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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호비판과 이론확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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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6.15~
윤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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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호비판과 이론확립
 
2
- 영웅주의자의 망론을 일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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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적 이론이 없이는 계급적 행동이 있을 수 없는 까닭에 우리는 완전한 행동을 감행하기 위하여 완전한 이론확립에 노력하는 것이다. 이 곳에 상호비판의 진정한 의의가 있고 이론투쟁의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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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적 방법론에 의한 변증법적 해석이 여하한 기능을 발휘하겠는가 단결하기 전에 완전한 단결을 하기 위하여 같은 진영 내에 분열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또한 비맑스주의자를 배격하거나 막연한 경지에서 무산계급운동 운운하는 제 반동분자를 가장 합법적으로 극복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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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철칙 하에서 진정한 맑스주의자만이 결성된 좌익 진영이 계급적 행동에까지 비약적 진출을 단행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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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하 조선의 객관적 정세가 조합주의적 경제투쟁에서 전무산계급적 정치투쟁으로 방향전환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될 현단계까지 진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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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회운동단체중앙협의회>가 비상설 기관으로의 집회금지를 당하고 말았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방향전환기에 당면한 현단계의 진출이 표면적으로 전개되지 못하고 만 것은 조선의 특수사정이 가장 웅변적으로 증명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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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적 이론을 파악한 무산계급문예운동자로서는 이상 문제에 당면하여 프로문예로서의 어떻게 방향전환을 해야할 것을 구명하지 않으면 아니 될 필연적 과정에 이르렀다. 먼저 무산문예로서의 방향 전환을 해야만 할 것이냐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방향전환을 할 것인가가 문제인 이상 정치이론의 기계적 야합이론의 공식적 적용 등을 피하기 위하여 무산계급 문예이론을 확립해야 할 현시기에 직면하였다. 그래 현발전단계에 대한 비판, 분석, 구명(究明)등으로 상호비판에 의하여 프로문예이론의 확립이 우리 무산문예운동자로서의 당면한 임무이다. 다시 말하면 선전, 선동을 여하한 방식과 여하한 내용으로 어떻게 해야만 가능할 지 이에 대한 구명이 제일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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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에 관한 상호 비판적 이론투쟁이 전개되기 전에 ‘따따?’ 대 ‘볼셰비키’ 의 논전인지, ‘아나?’ 대 ‘볼셰비키’ 의 이론투쟁인지 여하한 상대편의 정체가 미상(未詳)하고 태도가 애매모호한 자의 무용(無用)의 논전을 재삼 반복한다는 것은 우리의 취할 바가 아니지마는 한쪽의 논조가 순전한 도전적 태도로 좌익진영을 혼란케 하는 데에는 그대로 묵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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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평론』6월호에 게재된 김화산군의 「뇌동성 문예론의 극복」이란, 조중곤군과 나에 대한 반박론이 우리 진영 내에 여하한 영향을 끼쳐 주었는가? 과연 우리가 뇌동성 문예론자로 군의 지적한 이론에 의하여 극복되지 아니치 못하고 결국 무산계급 문예운동을 양기(揚棄)하고 말는지 태도 불선명한 군이 도리어 나의 표명한 이론에 피극복자가 될는지? 이 아래에 군의 박문(駁文)을 분석 검토하는 데 따라 명백히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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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의 태도가 과연 소부르조아지의 소시민성을 파악하고 있는지 자칭 맑스주의인 내가 군의 비과학적이요, 아무 근거 없는 이론에 의하여 좌익전선에서 배제를 당하고 의식적으로 반동행위를 감행하는지? 그렇지 않고 사이비적 ‘아나요’ ,영웅주의적(비과학적, 비합리적 해석 하에 뇌동성 운운한 이유)의 태도를 파악한 군이 도리어 부르조아의 정체가 여지없이 폭로되어 군이 배격하고자 하던 우리에게 도리어 배격을 당하거나 또한 진정한 맑스주의에 극복될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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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내가 이 아래에 군의 박문(駁文)을 부분 부분 분석, 검토, 구명하는데 따라 합리적 해결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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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예술론의 신 전개」(『조선문단』. 3월호)와 「뇌동성 문예론의 극복」, 이 두 논문을 읽은 사람으로는 누구나 그 내용에 있어서 아나키즘 이론을 해독치 못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후자에 있어서 아나의 이론이 극히 빈약한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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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군이 진정한 ‘아나’라면 그런 도전적 태도에 겨운 비명에 가까운 탈선적 논조로 이론을 전개할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냉정한 두뇌와 침착한 태도로 아나키스트가 파악하고 있는 예술론 ─ 예술관 ─ 을 구체적으로 표명할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 군이 파악하고 있는 정당한 ‘아나’이론 ─ 합리적, 합법적 ─ 으로써 우리 이론의 구성적 결함을 검토한 후 맑스주의 이론을 극복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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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군이‘아나’의 이론으로 우리들을 극복시키려 하지 않고 도리어 맑스주의이론으로 우리를 극복시키려고 한 불순한 의도가 나변(那邊)에 재(在)한 지 누구나 의문일 것이다. 그래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이론을 차용(借用)하기 위하여 우리의 태도와 사상 등을 반박문 하나로써 경솔히 결정적 태도를 취하여 소부르조아지니 자칭 맑스주의자니 하는 비과학적 폭언망론을 거리낌 없이 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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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군의 ‘아나’ 에 대한 이론은 전후를 통하여 빈약하고 , 우리를 극복시키려는 데에도 제2기적 비약이니 방향전환 ─ 정치를 부정하고 자유연합의 사회를 몽상하는‘아나’의 용어는 아니다 ─ 맑스주의 이론은 소위 노동성 문예론자를 극복시키려고 노력한 것만 보더라도 첫째로는 빈약하던‘아나’의 이론이 근본적으로 파탄(破綻)되고, 둘째로는 오히려 맑스주의의 극복된 것을 군 자신이 폭로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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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따’에서 ‘아나’ 로, ‘아나’에서 ‘맑스주의’ 이론에 극복된 김화산군을 우리 진영 내에 영접함, 맑스주의자로……. 그러나 진정한 맑스주의자인가 아닌가는 상호 비판적 이론 투쟁을 어느 시기까지 계속하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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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논의한 것은 김군의 논문 중(1)만을 지적해서 분석, 검토, 구명하였으나 다음은(3)의 부분 부분을 엄정한 견지에서 철저한 비판을 가하여 김군의 본질적 오류와 무산계급문예에 대한 시행착오 등을 합리적으로 표명하여 군을 완전히 극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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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2)도 논평코자 하였으나 지면관계와 시일문제로 논급하지 못하게 된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2)만은 순전히 조군(趙君)에 대한 반박문이기 때문에 내가 논평치 않더라도 조군의 구체적 박론(駁論)이 어느 곳에든지 발표되어 직접 김군과 논전할 것을 믿고 나에 대한 (3)만을 검토하기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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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기에 있어 프롤레타리아문예운동은 ××을 촉진하는데 한 도움이 된다면 거기에 만족한다.”“투쟁기에 재한 프로문예의 본질이란 선전적 선동의 임무를 다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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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나의 파악하고 있는 바의 이론이 프로문예에 대한 비본질적이요, 소시민성의 문예이론인지 아닌지를 프로문예운동 자체를 위하여 한 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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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계급예술 ─ 무산계급문화의 일부분 ─ 이 성립될 수 없다고 트로츠키는 열렬히 주장하였다. 그 이유는 무산계급 존재의 과도기의 시일이 짧은 관계상 무산계급 독특의 예술이 성립할 수 없다고 역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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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하여 마이스키는 아래와 같은 반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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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주의로의 성립과정이 결코 단시일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의 독재의 과정을 밟는 노동 러시아에서도 농민문제, 대외 문제가 있고 또한 전 세계가 일시에 투쟁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장소와 시일을 따라 나라와 나라가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무산계급과정이 반세기 내지 일세기 이상 존재할 것이다. 여기에 무산계급예술이 성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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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는 또 말하기를 “무산계급이 한 개의 계급으로 존재하는 과도기가 비교적 짧은 것은 사실이다. 이 짧은 사이에 계급투쟁을 위하여 격렬히 싸울 필요가 있을 뿐이다. 신문화 건설 보다가 구시대에 종사하지 않으면 아니 되기 때문에 도저히 자기계급의 문화를 건설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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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마이스키의 주장대로 무산계급문예가 성립할 수 있다면 전기이론과 후기이론이 상이할 것이다. 여기에 나의 이론이 비본질적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무산계급 문예운동의 본질적 이론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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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하 우리 앞에 가로놓인 문제는 어떻게 선전 선동할 것인가, 문예로서의 여하히 방향전환을 할 것인가가 존재할 뿐이다. 이에 대하여 김군은 아래와 같이 반박을 하였다. “……경제조직의 상부구조란 말을 여하히 해석하는가?” 먼저 내가 대답하기 전에 군의 해석한 바를 지적해서 군이 파악하고 있는 바의 부르주아 사상을 폭로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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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해석한 바에 의하면“사회조직을 토양이라 하면 예술은 기상(其上)에 생장하는 초(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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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의 필요를 전제로 하는 사회조직상에 예술품이 화초가 될 수 있을까 만약 있다고 하면 순전한 부르주아 두뇌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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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의 대변자 김화산군이여! 나의 상부구조에 대한 해석을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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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를 어떻게 해석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맑스주의 방법론에 의하여 세계를 변혁하려는 데에 궁극 목적이 존재한 것이다. 그래 우리는 그 시일단축에 노력하는 의식적 전위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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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구조와 경제적 하층구조는 상호간 유기적 관계가 분리치 못할 만치 긴절하다는 것을 군도 지적한 바이지마는 이러한 관계상 하층구조가 동요되는 시기에 상부구조만이 현상유지를 못할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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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대하여 우리는 의식적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상부구조에 속하는 문예가 하층구조변혁에 적극적 참가로 문예로서의 변혁기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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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곧 무산계급문예운동이다. 예술품이 화초로서의 사회조직상에 임할 시기는 우리가 동경하는 이상사회에 도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에 지배를 받는 그야말로 예술지상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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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기의 예술은 나팔이요, 예술가의 코커스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도저히 프로예술을 화초로는 간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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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군의 논문 중 아래와 같은 논조가 여하한 태도를 폭로하였는가
 
39
“이제 사회를 토대로 삼는 예술이 사회변혁의 일 분야로서의 예술혁명의 임무를 다하지 않고……”운운한 것은 군의 이론이 이원성 내지 다원성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원론적 이론을 파악하고 있는 군이 정치투쟁, 경제투쟁, 문예운동 등을 분리하지 말라고 주장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여기에 군의 이론적 파탄이 폭로되고야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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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예술 ××을 사회××의 일 분야로 취급한다는 것은 군 자신의 무식과 인식착오를 표명하고야만 것이다. 군의 논조대로 사회××을 떠나서 예술혁명이 가능할 것이냐? 설령 예술××만이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사회××에 근거를 두지 않은 예술 ××이 무슨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군은 이 점을 내내 주장한다면 부르주아사회에서 기생충의 생활을 영위하는 예술지상주의자와 다를 것이 없다. 프롤레타리아문예운동이란 예술만을 혁명하기 위하여 존재한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일 분야로의 존재적 의의와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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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기의 프로문예란 예술적 요소를 구비치 못한 비예술품이라 해도 좋고 계급해방을 촉진하는 한낱 수단에 불과해도 좋고 다만 역사적 필연으로 전개되는 해방운동의 임무만을 다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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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가 파악하고 있는 바의 프롤레타리아 예술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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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예술이란 일개의 문제를 우리가 앞에 놓고 생각할 때에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은 예술이란 기본관념이다. 프로예술도 결국은 예술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즉 다른 문화관념과 구별되는 어떠한 특수관념을 떠나서 우리는 프로예술을 고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사회××'에 있는 게 아니라‘예술’그 자신에 있는 것이다. 적어도 예술 그 분야에 있어서 예술 ─ 그것이 최대 관심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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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김군이 파악하고 있는 바의 프롤레타리아예술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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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상대적 이론에 대한 검토가 비롯된다. 나의 이론이 프롤레타리아문예운동 자체에 대하여 비본질적 오류를 범한 과연 비상식적 폭언을 토한 것인지? 김군의 이론이 과연 정확한 프로문예이론에 해당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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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이론에 대하여 객관적 분석을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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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의 프로문예가 계급해방의 임무를 다할 수 있고 또한 그 기능을 완전히 발휘할 가능성이 있는가? 계급투쟁이 근절되기 전에는 예술은 계급투쟁의 일익이 되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는 것은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객관적 정세가 표명하고 있는 바이다. 그러면 프로예술이 계급투쟁 일익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려면 긴요한 문제는 예술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계급×× ─ 계급××에 있을 것이다. 그래 계급투쟁을 위한 예술을 제삼자의 눈으로 보아 예술적 요소를 구비치 못한 비예술품이라 해도 좋다는 말은 일반 프롤레타리아문예운동자의 의식적 용어일 것이다. 이에 반대자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초계급론자이요, 순수한 예술의 특수성을 주장하는 예술지상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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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이 지적한 바의 청야(靑野)의 평론 중 “……문학적 약속을 무시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하는 문학적 약속이라 하는 말은 순수예술 ─ 곧 사회×을 내용으로 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또한 김군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문제의 핵심의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 그 자신에 있는 것이다.” 라고 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계급××을 망각한 말은 아니겠지만 만약 청야(靑野)의 문학적 약속이란 말이 김군의 주장한 이론과 합치되어 그것을 의미한 것이라면 청야(靑野)란 사람이야말로 비맑스주의자요, 부르의 문예평론가일 것이다. 그러나 청야의 논점은 군의 이론과 배치되었다.
 
49
김군은 또한 나와 박영희 양인을 비맑스주의자로 몰기 위하여 곡일(谷一)의 평론을 아래와 같이 인용하였다.
 
 
50
아등은 물론 감정의 사회화를 예술의 특수성를 망각한 것은 아니다. 프로문예운동이 부르의식에 대한 투쟁 즉 전 사회관계에까지 넓혀진 계급투쟁의 일익이라는 데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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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은 이상의 것만 지적할 줄 알았지 내가 이 아래로 전개시키려는 부분은 어째서 지적하지 않았는 지 모르겠다. 물론 김군으로서는 군이 주장하는 바의 이론을 유력하게 하기 위한 편견의 태도이겠지…… 그러나 김군은 이 점에서 자기 자신의 약점을 폭로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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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문예운동이 대중의 ××주의적 정치투쟁의 현발전 단계에 노력하지 않고 전혀 예술권 내에서만 편견, 고집, 자기도취에 빠지고 만다면 아등은 그들의 프로문예운동 당면의 임무를 해석치 못한 자로 인증하고 그들의 오류를 바로 잡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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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일 의 이 논문은 (谷一) 무엇을 의미한 것이냐? 계급투쟁이 지양되지 않은 현재에 있어서 예술은 계급××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는 말이 이에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이 의의 있게 진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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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이른바 ‘프로예술도 결국은 예술에 관계한 문제이기 때문에 예술이란 기본관념을 망각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내가 이상 구명한 바에 의하여 극복되었는 지 아니 되었는 지 이상 검토함에 따라 명확히 증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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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예술이란 ─ 즉 다른 문화관념과 구별되는 어떠한 특수한 관념을 떠나서 우리는 프로예술을 고찰할 수 있을까? 물론 충분히 고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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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관념이란 근본적으로 변혁되지 않으면 아니 될 비상시기에 모든 관념이 동요되지 않을 리 없다. 이에 따라 새로운 문화가 수립되리라고 ─ 김군도 지적한 바이지만 프로문예운동의 본질적 요소는 계급××운동에 대하여 방관적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니라 직접 참가한다는 데에 상위점(相違點)을 발견할 수 있다.
 
57
김군의 해석하는 바와 같이 ─ 예술이 최대 관심사요, 문제의 핵심은 ‘사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그 자신에 있는 것인지 또한 프로예술이 사회××의 선전, 선동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는지 또한 프로문예로서의 선전, 선동이 대금물(大禁物)인지 나는 이에 대하여 한 말로써 단언하다. ─ 우리는 현사회를 어떻게 해석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하루 바삐 변혁하려는 게 가장 긴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예술분야에 있어서 무산계급운동 일익의 임무를 다하고자 한다. 나는 거듭 말한다. 문제와 핵심은 예술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 사회××자신에 함유하여 있다. 이러한 의미하에 예술이 제 이의적(二意的)이지 절대로 사회××이 제이의적(二意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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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은 또 아래와 같은 말로 우리를 비난하였다.
 
 
59
피등(彼等)은 프로예술은 예술적 요소를 구비치 않아도 성립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이렇게 예술적 요소를 구비치 못한 예술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60
우리가 해석하는 바에 예술적 요소와 김군이 해석하는 바의 예술적 요소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김군에 의한 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의 순수예술적 요소요, 우리에 의한 것은 ××주의적 목적의식 곧 계급적 사실 내지 계급적 행동들을 내용으로 한 다만 예술적 형식만을 차용하는 것뿐이다. 우리의 표현은 예술적 요소를 위한 표현이 아니다. 계급적 해석에 의한 모든 사실, 행동 등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게 중요한 점이다. 그래 우리는 역사적 과정을 가장 합법적, 합리적으로 과정하기 위하여 당의 이론도 그대로 좇으려 하는 것이다.
 
61
“원래 피등(彼等)이 ‘선동적 임무’ 니 ‘사회××의 수단’ ……이니 하는 것은 결국 그네의 부화뇌동성(附和雷同性)의 발작에 불과하니까”
 
62
이 점을 볼 것 같으면 군이 지적한 바의 부화뇌동성이란 말도 믿을 만한 말이 못되는 동시에 군 자신에 골계(滑稽)를 연출하였을 뿐이다.
 
63
(3) ‘소부르주아니’ , ‘가장(假裝) 맑스주의자니’ , ‘소시민성이니’ 하는 비과학적 언사에는 나로서 구태여 대답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제삼자의 엄정한 비판 세밀한 해석에 맡기는 것이고, 둘째는, 내 자신이 이 앞으로 여하한 태도를 취하는가에 의하여 정확히 표명될 것이다. 그러나 일개의 프롤레타리아가 되라고 한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유산자로서 무산자가 되라는 말인지 부르주아 의식을 버리고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파악하라는 말인지 그 정체를 모를 말이다.
 
64
결국 프롤레타리아계급 일원으로의 사명을 충실히 하라기 위하여 한 말을 한 것이다. 그러면 프롤레타리아계급 일원으로의 사명을 어떻게 충실히 하라는 말인가? 이에 대한 과학적 구명도 없이 비상식적 우론(愚論)을 토한 것은 부르주아의 태도이거나 근거 박약한‘가(假)아나’의 착각적 언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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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개의 예술가, 철학가, 과학자, 교육가, 정치가가 되기 전에 먼저 일개 프롤레타리아가 되어야 한다.”그러면 일개 프롤레타리아가 된 후에는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나는 언명한다. 자기 계급을 완전히 해방하기 위하여 역사적 필연의 과정을 단축하기 위하여 프로경제학자, 프로정치가, 프로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66
이와 같이 혁명전기(革命前期)에는 의식투쟁, 관념투쟁, 이론투쟁 등이 좌익진영내에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이 행동화되는 혁명기에 당면하여서는 프로계급이 총동원이다. 이에 프로예술가로서 참전한다는 말이 소부르주아의 언사일까? 아니다. 이것은 정(定)하고 소부르주아라고 단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르주아인 것이다.
 
67
여기에서 김군의 정체는 여지없이 폭로되었다. 부르주아인 김화산군으로…….
 
68
(4) “프롤레타리아문예도 어느 시기에 이르러서는 필연적으로 소멸 ─ 해체는 소멸의 오기(誤記) ─ 되고야말 운명을 프로문예 자체가 함유하고 있다.” 이 말이 과연 김군이 지적한 바와 같이 나의 무지와 저능을 폭로하고 말았다는 것이 합리적 사실일까?
 
69
자본주의 사회의 상부구조인 모든 부르주아문화가 소멸될 것인가? “절대로 소멸되지 않는다.”─ 이 말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파악하고 있는, 역사적 필연을 모르고 자기계급 옹호에만 몰두하는 자의 말이다.
 
70
그러면 계급적 해석에 의하여 부르조아문화는 결국 소멸되고 만다. 동일한 이론 하에 프롤레타리아문화도 프로계급이 해체됨을 따라 필연적으로 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점을 부정하는 사람도 역시 계급적 이론을 모르는 그야말로 부르주아이다.
 
71
(5) “프롤레타리아문예운동이란 그 시기, 그 시기 ××전기(반항, 선동, 선전)로, ××기(전투, 파괴)로, ××후(정리, 건설)에 역사적 필연임무를 충실히 하면 그만이다.” 이와 같은 나의 말에 대하여 김군은 “문예는 혁명 전기, 혁명 후에 의하여 그 역사적 필연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문예는 그 시기 그 시기의 역사적 필연의 전개에 의하여 그 형태를 교환하는 것이다. 또 예술가는 그 시기 시기의 특수한 임무를 행하여야 한다는 그러한 공식적, 괴뢰적, 기계적 존재가 아니다.”
 
72
과연 김군의 이론대로 문예는 그 시기 시기의 역사적 필연의 전개에 의하여 아니 추수적(追隨的)태도로 변천되기를 기다려서 그 형태를 교환하기만 한다면 의식적으로 프롤레타리아문예운동이 불필요할 것이 아닐까? 사실 불필요하다면 제일 부르주아작가의 대두로 부르예술에 마취되는 대중 ─ 다수의 무의식 분자 ─ 을 여하히 조처하여 프로문예로서의 전무산계급적 정치투쟁의 일 구성분자로 일익의 임무를 다한다는 말은 결국 무의미한 이론에 귀착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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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회변혁기에 처한 프롤레타리아문예가 문예를 위한 문예라든지 그 형태만을 앉아서 교환되기를 고대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무산계급운동에 적극적 참가로 일익적 임무를 다하기에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문예운동인 것이다.
 
74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 김군은 또 가장 극좌당을 대표하는 듯이 이러한 비상적(非常的)폭언을 토한다고 그야말로 비상식적 부르주아의 해석을 두려울 줄 모르고 감행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정확한 비판은 제삼자의 엄정한 이론투쟁에 있는 것이다.
 
 
 

3

 
 
76
제한초과다 이제부터 간단히 . 결론으로 들어가자. 과연 조선에는 프로문사가 너무나 많다. 사실 너무나 많은 것이 아니라 진부(眞否)를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이다. 김군이 뇌동성 문예론의 극복을 주장하는 데에는 나도 동감이다. 나부터라도 뇌동성 문예론자이면 정당한 이론에는 여지없이 극복을 면치 못한 것이요, 뇌동성 문예론의 극복을 주창한 김군 자신도 극복되고야 말 것이다. 이러한 사실, 이러한 이유 하에서 상호비판에 의한 이론확립을 열렬히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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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이 최후에 토한 바 망론에 의하면 “프로문예를 진정한 무산 계급적 정신하에 집중하는 것이 현하(現下)최대의 급무이다.”
 
78
그러한 막연한 무산계급적 정신하에 집중하는 것이 최대급무가 아니라 과학적, 변증법적 해석에 의한 이론적 전개가 가일층 최대 급무이다.
 
79
나는 마지막으로 비본질적 이론을 극복하기 위하여 상호비판기(相互批判期)를 의의 있게 맞자고 동지들에게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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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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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27년 6월 15일 - 6월 20일
【원문】상호비판과 이론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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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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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기정(尹基鼎)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27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 문학평론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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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10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