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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자유사상은 성적 문제에까지 파급되어 재래의 강제적 기계적 결혼▣에서 자유연애 내지 자유결혼으로 고▣하게 되었다. 이것은 물론 누구나 부인치 못할 진보사상인 동시에 정당한 주장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 즉 자유연애라든가 자유결혼이라는 것을 성적 도덕상 문제로만 관찰함에 그칠 뿐이요 생리적 문제를 치외 또는 경시하는 ▣이 있음에는 늘 필자가 깊이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첫째로 생리학상으로 본 성적 지식을 결여하고서 한갓 신정조(이하에 논함)에 입각한 자유연애사상만을 고취하는 이 결과는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하는가? 더 말할 것 없이 요새에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되는 남녀학생들의 풍기문란의 도화선이 되는 것이다. 일문의 가치도 없는 저급의 번안소설이나 연애서간문 같은 것이나 몇 편 읽게 되면 신사상 인물이나 된 것 처럼 날뛰며 그 연애는 자유라는 일구로써 간▣흔 그의 춘정을 만족하기에 유일한 무기로 삼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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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정에는 부모 학교에는 선생님들의 엄중한 감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포도주는 마시면 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네들에게 포도주를 위협적으로 말린다고 아니 마실 리가 없는 것이다. 그보다도 못 마시게 하려면 먼저 포도주는 마시면 취하고 취하면 심신에 어떠한 해독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여서 스스로 그것을 ▣▣하도록 교훈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에 필자는 가정과 학교를 통하여 자녀에 대한 성교육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는 동시에 필자의 견문에 의하여 성적 관계의 생리적 작용을 단편적으로 이하에 기술하여 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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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조관과 소위 자유 연애정조라는 것은 미혼녀, 즉 처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녀를 물론하고 기혼자에게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 정조관이다. 그렇다. 이것은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그러냐하면 정조라는 그 물건이라는 것은 다만 그 상대자(연인)를 위하여서 만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하면 정조라는 것은 상대자를 위한 전근대적 애(愛)의 고백이니, 만일 그 상대자를 떠난다 할 것 같으면 사랑치 않는다 할 것 같으면 그 상대자에 대하여서는 하등의 문제도 될 것이 없는 것이 정조이다. 다시 사랑을 옮기는 곳 즉, 새로 맞이하는 상대자를 위하여서만이 새로운 정조가 문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인을 열 스무 번 옮겨 구하였을지라도 언제나 늘 새로운 정조는 가질 수 있는 것이니 한 번 결혼하였던 여자(또는 남자)라고 정조가 없는 것은 아니며 ▣창기라고 정조를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대략 자유사상에 입각한 신정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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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정조관을 전제로 한 근대 자유연애니만치 연애가 자유롭지 않을 것도 아니며 또 자유롭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도 말하였거니와 성적 관계의 생리적 변화를 몰각하고서 단순히 자유 두 자만을 낭비하는 결과는 어떠한가? 今日▣淸道明日▣▣道[금일▣청도명일▣▣도] 하는 격으로 오늘날은 갑 내일은 을. 이와 같이 함부로 값 헐한 사랑을 옮기며 봉별(逢別)이 서로 잦은 것은 요새의 소위 신식 남녀들 사이에서 우리가 넉넉히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야 물론 서로 마음에만 맞지 아니 하면 열번은 그만두고 천백 번이라도 갈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며 또 만나지 못할 것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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