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오늘은 학생들을 데리고 불타산(佛陀山)으로 원정을 갔었다. 구비구비 골을 지나고 시대를 건너 오전 열두시 경에 유암사(幽岩寺)라는 절에 이르렀다. 잠깐 다리를 쉬어 점심을 먹고 작은 학생들은 절에 머물게 한후, 나와 기타 몇몇 학생들은 불타산(佛陀山)의 산봉우리를 찾기로 하였다. 적은산 큰산을 모두 너머, 철죽을 꺾고 싱아(草名)를 캐며 또는 숲속에서 두견새 소리를 들으면서 정상으로 향하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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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쯤에서 흰구름 사이에 솟아있는 불타산 봉우리에 올랐다. 모든 산야가 발앞에서 절을 한다. 하늘에 오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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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맑은 기운? 나는 그의 품에서 죽고싶다. 그리고 모든것을 이제 버리고 싶다. 눈을 감고 묵연히 앉았다가 다시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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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하늘에는 흰구름이 둥실둥실. 그러나 그 아래는 황해의 넓은 물이 출렁출렁. 하늘이 바다인가? 바다가 하늘인가? 하늘과 바다 그 사이에는 뽀얀 안개가 아물아물 감돌고 그 속에는 몇몇 척의 배들이 가만히 움직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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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립다. 언제나 쓰라린 전원의 생활을 면할까? 저 배에 올라 멀리멀리 어디던지 가고싶다. 베를린으로도, 파리로도, 나이야가라 폭포로도. 그리하여 한것 표박(漂泊)을 하고 싶다. 이 뼈 쑤시는 농촌 생활을 벗어날 날이 그 언제던가? 나는 고개를 숙이며 남모르게 흐느껴 울었다. 불타(佛陀)의 큰 바람이 내 눈물을 멀리멀리 휘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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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전히 한 송장의 몸으로 교실에 파묻혀 있었다. 교편을 들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덧없는 설움을 느겼다. 하학(下學)한 그 길로 뚜르게네프의‘첫사랑’을 가지고 동네 앞에 있는 ‘유마’산으로 갔다. 다북다북 뭉키어 있는 동림(童林) 속에서 읽기를 시작하였다. 매우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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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을 보며 문학 문학하고 또 문학에 대한 동경을 하였다. 문학은 인생의 최고의 이상이다. 나의 혼이 길이 쉴만한 아름다운 궁전이다. 죽기까지 문학에 헌신하자! 생명이 있기 까지 문학의 길을 찾아가자! 그리하여 가장 고귀한 예술의 동산을 찾아 참사람의 꽃을 넓게 피워보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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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다가 저녁 일곱시에야 돌아왔다. 문학에 대한 동경을 잊지 못하여 ‘첫여름의 날’ 이라는 소품 하나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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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요일이라 열두시에 하학(下學)하고 점심을 먹은 후 금화천을 찾아갔다. 언덕가의 풀밭에는 송아지들이 왔다갔다 뛰놀고, 시냇가의 버들강아지는 물속에 고개를 파묻고 죽은듯이 꿈을 꾼다. 이따금 종달새 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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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이네의 시집을 들고 시냇가 찔래나무 아래 누워 10여페이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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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시]! 사랑의 시는 나의 가슴을 몹시도 괴롭게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꿈같은 설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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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던 시집을 던지고 한참 동안이나 찔래나무 아래서 말없이 있었다. 처녀의 살같은 하얀 찔래꽃은 정열을 북돋우고 강열한 향기를 빼앗고 있다. 찔래 그늘은 어스름 달빛같이 내 얼굴에 그늘을 지우고, 꽃을 찾는 벌들의 노래는 사랑을 못잊어 하는 그 무슨 속삭임 같이 내 귀에 서럽게 들린다. 나는 저녁해가 산을 넘을때까지 찔래밭 아래누워 여러가지 공상에 잠겼었다. 어떻게하면 시인이 되나! 그리고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할 위대한 작품을 쓸수가 있을까? 詩[시]의 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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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다시, 시는 시려니와 오늘은 왜 이렇게 적적한가? 울고 싶구나. 울어나 볼까. 그 어느 이성의 그림자나 있었으면…… 아, 무엇이던지 껴안고 싶다. 그리고 아양을 부리고 싶다. 사랑. 처녀의 품! 아, 섧고도 쓰리다……. 저녁 6시에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밤에는 단시(短詩) 하나를 짓고 문장 강의록을 몇 페이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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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기가 매우 좋지 못하다. 아침에는 하늘에 잿빛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있더니 정오가 지나자 비가 오기 시작한다. 적지않은 큰 비였다. 여전히 학교에 가서 맛없는 가르침을 전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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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와서 창밑에 매달려 빗소리를 들었다. 참기 어려운 우울을 주는 날이었다. 한참 빗방울 소리를 듣다가 제 멋에 쓸어졌다. 끝없는 권태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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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가 싫다. 죽었으면 좋겠다. 나는 무슨 재미로 사는가 하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을 돌려 너는 예술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아니냐? 달아래 호적 소리같이 곱고 어여쁜 시의 나라는 네가 영원히 살곳이 아니냐 하였다. 그리고 본즉, 다시 가슴에 무슨 새로운 기운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떠오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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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톨스토이의 전기를 읽고 그의 생애에 감격하였다. K씨에게 보내는 길고 긴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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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없는 생활은 오늘도 계속하였다. 내가 교육가의 포부가 없는 이상에 이러한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빵을 위하여 이 생활을 계속 한다면 나는 여러 어린 천사들에게 고개를 들수없는 실없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다. 과연 그렇다. 나는 교육가의 소질을 가지지 못하였으며, 그것이 아무 이상과 아무 취미도 갖지 못하였다. 빵을 위하는 이 생활, 자신의 이상에 흙칠하는 이 생활! 나는 하루속히 이 생활을 떠나야 겠다. 그리고 예술의 나라로 달아 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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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기독신보’ 가 왔다. 요전에 내가 투고한 ‘무화과 잎같이 떨어지는 생명’ 이라는 장시가 게재 되었다. 말할 수 없이 기뻣다. 문학에 뜻을 두고 문학을 최고의 이상으로 아는 나는, 자기의 습작이 게재 되었을때 더할 수 없는 행복을 깨달았다. 나는 문학가가 된다. 시인이 된다. 이러한 생각을 꿈꾸었을때 나는 하늘을 날아 갈 듯 하였다. 힘써 읽고, 힘써 써보자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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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루우딘’ 을 읽고 단시(短時) 한 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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