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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唐) 무종(武宗) 회창육년(會昌六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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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日前遣楚州。取文書功德幀([□@考]幀東本無)等使。大使家人高山到來。得楚州譯語劉慎言書。云。有勑焚燒佛教經論幡蓋。及僧衣物銅瓶椀等。焚燒淨書。有違者便處極法。自家經幡功德([□@考]德下脫幀字)等。皆焚燒訖。唯留和上文書等。條疏甚切。恐鎮柵察知。不敢將出寄付。又云。近得的信。李隣([□@考]隣上文作驎)德船㢠兼云日本客相隨來同尋訪陶中等消息去。次如有彼國信來。即專附上(云々)。高山云。在楚州。親見從船下來人云。有二僧人。專為請益僧。就船來到。今遇僧難。褁頭在(云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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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창 6년(856) 세차 병인 정월 초하루 계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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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註 553 9일 앞서 초주로 보내 문서와 공덕정 등을 가지러 간 대사의 가인 고산(高山)이 돌아왔다. 초주의 통역 유신언의 서신을 받았는데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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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칙에서 ‘불교의 경론과 번개(幡蓋) 그리고 승복과 구리 병과 주발 등을 불살라 모두 깨끗하게 태워버려라.註 554 어기는 자가 있으면 곧 그 자리에서 극형에 처한다.’라 하여 우리 집에 있던 경과 번(幡) 그리고 공덕정 등을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다만 스님의 문서 등은 보존하고 있습니다만 규제가 매우 심하니 진책(鎭柵)註 555의 관리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감히 가지고 나와 붙여 보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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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정확한 소식註 556을 들었는데 이인덕 註 557의 배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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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의 객(客)이 따라왔는데 도중(陶中)註 558 등의 소식을 물어 떠났습니다. 다음에 만일 그 나라에서 서신이 오면 즉시 부쳐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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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주에 있을 때 배에서 내리는 사람을 직접 만났는데 이르기를 ‘두 승려가 오로지 청익승 註 559을 찾기 위하여 배를 타고 왔는데, 지금 법난을 만나 머리를 싸매고 있다.’운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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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553 본문에는 정월이라는 말이 없으나, 다음에 2월 5일의 기사가 있으므로, “正月”의 두 글자를 보입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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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554 원문에 “焚燒淨盡”이라고 하였다. 초본(抄本)에는 “盡”자가 “書”자와 비슷하게 되어 있으나, 아마도 “淨盡”의 잘못일 것이다. 또한 앞의 글에서 “焚燒經像僧服罄盡”라고 하여, “焚燒” 두 글자가 연문인지도 모르겠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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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555 여러 본에는 “鎭棚”이라고 하였으나, 의미를 통하게 하기 위해 고친다. 진성책보(鎭城柵堡)의 줄임말이다. 도중의 촌, 진, 성 등을 경비 보안 하는 관리를 말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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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556 원문에 신(信)이라고 하였다. 편지와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보도(報道)의 의미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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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557 이 인물에 대해서는 회창 2년 5월 25일조 및 회창 5년 7월 5일조에 보인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의 귀환은 회창 5년 말에 있었다고 이해되어, 그 왕복은 약 3년 반이 걸렸던 것이 된다. 또한 혜악(惠萼)도 회창 4년 4·5년경 소주 또는 항주에 체재했던 것은 금택문고본 《백씨문집(白氏文集)》 발문 및 《원형석서(元亨釋書)》 혜악전 등을 통해서 추정된다. 이에 비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서는 5년 7월경, 폐불의 피해를 입고 환속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본래 회창 2년 5월에 혜악 또한 이인덕과 같은 배로 일본에 건너갔다고 한다면, 다시 당에 올 때에는 어떤 배를 탔던 것일까. 만약 이인덕의 배였다고 한다면 그의 귀환은 회창 5년이 되지 않으면 안 되어, 날짜가 합치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덕의 귀환 일자에 잘못이 있거나 혹은 3년 반에 인덕 또는 다른 당의 배가 또 한번 왕복했던 사실이 있었다고 의심된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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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558 신라인 도십이랑(徒十二郞)을 말한다(회창 2년 5월 25일조)(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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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559 여기에서는 원인(圓仁) 자신을 가리킨다. 또한 2인의 승이라는 것은 성해(性海, 4월 27일조 참조) 등을 말할 것이다(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 第4卷, 鈴木學術財團, 1969,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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