 「서기생활」과 「윤별장의 사환」등 두 편의 소설을 읽은 뒤로 나로서는 이번 「쑥」이라는 작품을 처음 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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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일편에 있어서 작자는 빈한으로 말미암아 인생비극을 낳게 한다는 것을 표현하였다. 농촌 프롤레타리아였던 홍서방이 남의 땅을 얻어 소작인으로서 근근이 생활하다가 눈코 뜰 새 없는 일에 파묻혀 자식은 원두막에서 떨어져 죽고 아내는 미치고 해서 결국은 소작하던 농토까지 빼앗기고 하는수 없이 조과부라는 가장 몰인정한 사람의 집 행랑살이를 하게 되었다. 하루는 주인마님이 모깃불을 놓기 위하여 홍서방더러 쑥 한 짐을 져오라고 한다. 홍서방은 장차 닥쳐올 비극을 모르고 자시의 손으로 스스로 빚어낼 인생 비극을 예상치 못하고 쑥 짐을 지어다 한 옆에 놓았다. 이때에 아내는 주인의 심부름을 가고 홍서방은 밖에서 쌀 갑을 졸리는 사이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어린 것이 쑥 짐에 치어 그날로 죽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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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홍서방은 어느 수리조합공사 하는 데서 품팔이를 하다가 아내가 또 발광을 해서 이리저리 뛰돌아다닌다는 것으로 끝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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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일 개인의 생활을 단편적으로 그리는 데 있어서 생활이 비참한 것과 시시로 일어나는 인생비극을 숙명적으로만 돌리기 때문에 사건 전개에 무기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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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쑥」일편 중에서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일 개인의 비참한 생활만을 여실히 묘사하여 표현한다고 그 작품이 반드시 프로작품이 못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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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일 편은 확실히 프로 작품을 제작하려다가 완전히 실패한 작품이다. 전편을 통하여 표현형식이 리얼리즘인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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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에 있어서 순전히 사실주의 묘사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 프롤레타리아인 홍서방이 개인행동에서 출발해 가지고 결국 개인행동에 그치고만 것이다. 홍서방을 살 길을 잃어버린 농촌 프롤레타리아이다, 그러므로 프로작가가 이러한 인물을 취급할 때에는 반드시 사건전개에 있어서 지주와 소작인과의 이해상반의 관계, 여기에 좇아 일어나는 반항의식, 행동으로서의 투쟁 등을 전적으로 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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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해가 동일한 소작인과 소작인 간에 집단적 행위, 도회 노동자와의 제휴 등 이러한 사건의 전개가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프로 작품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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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쑥」일편의 내용은 이와 상반되어 있다. 소작권을 빼앗긴데 대해서는 하등의 관심이 없고 자식이 죽은 데만 유의하게 된 것은 개인 생활의 편중 내지 전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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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작품의 주인공 홍서방을 허잽이로서의 출발을 시켜가지고 결국 허잽이로 종결시켰다. 빈궁에 쪼들리고 아내가 미치고 자식을 둘씩이나 실수로 죽인 경로를 밟고도 홍서방은 의식 상, 행동 상 아무러한 변천이 없었다는 것은 작자의 제작 태도를 의심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작자의 근본 의도가 자기 손으로 해온 쑥 짐에 자기자식이 치어 죽는다는 표현상 기교에 있는 듯하다. 사실 그렇다면 이것은 기교를 위한 기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참극의 연출을 계기로 주인공의 행동에 있어서 소리칠 만한 전환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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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뒤에도 작품의 주인공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으로 만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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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는 여기에서 더한층 실패의 원인을 가져오고 말았다. 소설 「쑥」은 확실히 우리들의 작품이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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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다소 호기심이 끌려서 단숨에 읽었다. 그러면 거리의 여자란 어떠한 여자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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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회에서만 볼 수 있는 소위 ‘모던 걸’유형의 전형적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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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들어가서 양식을 먹으며 이 남자 저 남자○○ ○○○○○를 하면서 ○회가 어떠니 문학이 어떠니 연애가 어떠니 하고 기염을 토하는 여성, 본정(本町) 책점을 순례하는 여성, 거리로 코론타이의 「赤戀[적연]」을 옆에 끼고 돌아다니는 여성, 이 사람의 집 저 사람의 집을 방문할 기회를 억지로 만드는 여성, 밤에는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여성 --- 이것이 〈거리의 여자〉의 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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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러한 소위 ‘모던 걸’ 을 흔히 볼 수 있지 않은가. 작자는 이것을 ‘나’ 하는 사람을 통하여 될 수 있는 대로 기교나 문장에 있어서 ‘모던’적으로 표현하기를 힘쓴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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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서울 장안 종로 네거리 뒷골목 카페 흑취(黑鷲)의 아래층 네모가 반듯한 방안이다. 때는 입춘이 지난 지 며칠 후 대지는 맑고도 깨끗한 호흡을 하고 있는 어는 날 오정이 지나서 한 시 가까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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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의 공기는 쩨즈의 레코드가 커피차의 쌉쌀한 냄새와 강렬한 위스키에 취하여 원무곡을 주며돌고 있다. 밖에는 현대의 행진이 끈이지 아니라고 연대여 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있다.(「거리의 여자」중의 소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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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래를 계속하여 읽으면 확실히 이 일 편은 작자 자신의 신변잡사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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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안에서 흥청거리는 기분은 소부르주아 유흥 등, 이것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었을 뿐이오. 그것이곳 작자 자신의 계급적 이데올로기를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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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여자」는 의도만으로도 프롤레타리아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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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왜 이러한 전형적 소부르의 작품을 거리낌 없이 발표했는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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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 - 클라이맥스 - 인 하반이 전부 삭략(削略)된 것은 이 작품의 생명을 거의 죽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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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반신불수가 되다시피 한 불구의 작품을 논평한다는 것은 나의 양심이 허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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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길씨의 「허영녀의 독백」(『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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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계속물이기 때문에 지금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 지 모른다. 허영녀이든 일개의 여성이 고무공장의 여직공이 되기까지 그 경로를 그린 작품인 것은 사실인데 소설에 있어서 이러한 표현방식을 취하는 것이 새로운 수법은 아니다. 그리고 과거의 허영생활을 되풀이한다는 것이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어떤 영향을 줄는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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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서씨의 「그 여름의 하숙생활」(『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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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소학교 교원의 한 여름 동안의 하숙생활을 그린 것인데 너무나 인정에 기울어진 작품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로서 취할 게 못되는 일 편의 인정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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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자에 있어서 취할 점은 표현형식에 건실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상적으로 고민하는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하루바삐 확연한 계급적 이데올로기를 파악하여 진정한 의미의 프로 작품을 제작하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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