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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전에는 실례하였읍니다. 저녁도 주시고 게다가 영화관까지 안내해 주셔서 그날은 너무나 유쾌하였읍니다. 그런데 일기 안녕하시고 재미 많으신지요? 아우는 여전하옵고 매일매일 책 읽고 산보하는 것으로 그날그날의 일과를 삼고 있읍니다. 그리고 요사이는 화신(花信)의 계절이라 정말 마음이 떠들썩해집니다. 북악아래 좌우의 산협을 헤치고 흘러가는 개울 모퉁이를 경계로하여 일대에는 지금 꽃이 한창입니다. 노오란 개나리, 붉은 봉숭아, 하얀 배꽃, 연분홍의 살구꽃 ── 그야말로 이 봄날이 천년이나 갈듯이 하얗게, 빨갛게, 노랗게, 이 산협을 물드렸읍니다. 이 계곡 일대가 구름과 바다에 떠있는 듯, 눈보라에 묻힌 듯 ─ 한없이 고운 화장밑에 숨었나이다. 그리고 새들도 울고 나비도 날고 ─ 이렇게 하루가 즐겁습니다. 자연은 경연적(競演的)으로 이 계절을 무한의 아름다움과 정열속에 보내려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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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여, 이때에 사람만 어찌 무감각 할 수 있읍니까? 가장 신비성과 심미감을 가진 사람이, 이 고운 봄에 어떻게 무심하게 보내겠읍니까? 부엉이도 으스름 달아래 울고, 범나비도 꽃 그늘에서 날개를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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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히 바쁘다하지 않으시면 명일(明日)안으로 좀 와주시기 바랍니다. 맛없는 술이나 한 두잔 마시고 지팽이를 끌며 이 계곡을 헤매어 봅시다. 꽃 그늘 물가에서 명상도하고 혹은 푸른 계곡 굽은 길에서 노래도 부르며 이 봄날을 즐기는게 어떠 하십니까? 요사이는 달도 좋으니 월하에 꿈틀거리는 꽃숲을 바라보며 시조나 한수 지읍시다 그려. 하유청향월유음(花有淸香月有陰)이라고. 이 한때가 일년중 황금같은 계절이 아닙니까? 그럼 부디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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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서간집 「나의 화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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