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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필자가 모 사상 단체를 방문하였을 때에 팔절형 맑스의 영상이 벽에 걸린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차라리 일종의 장식적 의미로서 해석하려 하였으나 저편(회측)의 견해는 그렇지 않았다. 즉 맑스의 위대한 혁명적 기백과 풍부한 논리적 창업에 경배를 드림과 함께 그의 획세기적 유훈을 기념키 위함이라는 것이 그네들의 영상에 대한 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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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나는 사정상 시비를 논란할 겨를도 없었음으로 그대로 발길을 돌려세우고 말았으나 구애(拘碍)없는 내 자신의 신조로부터 그네들의 견해는 그것을 도저히 그대로 청취 또는 소화하여 들 수 없는 숭배 심의적 견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명예욕과 숭배 심리를 증오 배척하는 나의 견해로서는 그네들에게 한하여서는 이 지각 위에 맑스라는 거대한 우상이 또한 개(個) 조출된 감이 없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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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기회로 하여 이하에 우상문제에 대한 내 자신의 신조와 관점을 학구적 태도로서 기술하여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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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이란 반드시 세간에 흔히 신봉하는 신불상등과 같은 동석상이나 기타 비, 탑 등만을 운위함은 아니다. 그 대상물이 실재체임과 가상체임의 여하를 물론하고 배궤(拜跪)적 심정으로서 대하는 물건이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벌써 관념상 우상화된 것이며 그 사람은 우상이 가진 권위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즉 숭배 심리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권위적 정신과 맹목적 복종과의 차별관이 역사적 경험에 의하여 고찰하여 보더라도 명료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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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원시인들은 풍뢰우정(風雷雨霆)과 맹수악사 등을 공포하는 타면(他面)으로 그의 불가항적 위력에 배궤적 심정을 갖게 되었으며 그것은 다시 상상적 신(神)을 가설(假設)함에 이르렀나니 이 신은 인력 이상의 존재적 영물로써 맹목적으로 복종 또는 배궤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리고 이때의 신은 인간적 영상이 아니라 웅대, 장엄, 현묘, 유괴(幽怪)한 자연물 내지 자연 작용이었으니 즉 일월과 성신이 신이었으며 기타 태악(泰岳) 무림(茂林)이며 풍뢰, 우정이 모두 신이였던 것도 그 이유이다. 현재 조선 부녀들이 무복(巫卜)을 즐기며 북두를 칠성님이라 하여 받드는 것이라든지 산에는 산신제, 들에는 용왕제 등을 받들며 기원하는 것도 모두 원시인의 유습인 것은 물론이다. 초기의 원시인들은 인간적 표징을 가진 신을 가설하기에는 그의 의식이 너무나 단순하였던 것이었다. 즉, 그 시대에는 인간이 인간을 숭배할 이유가 없다는 그 심리부터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네의 자연현상으로부터 인간 대 인간적 기다(幾多)의 경험은 지력화(智力化)하는 의식적 작용을 따라 그 후 인간적 형상을 가진 신이 가상됨과 동시에 숭배의 심리는 그 대상을 전변하게 되었으니 즉 공포 ― 신 ― 인신(人神) ― 으로부터, 앞으로 영웅 ― 천재 ― 위인 ― 이렇게 진화라는 이보다도 진화하여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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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숭배의 심정을 가지는 곳에는 반드시 권위와 복종이 따라 발생하게 되느냐 이 문제를 다시 설명하기 위하여서는 영웅주의의 발생 원인을 열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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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한 바와 같이 태초의 원시인들은 자연현상과 함께 맹수와 독사 등에게 생명을 빼앗기는 가공할 경험으로부터 맹수와 독사를 정복하는 용감한 사람이 있으면 모든 사람들은 이를 감사하고 존경하였으며 그 감사와 존경을 받는 사람은 따라서 일종의 권위감을 가지게 되었나니 이것이 곧 영웅주의의 발생적 동인이며 숭배 심리의 대인간적 전변이었다. 이 결과는 자연적으로 탁월 내지 유력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심리 즉 변태성적 제2본능심을 인간으로 하여금 가지게 한 것도 무리 아닌 인간의 중대한 심리적 과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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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심의의 발작을 우리가 일언으로써 배격하지 않으면 아니 될 근본적 이유는 묻지 않아도 그것이 기성 관념의 기조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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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의 요점이 ‘개인의 부정’ 에 있음은 맑스주의자가 아닌 필자로서도 긍정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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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개인의 공적과 함께 개인의 씨명을 과중시함은 이것이 개인적 가치관에서 출발한 기성 사회의 개인적 윤리관념이니만치 맑스주의자의 입장으로서는 이와 같은 관념은 일거에 거부할 것도 또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될 것도 우리는 요지(了知)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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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맑스주의자들은 그의 종지에 배타되는 관념 내지 행동을 종종 취하는 관(觀)이 유함은 그 이유가 나변(那邊)에 있는가? 우리들의 착각적 관찰이라면 다행이려니와 만일 저들 맑스주의 학도의 인식 부족증의 나머지라면 그야말로 저들을 위하여 애석지탄을 마지못할 노릇이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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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관찰에 의하면 맑시스트의 위와 같은 인식적 착오는 전기한 일개 사상 단체에 뿐만이 아니라 노농러시아에서까지 과감히 범하고 있으니 더욱 통탄할 노릇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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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9일부 동아일보 지면의 보도에 의하면 명년도부터 실시된다는 노농로국의 신력은 5일 1주제로 정하여 일요와 토요를 폐지하는 동시에 월, 화, 수, 목, 금요일의 구칭을 ‘맑스데이’ , ‘레닌데이’ , ‘인터데이’ , ‘공화데인’, ‘코뮨데이’로 개칭한다 하였으니 적어도 전국적으로 획시대적 공산 사회를 건설하였다는 소위 노농러시아로서 ‘맑스데이’, ‘레닌데이’ 등의 칭호를 부여하여서 일개의 맑스나 레닌의 씨명을 그다지 과중화할 필요가 무엇인가? 부득이한 사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할망정 저 신경 제정책의 채용만으로도 러시아의 혁명이 불충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맑스주의를 지상에 실현하였다는 러시아 ‘볼세비키’의 망발은 이것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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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페트로그라드’ 를 ‘레닌그라드’ 로 개칭하여서 레닌의 씨명을 도시에까지 적용하였으며(피터대제의 이름을 부친 ‘페드로크라트’ 를 ‘레닌그라드’ 로 개칭함은 결국 이양동질이다) 또 찌노비예프를 위해 ‘찌노비예프대학’ 의 명칭이 있고 트로츠키를 위하여 ‘트로츠키 기념시’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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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적 ××은 기성 사회의 제도와 그 조직을 ××하는 동시에 기성사회의 전유물인 기성 관념까지라도 근본적으로 멸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즉, 이 두 가지의 절멸이 수행되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사업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기성사회의 조직과 제도를 ×× 하였다 할지라도 기성 관념을 퇴치하지 않는다면 종창의 전치(全治)를 노력하면서 병균을 멸각치 않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기성사회조직과 유연한 사회제도를 암연히 부활케 할 요소를 남겨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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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는 이 점에 대하여서도 상당히 주의하여 왔다. 즉 ‘프로레트칼트’의 시설이 그것이다. 그것에 의하여 과학, 예술, 교육, 윤리 등을 변개함에 많은 노력을 해 왔음은 세간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기성관념의 최악한 특장인 개인숭배 즉 우상숭배의 습성 내지 심리를 사회적으로 그대로 잔존케한다느니보다도 차라리 억양(抑揚)함과 여(如)함은 실로 과대한 가치를 부여하여 부르주아 사회서 그것과 같이 개인의 씨명을 기념한다는 것은 이론과 실제를 막론하고 그 자체의 종지에 배치한 행위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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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 하면 무산계급의 운동은 세계적 창조적 본능에 기인한 내용을 가진 즉 자발적 ××적 성육(成育)운동이오 결코 기(幾) 개인을 중심으로 한 의협사적 운동도 아니요, 중심 귀취(歸聚)의 과두정치적 운동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성을 멸각한 즉 개인적 씨명의 억양이며 공적 기타 영향 등을 일부 소수자에게 귀속시킬 아무러한 이유도 없는 최대한수의 무명운동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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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의식적으로 맑스나 레닌의 공과를 중상하거나 훼손하려고 하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에 있어서 레닌의 공로가 컸던 것이며 이론가로서의 맑스의 활동이 또한 위대하였던 것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레닌이나 당시 트로츠키 등은 그의 혁명수행에 있어서 단적 역할을 다하였다. 그러나 무명의 적위병사도 개인이 모두 단적 역할을 다한 점에 있어서 레닌이나 트로츠키 등 아무러한 차별도 없는 것이다. 전부가 단역자인 동시에 주연자로서의 역할을 다 아니 하였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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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가 연극을 함에 있어서 필요에 의하여 무대감독이나 화장감독이 있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그렇다고 극 전체를 위하여 그들에게 역자(役者)이상의 가치나 또는 공로를 돌려보낼 이유가 무엇이며 또 희곡 원작자 혹은 각색자에게 마찬가지의 역자 이상의 대우와 존경을 표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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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에 있어서 맑스는 희곡을 제공한 자에게 불과하며 레닌은 각색 또는 무대감독의 역할을 하였음에 불과한 것이니 적위병의 일 병졸과 함께 혁명수행의 과정적 공로와 결과적 가치에 있어 하등의 등분이 없는 즉 모두가 단역자임에도 불구하고 레닌 등 개인만을 우선하여 러시아대혁명사업의 공훈과 영예를 귀헌하며 명예와 기념을 ▣호하는 부르주아의 상투처럼 그의 씨 명을 도시 기타에 등록하여 기념할 필요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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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사유재산제의 ××자본주의적 획득본능의 파멸 등을 중심사상으로 하는 소위 공산주의의 간판을 내세운 볼세비키 운동배로서 결과적 공로를 논하며 이것을 기념키 위하여 그의 씨명 등을 함부로 내세운다는 것은 이것이 얼마나 사회운동 자체에 대한 모순이며 무명적위 전원의 모멸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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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분명히 러시아 볼세비키의 인식 착오가 아니면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에 유연한 반동관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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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개인의 씨명에 과중한 가치를 부여하여서 죽면청사(竹綿靑史)에 등록하며 기념비탑등을 건설함과 여함은 부르조아 기성관념의 전문적 유희가 아니면 안 된다. 이와 같은 관념을 초탈치 못한 사회운동자가 있다 하면 그의 골저에는 반드시 소(小)카이세루가 마검을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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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대인물의 기념비라’하면 아마 맑스를 숭배하며 레닌을 기념하는 볼세비키도 노(怒)함을 마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부르주아 대변자 페리클레스는 세계는 대인물의 기념비라 하여 세계의 문화사적 가치를 기개 저명한 인물의 공과에 돌려보내고 말았으니 러시아 대혁명의 공훈을 레닌이나 트로츠키 기 개인에게 귀납하는 볼세비키는 이에 다를 것이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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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페리클레스의 말과 정반대로 ‘세계는 세계 전원의 기념비’라고 정하노니 세계의 문화사는 그 시대 시대의 복수인간의 집적한 노력의 기록이 아니면 안 되는 까닭이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의미의 역사라 명명할 것은 사회진화상 과정적 추이의 기록인 계급투쟁사와 각 시대를 대표한 문화 내지 사상의 설명인 시대문화사가 있을 뿐이니 즉 사회를 진화적 도정에 운전한 전자나 문화적 시대 의식의 표명인 후자가 모두 복수인간의 활동 생태이요 그 기록이니만치 세계는 의연히 세계 전원의 총출연 무대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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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크로포트킨은 말하되 “사회××은 군집운동인 동시에 시간적으로 초월한 누대(累代) 복수인간의 축적한 심의의 폭발행동이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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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분명히 과거의 모든 역사를 개인의 열전과 같이 편륜(編輪)하여 온 사가(史家)에 대한 일개 정침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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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는 어느 대화 중에 말하되 “오늘날 소위 천재의 누구를 물론하고 그가 저작한 서책이나 작품에 함유된 훌륭한 모든 연역에 그 이지가 얼마나란 공헌을 하였는지 좀 ▣고 싶다……”고 하여 써온 저서와 창작품까지라도 그것이 결코 작자 개인의 독창이 아니라 누대복수인간의 소산인 것을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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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인류사회의 모든 사회적 계급적 업과란 것은 그의 저서를 막론하고 그 사회 계급 전원의 소산이니만치 전원의 소유가 아니면 안 될 것이며 동시에 그에 대한 상과 벌도 또한 전원이 함께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더욱이 개인숭배와 함께 개인의 요점을 부정하며 자유평등의 ××생활을 목표로 하는 사회운동에 있어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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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 학도들은 위대한 인물이 출생하였음으로써 과학적 사회주의가 건설되고 레닌이라는 거인이었음으로 말미암아 러시아의 혁명이 수행된 것처럼 사료하는지 모르나 이것은 마치 고담(古談)에 초인적 용사가 출세(出世)하여 천하를 평정하였다고 그를 경모 찬탄함과 같은 우치(愚癡)한 관념이 아니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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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구나 레닌이나 맑스의 탁월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레닌이나 맑스가 없었던들 저와 같은 위대한 사업도 수행치 못하였으리라고는 더욱이 변증적 유물론자인 맑시스트로서는 사유치 않을 사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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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如斯)함에도 불구하고 맑스나 레닌에게 특별한 존경과 숭배의 심정을 표하여서 그의 씨명을 죽백(竹帛)에까지 등록함과 여함 자가 이론상 이론적 당착을 범함은 물론이요, 기성관념의 최대 악폐인 두목, 수령, 장 등 운위하는 소위 거두관념에 지배된 중심 귀취의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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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의 파악과 명성의 현양에 대한 애착과 욕망은 수령과 부하라는 차별관에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르주아 기성관념인 것을 간파한 다음이면 삼민주의에 공명하는 도배(徒輩)가 손중산(孫中山)을 숭배한다든가 기독을 구세주라 하여서 절대 신앙을 바치는 크리스찬 등과 같은 우치한 관념을 탈각치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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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의 의미 하에서 필자는 개인의 사망에 대하여 사회장이라든가 단체장이라는 사대한 각목을 부쳐서 행하는 장의까지도 이론상 배격하여마지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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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나 한 개체의 소위 유공자라 하여 그의 사(死)를 조함에 사회적 또는 단체적의 명목으로서 행할 이유가 무엇이냐? 이것도 마찬가지의 명성희구자들의 야습(野習)이 아니면 맹수를 정복한 자에게 배궤와 굴종으로서 감사를 표하는 원시인들의 그것과 같은 우거(愚擧)라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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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한 바와 같이 여히 인류의 문화라는 것은 결코 지금까지의 소위 사가들이 기록하여 놓은 특선된 기 개인 영웅, 천재, 위인의 공훈이 아닌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한다. 시대적 사회적 대조류의 추이를 기개 소수인의 명의로써 설명한다는 것은 마치 전쟁의 승패를 일개 무장의 이름으로써 결론하며 전망한 무명 병졸의 거대한 숫자를 제외함과 다름이 없는 무명대중에 대한 모욕이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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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개인적으로 탁월이 없는 것이 아니요 또한 천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결과적으로 보면 그의 신변을 싸고 도는 혹은 선천적 환경 여하에 속하는 것으로 결코 인간 이상의 초인간적 탁월이나 천분은 아니다. 그러므로 논리상 탁월이나 천분(天分)은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 인류의 속성이며 그 발휘한 천분은 곧 인류의 천분이라 하여 환희할지언정 일 개인에게 특수한 가치를 부여할 필요는 없는 것이오. 더우기 우상시 하며 경배할 아무러한 조건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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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개인적 탁월을 인류의 속성으로부터 분리하여 일 개인에게 특별한 경배를 드린다면 그 반면에는 비탁월성은 그 이하를 모욕하지 않으면 아니될 논리적 과오를 범할 것이오. 또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권위와 복종의 차별이 발생하고 말 것도 논리상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평범이나 그 이상 우치(愚稚)를 인간적으로 모멸할 수 없는 만치 탁월이나 천분에 대하여서도 경배할 이유는 따로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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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층과 지식층을 인간적으로 차별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손문(孫文)이나 일 무명 삼민주의자간에 인간적 가치의 차이가 있다 하면 그것은 분명 영웅주의 내지 천재주의적 사상인 동시에 우상론자의 관념이 아니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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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해방운동은 개인적 가치를 인류의식에 전환시키는 즉 개인 씨명의 부정을 근본 기조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기성관념의 노예가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니 이 점에 관하여 맑스주의자는 한 번 더 고려할 필요가 있을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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