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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숙시(熟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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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 1
최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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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숙시(熟視)
 
 
2
저는 저의 고향을 항상 생각한다. 저와 저의 고향과는 거진 일체가 되었다.
3
저 없이는 저의 고향을 볼 수 없고 저의 고향 없이는 저를 인식치 못하게 되었다.
4
저는 얼마나 저의 고향을 그리워할까, 사랑할까, 얼마만큼이나 저의 정이 간절할까, 모르면 모르거니와 저는 저 외에 저의 애달픈 마음 또 알 사람은 없을 것이라 한다.
 
5
저는 이와 같이 부르짖는다. 「그대여 그대는 무엇이길래 내가 이처럼 그대를 생각하는가, 사랑하는가, 나는 그대를 다만 땅덩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한다. 나는 그대를 나의 생명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와 같이 그대를 사랑한다. 그대는 나의 생명-모든 것이다. 그대가 있음으로 하여 내가 이 세계에 태어났고 그대에게 포용되었고 그대에게 감화를 받았고 그대에게서 해방되었다. 그대는 나의 생명의 근원이다」라고.
 
6
저는 저의 지금의 고향을 바라본다. 해 밝은 대낮에도 음침한 밤에도 저는 동자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저의 고향을 항상 바라본다.
7
저는 사막을 본다. 어두운 구름으로 가린 석양의 하늘에 냉정한 바람에 거칠어지는 묘망한 사막이 비껴 놓였다. 종려도 야자도 없고 사초(莎草)도 없는 사막이다. 단샘물이나 가는 시내도 없는-황량하고 적막한 사막이다. 그 곳에는 주인으로부터 잃어 버리고 길 우에 어둑이는 적은 양의 무리가 비애에 떨리어 하늘을 우러러 한숨지으며 방황한다.
 
8
저들에게는 인식이나 위로나 모든 행복이 없어졌으므로. 저는 눈물을 머금고 또 부르짖는다. 「오 그대여 어떻게 하여 이 경우에까지 이르게 하였는가. 죽어 가는 문둥병 환자에게 깨끗한 물병이 있지 아니한가. 말라가는 포도 뿌리에 생명의 샘물이 있지 아니한가.
9
저들에게는 공포의 어두움이 포위한다. 전율할 고통이 침투한다. 그대여 그 암운을 헤치고 그 독기있는 모래를 젖히고 그대의 전날의 빛, 영원한 그대의 빛을 비치어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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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전일은 낙원이었다. 붉은 장미, 흰 백합도 피였었고 무궁화도 미소를 가지고 자긍하였었다. 금색의 모래 여울에는 맑은 샘물도 흘렀었고 녹음진 괴나무 밑에는 단꿀도 피였었다. 피면 지고 지면 또 피고 흐르면 괴이고 괴이면 또 넘쳐서 꽃다운 향기가 먼 곳에까지 둘리였었다. 귀여운 양들은 맑은 샘물을 마시고 흰 나비의 뒤를 쫓아 뛰어 다니기도 했었고 단꿀에 배불리어 나무 그늘 밑 푸른 융단에서 낮잠도 잤었다. 향기에 끌려 오는 먼 곳의 여객은 그 향기에 취하여 깊이 잠들던 자도 적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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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보는 바 지금의 사막은 전의 사막이 아니다. 전에는 옥토였었다. 광명이 찬란하던 붉은 토지였었다. 지금의 사막은 본래의 옥토였었다. 한것이려니 맹렬한 광풍에 당하여 지금에 보이는 독기 있는 모래로 덮혔다. 북으로부터는 고비의 모래가 삭풍에 몰리어 남으로부터는 사하라의 모래가 쌓이어 왔습니다. 허나 그 심도는 한 길에 불과하다. 그 밑은 본래의 옥토다. 옥토는 의연히 전개하였다. 영원한 옥토가 꽃뿌리와 향기의 원천도 그대로 사려 있고 맑은 물살은 그대로 스며 흐른다. 한 길의 모래만 파서 헤치면 그리워하는 영원한 옥토가 거기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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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또 부르짖는다. 「너희들이여! 파거라. 그 독기 있는 모래를 파거라. 헤치거라. 그 모래를 헤치거라. 너희들의 뜨거운 눈물과 짜거운 땀과 보배로운 피를 짜내서 그 모래를 적시어라. 파거라. 헤치거라. 하면 너희들의 주인, 영원한 옥토가 보일 것이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새싹이 나올 것이다. 맑은 샘물이 솟을 것이다. 오 그대여 저희들에게 능력을 주거라. 마음을 굳게 하여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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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쉬임없이 경과한다. 석양도 지나갔다. 흑막이 사위에서 내려진다. 사막은 어두운 밤이다. 냉정한 바람은 더욱 극렬하다. 저는 어두움 사이로 여전히 바라본다 - 두 볼로는 눈물이 가로세로 흐른다. 양의 무리는 머리와 입으로 모래를 파며 네 발로 헤친다. 모래가 날아든 두 눈에서는 눈물, 터럭이 돋은 여윈 몸에는 땀이 부풀어 터진 입술과 찔리어 헤어진 네 발에서는 피가 모래 우에 방울방울 떨어진다. 떨어져서는 스며 들고 스며 들어서는 옥토에 흐르며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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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밤이다. 저는 계속하여 생각에 잠겨 바라본다. 흐느끼며 목메여 운다. 양의 무리는 피곤하여 통곡한다. 하나 그침없이 파며 헤친다. 파며 헤친다. 긴긴 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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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많이 경과한 모양이다. 동편 하늘-지평선 우로서 멀찌기 새벽빛이 나타난다. 회색 안개의 장막이 서서히 걷혀진다. 그 몽롱한 가운데로 저는 양의 무리가 여전히 움직이는 것과 이슬기 있는 연한 붉은 빛지면이 드러남을 본다. 저는 인제 더 흐느끼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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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4.15)
【원문】긴 숙시(熟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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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숙시 [제목]
 
  최승구(崔承九) [저자]
 
  # 근대사조 [출처]
 
  1916년 [발표]
 
  시(詩)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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