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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촌 형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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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윤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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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촌 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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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새 안녕하시며 어린애들도 학교에 잘 다니며 원고 많이 쓰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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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제야 겨우 볼 일을 대강 마치고서 오늘 아침 9시발 승합 자동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이곳으로 다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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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군을 만났지요. 그리하여 얼마 전부터 우리들 사이에 숙제로 내려 오던 웅어잡이 뱃놀이를 즉시 실행해 보자고, 엄군과 송군과 형과 제가 그날 노상에서 헤어질 때 상의한 후 제게 부탁한 말을 전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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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군의 말이 여기서도 강까지 가려면 20리나 실히 되니 이리로 모이느니보다 바로 경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수색 가서 내리면 한오리 가량되니 일자와 시간만 작정해 가지고 수색서 만나자고 하더군요. 제 생각에도 그렇게 하는 편이 차비도 덜 들 뿐 아니라 걸음도 덜 걷겠기에 날자는 오는 일요일 말고 그 다음 일요일로 정하였고 시간은 경의선 첫차를 타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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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섭, 세영, 송영, 박아지 그리고 형이 따로 생각한 분이 있으면 수고롭지만 날짜와 시간을 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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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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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날 하루의 즐거움을 눈 앞에 그려가며 혼자서 기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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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제가 강화도 서쪽 끝 서해 바다 완련한 해변에 낚시를 꽂고 홀로 앉아서 온종일 포획이란 도합 두 마리로도 낚시에 꿴 고기를 대할 순간! 희열에 못 이겨 어쩔 줄 모르고 어린애처럼 껑충껑충 뛰던 그때를 생각하면 형과 여러 동무와 함께 즐길 그 날은 더한층 느긋한 행복을 맛볼 것 같고 맘껏 좋아할 상 싶어 이미 정한 날자가 너무나 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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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은 어렸을 적 한여름 장마 때 개울에 들어서서 송사리 떼를 쫓아다니며 또는 미꾸라지를 움키던 그 시절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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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들어 선지 몇 십 분 만에 간신이 미꾸라지 한 마리나 송사리 한 마리를 잡기만 하면 어찌도 그렇게 좋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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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할 데 없는 기쁨에 넘치던 그 때를 추억하니 담담 일요일 날 우리들 앞에 벌어질 웅어잡이 뱃놀이가 얼마나 즐겁고도 좋을 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다시 돌아올수 없는 전친스럽던 유년 시절이 부럽게도 마음 한 귀퉁이에 소리 없이 스며듭니다. 아무튼지 그 날 하루를 즐겁게 놀아보지요. 웅어 고추장에 생치쌈을 먹어 가며 문학 이야기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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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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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매우 덥습니다 . 자동차에 내려서는 한 30분 걷는 동안에는 이마에서 땀이 약간 흐르더니 절 동구 들어가서부터는 땀이 걷히고 제법 서늘합니다. 나뭇잎새는 앞서보다도 더욱 뻗어 녹음은 맘껏 우거질 대로 우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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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카시아꽃도 낙화가 지기 시작하여 훈향을 물썩물썩 풍기며 잎사귀와 함께 나부끼고 있으며 이미 떨어진 꽃은 동구 들어가는 길바닥 위에서 미풍이 일적마다 이리저리 뒹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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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그늘진 속으로 흩어진 꽃을 밟고 향기를 맘껏 들이마시며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나 오장육부가지 스며드는 듯 뻐꾹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정취! 시인이 아닌 저로서도 시적 정서에 잠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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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제가 이 곳으로 온 뒤 아침 일찍 일어나서나 세 끼 밥 먹은 뒤에나 반드시 거니는 곳입니다. 천천히 거닐다가 우뚝 섰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다시 걷기도 하면서 끝없는 공상에 잠겨 자기 자신조차 잊어 버리는 곳도 이 길이며 명상! 반성! 그리고 사색을 하며 소설의 구상을 하며 또는 이미 구상한 바를 더욱 난숙시키기도 하며 그 구상을 난숙시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곳도 이 길이올시다. 이 길이야말로 내 문화적 생활에 있어서 한 때의 동반자며 또는 예술적 소질이 겨우 싹트고 간신히 움돋으려던 것을 다시 우연한 감우로 소생시키는데 한 도움이 되는 듯하게 생각되는 곳도 이 길인 듯 상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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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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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봄을 잊어버린 지 이미 오래였습니다. 해마다 봄이 와도 봄의 아름다움과 흥취를 과시 몰랐었습니다. 또는 시를 잊어 버렸습니다. 예술과 등을 졌었습니다. 시상을 느껴 남에게 호소할 듯하였고 예술적 감흥에 잠겨 그 감정을 표현할 듯하다가 그만 까마득하게 흐리마리 예술적 정서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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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출발해가지고 일생을 마치려던 것이 중도에 이르러 문학 학도인 듯 하면서 기실은 문학 학도가 아니었었습니다. 형은 거짓 없는 지금 이 고백을 수긍하실 테죠. 사실 단체의 일원으로 운동자이었지 엄정한 의미에 있어서 문학하는 편은 못되었습니다. 한동안 저의 일거일동을 잘 아시는 형으로서는 저의 지금 하는 말을 잘 이해하실 중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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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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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제 일생을 새로운 문학적 생활에 오로지 바치려고 굳게 마음 먹었습니다 과거에 그적거린 . 몇 개 안되는 부끄러운 작품을 전혀 파묻어 버리고 아니 아주 잊어버리고 새로운 문학적 생활을 위하여 진실되게 꾸준히 노력할 작정이므로, 그렇게 결심하였으므로 지금부터 예술적 생활로 보아 제 자신이 거듭 났다는 것을 형께 솔직히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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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도 형께 잠깐 이야기하였지만 이 앞으로는 소설을 전력해 쓰겠으니 많은 도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작품을 써 보겠다는 마음만은 일시도 떠나지 않지마는 아무리 해도 도저히 자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암만해도 예술적 천분을 타고난 것 같지 않아요. 공연히 헛된 노력만을 하나 봐요. 허나 헛된 노력이라 할지라도 허사에 돌아간다손치더라도 문학 사업에 몸을 바치려 한 바라 예술적 생활로 일생을 마치려 한 바라 어찌 노력을 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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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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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송, 양군에게 안부 전해주십시오. 그 안에 못 들어가 형을 뵙지 못하면 수색 역전에서 만나 뵙지요. 그때까지 원고 많이 쓰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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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진관사에서 제(弟) 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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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조선문학선집』(수필집), 조선 작가 동맹 출판사, 1960
【원문】민촌 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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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10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