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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화단의 일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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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4~5
김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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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화단의 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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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향락의 심적 기능은 생활의 필요로부터 발생하여 가지고 파생적(派生的)으로 그것이 유희적 심상(心狀)으로 되고 미적 심상으로 된다는 남의 말 두어 구장(句章)을 빌어 가지고서 이 글의 서두에 얹어 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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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기원을 새삼스러이 운위하지 않더라도 예술 그것이 자연의 모방으로서 발생되었고 다시 말하면 생활을 기조로 한 자연 복사의 필요가 필요하였었던 연유도 발생되었다는 것은 거의 문맹의 집단이라고 단언 할 만한 화단인에도 이만한 지식의 기억은 있으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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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여기에 비추어 화단의 일 년 간 회고와 나의 진언(眞言) 두어 말을 기술하여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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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조선화단이 존립해 있는 것이라고 보고서 이 화단의 일 년 간 업적이라든지 예인(藝人) 각자의 공과가 얼마나 한 지 회상한다 하면 거기에는 우리가 아무러한 것을 발견하지 못할 불행만을 가진 것을 자인할 따름이다. 더 나가서 병인 일 년에만 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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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조선에도 화단이라는 유기체가 존재하여 있다고 보고서 지금 단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아무러한 공과나 업적이 없다는 것은 언사에 정곡을 잃은 것 같으나 기실 화단 자체나 화인 각자에 있어서 화작(畵作)으로의 비약이 없고 사상으로의 진경이 보이지 않음에야 이를 어떻다 하랴. 진천(進遷) 없는 것은 퇴양(退讓)으로 보는 것이니 조선미술계에 있어서도 그 위험한 인원을 포유(包有)하고서 오로지 봉건시대의 유기(遺技)를 묵수(墨守)하고 이로 자기 격리를 기도하여 불가해의 지경을 고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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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무슨 업적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예술의 기원은 생활을 기조로 하였다고 말하였다. 생활의 필요로 예술이 형성된 이상 생활의 변천으로 하여 예술이 개형(改形)된다는 것도 다 같은 이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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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역사상으로 고찰하여 본다면 삼국시대 이전에 있어서는 삼국시대 이전의, 왕조시대의 봉건시대에서는 봉건시대의 다 각각 사회조직에 상응한 내용과 예술형식을 소유하였었다. 새로운 사회조직의 발생되려는 징후가 보일 적에 예술에 있어서도 새로운 내용 새로운 형식이 발생된다. 이것은 발생되려는 새로운 조직의 요구로 말미암아 발생된다. 그래 가지고 조직이 신흥과 견고에 따라 예술도 결성되고 조직이 와해 분체됨에 의하여 예술도 그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다. 사회의 조직 이것이 바로 예술의 내용이 되고 조직이 또 특수한 예술 형식을 조성시킨다. 이것은 사회의 조직이 즉 현실인 까닭이요 현실로부터 유리(遊離)한 예술이 없는 연유이다. 만일 예술이 생활로 부터 격리된 것이라면 바꾸어 말해서 조직에서 초연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차마 이것을 문제로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예술의 발생이 이에 본 바의 장난이 아닌 다음에야 따라서 아담, 이브와 동체가 아닌 다음에야 인류군의 생활의 진화 과정과 인류생활의 구체적 형태인 사회조직의 역사적 변혁과 그 행정(行程)을 같이하였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사회조직의 해체와 신흥의 교체에 있어서 이것이 바로 의식적이고 유목적(有目的) 이고 혁명적이고 적극적 행동임에 반하여 예술은 추종적이고 자연 성장적이고 인순적(因備的)이요 구 생활 조직의 토대 위에 섰던 예술의 내용과 표현 형식 이 새로운 생활 조직으로 하여 거의 강생(强生)하게 된 신흥예술과의 그 지위를 양도함에 정암(靜暗) 한 가운데에서 침묵 속에서 장기간 은편(隱便)한 교섭을 하여 한 개의 멸망으로 혼돈과 해체가 있고 한 개의 신흥으로 하여 발아와 정제라는 계급적 순서가 있었다 이같은 무의식적 소극적 행동으로 하여 연대(年代) 위에 사회 조직의 변혁과 커다란 상거(相距)를 짓게 된 것 이다. 이로 말미암아 예술 자체가 능동적 발전으로 보게 되고 예술지상주의 자의 이게 호개(好個)의 한 진리로 화성(化成)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진리의 미망에 빠진 예술가는 자기 격리에 몰두하게 되고 문호 봉쇄를 자행하여 허망한 왕국의 창건을 꾀하고 여기에 군림하여 역사를 거슬러 추진하려는 ○법(○法)의 강구(講究)에 소위 선명한 5관의 감각을 소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느 시대를 물론하고 그 배면에 있어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이나 불문하고 새로운 조직구성에 대하여 아편성적 마취제로 행사됨을 감수하여 사회 조직이나 생활 환경으로부터 초월하였다고 자인하는 예술이 실상은구조직의 옹호와 대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예술의 사회성 을 부정할 수 없게 되고 다만 조직 변혁에 연대적 상이가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맺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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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사회학자의 말을 빈다면 인간이 생활 환경에 절대 순응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상념(想念)하고 있다. 인생이 생활 환경에서 극미(極微)한 시간이나 독립할 수는 없다 설사 환경이 인간을 절대 (지배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인간이 환경의 권외에 초연히 서지는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환경자체가 인간을 지배함이라는 것보다 인간 자신이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도리어 환경의 통제하에 칩거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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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와 같은 논리를 앞잡이 세우고 이것의 조명으로 예술의 주의를 관찰한다면 더욱 그것의 미망, 환○(○幻)을 명확히 악제(握提)하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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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라는 것이 시대의 변천으로 하여 각각으로 편화(遍化)되고 진취됨에는 거의 누구나 의의(疑義)가 없을 것이다. 원시 시대인의 환경과 봉건 시대인의 환경과 자본주의 시대인의 환경과의 서로의 다름이 얼마나 다르냐, 환경은 고정의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사고하여서 유동하는 것이다. 이 유동하는 에노름한 환경 속에 인간은 기거(起居)한다. 예술가 역시 인간인 이상 다같이 유동하는 환경 속에 있는 것이며 상호간 환경의 일부의 임무를 종시(終始)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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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소위 예술가도 환경과 유동을 같이 하는 환경의 일소부(一小部) 이다. 환경과 운명을 같이 하는 존재일 것이다. 가상한 예술 왕국의 인간과 작품도 유동되는 환경의 일부문일 것이며 환경과 그 운명을 같이 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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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都是) 이리 해야될 것이다. 그러나 예술 왕국의 인간은 흐르는 환경에서 역류를 몽상하고 추박기(推追機)의 방향을 바꿔 버리고 있다. 모순된 유동. 이것이 예술가의 소위 제일감(第一感) 의 표현이며 미의 왕국의 자극이며 예술의 영원성이라고 절규하는 것이다. 나무 뿌리로서 바위 틈으로 흘러내리는 한 줄기 물이 단풍(丹楓)나무 숲속으로 숨어지기도 하고 산모퉁이를 아로새기기도 하며 언덕에서 떨어져 폭포도 이루고 자갈 위로 굴러서 가는 내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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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사회 조직이나 생활 환경도 의연한 이유로 변혁됨에 하필 예술만이 진화 법칙을 거스를 이유는 없다 붓을 새로이 놀려 조선 화단을 관조하여 보자. 그러나 불행한 일로 이상에 논술한 바 미망한 미의 왕국 주초(柱礎) 없는 신기루가 바로 조선화단 앞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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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예술인 문학 사회에 있어서는 진리의 모색과 극렬 논쟁이 한두 번이 아니며 다시 역사적으로 문학 자체가 사회조직에 대하여 맹목적이고 인종적(忍從的)이고 자연 성장적임의 조직이 요구하며 소유할 바 반대로 의식적이고 유목적(有目的)이고 전초적(前哨的)으로 그 기치를 고칠만하게 되어 거지 반 문학운동의 제일기의 종결로 볼 수 있게 되었더라도 과언의 책(責)을 지지 않을 만치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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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조선화단은 어떻다 하랴. 누차 부언한 바와 같이 봉건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못하여 생활 인식이나 생활 창조에 이렇다는 근거 있는 창의가 없을 뿐더러 시대적 골동인 문인화 내지 남화로 허망한 근역(根域)을 삼고 자기 존대와 자기 도취에 미몽이 깊을 뿐이다. 다시 몇 개의 미술청년군이 없지 않으나 이 역 중독성 환상과 치매성(痴呆性) 예술가적 소질이 농후함에야써 무엇을 말하리오. 그러니 이 사람네의 1년 간 업적이라고 있어질리 만무일 것이며 '힘'이 없고 반성이 없는 이네의 집단인 화단에 무슨 공과가 있을까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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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부터 종교로부터 궁정으로부터 끌고내려온 예술-미술을 새로이 한 단계만 끌고 갈 용력(勇力)이 있느냐 없느냐 이를 화단인에게 묻는다. 봉안(鳳眼) 파봉안(破鳳眼)이나 천자가(千字架), 분자엽(分字葉)이라던가 대각상(對角像)의 교착점을 유일한 기교상의 다슈드미난트로 알던 시대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사라진 옛 기억을 동경하고 영탄하느니보다는 새로운 조직의 요구하는 바의 예술-미술을, 새로운 조직이야만 소유할 바의 예술-미술을 가지고서 목적 의식으로서의 전초 운동의 예술의 원칙적 정로(正路)가 아닌가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 하면 존재하였다 하더라도 무각(無脚)의 골계(滑稽)한 형태이니 더구나 조선화단에 있어서 절멸(絶滅)을 요구할 거부(巨斧)의 노고는 없을지나 차라리 ○해(○海)작업의 번폐(煩幣)나마 없도록 해체 행동의 최대 목적으로 달음질이나 하여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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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27.1.4~5
【원문】조선화단의 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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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진(金復鎭)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2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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