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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수분무공신반신상(朴文秀奮武功臣半身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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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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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박문수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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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바탕에 채색, 1751년경 작, 121.4x49.7㎝, 부산광역시 소재(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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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초상(2006)은 반신상으로 전체 크기가 세로 121.4㎝, 가로49.7㎝이며, 그림 부분은 세로 40.2㎝, 가로28.2㎝, 발문(跋文) 부분이 세로 41.2㎝, 세로 28.2㎝이다. 이 박문수 반신상은 1품관(品官)이 착용하는 서대(犀帶)를 착용하고 얼굴도 노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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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 초상(2006)[반신상]은 천안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학정금대(鶴頂金帶)를 착용하고 얼굴도 젊은 1728년의 분무공신상과는 달리 1품관(品官)이 착용하는 서대(犀帶)를 착용하고 얼굴도 노년의 모습이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1728년(영조 4)의 분무공신상보다 후대에 다른 맥락에서 새로 그린 초상화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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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자료가 같은 분무공신이었던 풍원군 조현명(豊原君 趙顯命, 1690~1752)이 1751년에 생존한 분무공신 14명의 반신상을 그려 훈부화상첩(勳府畵像帖)을 만든 뒤 기공각(紀功閣)에 갈무리했는데, 이때 조현명 자신과 영성군 박문수, 언성군 김중만(彦城君 金重萬), 인평군 이보혁(仁平君 李普赫)은 초상화를 새로 그리고, 나머지 10명은 집에 소장하고 있던 구본(舊本)을 이모(移摹)했다고 한 『귀록집(歸鹿集)』 권18 「훈부화상첩기(勳府畵像帖記)」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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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1751년은 박문수가 61세가 되던 해로 1품관이었기 때문에 이 반신상의 도상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1751년에 이 박문수상과 함께 그려진 언성군 김중만의 노년 반신상이 현재 후손가에 전해져 보물 제715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크기가 세로 42.5㎝, 가로 29㎝로서 이 작품의 노년 반신상 크기인 세로 40.2㎝, 가로 28.2㎝와 거의 흡사할 뿐만 아니라, 도상과 화법(畵法), 미감(美感) 등에서도 적지 않은 친연성이 느껴지는 사실에서도 이 반신상이 1728년이 아닌 후대에 그려진 것이라는 사실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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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부산역사문화대전
【원문】박문수분무공신반신상(朴文秀奮武功臣半身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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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12월 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