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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에 우거진 숲 사이로 저녁 넘는 햇발이 붉게 쌓입니다. 떼 지은 까마귀는 이리로 몰리고 저리로 몰리어 산에서 소리만 요란히 냅니다. 가을날도 저물려 합니다. 앞에 보이는 시냇물은 심사만 내어 애매한 바위를 못살게 굴며 쏟아져 흘러갑니다. 듬성 드뭇한 촌가(村家)에서는 차디찬 연기가 곱게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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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다 저문 때 노(盧) 포수는 빈몸으로 터벅터벅 들어옵니다. 감발을 잔득하고 나갔던 몰이꾼들도 사지(四肢)가 흐느적하도록 취하여 들어옵니다. 노 포수는 “예미붓흘· 오늘째 꼭 한 달일세… 첫날부터 어째…” 하고 한 달 전에 예 오던 때 들껏 구경(求景)한 탓을 또 하고 있습니다. 밥상이 들어와도 안 먹고 몰이꾼에게 돌려 보내고서는 자기는 모주만 먹었습니다. 제아무리 장사여도 주린 속에 술만 마셨으니, 혀가 돌 리 만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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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늦도록 오늘 실패한 사냥 이야기를 공 굴리듯 꼬부라진 혀로 한참 굴리다가 몰이꾼은 흩어져 갔습니다.
6
포수는 허리 아프다는 소리를 몇 번씩 하면서 실패한 원소(怨訴)를 예미붓흘 소리에 붙여서 섞어 버무려 가며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의 잠든 것은 코고는 소리와 잠꼬대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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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단님, 어서 가십시다·” 하고 두꺼비 같은 발로 방바닥을 밟습니다. 포수는 잠 적은 늙은이라, 깨기는 일찍 하였으나 일어나기가 싫어 이때껏 누워있다가 여러 사람 소리에 일어났습니다. 행길가 시골 방문은 아침 햇발을 잔뜩 받아 어른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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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고 날 때에 시계가 있었다면 열 시가 넘은 것을 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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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만 하고 난 포수는 “알이 없어…. 이제 재야 할걸…” 하고 몰이꾼에게 둔한 소리로 말합니다. 몰이꾼은 퍼덕거리고 앉아 이야기만 이죽거리고 있습니다. 나는 길가로 나아가 동서남북의 표(標)를 십자(十字)로 그어 중앙에 막대를 꽂아 놓고 시간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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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치면, 기적(汽笛) 소리가 들릴 때쯤 하여 사냥꾼 일동은 준비나 잘 하였는지 오늘은 새삼스러이 앞산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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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며 길가 마루 끝에 앉았습니다. 내 머릿속에서는 밥값의 계산서만 떠돕니다. 얼마 아니 되어 콩 튀는 듯한 총소리가 적막한 산천을 울리더니, 노루 한 마리가 숲속에서 뛰어나와 쏜살같이 인가(人家)로 향하여 닫더니, 중간 길에서 방향을 바꿔 서편으로 전광(電光)같이 뛰어 닫습니다. 뻣뻣한 다리로 겅둥겅둥 뛰는 그 노루로부터는 공포에 관한 전율을, 생에 관한 집착을 확실히 볼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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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을 먹으면 뛰는 노루도 잡는다”고 약 먹일 적에 어른들의 달래시던 소리를 들은 지 오 년, 십 년·. 오늘에야 처음으로 노루뜀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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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다시 적막합니다. 몰이꾼의 소리도 영영 아니 들립니다. 물소리만 맑게 들립니다. 장(場)에서 돌아오는 농군들은 떠들썩합니다. 나뭇잎만 곱게 흩어져 떠나갑니다. 모연(暮煙)은 입니다. 해는 넘습니다. 안개가 시냇가에서 돌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포수의 일단(一團)은 올 때가 지났습니다. 노루피는 사냥 온지 한 달에 한번 먹어 보았습니다. 나는 또다시 밥값을 계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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