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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미전 단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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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5.24
권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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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미전 단평
 
 
 

전언

 
3
본문에 기초함에 있어 필자는 사도(斯道)에 전연 문외한이 아닌 관계상 다소의 자신과 흥미를 가진다. 그러나 평이란 것은 그 글자 자체가 이미 설명하는 바와 같이 어떠한 사견이나 주관을 떠나 제삼자적 입장에서 공정을 취하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따라서 여기에는 그만한 수양과 포부를 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주저함을 마지않다가 이제 붓을 드는 바이다. 그리고 한가지 부언할 것은 제한된 지면 관계상 부득이 무감사급 특선품만을 위주 하겠으므로 기여(其餘)는 혹 주마간산격으로 경과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제1부(동양화)

 
5
『한정(閑庭)』(무감사(無鑑査) 백윤문(白潤文)씨작. 이 작품은 만개한 꽃들이 아래 병아리 두세 마리가 노는 것으로써 명제의 ▣전부를 대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정』다운 기분을 잘 찾기 어려웠던 것이 필자의 첫 인상이었다. 그리고 전면적으로 보아서 그 색조를 너무나 평면화 하지 않았는가 의심한다. 더욱이 관심되는 것은 화(花), 엽(葉), 경(莖) 등의 묘사는 그 세부분까지에 필단(筆端)을 멈추지 않음에 반하여 근부(根部)에 이르러서는 너무나 등외시한 감이 없지 않다. 왜 그러냐하면 그 아래에 노는 병아리며 메뚜기 까지도 상세히 그려졌으면서 밟히고 있는 잡초는 마치 푸른 이끼를 깔아놓은 풀잎 한 개도 그려지지 않은 까닭이다. 또 그리고 기왕 병아리를 그릴 바에는 어미와 함께 평화로이 놀도록 만들어 주었으면 『한정』다운 기분이 좀 더 있을는지도 모를 것을 조그마한 메뚜기를 병아리의 선물로 그려놓은 것은 이 작품에 있어서는 세심한 헛 유희가 아닌가 한다.
 
6
『시장행의 목동(市場へ行ク牧童)(무감사) 동인작 『한정』보다는 우수한 맛이 있다. 전면에 흐르는 선과 색의 풍부하고 농부▣숙한 맛은 이 작가의 수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명제와 같이 시장행 다운 기분을 엿볼 수 없는 것이 좀 섭섭하다. 목동이 돼지 수수(數首)를 ▣하여 앞세워 몰고 넓은 들을 걸어간다고 곧 시장행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시장을 끌려간다는 돼지나 몰고 가는 목동의 표정이 평범함에랴. 차라리 『시장행의 목동』이라느니 보다는 그저 『목동』이라 하였으면 좋을 것 같다. 만일 『시장행』 이란 명제를 필요로 한다면 시장다운 일부의 기분을 이 화면에 표현치 않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7
『황원(荒原)』(무감사) 이상범(李象範) 씨작. 『유토(瘐土)』 (무감사 특선) 동인작 『추산유거(秋山幽居)』(특선) ― 이용우(李用雨)씨작. 첫 인상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명쾌하면서도 침착한 맛이 있어 좋았다. 씨의 작품을 필자는 일찍이 본 일이 없으나 『추산유거』는 ▣남화로서 일가를 작성한 맛이 있다. 그 필치가 ▣명자재하여 ▣색 분가루를 쥐어 바른 듯한 ▣가 없는 점으로 보아서 동양화다웠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만치 ▣숙한 맛이 있으면서도 거기에는 어떠한 박력이 없다. 오래두고 볼수록 도리어 첫 인상에서 얻은 호감을 손상시키고 마는 것이 이 작품의 결점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작품은 글자 그대로 남화식으로서 개자원(芥子園) 화보 등에서 얻어보는듯한 로맨틱한 공상의 ▣▣ 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까닭이다. 좀 더 현대인의 피와 ▣▣을 취할 만한 역(力)이 있는 작품을 보여주기 바란다.
 
8
『외출제(外出諸)』(특선) 이옥순(李玉順) 씨작. 호사가의 젊은 여자가 몸단장을 하고서 문밖에 나아가라고 다시 한번 면경을 들려다 보는 그 순간을 제재로 ▣▣한 것이 이 작품이다. 명제 그대로 여자의 동작과 표정이 잘 되었다. 섬세한 부분까지 빼지 않고 일일이 필첨(筆尖)을 단 그 공력도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비록 일본화식으로 그리어진 작품이라고는 하지마는 인물의 배경이 없는 것이 큰 유감이다. 방이든 마루이든 어떠한 표현이 있었다면 좀 더 여자의 율동을 강미(强味)시켰을 것이다. 어쨌든 기교 백퍼센트의 역작이다. 그러나 씨에게 한 말 부탁코저 하는 바는 너무 섬세한 기교에만 흐르지 말고 대담한 조자(調子)로써 굵직한 선과 색을 사용하여 힘 있고 무게 있는 작품을 내기에 많이 노력하기 바란다. 기술은 곧 예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9
이상의 6점 외에 18점의 입선작품이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지면관계상 일일이 들추어가며 평안을 굴릴 수는 없다. 그 중에서 인상이 깊은 것만을 몇 점 말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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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相▣)씨의 『아(兒)』 이용우(李用雨) 씨의 『춘야방훈(春野芳薰)』 김기창(金基昶)의 『여(女)』 배렴(裵濂) 씨의 『욕우(欲雨)』 허건(許楗) 씨의 『막의 산가(幕의 山家)』 이순행(李順行) 씨의 『유거(幽居)』 오주환(吳周煥) 씨의 『어떤 밤』 등도 모두 역작이라고 하겠다.
 
11
그러나 취중에 조용승(曺龍承) 씨의 『야포(野圃)』와 장운봉(張雲鳳) 씨의 『여수(旅愁)』는 특선급 작품에 비하여 손색이 없는 귀여운 작이라고 생각한다. 조용승 씨의 『야포』는 일가로서의 독특한 건실미를 갖는 역작임에 틀림없다. 전면에 흐르는 풍부한 색조는 『야포』다운 즉 ▣▣다운 향기를 보는 자로 하여금 호흡케 한다. 더욱이 수숫대에 앉아 지저귀는 새를 노리고 있는 고양이 이것은 작자의 특이한 예술안이 아니고서는 야▣와 함께 포착키 어려운 묘재(妙材)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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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운봉 씨의 『여수』는 필자의 가슴을 울리어준 작품이다. 누구의 작품보다도 제일 인상이 깊은 작품이다. 그 색조를 통하여 전면에 넘쳐흐르는 공기는 주인공인 두 남매를(이 두 남녀를 나는 남매로 생각한다) 화면에서 ▣거하더라도 보는 자로 하여금 넉넉히 방랑의 설움을 느낄 만큼 ▣▣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필자는 이 작품을 대할 때에 만주벌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처 없이 울며 뛰어다니는 어떤 동포를 생각하였다. 참으로 속으로 울었다. 이 작품 속에 나타난 어떤 두 남매 굶고 헐벗어 지친 몸으로 말 없는 광야에서 간 길을 잃고 서로 힘없이 붙들고 섰는 그 가없는 표정에야 그 누구나 아픈 가슴을 부여안지 않으랴? 이 작품을 통하여 작자의 심경을 존경하는 바이니 작자는 건실한 사상과 정신으로써 더욱 더욱 정진하라. 밀레의 『만종』의 위대한 점이 화기(畵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도 그 정신에 있는 것이다.
 
 
 

제2부 서양화

 
14
『좌상(坐像)』(특선)김종태(金鍾泰) 씨작. 씨의 성명은 일찍이 많이 들었으나 작품을 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만치 필자는 더 한층 깊은 관심을 가지고 씨의 작품을 보았다. 과연 명불허실(名不虛失)이었다. 결점없는 좋은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작자 김씨의 침중(沈重)한 태도가 화면에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적어도 일가의 지위를 차지한 화가가 아니고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 화제와 같이 평복(平服)한 남자가 책자를 무릎 위에 놓고 있는 그러한 단순한 것을 「모델」로 하였다. 그러나 보는 사람에게 방사하는 그 박력은 곧 머리를 누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 맘에도 색조의 침▣한 맛이라든지 꿈을 그리는 듯한 ▣▣ 강미는 필자로서는 ▣▣을 불사하는 바이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인물이 전체로 보아 두부가 좀 지지 않을까? 그리고 김씨의 작으로 『백합롱(百合籠)』과 『장미』가 있다. 물론 2점이 다 좋다. 그러나 『장미』는 『백합롱』보다 침정한 맛이 적은 점에서 좀 실패라 할는지. 여하간 씨의 능숙한 필치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 앞으로 더욱더욱 정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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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春)』(무감사) 이마동(李馬銅) 씨작. 선전이 있은 이후에 보기 어렵던 작품이다. 일본의 이과전(二科展)에서도 ▣자로 나아가는 작품은 별로 드물 것이다. 남 보기에 힘하나 아니들인 듯 하면서도 그 사이에 없어서는 아니할 것은 그대로 다 표현시켰다. 이마만치 작가의 수완은 보는 사람에게 일가를 달성한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의 유화한 맛 색의 농염한 맛, 그 어느 것이나 범안으로 평하기 어려운 존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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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松)』(무감사) 동인작. 동씨의 작이니만치 별다른 색채를 발견할 수 없다. 『춘(春)』과 함께 걸작이라고 하는 외에는 필자로서는 더 말할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꼭 한가지 말하여둘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전자 즉, 『춘』이 화창한 기분을 가졌음에 반하여 『송』은 장엄한 맛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전면적으로 보아 침정, 농숙한 맛은 비록 『송』이 화면은 더 넓게 차지하였다 할지라도 『춘』을 따르지 못하리라고 믿는다. 하여간 전도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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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セツト島夏[도하]』(무감사) 이인성(李仁星) 씨작. 씨의 성명도 필자가 일찍이 많이 들은 바이나 필자가 작품을 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니만치 한 층 더 될 것은 물론이다. 『セツト島夏[도하]』는 수채화이다. 수채화로서 이만치 능숙하게 그려진 작품은 필자의 좁은 안목으로서는 본적이 별로 없다. 일본의 고▣광▣(古▣光▣) 씨의 수채화는 우리 조선의 화단을 독보나 하지 않을까 의심할 만큼 필자는 경외함을 마지않았다. 씨의 필치는 그 일점 일선이 어느 것이나 하나 만척지력(萬斥之力)이 없는 곳이 없다. 그어 나아가는 선이 위태위태 할 듯하다가도 그것을 잘 안정시▣ 놓은 수완에는 필자는 탄복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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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의 광(初夏의 光)』(무감사 특선) 동인작. 차는 아마 수채화 사용이다 능숙한 것 같다. 『초하의 광』도 물론 대작 ▣ 아니다. 그러나 그 화기(畵技)상으로 보아 색이 보다 대담한 점으로는 일본서 잠깐 있다 ▣▣▣의 관계로 없이지▣만 이과전에서 보는 감을 주지 않는 바가 아니다. 이만치 모르게 미숙한 듯한 맛을 보는 자에게 보여준다. 좀 더 색조가 ▣하였으면 어떨는지. 어쨌든 대작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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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진유원지의 일우(谷津遊園地의 一隅)』(무감사) 동인작. 역시 수채화로써 성공한 작품이다. 복▣한 그 모든 장면을 수채만을 가지고 요만치 잘 조리하기에는 참으로 씨가 아니면 안 될 줄로 안다. 이상 『セツト島夏[도하]』에서 말하였으므로 여기에는 더 말하지 않거니와 이제 이씨는 수채화가로서 진출하기를 ▣한다. 그리고 『곡진유원지의 일우』는 그 모든 색조가 『セツト島夏[도하]』보다 더 잘 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끝으로 부언한다. 앞으로 많이 힘써주기를 바란다.
 
20
『2인』(특선) 선우담(鮮于澹) 씨작 ▣▣에서 이 『2인』만큼 沈[침]▣▣를 가진 작품은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와 같이 흑판▣을 한 ▣청년을 한사람은 의자에 앉아 무엇을 고민하는 듯 또는 조는 듯이 몸을 비꼬고 있고 한 사람은 그 뒤에 의지하여 서서 책자를 펴들고 보게 만든 것이 이 작품의 내용이다. 그리고 배색은 ▣빛 같은 껍질은 한빛만으로서 전▣▣를 구성하였다. 그럼으로 인물의 율동이나 그 색▣가 가까이 서서 보면 단조한 감이 없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을 일▣이상의 ▣▣한 두고 본다면 거기서는 곧 살아움직이는 듯한 동적 자극을 받게 된다. 그리고 무엇을 꿰뚫을 듯한 날카로운 빛(光)은 오색이 영롱한 좌우의 ▣▣면을 무색케한다. 이만치 이 작품에서는 암흑가를 버티고 서있는 거인의 기▣같은 감▣을 느끼게 된다. 하여간 앞길의 그 무엇을 암시하는 듯한 신비를 가진 역(力)의 작이다.
 
21
『평양풍경』(무감사) - 최연해(崔淵海) 씨작 ― 선우감씨의 작품이 ▣▣함에 반하여 최씨의 이 작품은 유화(柔和)하기 끝이 없다. 필두의 유려한 맛이라든지 색조의 ▣▣한 점으로는 누구나 추종키 어려운 작품이라 하겠다. 풍화일▣한 듯한 ▣기▣▣한 대신에 보는 사람에게 무엇을 하나 먼저 주는 듯한 강미(强味)가 없는 것이 이 작품의 부결점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취재는 청류벽에서 목단봉을 한껏 가르되 대동강변으로 ▣▣이 흘러내린 목단봉▣▣의 ▣이라든지 살아 움직이는 듯이 뚜렸이 ▣▣▣를 머리에 이고선 ▣정의 웅위한 ▣▣가 ▣경에서 얻은 인상에서 좀 벗어나는 듯한 감이 없지 않다. 여하간 노작임에는 틀림없다.
 
22
『여인지좌상』(무감사) ― 동인 ― 최씨의 수완은 이 『여인지좌상』에서 다 발휘되었다고 생각한다. 필법의 유▣▣▣한 맛은 누구나 이에서 더 지나치기 어려울 것이다. 씨는 완전히 일가의 지위를 차지하였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작품에 그리어진 여인의 표정(특히 서도여인의 독특한 표정)이라든지 담색(淡色)한 의장의 ▣화 같은 것이 무▣히 된 점으로 보아 작자는 풍경화보다 인물화에 그 조예가 더 깊지 않은가 생각한다.
 
23
『조모의 상』(무감사) ― 동인 ― 같은 수법으로 그려진 작품이▣ 여기서 새삼스레 무엇을 더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여인지좌상』보다 선이 좀 더 뚜렷하고 색조에 강미(强味)가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작품이 더 좋은 인상을 줄 뿐이다. 전자보다 입체미가 많다 하겠다. 하여간 최씨는 우리 화단에 없는 귀여운 존재임을 단언하여 둔다.
 
24
이상의 10점이 서양화부에 있어서 조선인의 면목을 유지하는 대▣적(?) 작품이라 하였다. 동양화부에 있어서도 그러하거니와 서양화부에에 이르러서는 조선인의 입선성적은 겨우 4분의 1밖에 아니 된다. 총 점수 226점 중 겨우 55점의 조선인의 입선이 있고 그중 무감사급 특선이 15점이다. 이만치 우리의 ▣증은 빈약한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상당한 수완이 있으면서도 의식적으로 출품을 하지 않은 분도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어쨌든 이 점에 대하여서는 결론에 이르러 상술키로 하고 여기에는 다시 입선▣중 인상깊은 또는 문제될 만한 몇 분의 작품을 평하여 보기로 하자.
 
25
엄성학(嚴聖學) 씨의 『C군과 소견(小犬)』은 재래의 ‘아카데믹’한 경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많이 보려고 노력한 ▣이 보인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인상을 먼저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26
홍득순(洪得順)씨 『コスチュ‐ム』은 그 화면의 거대한 점으로는 대작이라 하겠다. 그러나 화면에 비하여 내용이 너무 단조하지 않은가 의심한다. 물론 작자 홍씨의 심경은 성숙한 처녀의 육체미를 그대로 표현하여 보려고 노력한 것 같으나 잠깐 국부만을 의상으로 ▣▣하고 전체를 ▣신으로 노골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육의 향기를 맡을 수 없을 만치 그 선이나 색이 경화하여 버린 점이 첫째로 심심하고 전체에 비하여 유방 이상 특히 경부가 세소하여진 점도 작자의 ▣▣고찰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하여간 노작임에는 틀림 없으나 좀 미숙한 맛이 없지 못하다.
 
27
정관식(鄭寬澈)씨의 『道[도]』는 대작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나 자연스러운 맛이 좋다. 아무 흠 없는 작품이다. 색조에 있어서도 침정한 맛이 좋은 느낌을 준다.
 
28
김중현(金重鉉) 씨의 『춘야(春野)』도 거대한 화면을 차지한 작품이다. 명제와 같이 『춘야』의 기분이 농후하다 하겠다. 더욱이 나물(菜) 캐는 처녀들의 표정이 봄의 기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면에 흐르는 색조라든지 움직이는 듯한 유화한 선은 특선급의 작품에 비하여 아무러한 손색도 없는 역작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에 어린애를 입고 선 처녀는 아무리 서양화라고 하지만 또는 배색의 관계도 있다고 하겠지만 조선의 독특한 흑발장을 죽여버리고 쇠꼬리빛 같은 황색으로 만들어준 것이 좀 불쾌하다 하겠다. 그리고 배경에 ▣대는 ▣▣의 일부라도 보여주었다면 어떨는지? 그렇지 않거든 멀리 흐르는 수▣을 좀 보여주든지 하였다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김씨의 『정물』도 『춘야』와 함께 역작임을 부언하여 둔다. 하여간 일가의 풍미가 농후한 작가라 하겠다.
 
29
권중록(權重祿) 씨의 『천변풍경』은 아담한 소품이라 하겠다. 그 필치도 경쾌하여 좋다. 그러나 전면의 색조가 좀 더 강미를 가졌던들 좋을 번 하였다.
 
30
노식(盧植) 씨의 『明[명]るい日[일]』는 수채화로써 보기 드문 가작이라 하겠다. 그 배색이 끝없이 유화(柔和)한 맛은 장차 무르녹으려하는 봄날의 기분을 잘 표현 하였다. 명제 그대로 『明[명]るい日[일]』다. 그러나 아무러한 박력이 없는 차라리 애수를 갖게 하는 감상적 앞에서 필자는 좀 심심히 생각한다. 단컨데 작자는 그 성숙한 수완을 가지고 좀 더 열의 있는 작품을 보여주었으면 어떨는지?
 
31
권영준(權寧俊) 씨의 『풍경』은 한 개의 소품이면서도 인상 깊은 좋은 작품이다. 첫째 그 ▣자가 대담하여 ▣▣다. 그리고 배색에도 대작 못지않을 만치 달성한 맛이 있다. 앞으로 많은 기대를 갖고자 한다.
 
32
권우택(權雨澤) 씨의 『睡[수]ル子供[자공]』은 많은 노력이 보이는 힘든 작품이다. 명제 그대로의 인물의 표정도 좋았다. 그러나 이만치 기다릴 화면을 이용하면서도 보는 사람에게 그 무엇을 하나 남겨주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결점이라 하겠다. 이러한 원인은 무엇보다도 그 선과 색에 동미(動味)가 없는 까닭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면 작자는 이 작품을 그저 그림으로 기계적으로 그렸을 뿐이요 거기에 작자 독특의 주관을 가지고 생명을 부어줄 줄 몰랐다 하겠다. 하여간 학도적 경지를 벗어나기에 노력하라.
 
33
이선이(李善伊) 씨의 『고란사(皐蘭寺)』는 보는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힐만치 무질서한 ▣▣한 필치로써 그려진 작품이다. ▣하자면 『난폭과자』라 하겠다. 그러나 그 어딘지 모르게 전면을 잘 관리하여 놓은 점에서 작자의 수완을 짐작케 된다. 이 작품에서 한 가지 결점은 ▣면의 조자(調子)가 복잡함에 비하여 배후의 산맥이 너무 단조한 데 있다 하겠다. 그리고 나타난 인물들이 모두 흑상의를 착하였음은 어떠한 의도에서 된 것인지 모르겠다.
 
34
안봉승(安峯承) 씨의 『풍경』은 강력한 기분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비록 대작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남성적인 커다란 ▣자에는 뚜렷한 인상을 아니 가질 수가 없다. 이만한 수완을 가진 씨로서 어찌 대작을 아니 보여 주었는지 …… 어쩌면 앞날을 기대하고 싶다.
 
35
윤승욱(尹承旭) 씨의 『백화(白花)』는 한 개의 소품이면서도 침정(沉靜)한 맛이 있는 흠 없는 가작이라 하겠다. 몇 송이 안 되는 흰 꽃을 잘 관리하여 놓은 것은 마치 규방에 숨은 담장(淡粧)한 소녀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있다. 인상 좋은 작품이다.
 
36
이순종(李純鍾) 씨의 『春[춘]の北岳[북악]』은 수채화로서는 보기 어려운 역작이다. 굵게 이리저리 흘려내린 산▣의 선은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박력을 보여준다. 작자의 담대한 필법에는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음산한 공기에 싸여 조는 듯이 제자리만을 지키고 있는 북악이 작자 이씨의 수완을 거쳐서 생동하는 듯한 옛날의 풍모를 보여 주는 듯한 느낌을 보는 자로 하여금 갖게한다. 어쩌면 수채화로서는 특선급의 이인용씨의 작품보다 우수하다고 필자는 본다.
 
37
한 장선(韓長鮮) 씨의 『이군의 상』은 노작이라고 하겠다. 선과 색이 모다 좋다. 인물화에서 가장 어려운 특유의 표정도 포착하였다. 한▣ 침착미가 적은 것이 좀 심심하다. 그러나 앞으로 많은 여유를 가진 ▣▣앞에서 필자는 앞날을 약속하며 씨를 기다리려 한다.
 
38
조석봉(趙錫鳳) 씨의 『午後[오후]의 裏街[이가]』도 역시 이순종씨의 『春[춘]の北岳[북악]』에 못지않은 좋은 수채화라 하겠다. 선과 색이 모두 대담무적한 힘(力)에 넘치는 조자로써 잘 표현되어 있다. 동씨의 『敦化門[돈화문]を望[망]む』도 역작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전자보다 침중미(沈重味)가 좀 적다 하겠다. 하여간 수채화가로서 일가를 달성한 작가라고 보아도 ▣평이 아닐 줄로 안다.
 
39
이용하(李龍河) 씨의 『좌상』은 김종태씨의 특선품인 『좌상』에 비하여 별로 손색이 없는 역작이다. 선이나 색이 강력한 점으로 보아서는 보는 사람에게 더 한층 깊은 인상을 남기게 하지 않을는지. 하여간 이 작품이 만일 좀더 커다란 화면을 차지하였던들 심사원의 손이 특선급으로 추켜 매있을지도 모를 훌륭한 작품임을 단언하여 둔다.
 
40
서진달(徐鎭達) 씨의 『인물』, 신홍휴(申鴻休)씨의 『葱[총]ノアル靜物[정물]』 박명조(朴命祚) 씨의 『판도(坂道)』 정현웅(鄭玄雄) 씨의 『탕춘(蕩春)』 등도 모두 노작이라 하겠다.
 
41
그리고 이종순(李鍾舜) 씨의 『膳上[선상]の靜物[정물]』과 이철호(李徹浩) 씨의 『博文寺[박문사]の正門[정문]』도 간과할 수 없는 가작임을 말하여 둔다.
 
42
이승만(李承萬) 씨의 『풍경』은 전년보다 후퇴한 감을 주는 데에서 심심하다. 씨는 선전이 생긴 이래로 꾸준히 출품을 하여왔으며 특선, 무감사 등의 명예로운 등급에도 여러 번 참여하였던 것을 필자는 잘 기억하고 있다. 여하간 씨는 우리 서양화계에 있어서 꽤 오랜 연조를 가진 분으로 일찍부터 일가의 위(位)를 차지하고 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이마만치 일반의 기대를 받고 있는 씨로서 금후에 겨우 입선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은 얼마쯤 불명예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풍경』에 있어서도 물론 씨 독특의 풍미가 아니 흐름이 아니요, 또한 신진으로서 추종치 못할 일문이 없는 바가 아니다. 씨 자신의 평일 역량에 비추어 볼 때에 이번 작품이 얼마나 그의 수준에서 멀어져 있는가 말이다. 혹 씨가 사무에 정신을 빼앗겨 정력을 다하지 못하였는지 모르나 이번 『풍경』의 경지에서 뛰어 나설 용력이 없다면 화가로서의 씨의 앞▣을 필자는 염려하고자 한다.
 
43
기타 정경덕(鄭敬德) 씨의 『溫[온]い春光[춘광]』 손경권(孫景權)씨의 『春[춘]の田園[전원]』, 『春來[춘래]る』 이봉상(李鳳商) 씨의 『仁王山[인왕산]の見[견]える風景[풍경]』 등도 모두 가작임을 말하여 둔다.
 
44
이밖에도 여러분의 작품이 많이 있으나 지면 관계상 부득이 특선급 외에 그대로 묵과키 어려운 몇 분의 작품만을 이에 망평(妄評)을 가하고 이하는 약하기로 한다.
 
 
 

결론

 
46
당초의 의도는 제3부(공예품)까지도 일별코자 하였으나 필자 자신도 자신이려니와 출품 점수도 극히 적을 뿐 아니라 지면, 시간 등 관계상 이에 그만두기로 한다.
 
47
그리고 기왕 평필을 든 이상 내외인의 구별이 있을 바 아니나 이 역시 지면 관계로 조선인의 작품만에 한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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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람회장내 화기▣▣한 공기의 일부를 쓸쓸히 만들어준 한 살풍경한 ▣면이었▣▣ 그것은 서양화부 139번인 고류종행(高柳種行)씨의 『나부(裸婦)』(무감사) ▣문 된 것이다. 이번의 심사원은 동미교(東美校)의 교수요, 또 제국미술원의 위원이다. 이러니만치 미술에 대한 제반 식견이 고상한 것은 물론이다. 이번 심사도 제전(帝展)이나 이과전(二科展)등을 표준으로 하였을 것도 재언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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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류종행(高柳種行) 씨의 『나부』는 왜 ▣문을 당하였는가? 우수한 점에서 무감사로 선발되었고 또 진열하여 무방하겠음으로 진열번호를 부여하고 도▣하였을 것이 아닌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에서는 풍속상 문제에까지 끌어 부쳐가지고 결국 ▣문을 명령하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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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로서는 이에 대하여 시비를 논할 아무러한 권리도 없는 바거니와 8, 9년 전에도 전람회장의 나체문제로 인하여 학무당국과 ▣찰▣문에 물의가 된 적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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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내용은 약하거니와 하여간 화단 자체로 보아서는 슬퍼할 사태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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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한가지 더 부언할 것은 조선인 화가들 사이에는 혹은 사상적 입장에서 또는 대우 문제 등으로 선전에 출품을 거절하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나 전람회를 특수한 색안경으로 비춰볼 것이 아니라 일개의 경기장으로 본다면 동화니 감화니 ▣▣니 하는 등의 언구로부터 적용되지 않는 것이니 사상도 운운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요, 또 대우 문제 같은 것도 나의 수완과 역량만이 충실하였으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거늘 구태여 일개 심사원의 사안이나 당국의 ▣▣여하를 문제 삼아 일반 관중의 앞에 내어놓지 아니 함은 대중을 잊은 행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최후까지 겸손한 태도로써 건실 화학도적 심리를 갖고서 매진하여야 할 것을 재언하여 둔다 (妄評多謝[망평다사])
【원문】조선미전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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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