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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마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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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야담(靑邱野談)》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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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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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 고을의 한 원님이 정사는 청렴해서 털끝만큼도 부당하게 취하지 않았지만 사람 됨됨이 옹졸하고 일 처리가 허술하였다. 임기가 만료되어 장차 떠야 할 형편인데 주머니가 썰렁하여 당장의 치행도 어려웠다. 원님의 마음은 정히 조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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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을에 원님이 신임하던 아전이 있었다. 범백사에 영리하고 민첩한 사람이었다. 아전은 원님이 자기를 여러 사람 중에 뽑아서 써 준 데 감격하여 한 번 충성을 바치고자 하였다. 원님이 궁지에 놓여 진퇴양난인 것을 보고 마음으로 몹시 딱하게 여기던 끝에 사람을 물리치고 은밀히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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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께옵서 청렴으로 자처하옵고 결백을 지키신지라 이제 과만(瓜滿)이 되어 오는데 치행의 마련이 없사옵니다. 소인이 정성을 다하여 보답코자 하던 차에 한 꾀를 생각하였는데 비단 치행의 걱정을 놓을 뿐 아니라 장차 가산을 윤택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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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이치가 닿으면 왜 안 듣겠느냐?"
 
7
"아무 좌수(座首)의 집이 고을에서 갑부인 줄은 전부터 들어 알고 계십지요. 오늘 밤 소인과 작반해서 한 번 도둑의 수단을 부려 보면 천금을 단숨에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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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은 대로해서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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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네라서 이런 불법한 일로 나를 욕보이려 하다니. 어찌 관장이 되어 가지고 도둑질을 하겠느냐. 요망한 소리를 말아라. 네 죄는 곤장을 맞아 마땅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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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님, 이렇게 고집만 세우시다가 공채(公債) 수백금은 장차 무엇으로 갚으며 노자 5,60 꿰미는 어디서 마련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댁에 돌아가신 후에 풍년이 되어도 굶주림을 면치 못하고, 겨울이 따뜻해도 추위에 울부짖으며, 집이 경쇠를 매단 듯하고, 가마솥에 티끌이 앉은 때를 당하면, 그 때 응당 소인의 말씀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또 깊은 밤중의 일이라 귀신도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억지로 취하지만 순리로 받아들이는 격입니다. 재삼 숙고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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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은 곰곰 앉아서 생각하던 끝에 말꼬리가 모험을 감행하는 방향으로 빠져들었다. 이에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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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서 한 번 해 보자. 어떤 모양을 하고 가야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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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건 발막(發莫)에다 가뜬한 복장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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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과 아전은 손을 잡고 밤길을 나섰다. 거리에 종소리는 이미 그쳤고 인적도 끊어졌다. 달은 떨어지고 밤안개가 자욱하여 밤은 칠흑 같았다. 좌수의 집 담장을 넘어서 살금살금 들어갔다. 곳간 문으로 가서 구멍을 뚫고 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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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술 곳간으로 잘못 들어왔군요. 아무튼 소인은 본래 주량이 큰데, 좋은 술을 만나니 입에서 침이 절로 납니다. 우리 필이부(畢吏部)의 고사를 한 번 시험해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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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은 놀란 듯이 소리쳤다. 그리고 원님의 발막 한 짝을 벗겨서 술을 듬뿍 떠 가지고 받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원님은 이 지경에 이르러 시비를 차릴 겨를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 들었다. 아전은 거푸 4,5발막을 퍼마시더니 짐짓 대취해서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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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은 평생에 술을 마시고 거나할 때 장가(長歌) 한 가락을 뽑는 것이 장기올씁니다. 지금 주흥이 도도해서 도무지 누를 수 없사오니, 안전님 장단을 치며 들어 보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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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은 혼비백산에서 손을 저으며 급히 만류했다. 그러나 아전은 들은척 않고 고성방가를 시작했다. 개는 곳간 앞에서 짖어댔고 사람들은 방안에 있다가 깜짝 놀랐다. 여러 장정들이 꿈결에 듣고 벌떡 일어나서 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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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야,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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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은 그 틈에 먼저 빠져나와 곳간의 구멍을 막아 버렸다. 원님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황겁해서 어쩔 줄 몰랐다. 매에 쫓기는 꿩처럼 술독 사이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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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을 잡고 비추면서 모두들 도둑놈이 술 곳간에 들었다고 소리쳤다. 곳간의 자물통이 열리고 원님은 꽁꽁 묶이어졌다. 독 안에 든 자라를 잡아내듯, 불끈 떠메다가 가죽부대에 담아서 대문 옆에 선 버드나무 가지에다 매달았다. 이튿날 관가로 끌고 가서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기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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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아전은 그 집 사당으로 들어가서 불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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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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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수의 집안 사람들은 불을 잡기 위해서 우르르 사당으로 몰려가고 집에는 오직 좌수의 아비 혼자 남았을 뿐이었다. 99세의 노인으로 반귀신이 되어서 목석처럼 별당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아전은 살짝 별당으로 들어가서 그 늙은이를 업어냈다. 버드나무 밑으로 와서 부대를 열고 원님 대신 늙은이를 집어넣었다. 원님을 부축해 일으켜서 부랴부랴 도주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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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은 다리를 둘밖에 만들어 주지 않았음을 원망하며 날 듯 동헌으로 도망했다. 숨이 막히고 목이 메어서 불길처럼 솟아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길이 없어 눈을 부릅뜨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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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네가 나를 죽이려구! 죽이려구! 세상에 어찌 원을 도둑으로 만들고, 함께 도둑질을 하다가 술을 퍼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놈이 있다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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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은 태연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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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의 계교가 이제 들어맞았습니다. 안전님께서 벗어나신 대신으로 좌수의 90 노친을 가죽부대에 담아 놓았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일입지요. 사령(使令)들을 보내 즉시 끌어오도록 해서 옥중에 가둬 두십시오. 내일 아침 조사(朝仕) 끝에 좌수를 불러 가죽부대를 끌러 보이고 불효로써 죄를 다스려서 큰칼을 씌워 하옥하십시오. 다음에 이리이리하면 수천 금을 앉은자리에서 얻을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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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은 이 말대로 새벽바람에 좌수를 불렀다. 좌수가 들어와서 배알을 하자 동헌 마루에 올라앉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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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집에서 간밤에 도둑놈을 잡았다면서…… 그놈을 끌어다가 자네가 보는 앞에서 엄히 다스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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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들이 가죽부대를 벗겼다. 속에서 한 늙은이가 몸을 움츠리고 나왔다. 좌수는 그것이 자기의 부친임을 보고 부들부들 떨면서 계단을 내려가 부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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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民)의 노부이옵니다. 집안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한 짓이옵니다. 민의 죄는 만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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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님은 대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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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찍이 네가 불효로 고을에 소문이 높음을 들었노라. 이번에 무단히 강상(綱常)의 죄를 범하였으니 용서치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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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집장(執杖) 사령을 불러 땅에 엎어 놓고 20대의 살위봉(殺威棒)을 맹타케 하였다. 살이 터지고 피가 쏟아졌다. 사형수가 쓰는 20근의 칼을 씌워 하옥시켰다. 좌수는 백 가지로 생각하여 보니 실로 강상의 대죄를 범한 셈이라 살아나려야 살아날 도리가 없었다. 모 아전이 가장 원님과 긴밀한 사이인 것을 알고 남의 이목을 피해서 그를 불러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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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나의 이 무거운 죄를 벗겨 준다면 수천금이라도 아끼지 않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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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백금 200냥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아주 어려운 듯이 오래 짬짬하다가 개연히 응낙을 하는 것이었다. 2천금을 밤에 자기 집 뒤로 운반하게 하고 들어가 원님에게 아뢰어서 좌수는 관대히 방면되었다. 그 돈은 한푼도 남기지 않고 원님댁으로 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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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신관이 내려왔다. 원님은 그 아전을 남겨 두면 일이 반드시 누설되고 말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무를 인계할 때에 신관에게 비밀히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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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아전은 간교한 데다 권세를 농락하여 가만둘 수 없는 자이오니 제가 떠나간 후 공이 반드시 그자를 죽여 없애야만 온 고을이 안도할 수 있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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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삼 당부하고 떠났다. 신관은 구관의 부탁이 본 바가 있어서이고, 또 청을 거절하기도 어려워서 이튿날 공사를 시작하기가 바쁘게 그 아전을 잡아들여 불문곡직하고 그를 타살하려고 했다. 아전은 자신이 신관에게 득죄한 바가 없는데, 이는 필시 구관이 일이 탄로날 것을 겁내어 자기를 죽여서 멸구(滅口)하려는 것이리라 여겨졌다. 일불주 이불휴(一不做二不休)니 마땅히 내가 살아날 방도를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눈을 들어 신관을 바라보니 왼쪽 눈이 멀어 있었다. 이에 그는 큰 소리로 애원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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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은 신구 사또께오서 교체하시는 마당에 심한 죄과도 없사온데, 오로지 구안전님 눈을 고쳐드린 까닭에 이 죽음의 화를 당하는가 싶습니다. 세상에 이런 원통한 일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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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은 귀가 번쩍 뜨여서 급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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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슨 묘법이 있어 능히 애꾸눈을 고칠 수 있단 말이냐? 말해 보아라. 너를 용서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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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이 소시에 강호로 떠돌다가 이인을 만나서 세상에 전하지 않는 청낭비결(靑囊秘訣)을 전수받았습니다. 먼 눈이야 제 손 한 번 가면 말끔히 떠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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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은 대희해서 결박을 풀게 하고 동헌 마루로 올려 자리를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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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은 참으로 비인(非人)이다. 이런 대은을 갚기는커녕 도리어 죽이려 하다니. 나 역시 눈이 하나 성치 못한데 네가 능히 치료할 수 있겠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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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은 열심히 들여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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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증세는 가장 고치기 쉬운 것입니다. 사또께서 밤에 잠깐 소인의 집으로 납시면 신기한 비법을 시험해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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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은 크게 기뻐 날이 더디 가는 것을 한탄했다. 날이 저물어 혼자 편복(便服)으로 나섰다. 아전은 벌써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후당(後堂)으로 맞아들여 술상을 곧 차려 내오는데 수륙 진미가 구비되었다. 술이 반 취하였을 때 신관이 묻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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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하구나. 치료를 해 주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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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은 '예예' 하고만 있더니 이윽고 암송아지 한 마리를 묶어서 좌석으로 끌고 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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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를 무엇하러 끌어 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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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신방(神方)이올시다. 이놈과 한 번 교접을 하면 눈이 절로 뜨입니다."
 
54
신관은 곧이 안 듣고 일어서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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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구관사또께오서 소인을 죽이려 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입지요."
 
56
신관은 반신반의하면서 선뜻 가까이 하지 못했다. 아전이 재삼 종용하였고 신관 자신도 애꾸눈 고치기에 마음이 급한 데다 술기운도 있어 허리띠를 풀고 두 무릎을 꿇고 접근했다. 눈을 딱 감고 나아가매 송아지가 음매 하며 발광을 하여서 간신히 일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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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은 대문 밖까지 배웅을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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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이 내일 아침 나아가 축하를 올릴 적에 석 잔의 박주로써 대접하지 말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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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관은 동헌으로 돌아와서 촛불을 켜고 아침만 되기를 기다렸다. 거울을 들고 비추어 보니 하룻밤 잠을 못 잔 때문에 오른쪽 눈까지 마저 멀어 가는 것 같았다. 분통도 터지고 부끄럽기도 해서 관노를 보내 성화같이 아전을 잡아 오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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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은 암송아지를 색실 끈으로 코뚜레를 하고 홍색 비단옷을 입혀서 앞세우고 천천히 관문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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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대문을 열어라. 사또나리 실내마마 행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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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읍내가 웃음바다가 되었고 추문이 빗발쳤다. 신관은 내당에 숨어서 코빼기도 내밀지 못했다. 며칠 후에 관직을 버리고 야반에 서울로 도주해 버렸다고 한다.
【원문】우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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