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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작품의 방법론적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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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3.25~
권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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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의 방법론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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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방법론적 연구가 ▣흥문단 일우(一隅)로부터 주의를 야기하게 되었으니 예를 들면 정노풍 김팔봉 제 씨의 형식과 내용 문제에 대한 제 문예이론이며 기타 평론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그 ‘이데올로기’의 여하를 불문하고 문단자체로 보아서는 ▣시기적인 발칙한 논의라 아니 할 수 없다. 필자도 이 문제에 대하여 다소 고구한 바 없지 않으나 사실에 있어서 아직 어떠한 자신을 가지고 독자의 체계를 논술할 만한 정도까지의 연구를 싣지 못하였다. 다만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하여 문예작품을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과 따라서 이 방면의 연구가 금후 문예가의 일 중요한 임무인 것만은 의심치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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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다만 근대의 문학연구의 방법상 결정적 기초를 세운 자연주의 문학의 거두인 에밀 졸라의 설을 문예비평가 평림초지보(平林初之輔)씨의 논에 의하여 간단한 소개코자 하는 바이니, 이것으로써 우리의 문학연구상 기허(幾許)의 보익이라도 줄 수 있다면 다행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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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말하면 감성이 급한 문인 중에는 ‘예술이 과학일 수는 없다 과학과 문예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질책할 분도 있을는지도 모르나 우리도 예술을 과학과 혼동하지는 않는다. 문예는 어디까지든지 문예이요, 결코 과학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문예작품을 향락하며 관상하는 외에 그것이 발생하는 그 근거와 진화해가는 양태를 과학적으로 즉 실험적 방법에 의하여 연구하며 비판할 수 없다고 까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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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문예작품을 단순히 향락하며 관상하는 것 뿐만이 비평가의 임무인 것처럼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원예가 이외에 식물학자가 있는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니 비록 원예가라 할지라도 식물학에 대한 상식만은 필요한 것이니, 이것을 전연히 모른다면 꽃을 옳게 감상할 직능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꽃이 식물의 생식기관인 줄 알았다. 그 꽃의 미가 멸살될 이유가 없음은 그것을 알음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그 조화의 미묘를 우리는 감득하며 경탄할 수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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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산이 지옥의 냉각(冷却)으로 인한 수축에 의하여 생겼다는 지질학상의 발견이 있다고 알프스 산에 대한 등산자의 숭고한 정념이 장실(葬失)될 이유는 없다고 누구는 말하였거니와 이것은 지언(至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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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는 그의 명저 『실험소설론』 모두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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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방법으로 말하면 크로드 벨날에 의하여 『실험 의학연구 서론』 중에 이미 철저히 또는 놀랄 만치 명료히 확립된 것이므로 나는 여기에서 다만 그것을 응용만 하면 그만이다. 이 결정적인 권위 있는 학자의 저서가 나의 의논상 견고한 기초가 되려는 것이니, 이 저서 중에는 모든 문제가 취급되어있으나 나는 다만 그 중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하여 나의 논거로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 대▣는 이 저서 중에서 ‘의학자’ 라는 말을 ‘소설가’ 라는 말로 바꾸어 놓으면 나의 주장은 과학적 진리가 가지는 엄밀성을 가지고 확연 명료하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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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크로드 벨날이 『실험 의학연구 서론』에서 어떠한 것을 논술하였느냐?하면, 그 당시까지 일개의 기술로만 여기던 의학에 실험적 방법을 적용하여 이것을 기술로부터 과학에 옮겨 놓으려 한 것이다. 실험방법은 종래의 무생물에 관한 학문 즉 식물학 및 화학연구에 응용 하여 위대한 성과를 나타낸 것이다. 크로드 벨날은 이 방법은 무생물연구에 뿐만이 아니라 생물의 연구 즉 생물학 및 의학에도 적용할 것이라 하며 이것을 무생물의 연구로부터 생물 연구까지 확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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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작위(作爲)는 실험적 방법의 적용범위를 다시 일보 확대하였음에 불과한 것이니 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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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실험적 방법에 의하여 육체생활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에 의하여 정적 및 지식적 생활에 지식도 얻기에 불가능할 것이 아니라 화학으로부터 생리학에 ― 생리학으로부터 인류학 및 사회학에 ― 이와 같이 진전하는 것은 그것이 방향의 상위(相違)가 아니라 정도의 상위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진로의 말단에 속하는 것이 곧 실험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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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크로드 벨날은 어떠한 논거위에서 무생물의 연구에 적용하던 실험적 방법을 생물연구에까지 적용하려 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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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과의 상위는 그에 의하면 전자는 자발성능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 즉 무생물은 보통 외부적 환경 속에 존재하는 것이나 생물체의 각 요소는 내부적 환경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 양자 간의 유일한 구별점이다. 그리고 외부환경이라는 것은 물리화학이 그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환경이다. 그러나 내부 환경도 또한 물리 화학적 성질을 가진 것으로서 거기에 일어나는 생리현상은 물리 화학현상에 환원할 수 가 있게 된다. 이에서 외부환경과 내부환경 즉 다시 말하면 생물계의 현상 무생물계의 현상은 상호인과 관계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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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생물에 있어서나 무생물에 있어서나 과학적 연구의 목적, 실험적 방법의 목적은 어떠한 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그 직접 된 원인을 규명하는 즉 그 현상이 일어남에 있어서 없지 못할 필연의 조건을 밝힘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험과학의 목적은 사물이 무슨 까닭으로 생기(生起)하는가를 지득(知得)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찌해서 발생하는가를 선명(鮮明)함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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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이유 하에서 실험적 방법은 무생물 연구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생물연구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것을 응용함에 의하여 생물학 및 의학은 진실한 과학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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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종래에 있어서 관찰이라는 방법만을 가지고 대하여 오던 문학에 실험적 방법을 응용할 수 있을까? 이것이 첫째로 일어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관찰이라는 것과 실험이라는 이 두가지의 어의를 먼저 밝혀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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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드 벨날에 의하면 관찰이란 것은 자연적으로 생기는 그대로의 현상을 연구하는 방법이요, 실험이란 것은 자연현상을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변개도 하여보며 자연 그대로는 발생하지 않은 사정 혹은 조건 속에서 모든 현상을 일으켜도 보아 그것을 연구하는 방법이니 예를 들면 천문학은 관찰의 과학이요, 화학은 실험과학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험방법이라는 것은 어떤 현상에 관한 우리의 해석과 추리와의 진위를 판별하기 위하여 그 현상을 인위적으로 일으켜보아서 그것이 우리들의 해석에 합치한가 아니한가를 시험하는 것이니, 이에서 과학의 연구는 관찰에 의하여 비롯되며 실험에 의하여 완성된다는 관계를 짓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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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에 의하면 문학도 이와 같이 관찰과 실험과의 과학이다. 관찰에 의하여 사건이 발생하며 출발점이 비롯된다. 인물이 활동하며 사건을 전개키 위하여 확고한 지반이 세워진다. 그리고 이어서 인물을 활동시켜서 그 작품에서 연구하려 하는 현상의 인과관계가 요구하는 대로 사건이 계기하는가 안하는가를 검토하는 것이 곧 실험적 방법이다. 졸라는 말하기를 소설이라는 것은 인간을 일정한 개인적 및 사회적 환경에서 실험한 실험보고서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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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험소설이 인간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는 물리학이나 화학 등과 같이 정확 치밀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연구의 결과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방법을 논하는 것이다. 실험소설이 제타 선진과학에 비하여 유치한 것은 그 발생시일이 짧은 까닭이니, 다시 말하면 실험소설가가 인간을 연구하는 그 방법에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구가 아직 일천한 까닭에 불외(不外)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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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드 벨날이 ‘실험과학자는 자연의 예심판사’라고 말하였음에 대하여 ‘졸라’는 우리소설가는 예심판사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양자의 그 연구 방법은 전연 동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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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난하는 사람이 흔히 있다. 즉 “자연주의 소설가는 오로지 인간의 사진만을 촬영하기에 몰두 하려한다. 그러나 이 사진은 도저히 정밀히 될 수 없는 것이니,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무리 하여도 사실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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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졸라에 의하면 실험적 방법을 소설에 사용함은 결코 사진사의 그것과 같은 기계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실험 소설가는 관찰에 의한 사실 그대로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한갓 사실을 관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의 근거를 표시키 위하여 여러 가지의 현상을 일으켜본다. 그리고 이 현상을 음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벌써 사진과의 거리를 떠난 즉 우리의 창의가 개입되는 것이니, 우리는 소설에 실험적 방법을 적용함으로써 자연 이외에 벗어나지 안 코자 자연을 변경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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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떠한 사실을 관찰하면 거기에는 한 개의 의상(意想)이 생긴다. 그 의상이 진(眞)인가 아닌가를 의심케 된다. 이에 대하여 크로드 벨날은 말하기를 회의자일수록 진정한 과학자라 하였다. 왜 그러냐 하면 회의자는 자기 자신의 해석에 대하여는 의문을 가지나 한 개의 절대적 원리 즉 현상의 결정성만은 굳게 믿는 것이다. 만일 이것을 믿지 않는 다면 의문이라는 것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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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의상과 믿음에 대한 회의며 따라서 검정키 위한 실험 등은 오로지 개인작의 것으로 여기에는 예술가의 창의의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예술가는 결코 사진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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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드 벨날이 생명 현상의 연구에 실험적 방법을 적용할 필요를 주장함에 대하여 이것을 반항하는 소위 생기론자들은 크로드 벨날 일파를 기계적 유물론자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크로드 벨날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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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론자들은 생명이라는 것을 어떠한 물건에도 결정하지 않고 다만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는 신비적 초자연적 일체의 힘으로 알며, 생명현상을 일정한 유기적 및 이화학적 조건 내지 법리에 의하여 설명하려는 사람들을 유물론자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것은 더할 수 없는 오류이면서도 한번 여기에 붙들이기만 하면 용이히 그것을 근절할 수는 없다. 다만 과학의 진보만이 이러한 오상(誤想)을 소멸할 수 있을 것이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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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과학의 진보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졸라는 이것을 요약하며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전세기(18세기)에 있어서 실험적 방법의 정확한 응용에 의하여 화학 및 물리학이 발생하여 이 방향에 이어서는 불합리한 초자연적인 제설은 그 영자(影子)를 감추었다. 즉 분석적 방법에 의하여 물리 화학적 현상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음이 발견되어 제종의 현상이 명료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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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서 새로운 일보를 답출하게 되었으니 지금까지 오히려 생기론자들이 신비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생물체도 역시 물질의 일반적 기구에 의하여 설명되며 그것에 환원되었다. 즉 과학은 생물체와 무생물체를 물론하고 일체현상의 존재적 조건은 동일한 것임을 설명하였나니 여기서 생물학은 서서히 화학이나 물리학과 같이 확실성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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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것만으로서 진보는 정지될 것이냐?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의 육체상 기구를 알게되면 이제는 다시 인간의 정적 및 지적 방면에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되면 우리는 지금까지 철학 및 문학에 속하였던 영역에 까지 들어가게 되나니 즉 과학에 의하여 철학자 및 문학자의 억측은 결정적으로 정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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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는 이어서 말하되 “오늘날 우리는 실험 물리학과 및 실험▣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실험 생리학을 가지게됨에 따라 앞으로 실험 소설론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은 관련하여 있는 것이니 우리는 생물체의 결정성을 알기 위하여는 무생물체의 결정성으로부터 출발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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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크로드 벨날과 같은 학자는 인체에도 일정한 법칙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만치 이 다음에는 사상 및 감정의 법칙이 결정적으로 발현될 것을 우리는 아님에서 단언할 지라도 과오는 아닐 것이다. 노방의 편석에나 인간의 두뇌에나 마찬가지의 결정성이 움직이고 있을 법리가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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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졸라의 견지에 의한다면 소설가는 이 경우에 있어서 과학자가 되며, 소설가의 할 임무는 인간의 개인적 및 사회적 생활을 분석하게 된다. 생리학자가 물리학자와 화학자의 뒤를 계승한 것과 같이 소설가는 생리학자의 뒤를 계승하여 관찰과 실험을 하게 된다. 소설가는 일종의 심리학을 만들어서 생리학을 보좌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가가 인간의 특질을 연구하는 도구는 실험적 방법인 것이다. 과학적 연구 실험적 추리에 의하여 이상주의자의 억측은 점차 정복이 되며 순연한 상상에 의하여 제작된 소설은 관찰과 실험과의 소설로 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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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인간의 과학 실험소설은 아직 법칙을 규정할 때 까지는 달하지 못하였으니, 다만 우리가 굳이 믿어두어야 할 것은 인간계의 모든 현상은 절대적 결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예술문학에 있어서도 당연히 그러할 것이며 또한 그리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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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모든 과학완성의 정도는 그 과학이 취급하는 대상의 복잡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 물리학이나 화학의 대상은 비교적 단순한 현상을 이루고 있으니만치 이 과학은 가장 엄밀한 법칙과학이 되어있다. 그러나 생리학에 이르러서는 복잡한 정도가 훨씬 배가됨으로 따라서 이 과학의 발달은 전자보다도 유치하다. 그리고 최후로 인간의 정신생활이 과학 즉 현실소설이 취급하는 현상에 이르러서는 갱일층 복잡한 정도의 현상을 가지고 있음으로, 이 과학(소설)은 아직 법칙을 운위할 경▣에도 이르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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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과학이 유치한 것은 방법의 죄가 아니라 대상이 복잡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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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는 실험소설의 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먼저 생리학이 가르치는 바와 같이 유전환경학 등으로부터 인간의 정신생활의 기구를 설명하고 그리고 다시 이 인간을 생리학자의 손으로부터 끌어내어서 사회적 환경 중에 놓고서 볼 것이다. 이 사회적 환경이라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 것이며 인간이 매일 개변하고 있는 것이며, 인간 스스로 또한 부절히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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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의 말을 일언으로부터 하면 소설가는 생리학과 사회학과의 양방면으로 부터 인간의 연구하는 과학자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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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실험소설(자연주의소설)의 순리론적 근거이다. 실험소설은 보다 더 실험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 역할 즉 졸라의 말을 빌어 한다면 도덕적 역할을 가지지 못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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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생물학 및 의학이 충분히 발달하였을것 같으면 의사는 질병의 원인을 인지하여 환자의 치료에 만전을 기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완전히 정복하여 그 법칙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상채는 오늘날 과학자가 몽상하고 있는 것이니, 이 보다 더 고귀하며 이보다 더 위대한 목적은 다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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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소설가의 몽상하는 것도 이것과 동일한 것이다. 즉 소설가의 목적도 과학자의 목적과 같은 것이니, 일정한 사회환경에 있어서 인간의 지적 및 정적 생활이 어찌되는 것인가를 실험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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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다음날 이것이 법칙적으로 정확히 지실(知悉)하게 된다하면 개인과 환경을 변개함에 의하여 보다 더 훌륭한 사회 상태에 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고귀하며 이보다 더 응용의 광범한 임무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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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을 지실하며 인생과 사회를 통제하며 더 나아가서는 사회주의의 전 문제를 해결함으로 말미암아 정의와 자유와의 기초를 확립하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사업 중에 보다 더 유익하며 보다 더 도덕적인 사안이 있는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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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소설가의 역할은 이것을 이상주의 소설과 비교하여 볼 때에 일층 선명하여진다. 여기서 이상주의 소설가라는 것은 관찰과 실험을 무시하고서 초자연적 비현실적 불합리적인 데에 그 작품의 기초를 두고서 현상의 결정성을 초탈한 즉 신비적 선구적인 어떠한 가공의 힘을 빌려하는 작가들을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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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소설가의 진정한 임무는 기지(旣知)의 사상(事象)으로부터 미지의 사상을 탐구하며 자연을 과학적으로 지실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상주의 소설가는 미지의 것은 기지의 것 보다도 아름답고 또한 존귀 하다는 구실 하에서 미지의 것만을 음미하려 한다. 다시 말하면 자연주의소설가는 여하한 사상이던지 그것에 관찰과 실험과의 방법을 적용하나 이상주의소설가는 분석할 수 없는 신비력을 파악하려 하며 미지 그대로의 속에 ― 법칙 이외에 안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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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상을 상념하는 의미에서 이것을 이상주의라고 명명한다면 실험소설가도 역시 이상주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이상주의자라 하는 것은 미지의 세계만을 동경하며 현실을 도피하려는 것을 말함이다. 즉 현실의 결정성을 인정치 않는자를 이상주의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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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소설가를 숙명론자라고 비난하는자도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실험소설가는 인간을 숙명적으로 편달 하에 움직이고 있는 가축의 군(群)과 같이 취급하려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졸라에 의하면 실험소설가는 결정론자는 될지나 숙명론자는 아니다.
 
51
물론 실험소설가는 자연법칙 이외에는 나아가지 않는다. 자연법칙 속에서 모든 현상이 생기는 그 조건을 관찰하며 탐색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 위에 다시 현상의 결정성을 변경도 하는 것이니 예를 들면 환경의 기구를 관찰하며 설명함에 따라 이 환경을 변개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와 무지가 동의어가 아닌 것과 같이 자연법칙을 지득하며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것에 맹종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숙명론과 결정론(실험적 방법에 의하여 변개할 수 있는 결정성)전연 별개의 것이 아닐 수 없다.
 
52
상술한 바와 같이 에밀 졸라는 주로 소설에 대하여 논하였다. 그러면 문학 이외의 것에 대하여는 어떻게 말하였는가? 그는 그의 논문 말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부기하였다.
 
53
“나는 실험소설에 대하여서만 논을 하였다. 그러나 실험적 방법은 사학과 비평이며 또한 극과 시까지도 정복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진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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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了[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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