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에 끌리지 말고 욕심에 몰리지 말고 아무 데도 구애되지 말고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말고, 무심코 고요한 마음으로 청산에 거닐어 보자. 산천에 정(情)이 있다면 그대로 받아 보고 운우(雲雨)가 무심타면 그대로 젖어 보자 하면서도, 이른 봄 늦길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둔 산길에 이 몸이 하루 저녁이나마 드새고 갈 정처도 없이 타박이고 있을 때, 불안한 마음이 이 몸을 엄습한다. 그대로 그 경(景)에 눌려 버리면 자연스런 구음(口吟)도 하나 있으련만 현실에 오히려 위협을 받고 공포를 느끼게 되니, 거두(擧頭)의 나의 소망은 한 개의 믿음 없는 가구(架構)였다.
4
또 하룻날, 한편에선 북〔鼓〕이 울고〔鉦〕이 뛰고 장구〔長鼓〕 박자에 흥취가 동탕(動蕩)할 제, 이 친구 저 사람은 홍상(紅裳)에 율동을 맞추고 가홍에 곡조를 돕는데, 창(唱) 하나 무(舞) 하나 하지도 못하면서 주상(酒床)을 떠나지 못하는 나. 나 자신도 무료하지만 남 보기에도 무미한 것인데, 그렇다고 즉흥의 묘사는 못 한다 하더라도 고음(苦吟) 일절이라도 가라앉지를 아니하여 할 수 없으니 이야말로 어찌 된 셈일까. 적(寂)에 철(徹)치 못하고 흥에 뛰지 못하고, 그리고 또 적이나 흥에 가라앉지도 못하니, 도대체 나의 존재는 무엇인고. 서책(書冊) 하나 착심(着心)해 정독치도 못하거니와, 그렇다고 속무(俗務)의 하나일지라도 뚜렷이 묶어 놓지를 못하고 욕심에만 설레어 양자 사이에 헤매고 있으니, 어허 참 괴이한 일이요 한심할 노릇이로다.
5
〔나는 항상 초장·중장뿐이요 종장을 마치지 못한다. 이것이 나의 글의, 마음의, 일의 진상이니, 종장이 없다고 구태여 탈하지 마라. 무리하게 찾으면 거짓(僞)이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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