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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雲江) 조원(趙瑗) 첩(妾) 여류시인(女流詩人) 이옥봉(李玉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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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류시인으로 허난설헌(許蘭雪軒)과 백중을 다투던 이는 선조 때 이옥봉 여사(宣祖 時 李玉峯 女史=又號 玉人)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색이 미려하고 천재가 비상하여 시문과 노래가 모두 능난하니 당시의 문장 명사들이 모두 혀를 홰홰 저며 감탄하고 어디에서든지 톡톡하게 한몫을 처주었다. 그러나 가인박명(佳人簿命)이라 할지 그는 불행히 종실 이봉의 서녀(宗室 李逢의 庶女)로 태어 낳았기 때문에 남의 정실부인이 되지 못하고 임천 조씨(林川 趙氏)의 운강 조원(雲江 趙暖 字 伯玉)이란 사람의 첩이 되었다. 그중에 남과 같이 부부간 정의도 좋지 못하여 서로 생이별을 하고 슬하(膝下)에 자녀도 하나 없이 쓸쓸한 생활을 하다가 불행히 일찍 죽고(早夭) 그의 남편인 조원은 벼슬이 승지(承旨)에까지 이르렀으나 임진란(壬辰亂) 중에 또한 국난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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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물이 청초하고도 신세가 비량(悲凉)하니만치 그의 시(詩)도 또한 청신하고 비애곡진한 것이 많다. 그가 남편 조씨와 갈린 뒤에 조씨에게 지어 보낸 시는 인간의 끊임없는 정한(情限)을 곡진하게 묘사(描寫)한 시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회자(膾煮)하여 몇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인 가객(詩人 歌客)의 입에서 항상 오르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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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가 강원도 영월(江原道 寧越)을 지나다가 도중에서 단종대왕의 장릉(端宗大王 莊陵=魯陵)을 바라보고 지은 감상시(感想詩)는 극히 비절 처량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애달픈 눈물을 금ㅎ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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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일찌기 그의 남편 조씨를 따라 상주(尙州=그때 조씨가 상주 목사가 되었다)에 가 있다가 조씨가 만기되어 서울로 돌아오게 되매 그역 서울로 같이 오더니 도중에서 마침 신임목사(新任牧使)와 서로 만나게 되니 그는 원래 조씨와 친한 친구였다. 신구관 그중에도 친한 친구 새에 타향에서 서로 만나게 되니 자연 배반을 차리고 한 바탕 놀게 되었다. 조씨는 이옥봉을 불러서 그 신관에게 술을 권ㅎ게 하고 또 시(詩)를 지어 주게 하니 이씨는 조씨의 말이 떨어지자 즉시에 한 수의 시를 지어주고 손에 든 흰 부채(白摺扇)를 치며 장단을 맞춰 그 시를 읊으니 그 소리가 청아하기 선악과 같아서 좌중이 모두 경탄하고 그 시명이 일시 조야에 가득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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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批(音 별)逆鱗登此道, 淮陽高臥亦君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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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그는 명작이 많으나 몇 편만 더 소개하고 약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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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芝峯類說, 詩話, 聞韶漫錄 參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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