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보음(補陰)의 묘제(妙劑)로서 조선에는 삼복(三伏)날에 개〔狗〕를 먹는 풍습이 있다. 복장(伏藏)된 금기(金氣)를 보(補)하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이지만 토용(土用)의 장어〔鰻〕보다 의방(醫方)은 역연(歷然)한 듯하다. 그러나 타일방(他一方)에서는 사군자(士君子)된 자 구육(狗肉)을 먹어선 아니 된다고 한다. 즉 구육을 먹으면 공(功)을 이루기 어렵다 하니, 이는 혹은 유가자류(儒家者流)의 논리관(論理觀)에서 오는 일종의 금기(禁忌, 터부)일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일방(一方)에서는 먹어야 한다고 하고 타방(他方)에서는 이를 먹으면 아니 된다 하니, 이런 모순은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즉 마땅히 개〔狗〕를 팔아서〔售〕 술〔酒〕을 사야〔沽〕 할 것이다.
4
이러한 의미에서인지 아닌지는 보증키 어려우나, 이곳 서울 조선인 호사가(好事家) 간에서는 일시(一時) 이 말이 은어(隱語)와 같이 희담(戱談)과 같이 유행하고 있었다. 즉 ‘수구고주’는 지금 와서는 하나의 고사(故事)로 되어 가고 있으나, 이 구(狗)란 것이 실제로 저 노두(路頭)에 주구(走驅)하고 있는 범견(凡犬)의 유(類)가 아니요 서울의 어느 미술관에 수장되어 있는 저 유명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화(畵)〈투견(鬪犬)>이다.
5
이 그림은 지본착색(紙本着色)이라 하지만 농채(濃彩)가 아니라 묵색(墨色)이 주가 되어 강자(絳赭)의 유(類)가 전체에 사용되고 청록(靑綠)의 유는 연하(緣下)의 잡초와 지퇴(地堆)의 일부에 약간 사용되어 있는, 흑미(黑味)가 뚜렷한 그림이다. 조선의 그림으로서는 진귀하다 할 만큼 사실적으로 충실한 그림인데, 육부(肉付)의 요철(凹凸), 모립(毛立)의 소밀(疎密) 같은 것도 묵색의 농담(濃淡)에 의하여 실로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개의 종류는 전문가에게 묻지 않고는 알 수 없으나 불도그와 흡사하고 체구(體軀)는 훨씬 크다. 틀림없이 서양견인데 영맹(獰猛)함이 더할 수 없는 형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의 화폭은 종(縱) 일 척(尺) 사 촌(寸) 삼 푼(分), 횡(橫) 삼 척 이 촌 오 푼으로 되어 있지만, 물론 완폭(完幅)은 아니다.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제14책에는 이〈투견도〉외에 남리(南里) 김두량(金斗樑)의〈목우도(牧牛圖)〉와 필자 미상의 〈구도(狗圖)〉가 있으나 모두가 매우 유사한 필치(筆致)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개는 본래 서울의 김모(金某)라는 광산가(鑛山家)의 집에 있던 것인데, 김모와 심교(深交)가 있던 화백에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이 있었다.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微)』에 “철종(哲宗) 12년 신유생(辛酉生) 졸년(卒年) 오십구”라 있으니, 1861년생이고 몰년은 1920년이다. 조선조 말대의 명화(名畵)로서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의 제자이며 관재(貫齋) 이도영(李道榮)의 사(師)이고 소림(小琳) 조석진(起錫晉)과 병칭되던 인물이다. 『근역서화징』에는 “畵各體俱長 書隸行 그림 각 체에 뛰어났고 예서와 행서를 썼다”이라고 매우 간단하게 적혀 있으나, 그 『서화징』의 저자로부터 친히 들으니 성품이 지극히 방일쇄탈(放逸灑脫)하여 술을 즐겨 깨는 날이 없었고, 그 때문에 화폭은 어느 때나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많이 중도에서 그쳐 나머지는 제자인 관재 이도영(193년 졸)의 계필(繼筆)에 의하였다고 한다. 광산가인 김씨가 몰락함에 이르러 가전(家傳)되던 많은 습장(襲藏)이 매출(賣出)됨에 저 명폭(名幅)의 개도 같은 운명에 봉착하였으나, 원래 이 사람들은 평상 죽림(竹林)의 칠현(七賢)으로서 자임(自任)하여 물외(物外)에 소요하고 두주(斗酒)를 위해서는 만전(萬錢)이라도 아끼지 않던 생활 방식인데, 모처럼 갖고 있던 개도 낙관(落款) 없이는 술이 되지 않는다. 그림은 분명히 잘되었지만, 그렇다고 근세(近世)의 화인(畵人)에서 이를 찾아본다면 단원(檀園)을 두고서는 따로 없을 것이라 하여 무엇이고 하여서 못 할 바 없던 심전이 즉석에 각인(刻印)하여 이에 찍어서 시(市)에 내놓았다고 한다. 지금도 저 그림의 백문주인(白文朱印)의 ‘士能(사능)’이란 단원의 자인(字印)을 볼 때마다 심전의 취안(醉眼)이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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