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전문 보기 - 여학생과 금시계

요새 여학생들은 빈 자리를 두고도 전차 벤치에 걸터앉기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곱게 다려 입은 ‘스커 ———트’가 무참히 구길 염려도 있겠지마는 그보다도 일충 중요한 이유가 있으니 왈, 설백(雪白)한 팔뚝에 동인 18금 완권(腕卷)시계 때문이다. 18금 완권시계라니…… 별의별 짓을 다하여 사 가진 금시계를 소매 속에 감추어두기가 싫은 까닭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을 남의 눈에 보여줄 수가 있을까? 그러자면 안한(安閑)히 앉아 있어서는 안된다. 서 있어야 한다. 서서도 팔뚝은 걷어부치고 ‘세루로이트’ 고리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동대문서 신용산(新龍山) 종점까지를 가는 동안에도 금시계 찬 팔은 다른 손으로 옮겨 잡지도 말고 그대로 참고 팔이 아파도 참고 배겨야 한다……

이 몸 괴로운 금시계의 유무는 여학생의 자격을 말하리 만치 중요한 지위에 있다. 즉 금시계가 없이는 여학생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듯하다. 이렇게 말하면 독자는 기괴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는 이를 기괴하게 생각 아니하고 한 사실로 본 까닭이다. 그러면 사실은 무엇이냐 나는 순일(旬日) 소병(小病)으로 도무지 외출은 아니하다가 작일(昨日)에 어느 친구의 엽서를 받고 오늘 그 친구를 방문할 차로 서대문 우편국 앞에서 전차를 탔다. 그래 승강대를 올라서 차안으로 들어가니 승객이 칠팔 인에 그 중 여학생이 하나 끼었다가 나를 보더니 목례를 한다. 그래 나는 그 여학생에게 답례를 하고나자 그 순간 속으로 응하고 다시 한번 그 팔을 보았다. 그 팔에는 금시계가 매어 있었다. 여러분! 이 여학생의 그 금시계의 출처를 아시요? 가만히 계시요, 내 말하지요!

우리 이웃 구석집에 남들이 부르기를 김오위장(金吾衛將)이라는 나의 한 오십여 세되는 가쾌(家儈)가 있다. 그 아들은 어느 양화점에 직공으로 다니며 딸은 시내 모 여학교에 다니는데 이 위에 말한 그 여학생이 즉 그 딸이다. 그 집의 생활은 김오위장이 복덕방에서 버는 매월 몇 푼의 잔돈과 아들의 월급 30여 원으로 겨우 지내가는 터이니 넉넉지 못한 것은 말 안해도 알 수 있다. 이렇게만 말을 하면 아무 일 없이 벌어서 잘 지내는 집 같지마는 아닌게 아니라 잘 지내가는 집이다. 그런데 삼사 주일 전부터 그 여학생이 학교를 며칠 동안 가지 아니하고 있더니 하루는 그 집에서 굉장하게 야단이 나서 그 김오위장의 마누라가 그 여학생을 데리고 우리집으로 피신을 왔다. 나중에 들으니 그 여학생이 몇 달 전부터 저의 부친과 오라비에게는 감히 말을 못하고 저의 어머니께 저의 학교의 동급생들은 금시계를 다 가졌으니 저도 사달라고 조르며 저의 어머니는 졸리다 못하여 아들의 월급을 잔뜩 믿고 빚 원을 얻어서 김오위장이 20 모르게 시계를 사주었는데 일이 공교히 말썽이 되느라고 아들은 월급을 반만 들여오고 술 받아먹고, 또 김오위장은 딸의 시계를 비로소 발견하고 어떤 놈이 사주더냐고 딸을 닥달을 하니까 고만 사실을 자백하여 그렇게 야단이 난 것인데 이 때문에 그 금시계는 하마트면 바수어질 뻔한 것을 어찌 어찌하여 그냥 가지게 된 것이요, 이 금시계 까닭으로 그 집에 생활이 이즈막 대단히 어려워졌다 한다. 여러분! 여학생의 금시계는 이러한 것도 있지마는 이 금시계를 안 가지고는 여학생의 자격이 없다 하게까지 된 사실을 한번 생각하여 주시요.

◈ 여학생과 금시계 ◈

◈ 여학생과 금시계 ◈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한글

◈ 여학생과 금시계 ◈
《카탈로그》 본문	1927.12 양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