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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에 젖은 패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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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노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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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 젖은 패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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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仁成)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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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안녕하신지요. 한번 찾아 간다는것이 그럭저럭 못가 뵈었읍니다. 세상이 귀찮아서 요사이는 문을 닫고 누워 지냅니다. 세상이 이렇게도 무의미하고 쓸쓸한가요? 오래 간만에 창을 열고 바라보니 궂은비가 넋두리하듯이 줄줄 내립니다. 나 대신 우는비. 나 대신 뿌리는 눈물! 인성형, 패배자(敗北者)의 마음은 이다지도 괴롭습니까? 반생을 목표없이 살아 있다는것 ── 아니 어떤 목표를 위하여 최대의 정열과 최대의 노력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얼마나 싱그럽고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야말로 인생을 사고 파고 닷냥푼으로 엄벙덤벙 살았다는게 실로 괴로운 일입니다. 한동안은 문학을 한다고 몇해동안 덤비었으나, 이렇다 할 작품하나 써놓은것 없이 그저 지냈고, 또 한동안은 교원 노릇을 해보았으나 그도 재미없다고하여 집어치우고, 한동안은 돈을 번다고 야단이었으나 아직 일푼전(一分錢)을 벌지 못하였구려. 이러는 동안에 세월과 기회가 어찌 나를 오래 기다려 주겠읍니까? 청춘도 가고, 정열도 가고, 시대도 가고 ── 지금은 싸늘한 이지(理智)만이 나를 감시하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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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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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 던져버리고, 직업도 던져버리고, 가산도 탕진하고 ── 이제는 하루의 밥 조차 먹기 어려운 신세입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저주하겠읍니까? 모두 스스로 만든 것이니 원망할것은 나 자신 뿐입니다. 산으로 가서 중이될까? 바다로 가서 어부가 될까? 이런 생각을 많이해 보았으나 이것은 즉시 철없는 공상뿐이고, 나는 싸늘한 현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읍니다. 가족을 위하여 일푼전(一分錢)이라도 벌지않으면 안되고, 따라서 그날 그날의 괴로운 한숨을 쉬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읍니다. 아! 가련한 패배자(敗北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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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목표없이 산다는것이 결과에 있어서 얼마나 비참한지를 잘 알았읍니다. 그리고 자기자신을 알고 산다는것도 극히 중요한 일임을 잘 알고 있읍니다. 남이 문학이니하고 떠든다고 덮어놓고 떠드는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갈길을 자기 자신이 알아야 할것입니다. 이미 세월이가고 시대가 간후에 천번만번 탄식한들 소용이 없구려. 천가지 행복이 지나간 후에 한가지 탄식이 오히려 무겁다 하는 모씨의 시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탄식과 저주는 혹 자기의 반성은 될지언정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7
인성형! 저는 눈물많은 광야에 헤매는 하나의 가련한 길손입니다. 사랑과 동정과 우의(友誼)란 한갓 이름뿐이고, 자기자신이 실패의 길에 있을때에는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습니다. 아, 괴로운 이 패배자(敗北者)는 오늘의 비와함께 눈물흘리며 지나간 과거를 참회 하나이다. 형이여, 비웃지 마시고 이 편지를 끝까지 보아주소서. 일간 한번 찾아가 뵙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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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允 洙[윤수] 아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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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서간집 「나의 화환」에서
【원문】눈물에 젖은 패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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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영(盧子泳) [저자]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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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10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